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님이랑 썰 풀었던것

시즌3네타있음













「 허,크… 」

 

 

그것은 운명이었는가, 신의 장난이었는가.

헤기는 절망의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도 몸의 아픔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 컸음을 알았다. 내심 저를 붙잡아 줄 줄 알았던 커다란 손은 저 대신 옆의 오랜 동료를 붙잡았다. 그러고서도 제 손을 의심하는 듯 고개를 돌린 허크는 재빨리 헤기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손끝의 온기가 떠나지 않았다. 간신히 스쳤던, 그래서 더 가슴 아팠던. 허크가 헤기를 뒤따라 그 가파른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을 땐 많은 이들에 의해 붙잡힌 뒤였다. 수 십 개의 손이 튀어나와 허크를 뒤로 당겼다. 그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나뒹군 사람도 있었다. 헤기는 그 모든 사람이 저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곤 눈을 감았다. 허크가 다시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을 땐 이미 헤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죽고 싶었는데. 헤기는 끝까지 붙어있는 제 숨이 원망스러웠다. 살고 싶다고 팔딱팔딱 뛰고 있는 가슴이 그랬고, 후들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다리가 그랬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듯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다. 바람소리 하나 나지 않는 낭떠러지였는데.

시각은 사람을 지배한다. 피 때문에 한쪽 눈은 거의 뜰 수 없었고, 그나마 뜬 나머지 눈으로 보이는 것도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아픈걸 보니 죽은 건 아니었지만, 물소리. 벌레 소리 하나 없는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헤기는 무작정 걸었다. 가만히 있자니 공포가 온 몸을 지배했다. 그리고 끝끝내 헤기는 쓰러져 누웠다. 허크가 저를 잡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세르하를 잡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만 미래를 바로 잡을 테니까. 과거를 되돌릴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늘 옳지만은 않았다. 헤기는 그래도 허크가 저를 잡아주기를 바랐다. 영웅으로써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빛의 틈 하나 보이지도 않는 어둠속에서 헤기는 눈을 감았다. 원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면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허크를 만나고 나서는 종종 보았던 환영도 보이지 않게 됐다. 매일 같이 꿈에서 나타나던 에일도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깨어있을 때가, 더 행복했으니까. 꿈보다 더 행복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한기가 온몸을 덮었다.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서서히 빠져나가는 피가 웅덩이를 만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앞이 뿌옇게 흐려져서 그것이 어둠인지 빛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보고 싶은 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마지막에 볼 수 있다면 허크가 훨씬 좋았을 것을. 헤기는 제게 손을 뻗는 환영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어둠에서 빛으로 몸이 쑤욱 끌려 나갔다.

 

 

 

 

-

 

 

 

“잘 들어.”

 

눈앞이 시뻘겋게 변했다. 멱살이 잡힌 기사는 당황한 것 같았지만 그 누구하나 허크를 말리지 못했다. 예상되는 낙하지점을 살펴봤지만 그 어디에도 헤기는 없었다. 다만 핏자국이, 그리고 이어진 발자국이 헤기의 상처가 얕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산 것이 다행이라고 하더라도.

 

“헤기 못 찾으면 니들도 살아 돌아갈 생각하지 마.”

 

그때 붙잡은 게 헤기였어야 했다. 아니면 같이 떨어지기라도 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영웅의 길을 걸어야 하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세르하를 구하는 것도, 헤기를 구하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자신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헤기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 애가 얼마나 엄살이 심한데, 동료하나, 배신자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해 벌벌 떠는 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강한자 역시 구하겠다고 스스로 영웅의 길을 걸은 아인데. 내가 잡아주지 않으면 이제 잡아줄 손이 없는, 허크는 평생 그 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점점 멀어지는 데도 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상처받은 두 눈동자를. 손끝에 닿은 작은 온기를. 저를 부르는 애닳은 목소리를. 헤기 역시 그럴 것이고.

 

“헤기!!!”

 

겨우 잡았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아이는 무엇을 그리 붙잡고 싶어 했을까. 당시에 허크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그럴것이 헤기의 상태가 너무도 안좋았다. 몸이 차가웠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안색도 창백했고,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그런데도 울었다. 까만 눈동자에서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것마냥 콸콸 흘러나왔다.

 

“너무…너무 무서웠어요..허크…춥고무서웠는데

“미안하다. 미안해. 헤기. 울지 말고.”

“다시는…허크 못보는 줄 알고…그게 제일 무서웠, 어요…”

“손 못 잡아줘서 미안해.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다시는 손 안 놓을게…헤기. 응?”

“허크…너무 추워…

“헤기. 제발.”

“…허크.”

“제발..손을 놓지 마….”

“나랑…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이의 말로는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했다. 어디 하나 부러진 곳도 없었고, 찢어진 곳도 금세 아물었다고 했다. 인간의 몸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신에게 기도라도 하고 싶었다.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머리를 땅에 박고 싶었다. 영웅이 되는 건 저여야 했다. 깨어나지 못하는 것도 저여야 했다. 이 가냘픈 아이가 아니라. 작은 손은 그세 더 야위어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만 같았다. 헤기가 자신의 손안에서 산산 조각나 흩어지는 꿈을 몇 번이나 꿨다. 그 몇 밤이 지나도 헤기는 깨어나지 않았다.

겨우 눈을 뜬건 오후가 훨씬 지나서였다. 사실 그 사이에도 몇 번 헤기가 눈을 뜬 적은 있었다. 다만 금세 눈을 감아버려서. 그것이라도 없었으면 진작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마른 입술을 달싹이던 헤기의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저와 마주쳤다. 눈에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라도 담아 놓은 것마냥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에 허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에일.”

 

그건 몇 번이고 들었던 단어였다. 단어? 아니 허크는 그 ‘에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헤기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남자의 이름이라는 걸 유추해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기가 잠결에 몇 번이고 부르던 그 이름을, 목걸이를 붙잡고 맹세를 하던 그 이름을.

 

“나랑…

 

허크는 그때 헤기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무어라 말하긴 했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고 무엇보다 그것은 목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입술만 달싹이다 묻혀버린 뒷말은 영원히 들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도망가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 쉬는 것조차 잊고 헤기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대답이 없는 게 이상했는지 다시 눈을 깜빡인 헤기는 허크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는 웃었다. 허크였구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처음부터 내게 했던 말이 아니었는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그때 네가 손을 뻗은 이는 누구였는지.

 

“…아파요…”

 

헤기의 목소리에 허크는 제가 지나치게 손에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안, 하다. 겨우 손을 놓곤 등을 돌린 허크는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도 뒤돌아보지 못했다.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깨어나서 다행이다.”

 

정적을 깬 것은 허크였다. 진심이었는지는 본인도 몰랐다.

 

“배고플 테니까 밥 먹고…”

 

배가 고프긴 커녕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허크는 결국 깨어난 헤기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방을 빠져나왔다. 헤기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들을 수 없었다. 듣고 싶지도 않았고,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안 좋다고 하기엔 서로 너무나 안 좋은 과거를 살아왔다. 거기서 다른 이와 자신보다 더한 관계를 가졌을 수도 있다. 제 인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에일이란 이름을 가진 자는. 헤기가 꿈에서조차 놓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건너서도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질투했다. 이제 막 깨어난 아이를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질투를 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너무도 우습고, 비겁했으며 헤기가 깨어나자마자 부른 이름이 제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했고, 실망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헤기의 옆에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에일이란 자가 끼어들 곳은 없었다. 꿈에서라도.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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