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걸 쓰려던게 아니었는데 키스하는게 보고 싶어져서 그만...
손을 다쳤다. 헤기는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손등을 보고 치료를 할까? 잠깐 고민했다. 이대로 두면 피는 곧 멎겠지만 상처가 남을 것이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오래 남겠지. 흉터는 눈에 띌 것이고, 그 이후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누가 헤기 다쳤었어? 하고 물어보면 큰 상처는 아니었어. 하고 웃을 수 있는 정도였다. 평소였다면 미련 없이 상처를 치료했겠지만 지금 망설이는 이유는 곧 돌아올 이들 때문이었다. 헤기의 치유술은 정신력과 마력이 소모됐고, 곧 돌아올 이들은 제 손등의 상처보다 훨씬 큰 상처를 가지고 올 것이다. 케아라가 듣는다면 괜한 걱정이라며 네 손부터 치료하라고 할 것이고 마렉이 듣는다면 대견하지만 네가 다치면 소용없으니 치료하라고 할 것이다. 누구한테 말해도 치료하라고는 할 것이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허크가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마을에 있었으면서 왜 전투에 다녀온 나보다 더 다쳤냐며 잔소리를 할 것이고, 이유를 들으면 더 화를 내겠지. 내가 왜 너를 두고 혼자 다녀왔는데. 허크는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손으로 헤기의 손등에 피를 닦아내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줄 것이다. 서툰 솜씨로 조심조심.
“헤기. 사람들이 돌아왔어!”
부르는 목소리에 헤기는 손등에 상처도 잊고서 대장간을 뛰쳐나갔다. 허크! 헤기는 멀리서 피와 상처투성이가 된 허크를 찾았다. 허크는 잔뜩 인상을 쓰다가, 헤기의 부름을 듣곤 웃다가, 헤기의 상태를 보곤 다시 미간을 구겼다. 안아주리라 생각했던 허크는 헤기의 손을 잡아챘다. 아! 그제야 상처를 깨달은 헤기가 비명을 질렀다. 허크는 조심스레 손을 놓고 손목을 붙잡았다. 헤기. 이게 뭐야. 추궁하는 목소리였는데도 헤기는 웃기만 했다. 칼날에 베여서. 대장장이는? 잠시 자리를 비우셨더라구요. 헤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단검을 다듬어 보려다가 그만.
“왜 치료 안 했어.”
네 마법이면 금세 치료할 수 있잖아. 허크가 깨끗한 수건으로 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허크가 다쳤을까 봐요.”
“헤기.”
허크의 무서운 목소리에도 헤기는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일찍 돌아온 게 기쁜 건지, 허크가 걱정해준 게 기쁜 건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헤기는 허크의 손을 뿌리치곤 용병단으로 달려갔다. 헤기를 가볍게 놓아준 허크는 한숨을 쉬며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케아라가 헤기에게 잔뜩 잔소리했다. 다른 사람이 다친 것도 중요하지만 네가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하면서 헤기의 손에 반창고를 붙여줬다. 헤기가 다친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급한 이들도 있었다. 허크는 대검을 한쪽에 내려놓고 헤기가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헤기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 헤기를 전투에 내보내지 않은 건 허크의 고집이었다. 전투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보다야 나았지. 명색에 영웅의 길을 걷고 있었던 아이를 제가 억지로 잡아챈 것이니 강하긴 했다. 강했는데, 헤기가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 싸움꾼으로 자랐던 저와 달리 헤기는 처음 봤을 때부터 도련님이구나 싶을 정도로 연약했다. 허크는 아직도 헤기를 쥐면 부러지는 나뭇가지마냥 살살 다뤘다. 왜, 그럴까. 허크는 아직도 영문을 몰랐다. 그저 지나가는 아이로 뒀으면. 영웅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뒀다면 휘말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허크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 가까이 다가온 헤기를 보곤 고개를 들었다. “허크는 다친 데 없어요?” 헤기가 깨끗한 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허크는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고는 없어. 하고 퉁명하게 말했다. 지금 샤워실 비어요. 허크는 수건을 다시 주고는 고맙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바탕 샤워를 하고 나간 탓인가 안은 하얀 김이 솔솔 올라오고 있었고, 거울은 하나같이 김이 서려 있었다. 물기가 닿지 않는 곳에 갑옷을 벗어두고 샤워실로 들어가자 한기가 올라왔다. 발바닥에 닿는 물기가 기분 나빠서 발부터 벅벅 닦은 허크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닥을 바라봤다. 엉망이네. 차라리 다치기라도 할 걸 그랬나. 허크는 전투에 나가서 다치는 일이 없었다. 그야 저보다 강한 녀석은 아직 없어 보이고, 늘 보던 놀이나 고블린 들을 죽이는 건 밥 먹기보다 쉬웠으니까. 하지만 헤기가 치료해주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질투가 나는 것이다. 한심하긴. 허크는 벽에 머리를 쿵 박고는 한참이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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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크. 자요?”
헤기는 허크를 처음 본 어미라도 되는 것처럼 잘도 따라다녔다. 허크는 자는 척을 했다. 등 뒤로 헤기의 목소리가 몇 번 더 들리더니 침대가 헤기의 무게에 따라 천천히 눌렸다. 헤기의 가는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눈가를 간질이던 짧은 머리카락이 헤기의 손에 의해 쓸려 넘어갔다. 헤기는 조곤조곤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글쎄 퍼거스씨가 제 대거를 손봐주다가 잠깐 나간 거예요. 근데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퍼거스씨의 망치를 들고 작은 단검을 깡 내리쳤는데 부서졌어요…그걸 치우다가 반대쪽에 올려놓은 칼에 베여서.”
