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망소재주의
눈을 떠보니 모든것이 끝나있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일수가 없었다. 간신히 바닥을 짚고 일어서면 눈앞이 흐릿하여 앞이 잘보이지 않았다. '버스데이' 레시오는 황급히 그를 찾았다. 평소와 조금도 다를것 없이 의뢰였다. 언제나 그는 조금 위험한 의뢰를 받았기에 오늘 역시 조금의 걱정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평소와 같이, 그저 평소와 같이 그와 함께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된다. 그것 뿐이었다.
레시오가 버스데이의 일을 도운지도 삼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걱정되어서 였다. 혼자두기 불안하니까, 왜자꾸 따라오냐는 버스데이의 말에 레시오는 그렇게 말했다. 그말에 버스데이는 뭐라고 대답을 했더라, 지끈거리는 머리에 이를 악문 레시오가 벽에 등을 기대었다.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그 이후는? 레시오는 자신의 앞에 가던 버스데이의 등밖에 기억해내지 못했다.
레시오는 버스데이에게 자신의 오른쪽 눈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에겐 사용하지 마라, 버스데이가 한말이었다. 하지만 레시오는 굳이 오른쪽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버스데이의 상태는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그의 몸은 착실히 죽어가고 있었고 레시오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본인이 잘알것이다. 버스데이 역시 그 사실을 레시오에게 말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른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을수도 있고 지병이 있을수도 있었다. 아니면, 둘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미니멈은 독이었다.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되도록이면 미니멈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버스데이는 생업을 이어가는 수단이었다. 불확실한 근거로 그런 말을 할수는 없었다.
아주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본업을 마치고 돌아온 레시오는 조금 피곤했었고, 비가 오는 날의 버스데이는 예민했다. 그랬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을 레시오가 걸고넘어진 것은, 예민했기 때문이다, 버스데이가 그것에 과민반응한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명백한 실수였다. 레시오는 말을 하고서도 아차 싶었지만 정정하지 않았다. 지쳐있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그렇게 심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급히 자신을 지나치는 버스데이를 붙잡은 레시오는 말문이 턱 막혔다. 너를 울게 할 생각은 없었어. 레시오는 그 말을 씹어 삼켰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버스데이는 이곳을 나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놓을 수는 없었다. 어디가? 레시오는 그 말을 하고서 금세 후회했다. 버스데이가 갈 곳은 없었다. 자신과 함께 살기로 한 그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어왔다.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레시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상관없잖아.”
“.....”
“내가 어딜 가던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
“나도 지긋지긋했으니까.”
안녕, 그 흔한 인사도 없이 버스데이는 집을 떠났다.
*
그로부터 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솔직하게 말하면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몇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삼일이 흘렀을 때 레시오의 인내심은 바닥을 들어냈다. 처음엔 걱정부터 났다. 그리고 화가 났고, 이젠 초조했다. 본업에 집중하려고 해도 글자가 눈에 박히지 않았다. 레시오는 잔뜩 찌푸린 눈으로 데이터를 넘겼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녀석이다. 혼자 있진 않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레시오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무엇을 했냐고 어디에 있었냐고 추궁하고 싶었지만 레시오의 이성은 그러지 못했다. 다음 환자분 들어올게요,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레시오는 예 하고 짧게 대답했다.
닷새가 되던 날 레시오의 짜증은 하늘을 찔렀다. 되도록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했다. 녀석도 이젠 애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 정도는 간수할 줄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락이 없는 건 너무하잖아, 레시오는 소파에 있던 담요를 걷어내는 순간 그 안에 버스데이의 휴대폰이 있는 것을 보곤 안심했다.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다. 그렇게라도 안심하는 자신이 한심했고 그만큼 간절했다.
