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ㄴㅇㅈ 라이즈 네타주의
선택이란 단어에는 항상 포기가 뒤따르게 되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 그렇다면 그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는 다른 한쪽은 원래 버리는 패 였던 것이다. 하지만 선택한 패 역시 좋은 것은 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그는 가면을 벗어야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단연코 'NO'라고 말할 것이고, 그렇다면 다시 가면을 쓰는 것은 어떻냐고 묻는다면 그것역시 'NO'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 말할 기력도 없이 그는 당신을 내쫓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상대도 해주지 않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의 집사가 당신을 보며 'NO'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한가지 더 말하자면 그냥 당신은 'NO'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돌직구가 통할지도 모른다.
그는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제법 당돌한 친구였다. 하지만 그만큼 귀여운 친구였다. 나름 한다고 한 시선처리와 목소리는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이야기 할 때 떨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남자는 손을 가만히 있을줄 몰랐다. 아마 돌아가는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이 적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이유를 모르고 손을 바지춤에 닦을 남자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마음에 드십니까."
그의 집사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는 글쎄요, 하면서 집사를 쳐다보았다.
"병원예약해두세요, 최대한 빨리. 그리고 수트한벌도"
"예"
"또ㅡ 아직 집에 굴러다니는 차있어요?"
이제 보이지 않게된 경찰차를 생각하며 그는 작게 웃었다. 그 남자가 경찰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브루스 웨인x존 블레이크
"사람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
"바로 당신, 배트맨이 필요하죠."
*
범죄자를 뒤쫓던 블레이크의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지만 골목골목 뺵빽히 들어선 빨래들이 흩날릴뿐이었다. 역시, 그럴리가 없지. 블레이크가 머뭇거리던 사이 범인은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쳇, 혀를 찬 블레이크는 자리를 떠났다.
브루스 웨인-배트맨 그가 남기고 간 것은 너무나 많았다. 그렇기에 그는 버틸수가 없었다. 엉망이 된 저택을 청소하고 고아원으로 꾸며놓으니 이제서야 사람사는 집 같았다. 그전에는ㅡ 블레이크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전에 몇번 찾아온 저택은 상막했다. 처음 저택을 찾아왔을때 그는 걸어다니는 미라같았고, 저택은 먼지쌓인 창고같았다. 블레이크가 두번째로 그의 집을 찾아 갔을땐 이미 유령의 성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웨인이 죽었으면 어쩌나 하고 무지하게 걱정했었고, 무작정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정의로운 그의 머리에서 나올법한 말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랬다. 고담이 다시 어둠에 휩싸이고, 새로운 악이 어둠이 나타난 그때가 나았다. 적어도 아무일도 없는 평온한 지금보단, 희망이 있는 그때가 나았단 말이다. 블레이크는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 잠은 달콤하고 평온했다. 그의 향기가 남아 있는 시트를 끌어안으면 평생 이대로 있어도 좋을 정도 였다.
*
-네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 가면을 써
블레이크에게는 사실상 무관한 이야기였다. 어릴적에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양부모 역시 그를 다시 버렸다. 이 세상에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그의 고지식한 성격탓도 있었지만 그가 먼저 사람을 밀어내는 것도 한몫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힘들다. 버거웠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라고 했다.
그는 살면서 몇번이나 이름이 바껴왔었다. 처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음 '닐', 양부모님이 주신 이름은 '아서', 고아원에서 받은 이름은 '존-블레이크' 사실 그 어떤 이름도 자신에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도 단 한가지 당신이 준 이름이 있으니까, 습관처럼 이른 새벽에 일어난 블레이크는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틱톡틱톡 흘러가는 소리가 웅웅 거렸다. 머리를 쥐어짠 그는 어기적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곧이어 휘청거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16살에 고아원에서 쫓겨나듯이 나왔을때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얼마되지 않았다. 때로는 섹시하고 요염하게, 때로는 지적이고 도도하게 그렇게 남자는 물론 돈 많은 여자까지 꼬아내서 돈을 벌었다. 죄의식은 없었다. 있을리가 없었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었다. 더러운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돈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가슴팍으로 밀쳐지는 돈은 사라질줄 몰랐다.
