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수위드립있음 주의
모브캐나옴
레시오는 자기가 없던 지난날의 버스데이를 모른다.
버스데이의 다리 한쪽에는 해골문양의 문신이 새겨져있다.언제였는지 왜였는지 레시오는 모르는 문신이었다. 어쩌면 조폭일을 했을 지도 모르고, 재미로 했을지도 모르고, 폼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버스데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레시오가 신경쓰는건 다른것이다. 몸안 깊숙이, 남에게 보여지지 않는 위치에 문신이 지워진 상처가 있다.
그것은 레시오가 모르는 상처였다. 어릴적부터 파트너라고 하여 한시도 떨어진적이 없는 사이였다. 어쩌다 멀어지게 된건 순전히 실수였다.
버스데이가 없는 지난 삼개월은 상상할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레시오는 자신이 없을 버스데이를 상상할수도 없었다.
"그거"
"응?"
"언제 새긴거야?"
버스데이의 몸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것이 결벽증인 레시오의 영향인지 미니멈의 영향인지는 몰랐으나 레시오는 아무런 꺼리낌 없이 버스데이의 몸을 더듬곤 했다. 종아리의 문신 위로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생전 벗을 일 없어 보이던 장갑도 벗은 채로 닿은 금속의 손은 생기가 전혀 없었다. 어쩌면 죽어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시린 감촉에 버스데이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 도망쳐 나왔을때"
" ......"
레시오는 가만히 그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고개의 끄덕거림도 없었다.
"너도 없고, 나이스도 없고 도저히 혼자서 버틸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도망쳤지. 물론 그건 폼으로 새긴거야. 무서워 보이잖아?"
너답네, 레시오는 그리 말하며 하얀이불을 걷어냈다. 레시오의 집안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결벽증인 그 성격을 비추기라도 하듯 벽지도 침대도 심지어 옷도 하얀색이었다. 그곳에 오롯이 버스데이만 존재했다. 그리고 비로서 레시오가 참을수 없게됐을때 버스데이는 웃었다.
"궁금해?"
정말이지 약아빠진 녀석이었다. 레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투하는구나 레시오쨩"
질투라니 당연하지 않은가, 가끔 레시오는 낯선 남자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을 버스데이를 상상한다. 몇 평 남짓되는 작은 가게에서 모르는 남자와 단둘이, 그것을 상상하면 역겹고, 더럽다고 느껴지면서도 질투심이 먼저 떠오르는건 당연한 것이었다.
버스데이는 자신이 없던 지난날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레시오 역시 묻지 않았다.
"사랑해"
버스데이의 입에서 저 상처를 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죽는날 까지
모브버스(레시버스)
이것은 그의 소꿉친구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남자의 작업실은 7평 남짓 작은 가게였다. 그것도 골목을 한참이나 돌아 빛 한점 들지 않는 반지하였다. 그 흔한 간판하나 없이 문앞에는 언제나 ‘Close' 팻말을 걸어놓고선 문은 잠그지 않았다. 가게 손님은 많으면 일주일에 한두 명, 그것도 예약 손님이 아니면 받지 않았다. 자력으로 찾을 수 있는 가게도 아닐뿐더러 취미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는 받을일도 없었다. 그랬기에 벌컥 문을 들고 들어와 ’당신이 이 가게 주인이야?‘ 하는 질문을 던지는 그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 어두운곳에 선글라스, 첫인상은 그랬다. 흘러내릴 것 같은 옷과 질질 끌고온게 분명한 샌들, 어려보이는 외모에 도저히 학생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금발. 무엇보다 놀라운건 그 모든걸 잊게 만드는 커다란 선글라스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떻게 찾은건지 몰라도 손님은 받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예약 손님도 있고, 거절하는 남자를 가볍게 무시한 버스데이는 시술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난 손님이 아니야. 무엇보다 돈도 없고”
“그럼 안 되지”
“하지만 하고 싶어.”
