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기는 허크와 단 둘이 있는 방에선 옷을 잘 입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의는 허크에게 빌려 입어 무릎까지 내려왔고, 바지는 거의 입지 않았다. 노출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 벗고 있다 보니까, 그게 익숙해져서. 헤기는 변명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말하자면 그냥. 허크가 좋아하니까. 그거 하나였다. 그래서 매번 허크 혼자 전투를 나갔다 돌아오거나, 씻고 돌아오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헤기는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허크를 반겼다. 그때마다 허크는 “감기 든다.” 하며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따로 바지를 챙겨주진 않았다.
허크는 전투가 있는 날에는 헤기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곤 했다. 일찍 용병단을 찾아가 마렉과 아이단에게 전투에 대한 정보를 듣고, 지역의 지리나 마물의 특성을 미리 알고 대비하는게 습관이 되었다. 마렉과 아이단은 아직 출정시간이 멀었는데도 전투준비를 마친 허크를 보며 사랑이 무섭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비가 무슨 말인가. 헤기를 만나기 전 허크는 당일 어디에 가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가는데로, 보이는 마물은 닥치고 잡았었지. 방으로 돌아온 허크는 헤기의 어깨를 흔들어 살살 깨웠다. 좀 더 재워도 좋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는걸 힘들어하는 헤기는 조금 일찍 깨워 잠을 떨쳐내는 편이 나았다. 거기다 씻고,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 얼른 일어나. 허크의 단호한 목소리에 헤기가 조금만 더 자자며 응석을 부렸다. 아침 안먹어도 되니까… 헤기의 중얼 거림에 허크가 말했다. 안 돼. 일어나. 두터운 솜 이불을 걷어내자 찬공기가 맨살을 덮쳤다. 헤기가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나선 허크를 노려봤다. 그러나 이미 다른 준비를 하느라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고, 헤기는 한참 그 등을 노려보다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공기는 차가웠고, 창밖에는 칼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흐음… 헤기는 속옷 하나 입지 않은 하얀 다리를 내려다봤다. 마냥 희지는 않았다. 누구 덕분에 얼룩덜룩, 멍자국이 나 있었고. 그건 자초한 일이었기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헤기가 하얀 발로 그의 등을 툭 건드렸다.
“허크도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가 돌아보자 메일과 장갑 사이로 드러난 맨살이 보였다. 갑주는 단단했고, 들어갈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헤기는 아주 살짝 드러난 그의 팔뚝을 알아차리고 발끝으로 살짝 문질렀다. 한번 슥 문지르고 발끝을 떼자 그가 덮썩 발목을 잡아왔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바짝 다가온 그 덕분에 몸이 침대 위로 풀썩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