하루는 진짜 잘못 걸린 거였다. 여러명에서 작정을 하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옷이 전부 벗겨졌을때 까지만 해도 별 감흥 없었던 것이 강제로 치부가 보이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수 많은 손들이 이 얼굴들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져서 결국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분명 당신이 막지 않았으면 입이 터진 채로 강간 당하며 엉망진창으로 울었을 것이다. 아니 우는 것은 남자가 구해주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안절부절 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눈 둘 곳을 모르겠으니 일단 옷부터 입자."
하지만 그것 역시 바로 되진 않았다. 옷은 거의 찢어졌고 잘근잘근 밟혀 있었다. 남자는 곤란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더니 자신이 걸치고 있던 자켓을 걸쳐 주었다. 사춘기가 지나 훌쩍 커버린 소년에게 맞을거라고 생각한건지 더더욱 미간이 찌푸려 지는 남자를 보고 그는 대충 옷을 집어 입었다. '괜찮아요'하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떨려 있었는데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그를 안아주었다.
"더 울어도 돼"
"……"
"로빈"
2
다크 나이트 라이즈
브루스 웨인x존 블레이크
그가 눈을 떴을때는 딱딱한 바닥 대신 푹신한 침대위에 있었다. 그가 돌아왔나, 하고 몸을 일으켰을 땐 다시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눕혀주는 알프레드가 있었다. 왜? 하고 의문으로 집사를 봤을때, 집사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 두기 불안해서 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불안해 보이는건 집사였다. 블레이크의 기억속에는 아직도 묘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집사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떠나시는 줄 알았는데요"
"제가 변덕이 심해서요."
블레이크가 작게 웃었다. 실로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공간안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오고갔다. 거의 알프레드가 말을 하고 블레이크가 대답하거나 작게 웃는 식이었다. 조금 괜찮아 졌는지 블레이크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온몸에 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거늘 누가 치료를 했었는지 엉성하게 밴드가 발려 있었다. 블레이크는 알프레드를 보면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그의 말에 대답하며 상처를 뜯어보았다.
"블레이크, 왜 가면을 쓰지 않는거죠."
의문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기에 블레이크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명령이었다.
*
"사람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합니다."
"……"
"바로 당신, 배트맨이 필요하죠."
"그것뿐?"
웨인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더니 블레이크는 그럼 뭐가 더 있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웨인은 힘 없이 웃으면서 정말 틀에 박힌 열혈 경찰이로군 하면서 그를 비꼬았다.
"자네와 나는 무슨 사이라고 생각하나?"
"……의도한 바를 모르겠는데요"
"상상력이 부족하군"
"……"
"스승과 제자 라던가, 영웅과 시민…그런 딱딱하고 평범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웨인의 말에 블레이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저 작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두 글자는 블레이크를 불러세우기에는 충분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블레이크에 웨인은 흡족한듯 웃었다.
"그런 표정도 지을줄 아나보군. 로빈"
"……"
"로빈(Robin)"
*
브루스 웨인이 가면을 쓰는 이유를 질리도록 들은 블레이크였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과는 관계없는 이유였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또 모를까, 블레이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알프레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블레이크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몸 상태도 정신상태도 최악이었다. 영웅이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정의감이나 도덕성으로 생각하면 블레이크는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영웅은 배트맨 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평범하게,
"강요가 아닌 부탁으로 하는 말입니다. 블레이크."
"……"
"가면을 쓰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블레이크의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 했다. 그간 쌓아왔던 설움, 외로움, 고독. 그런것들을 말로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고, 분명 자기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상처받았을 그에게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감정은 추스리기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요? 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죠? 얼굴도 기억안나는 어머니? 내 눈앞에서 죽은 아버지? 아니면, 날 파양한 양부모님?"
"블레이크"
"젠장!! 그렇게 보지마요……제발. 알겠어요. 당신이 누굴 말하는지 알겠으니까!… 제발"
블레이크가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 그 모습이 누군가와 겹쳐 보였지만 알프레드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등을 보이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쾅, 문이 닫히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젠장, 빌어먹을. 입에선 욕이 끊이지 않았다.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도 멈출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당신이 로빈이라고 부르지만 않았어도"
블레이크는 그렇게 한 참이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