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에서 풀었던 해리x에그시x빌런 해리
결말이 살짝 다를 예정
해리 하트가 죽었다. 아니, 갤러해드가 죽었다.
비가 죽죽 내리는 날이었다. 에그시는 눈앞에 있는 비석을 손으로 한번 쓸어 올리더니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빗소리 덕분에 그 지독한 오열은 오로지 에그시만의 것이었다. 그의 관은 텅 비어있었다. 시체도 하다못해 뼛조각 하나도 찾아올 수 없었다. 멀린의 말은 그게 다였다. 말이 되냐고 당장이라도 미국으로 달려나갈것 같던 에그시를 붙잡은 멀린이 말했다. “너도 봤잖아. 에그시.” 확인사살과도 같은 말에 에그시는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에그시는 해리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둘은 모르는 사이였고, 개인적으로 에그시는 해리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텅 빈 그의 집에서 몇날 며칠을 기다리던 에그시는 갤러해드가 된 걸 축하한다는 멀린의 목소리에 결국 그의 묘지 앞에 서야 했다. 해리, 아니 갤러해드. 에그시는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해리 하트라는 이름이 목구멍 끝에서 턱 걸려 빠져나오지 않았다. 마치
“당신껄 빨고 있는 것 같아요. fucking harry hart.”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이제 꿈에서 깰 때였다. 에그시는 끝내 발밑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빗속으로 사라졌다.
“갤러해드”
“……”
“…에그시.”
멀린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에그시가 멍하니 들고 있던 파일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백업이 없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지금 킹스맨 내부에서도 인력이 부족하고.”
“네. 알고 있어요.”
“믿는다.”
“당연하죠. 멀린.”
에그시는 다시 한 번 파일을 빠르게 훑어봤다. 그것은 미국과 알래스카 경계에 있는 연구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임무는 어렵지 않았다. 백업요원을 보내달라는 말을 하기도 창피했다. 이 연구소는 오래전부터 비윤리적인 실험을 계속해왔고, 최근에는 생체 실험을 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진작에 제제하지 못한 것은 그 뒤를 봐주는 사람이 발렌타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는 상관없겠지. 에그시는 발렌타인의 이름을 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그런데 이상하지. 연구소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에그시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간혹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윙윙 들려올 뿐 유리창 하나 없는 새하얀 벽으로 이어진 복도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방이 하나 있었다. 함정일지도 모른다. 에그시의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에그시는 한 손에는 권총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책상 위에 컴퓨터 하나만 덜렁 있을 뿐 그것은 소리도 내지 않고 새까만 화면만 비추고 있었다.
[에그시 도망쳐. 함정이다.]
멀린의 목소리가 빠르게 에그시의 귀를 때렸다. 도망가라고 해도 말이지. 에그시는 단 하나뿐인 탈출구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에그시는 그대로 주저 앉을뻔한 걸 간신히 서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온 남자는 장신의 키와 그에 딱 맞는 수트를 입고 있었다. 빌어먹게도 자신과 같은 수트였다. 멀린이 소리치는 것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해리…”
저도 모르게 울음 섞인 목소리가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의 묘지 앞에서도 잘 나오지 않던 말이었는데 에그시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남자 역시 천천히 에그시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에그시.”
그 목소리가 너무 오랜만이라, 너무 다정해서 에그시는 허리를 끌어안는 해리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어떻게 뿌리칠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해리 하트였다. 한쪽 이마에 길게 상처를 입은, 너무나도 약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해리가 아니야. 에그시! 정신차려!] 멀린의 말을 듣고 있어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시각이 주는 정보는 강렬하게 에그시의 감각을 지배했다. 시각 뿐만 아니라 에그시라고 부르는 목소리도 그 품에서 나는 향기도 커다란 손도 전부 그가 해리 하트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정말…정말 해리 맞아요?”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소리는 그게 다였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에그시에게 키스했다. 고른 치열 사이로 파고드는 혀가 입안을 헤집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집요한 키스에 에그시가 숨을 내쉬며 해리의 양 뺨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제 신발일 정성스레 벗기고, 시계를 벗기고, 품 안에 있던 라이터 모양의 소형폭탄마저 구석으로 치워버린 그가 이제는 수트마저 벗기려 들었다. 무기가 될만한 건 모두 그에게 빼앗기거나 부수는 와중에도 에그시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달아오른 몸은 에그시의 통제를 벗어났다.
그는 에그시의 안경을 벗기더니 책상위에 바르게 올려놓았다.
“키스하는데 방해되는구나.”
이 사람이 해리가 아니라고, 멀린 드디어 눈이 맛이 간 거예요? 하지만 에그시의 말이 멀린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사랑한다.”
“해리 저 어때요?”
신문을 보고 있던 해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에그시를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요.”
에그시가 해리의 무릎 위에 천천히 올라탔다. 해리는 한숨을 내쉬며 보고 있던 신문을 고이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자줏빛 가운 아래로 드러나는 새하얀 허벅지를 천천히 쓸어 올렸다.
“혼나고 싶은가 보구나. 에그시.”
“에이 어때요.”
에그시가 해리의 안경을 고쳐 쓰며 엉덩이를 지분거렸다. 바짝 달아오른 몸 위로 차가운 피부가 닿자 소름이 돋았다. 해리는 자못 우아한 손놀림으로 에그시의 가운을 끌어내렸다. 탄탄한 몸이 노란 조명 아래 드러났다.
“키스하는데 방해되는 구나.”
그건 아직 에그시가 안경의 존재이유를 알지 못할 때의 일이었다.
“해리 정말 보고만 있을 생각이십니까.”
멀린이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그래.”
그리고 킹은 자리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며 자신의 체스말이 움직이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 멀린은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미 화면은 살색과 에그시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해리…아니 아서, 퍼시벌에게 백업요청을 하겠습니다.”
“아니. 그대로 둬.”
“해리!”
멀린이 소리쳤으나 해리는 묵묵부답이었다. 제자리에 동상처럼 앉아 있는 해리를 보며 멀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멀린은 이미 두 사람이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게도 안경은 두 사람의 사생활까지 훤히 보여주고 말았으니까. 젠장 안경은 좀 벗고 하라니까. 멀린이 커피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해리 하트는 죽지 않았다. 멀린 역시 그가 죽은 줄 알았으나 그의 장례식이 끝난 후 멀쩡히 살아 돌아온 그를 보고 기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작 연락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하고 묻는 멀린을 보며 해리는 에그시는? 하고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군. 멀린은 작게 웃으며 지금 부르겠다고 했으나 해리는 그를 말렸다.
‘알리지 마.’
예? 멀린은 처음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정해줄 생각이 없었는지 자리에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누운 해리는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말했다.
‘에그시에게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리지 마. 그리고 랜슬롯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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