말릴 새도 없었다. 바지를 홱 벗은 버스데이를 보며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취미를 가지고 일을 받아온 이상 남자든 여자든 몸은 몇 번이고 봤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처음엔 부끄러워서 다리 벌리는 것도 힘들어 하는데,
버스데이는 남자의 손을 잡고 천천히 허벅지 안쪽으로 끌고 들어왔다.
“여기에”
“.....”
“새겨줬으면 좋겠어.”
시술대 조명 아래 비친 피부는 깨끗했다. 깨끗하다 못해 창백했다. 마치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다른 한손이 남자의 목을 끌어당겼다. 가까워진 시선에 버스데이가 시익 웃었다. 해줄거지? 이렇게 적극적인 건 오랜만인데 남자는 그대로 몸을 밀어 그를 내려다봤다.
“이름은?”
“버스데이”
“....버스데이(birthday)?"
“재미없어”
좁은 시술대가 흔들거렸다.
“몸 구경부터 하고”
“얼마든지”
*
“깨끗하네”
순수한 칭찬이었다. 잔 상처 하나 없는 깨끗한 몸이었다. 험한 일을 해보지 않았거나 할 수 없었거나, 고상한 부잣집 도련님의 취향이라기엔 너무나 추잡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옷만 봐도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문구는 정했어?”
남자가 시술준비를 하며 물었다.
“음, fuck me 이런거?”
“경박해”
“그럼 댁은 뭐 생각한거 있어?”
돌아온 질문에 남자는 잠깐 고민하는듯 하더니 자신있게 말했다.
“happy birthday!"
"촌스러워“
수십 분의 실랑이 끝에 버스데이는 시술대에 벌렁 누워 다리를 벌렸다. 다시 한번 자신의 손으로 위치를 더듬은 채 ‘알아서 해줘’ 라니 이 얼마나 제멋대로인 사내인가 남자는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조금 아파도 참아’
버스데이는 뭐라고 문신을 새겼는지 묻지 않았다. 아마 스스로 확인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신을 볼 리가 없었다. 남자와 몇 번이고 더 만난 후 버스데이는 종적을 감췄다. 연락처 같은 거 알 리가 없었다. 언제나 먼저 찾아오는 건 버스데이였고 남자는 기다리는 쪽이었다.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 녀석과 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다.
버스데이는 이곳에 들어온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말했다. 간판하나 없는 7평 남짓한 좁은 반지하, 문 앞에는 떡하니 Close 팻말이 걸려있었는데도 항상 그렇게 말했다. 닫힌 문은 열고 싶잖아? 그래서 열었지.
“미안한데 오늘은 우연이 아니야.”
남자의 앞에 다시 다리를 벌리고 앉은 버스데이는 이것을 지워달라고 말했다.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번엔 돈다발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남자는 허탈하게 웃으며 ‘흉터가 남을 거야’ 라고 말하며 버스데이를 내리눌렀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흉태는 꽤나 크게 남을 것이다. 잘 보이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보려고 하면 못볼곳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이 문신을 봤을까, 또 몇 명이나 이 흉터를 보게 될까.
억울하게도 정말 억울하게도 버스데이의 몸은 아직도 깨끗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추가로 종아리에 새로운 문신을 새기고 나서야 시술이 끝났다. 도중 버스데이의 휴대폰이 몇 번이고 울렸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말라는 말로 대신했다. 애초에 옷을 다 벗을 필요는 없었는데 버스데이는 굳이 그리했다. 그것이 도발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 필요이상으로 침착했다.
이건 배신이 아니었다. 버스데이라는 남자는 원래 저런 것이었다. 어쩌면 처음만난 그날 버스데이라고 인식했던 그 냄새도 다른 사람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다.
딸랑, 다시 한번 문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서 이쪽을 돌아본 버스데이가 방긋 웃었다.