버스데이, 작게 그 이름을 불렀다. 울게 할 생각은 없었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금 지쳐있었다고, 네가 날 지치게 만드는 것도 아닌데,
몇일째 장마가 계속되었다. 버스데이는 비 오는 날을 지독시리 싫어했다. 그것은 그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미니멈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트라우마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 레시오는 가끔 비 오는 날 약해지는 버스데이의 숨소리를 듣고서 그가 죽은 건 아닐까 생각하곤 몇 번이고 그 심장박동수를 체크했다. 사라지지마, 레시오는 그렇게 말했다. 난 여기 있어, 버스데이가 두 손을 꽉 잡고서 말했다. 손끝이 차가웠다. 레시오는 눈앞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
따뜻하다. 그것은 맨 처음 눈을 뜨기도 전에 느낀 감각이었다. 그다음은 움직이기 불편했고, 누군가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버스데이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와 반대편 손으로 배를 움켜잡았다. 안 죽은게 다행이었지, 아니면 지금 죽어서 천국에 와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온통 하얀방에 하얀침대에 입고 있는 옷까지 하얀 걸 보면 여긴 분명 천국이었다. 그래 죽었지, 난 죽은거야. 버스데이는 손을 붙잡고 놓지 않는 남자를 외면하며 그리 납득했다. 그리고 도망치자, 한시 빨리 이 자리를 뜨는 거였다. 행여나 레시오가 깰까 조심스레 손을 빼던 버스데이는 벌떡 일어난 레시오를 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물론 침대위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고 꼼짝없이 레시오를 마주보게 되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장난 스피커처럼 미,미미미안! 하고 소리친 버스데이는 무안하게도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와락 끌어안은 레시오가 그대로 머리를 잡고 가슴으로 눌러버렸기 때문에 사과는 그대로 삼켜졌다.
“맹세해, 다시는 사라지지 않겠다고 죽지 않겠다고”
“......”
“죽게 두지 않을 테니 제발 맹세해”
“레시오쨩”
“그리고 그런말은 이제 하지마..”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끝까지 놓지 않는 레시오를 보며 버스데이는 작게 웃었다. 내가한말 잊으면 맹세해볼게
-만약 내가 죽거든, 죄책감도 가지지 말고 울지도 말고 슬퍼하도 마, 아프지도 말고 그리고 항상 기억해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걸
제일 처음 변화를 알아차린건 나이스였다. 어디아프냐는 물음에 버스데이는 조금 놀란 듯 나이스를 쳐다봤다. 카페 노웨어는 한가했기 때문에 시선은 모두 버스데이에게로 향했고, 버스데이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레시오를 쳐다봤다. 놀란 것은 레시오도 마찬가지였다.자신이 모르는 병이 있다고? 분명 정기검진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버스데이의 입에서 나온말은 모두를 경악하게 하기 충분했다. '사실 어젯밤에 레시오쨩 때문에,’ 까지 말했을 때 레시오는 카페를 나갔고, 나이스는 하지메의 귀를 막았다.
“레시오쨩 같이가.”
멀리서 쫓아오는 버스데이를 보며 레시오는 새빨개진 얼굴을 숨기고서 말했다. 병원들러야해, 그말에 버스데이는 단번에 싫은 소리를 냈다. 선천적으로 병이있는 버스데이는 병원을 싫어했다. 그것이 아무리 레시오의 직장이라 하더라도 검진받을때 말고는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 있어, 늦지는 않을테니"
네,네 건성으로 대답한 버스데이가 껄렁한 걸음으로 뒤돌아가는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레시오는 그제서야 뒤돌아 차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레시오쨩, 나 열쇠 잃어버렸어!"
아마도 집에 그냥 두고 나온것일 것이다. 항상 같이 다녀서 쓸일이 없었으니 그쪽이 맞는 말이겠지 레시오는 가지고 있던 열쇠를 버스데이에게 던져 주었다. 길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열쇠는 그대로 땅에 착지했고 버스데이의 손은 허공에 맴돌았다. 의심할 겨를도 없었다. 버스데이는 재빨리 열쇠를 주워 뒤돌아갔고, 레시오는 그대로 의문을 묻어버렸다. 놓칠때도 있지뭐, 태양이 눈부셨겠지, 그런 의미없는 생각을 하며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그 일은 잊고 본업에 충실했다.