그러나 허크는 자고 있었으므로 듣지 못한 척해야 했다. 헤기는 변명인지, 농담인지 모를 일을 계속 떠들었다. 제가 깨어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진짜 조금 다쳤어요. 아주 조금. 근데 그게 뭐라고 다들 한소리씩 하는 거예요.”
헤기가 투덜거렸다. 오늘 치료가 길어진 게 그 탓인가. 다들 오지랖은 넓었지. 허크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던 걸 참았다.
“아, 상처 벌어졌다.”
허크는 자는 척하던 걸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손등에 붙여 놓은 반창고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있었다. 피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지켜보던 헤기는 허크가 일어나는 걸 보고 배시시 웃었다. 놀라지도 않는군. 허크는 침대 밑에 있던 구급상자를 꺼내 헤기의 손을 살폈다. 제가 보는 것보다 헤기가 치유술을 사용하거나 브린에게 가는 것이 빠르겠지만 보아하니 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허크는 헤기의 작은 손을 잡았다. 잡고, 엉망이 된 반창고를 떼어내고, 피를 닦아낸 후 살살 약을 발랐다. 헤기가 인상을 쓰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허크의 힘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대로 얼마나 있었을까, 허크는 조심조심 붕대를 감았다. 내일 일어나면 브린한테 가자. 헤기의 얼굴이 많이 창백했다. 마력을 너무 소모한 탓일 거다. 스스로를 치료하지 못할 정도로. 허크는 헤기의 이마를 쓸어 올렸다. 열이 있어. 더운 여름도 아닌데 땀도 흘리고, 손도 떨리고 있었다. 허크는 헤기에게 침대로 돌아가라는 말 대신 옆자리를 내어줬다. 어차피 돌아가지도 않을 것 같았고, 밤새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옆에 있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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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요?”
하얀 손이 허크의 어깨를 살살 문질렀다. 허크는 반쯤 감긴 눈으로 헤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는 헤기를 끌어안았다. “아직.” 반쯤 잠긴 목소리가 귀를 녹였다. 헤기는 그의 목소리가 참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그을린 피부색도 그렇고, 새빨간 눈동자도, 상처 난 등이나 가슴팍도 그랬다. 허크는 다시 자는 척 헤기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씻고 붕대를 갈아줘야 할 것이다. 그전에 브린에게 들려 치료를 받으면 좋겠지. 그는 헤기의 상처를 보자마자 자긴 마법사지 의원이 아니라며 투덜거리면서도 곧바로 약을 발라 줄 것이다. 허크가 몸을 일으키자 찬바람이 들어왔다. 헤기가 몸을 떨자 그는 바로 이불을 바로 덮어주며 기다리라고 하고는 옷을 대충 구겨 입고 방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 커다란 대야가 들려왔다. 대야 안에는 따뜻한 물이 담겨있었다. 그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먼저 헤기의 얼굴을 닦아 주고는 작은 세숫대야에 깨끗한 물을 덜어주었다. 침대 밑으로 하얀 발이 나왔다. 서늘한 냉기에 헤기가 코밑을 문질렀다. 재채기가 입안에서만 맴돌고 나오질 않았다. 붕대를 풀자 손등의 상처가 드러났다. 약을 바른 게 효과가 있었는지 많이 아문 모양새였다. 헤기는 따뜻한 물로 상처를 살살 씻어냈다. 어느새 다 씻은 허크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는 잘 땐 늘 벗고 잤다. 헤기가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입고 있는 게 더 불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옷은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몰라. 헤기는 말을 삼키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그럼 제가 옆에서 자는 것도 불편한 거 아니에요? 헤기의 말에 허크는 드물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예 불편하지 않은 건 아닌가보다.
“그럼 따로…”
“괜찮아.”
허크의 솔직한 말에 헤기는 저도 모르게 풉 웃어버렸다. 얼른 씻기나 해. 민망했는지 등을 돌리고 침대에 앉은 허크가 헤기를 힐끔 훔쳐봤다.
“그러는 너야말로 나랑 자는 거 안 불편하냐.”
“전 허크 좋아하니까 괜찮아요.”
헤기가 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벌써 가을이네요. 창문에 낙엽이 달라붙어 있었다. 어쩐지 아침에 좀 춥더라. 헤기가 몸을 돌려 고개를 들자 코앞에 허크가 서 있었다.
“뭐해요. 사람 놀라게.”
“키스하고 싶어서.”
허크가 얼마나 표현에 서툰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헤기는 툴툴거리는 대신 고개를 살짝 들어 얼굴을 기울이며 되묻곤 한다. “키스만?” 그게 허크를 얼마나 곤란하게 만드는지 헤기는 모를 것이다. 허크는 다만 헤기가 그 이상의 도발은 하지 말았으면 하고 기도하며 입을 맞췄다. 짧은 숨이 몇 번이고 서로를 탐하고, 얽히고, 도발하였다. 허크는 점점 뒤로 물러서는 헤기의 목덜미를 잡고서 저를 밀어 넣었다. 작은 입에서 결국 애원이 흘러나오도록. 헐떡이는 가슴팍을 쓸어내린 허크가 긴장이 역력한 배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다쳤으니까 여기까지만.”
“…괜히 다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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