“나 아직도 깨끗해?”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저 문이 닫히면 이걸로 마지막일 것이다. 남자는 버스데이를 마주보고 웃었다.
“창녀같아.”
“고마워”
+모브캐나옴
레시오는 가끔 버스데이의 몸짓이 창녀와 같다고 생각했다. 흘러내리는 옷이며 돌아보며 웃는 모습이 묘하게 연출적이며, 천천히 다가와 안대를 벗기며 입을 맞추는 행위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문뜩, 그가 말하는 ‘즐거운 인생’의 허용범위란 어디까지인가 궁금해졌다.
레시오는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버스데이가 늘 들고 다니는 통 안에서 알콜냄새가 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레시오가 무슨 종류냐고 물었지만 버스데이 역시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늘 가는 바(bar)에서 공수해온 거라며, 거기 마스터와 친분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무슨 친분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레시오는 버스데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와 동시에 물어선 안 되는 것도 많았다. 버스데이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대답을 듣고 나면 분명 자신은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을 레시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삼 개월, 100일도 채 되지 않는 날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며 너무나 짧은 그 시간 동안 버스데이는 혼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최대한 자유롭게 살길 원했다.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그것이 어떤 일이든 간에 레시오는 간섭하지 않고자 마음먹었다. 휴대폰 액정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들에 레시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버스데이의 휴대폰 안에는 저장되어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끽해야 자신과 나이스, 허니와 아트정도 일까.
우연이었다. 몇 번이고 울리는 폰을 받지 않는 버스데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레시오가 거실로 나가보니 소파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했다. 감기 걸린다고 했는데도, 그 순간 다시 울리는 휴대폰에 레시오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모르는 이름이었다. 파쿨타스 학원 출신도 아니었다. 평범하게 입력되어 있는 저 이름의 주인을 떠올리려 애써도 버스데이는 단 한 번도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이내 전화는 끊어지고 한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보면 연락 줘’ 이 사람에게 온 문자는 이것 한통뿐이었다. 문자 내용도 딱 한줄, 그런데도 레시오는 속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 자신이 없는 사이 사귄 친구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주 어릴 적 자신을 만나기 전의 친구였을 수도 있고, 중요한 거래처 사람일 수도 있었다.
손에 있던 폰이 빠져나갔다. 언제 깨어난 건지 버스데이는 문자 내용을 한참이나 훑어 보더니 살풋 웃었다.
“같이 잘까”
“응”
뻗은 팔을 안아 든 레시오가 활짝 웃었다.
*
늦은 밤이었다. 레시오는 아직 돌아오지 않는 버스데이를 기다리며 진료차트를 넘겼다. 성인이 된 후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서로의 일에 지나친 간섭은 독이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레시오는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걸려온 전화에 레시오는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분명 번호는 버스데이가 맞는데, 액정 위에 떠 있는 이름도 버스데이 인데 어째서 모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옆에서 들려오는 버스데이의 목소리는 얼마나 취해있는가, 빠르게 회전하던 머리가 남자가 불러주는 주소에 의해 딱 멈췄다.
그 가게에는 간판도 푯말도 없었다. 위치도 애매할 분더러 겉에서 보면 술집이라곤 전혀 눈치채지 못할 외양에 레시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한 곳에 있으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남자는 바텐더라도 되는듯한 옷차림에 버스데이와 같은 선글라스를 하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단지 버스데이에게서 그 가게의 냄새가, 독한 술 냄새가, 그 남자의 냄새가 났다.
인사불성으로 안겨오는 버스데이를 부축하며 레시오는 그의 가슴팍에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역시나 모르는 이름이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옷에서는 술냄새가, 그리고 독한 담배냄새가 났다.
“충견이 너구나,”
예? 개? 레시오가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버스데이를 자신에게 밀고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술주정뱅이 빨리 데리고 가버려”
“.......”
“혼자두지 말고”
남자는 마지막 말을 하고선 가게 문을 닫았다. 레시오는 왠지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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