레시오의 오른쪽 눈은 버스데이의 병에는 효과가 없었다. 원인도 병명도 알지 못했다. 단지 그는 얼마살지 못하고 죽을것이다. 라는것만 예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예언이 빗나갔을때 맹세했다. 다시는 이 오른쪽 눈을 그에게 쓰지 않겠다고, 그의 모습을 보지않겠다고, 그러기 위해 된 의사였다. 레시오에겐 오른쪽눈이 아닌 지식이 필요했다. 그를 구할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조용하다. 문이 열려있는걸 보았을땐 화가났지만 조용한 집안에 들어왔을땐 덜컥 걱정부터 되었다. 간간히 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마 TV일 것이다. 어두운 거실에 불을키자 소파위에서 하얀것이 꿈틀거렸다. '왔어?' 잠긴 목소리로 고개도 들지 않고서 말하는 버스데이에게 레시오는 잔소리를 늘어놨다. 문은 잠그라느니, 누가 들어오면 어쩌냐느니, 불을 끄고 TV를 보면 눈이 나빠진다느니, 물론 버스데이는 하나도 듣지 않았고 레시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동적으로 나오는말은 어쩔수 없었다. 더이상의 잔소리는 자신이 지치기 때문에 그만뒀다. 레시오는 가운을 벗고서 부엌으로 향했다. 밥도 먹지 않았나, 깨끗한 식탁위로 레시오가 물었다.
"커피는?"
"우유넣어서 달게"
매번 같은 대답인걸 알지만 레시오는 굳이 물었다. 이마저도 없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실상 둘의 대화는 많지 않았다. 레시오가 말수가 많은것도 아니었고, 버스데이가 하는말은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이 어색한것은 또 아니었다. 그랬다면 집열쇠같은걸 주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았겠지, 레시오는 머그컵을 버스데이에게 건냈다. 아직 잠에서 덜깬건지 받아드는 손이 불안했다.
쨍! 컵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타일위로 뜨거운 커피가 흘러넘쳤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버스데이가 깨진컵을 주워들었다. 아, 레시오가 말릴새도 없었다. 무턱대고 잡은 컵은 버스데이의 피부를 찢었다. 버스데이! 레시오가 그 손을 감쌌다.
"미안"
"알면됐어..."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멈추지 않는 피를 지혈한 후 붕대로 감싸주었다. 마른 손이 안타까워 그 위로 입을 맞추었다. 작게 떨리는 몸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멍하게 있으면 먼저 밀어내는 버스데이에 레시오도 뒤로 물러났다. 미안, 이번엔 반대로 레시오가 그에게 사과했다. 바닥을 대충 닦아내고서 버스데이가 잠자리에 들때까지 레시오는 그 옆을 떠날줄 몰랐다. 어디가 아픈걸까 아니면 피곤한걸까 레시오는 잠들어 있는 버스데이의 목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대었다. 색색거리며 내뱉는 숨은 곧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다음날 버스데이는 고열에 시달렸다. 역시 아픈게 맞았다는 생각에 레시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아이스팩을 붙여준후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주었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을 것을 버스데이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살짝 뜬 두눈은 지쳤다고 말하고 있었다. 레시오는 그런 버스데이의 눈을 다시 감겨주었다. 좀 더 자는게 좋겠어. 텅빈방에 혼자 두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야 했다.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히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덥썩 잡아온 손에 레시오가 놀란듯 버스데이를 바라봤다.
"혼자..혼자 두지마.."
"....."
잠꼬대였나, 힘없이 풀리는 손을 레시오가 다시 잡았다.
"아프지나마, 바보야."
아주 잠깐이었다. 젖은 침대 시트를 갈고 그가 깨어났을때 무언가 먹을수 있는걸 만들어 놔야 하지 않을까 싶어 장을 보러나갔다 왔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짐을 탁상 위에 올려놨을때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방문을 열어보자 굴러떨어진건지 넘어진건지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그가 보였다. 버스데이, 기껏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터져있었다. 책상위에 있던 액자가 깨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저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레시오...?"
"...."
"거기있어?"
그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건 언제부터 였지? 아픈것은? 정기검진은? 파노라마 처럼 스쳐지나가는 기억에 레시오가 안대를 벗었다. 파란눈동자에 그가 내뿜는 죽음의 기운이 드리웠다.
