2D/마영전

허크헤기 무언

강아라 2016. 1. 15. 04:17












 눈앞에 피를 뚝뚝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를 보며 허크가 이를 악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웃고 있었다.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살짝 기울어지는 고개는 평소에도 애교가 많던 아이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려는 듯 했다.

 

“헤기.”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네.

 

“그럼…너는.”

 

입술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럴 터였다. 허크는 들고 있던 검을 쾅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내리쳤다. 메아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마치 짐승이 포효라도 하는 것처럼.

 

“그, 모두를 살리면, 너는?”

 

헤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기다란 속눈썹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깜빡이다 이내 우주를 삼켰다. 턱끝에서 피가 뚝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려 웃는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의식은 시작됐다. 저 멀리서, 악신이 나타나고 있었다. 허크가 움직일수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헤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지나쳤다. 헤기. 허크의 부름에도 헤기는 멈추지 않았다. 작은 손이, 커다란 검을 붙잡았다. 제발.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속박이 풀렸을 때 아이는 검을 뽑아 들었고─

 

-

 

가진 거라곤 이름 하나뿐인 삶이 있었다.

 

-

 

모든 걸 잃어버린 삶도 있었다.

 

-

 

그런 삶도 있다.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두 번이나 잃어봤으니, 또다시 과오를 반복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헤기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 그가 자신과 같은 미래를 반복할 때 허크는 그것을 방관했다. 사실, 말린다고 하여 바뀔 운명이었다면 몇 번이고 새로 썼으리라.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자신들이 잊혀지는 건 익숙했다. 헤기도 금세 털고 일어나는 듯 했다. 그래야 했는데, 영웅을 쓰러트리고, 나타난 자가 한 말에 헤기가 손을 뻗었다. 저는 모두를 구하고 싶어요. 몇 번이고, 수십, 수백, 수천, 본래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당신은 나를 기억할 거잖아? 헤기의 말에 허크는 검을 뽑아 헤기의 앞을 막았다.

 

-

 

네가 처음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적은 언제였던가, 아마 그 날이었을 것이다. 소중한 자를 베었던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빛이라곤 들어오지 않는 그 성에서 헤기는 홀로 서 있었다. 마물로 변한 이들은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본래의 흔적이라곤 남아 있지 않는 그의 앞에서 헤기는 한참이나 고개를 처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내렸기 때문에, 헤기의 뺨에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허크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피먼지가 다 씻겨내려 갈 정도로 오랫동안 비를 맞고 있던 헤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이의 절망을 읽었을 때, 그 때, 그 순간, 네가 우는 모습을 봤다면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라고.

 

“헤기.”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고.

 

“위로해 줄까?”

 

-

 

아마, 아니 확실히 허크는 헤기의 생각을 평생토록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입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가슴으로는 평생. 그건 아마 허크가 헤기에게 가지는 일련의 소유욕 때문이었고, 헤기는 그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건데. 헤기의 말을 곱씹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기에 옆에 있는 것이라고, 이해했다면 절대 함께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서로에게 느낄 자기혐오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네가 영웅이 된다면, 세상은 너를 데려갈 것이고, 운명의 굴레에서 너를 도려내 허무를 만들겠지. 그러면 그로 인해 톱니바퀴는 제 자리를 찾아 굴러갈 것이고, 아침이 되면 세상은 평화에 잠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네 눈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적실 의향이 있다고,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어도 상관없다고. 그러나 너는 언제나 울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나는 언제나 너의 최악이어서 너를 울게 만들었지.

 


아주 기쁘다는 얼굴로 고한다.


 

“그땐 당신이 날 구해주면 되지.”



















인용-이영광 사랑의 미안/소유&매드크라운 착해빠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