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크헤기 #최애커플_왼쪽에게_총이_있고_5분_내로_오른쪽을_죽여야_지구의_멸망을_막을_수_있다

 

 



 

 

 

 철컥. 장전소리가 울렸다. 도자기 빛으로 쌓아 올라간 벽은 끝이 없었고, 작은 소리마저 그 안에서 울렸다. 우리는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 헤기의 표정은 엉망으로 일그러지긴 했으나 오히려 편해 보였다. 허크는 들고 있던 권총을 몇 번 흔들어 보고는 헤기를 마주봤다. 의외로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총알은 단 한 발.」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오 분.」대답할 가치도 없었고.

 방아쇠를 당겨 상대를 죽이면, 세계는 내일도 멀쩡할 것이고,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세계는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서 나왔는지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예언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예언’으로 치부하기엔 무게가 달랐다. 세계와 한 인간의 목숨이라니 재볼 것도 없었다. 그랬기에 헤기는 순순히 허크에게 목숨을 맡겼다. 당신이 내 목숨을 거둬간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고, 겨우 뜨고 있던 눈도 꼬옥 감고는 고개를 숙였다. 덜덜 떨리는 턱 끝으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허크 손에 죽는다면, 나쁘지 않네요.”

 “…….”

 “어서. 고통 없이 죽여주셔야 해요?”

 


 고통 없는 죽음이 과연 있을까. 헤기는 제가 말해놓고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어색하게 웃고는 허크에게 성큼 다가갔다. 혹여나 잘못 맞추면 안 되니까. 죽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날 살렸던 당신의 손에 죽게 되겠구나.

 

 콜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목숨을 걸고서라도 마을을 지킨다는 이들을 봤을 때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그 모든 걸 잃었을 때 헤기는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더 이상 일어날 수가 없구나, 끝이 있을 줄 알았던 절망은 끝이 없구나, 절망의 연쇄구나. 그때 헤기를 끄집어 올린 게 허크였다. 그러니 당신의 손에 죽는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남은 시간은 3분.」

 


 뭐가 그리도 조마조마 한 것인지 헤기는 허크의 앞에 꼭 붙어 서서 총구를 머리에 가져다 댔다. 빗 맞추면 안 돼요. 세계가 걸린 일이잖아.

 


 “마지막 키스…안 해줘요?”

 


 무섭도록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며 헤기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크? 헤기의 부름과 동시에 방아쇠는 당겨졌고,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커다란 천장에서 후두둑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탕! 소리와 함께 사라진 단 한발의 총알이 허공을 관통했다. 허크...? 총을 소리나게 집어 던진 허크가 헤기의 양 뺨을 붙잡고 입을 맞췄다. 저항 하려는 것을 붙잡고, 허리를 제게 끌어당기고 입술을 깨물고, 삼키고 숨을 넘기고, 꼬집는 매서운 손은 참아냈다.

 


 “무,슨 짓을!!!”

 “가만히 있어.”

 


 제 단검을 꺼내 자해하려는 것을 막은 허크가 맨손으로 그것을 잡아 던졌다. 두꺼운 손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 나왔다. 「남은 시간 일분.」안색이 하얗게 질린 헤기가 혀를 깨물려고 하자 키스를 당했다. 입안으로 말캉 밀고 들어오는 혀를 차마 깨물 수 없었다. 시간을 새는 것은 무의미 했다. 앞으로 몇 십초 우리가 함께 사라질 시간. 우리 때문에 세계가 파멸에 물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천천히 떨어진 입술 사이로 타액이 길게 이어졌다.

 


 “…허크…어떡하려고 그래요…”

 


 헤기의 물음에 허크는 그저 헤기를 감싸 안았다. 손등 위로 툭툭 떨어지는 눈물에 제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헤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가 영웅이고, 뭐가 세계야. 결국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는데. 헤기의 의중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머리를 쓰다듬던 허크가 말했다.

 


 “헤기. 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

 “…….”

 “너를 희생시켜가면서 얻는 건 아무런 가치도 없고.”

 “…….”

 “네가 없는 세계는 지킬 이유도 없어.”

 


 벽이,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빛이, 세계를 감쌌다. 

 티끌이라곤 한 점 보이지 않는 초속의 빛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만 세계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헤기, 나는 영웅의 자질 같은 거 없어. 버린지 오래고, 허크가 말을 이어 갈수록 세계는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너도, 영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진심이었다. 몇 번이고 무너지는 헤기를 보던 허크의 유일한 진심.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영웅이란 건 그런 거니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 그게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선택권은 없고, 때로는 자기 자신마저 희생해야 하는. 나는 네가 그런 삶을 살지 않길 바라. 나도 그럴 것이고.

 내가 지키고 싶은건 네가 울지 않는 세계지. 네가 없는 세계가 아니었다. 헤기의 뺨을 쓸어 올리던 허크는 그대로 헤기를 꽈악 끌어 안았다. 이러고 있으면, 빛도 어둠도 보이지 않을 거야. 그렇지? 허크의 말에 헤기는 눈을 꼬옥 감고는 허크를 마주 안았다.

 


 “같이…살아요…”

 


 빛이 없는 세상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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