"여기 있어"
고작 몇십 분이었다. 버스데이를 혼자둔것은, 하지만 그럼에도 레시오는 죽을것만 같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네 두눈이 죽었어, 생기 없는 눈동자가 멍하니 허공을 향했다.
"날 버린줄 알았어"
상처를 치료하는 버스데이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거추장스러우니까, 이제 필요없으니까...날 버렸다고...생각했어..."
그럴리가 없잖아, 마른 등을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묻는 레시오의 머리를 한번 쓸어넘긴 버스데이가 웃었다.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게 뭔줄 알아?"
"......"
"내가 죽는것도, 앞이 보이지 않는것도 아니야."
자신이 우는 모습, 이제 그는 절대 볼수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레시오는 눈물을 삼켜냈다.
"네가 날 버리는게...혼자 남겨지는게 무서운거야."
낮부터 비가 왔다. 레시오는 오늘 버스데이가 우산을 가지고 나갔는지 고민했지만 도저히 그의 성격에 우산을 들고 다닐것 같지 않았다. 물론 비가 온다고 얘기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전화를 넣었지만 받지 않았다. 레시오는 어딨는지도 모를 상대를 찾으러 나갈 정도로 섬세하진 못했으나 버스데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살짝 초조해진건지 태블릿을 툭툭 두드리는 손끝이 떨려왔다. 노웨어로 연락해도 모른다는 얘기 뿐이니 어디 술집에서 질펀하게 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녀왔어"
의외로 일찍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레시오가 그의 모습에 식겁하며 수건을 머리에 덮어주었다. 온통 젖은 옷은 무거워 보였고, 삐죽한 머리도 축 가라앉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공원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비가 왔다고 한다. 네가 개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잡아둘수가 없어 욕실로 밀어넣었다. 버스데이는 대번 싫은 소리를 냈지만 저항은 없었다. 손이 차가웠다. 깨끗이 씻어. 레시오는 건성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서 무언가 따뜻한걸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몸은 괜찮아?"
머그컵을 내민 레시오가 물었다. 아직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닦은 버스데이가 머그컵을 받아들며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 그렇게 묻자 버스데이는 들고 있던 머그컵을 탁상위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따뜻한 물에 씻어서 그런지 온몸이 뜨거웠다. 잡고 있는 손도, 닿은 이마도 전부
"사실 레시오쨩"
선글라스를 벗은 버스데이는 어려보였다. 평소보다 훨씬, 그리고 위태로웠다.
"나 아파요."
+소녀봇 트윗보고 쓴것
그가 쓰러진 건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한 달 남짓 병원에 입원해있던 그는 긴 잠에 빠졌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손에 잡힌 열이 달아나지 않게 꽉 붙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수증기처럼 달아나 버렸다. 레시오는 마지막까지 그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담당 의사로서,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병이 세상에 나타난지는 몇십 년이 지났지만 치료제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살릴 수 있었다. 어쩌면, 항생제를 더 투여하면 몇 시간, 며칠 이라도 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투여해온 약은 한계치를 넘었다. 이젠 고통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벌벌 떠는 레시오의 손을 한번 꽉 잡아준 그는 마지막에 웃었다. 레시오는 더 이상 그를 잡아둘 수 없었다. 레시오에게 버스데이는 환자이기 전에 친구였다. 레시오의 판단은 의사로서도 친구로서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레시오는 어떻게 해서든 버스데이를 잡아두고 싶었다. 그것은 의사로서도 친구로서도 아닌 자신의 추잡한 집착이었다. 결국 그러지 못했지만.
그게 한 달 전이었다. 레시오에게 버스데이는 메꿀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그렇다고 버스데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을 포기할 순 없어 레시오는 살았다. 버스데이가 없을 뿐 하루하루 순조로운 삶이었다. 그런 버스데이를 갑자기 떠올린 건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이었다. 천천히 해야지, 했던 게 어느새 한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보기가 괴로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의 방에는 쓸데없는 잡동사니가 많았는데 유달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쓰러지기 며칠 전 친구들과 해변을 갔다.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기분에 레시오가 인상을 찌푸리자 버스데이가 결벽증? 하며 비웃었던 적도 있었다. 언제 챙겼는지 쪼그라든 비치볼을 가방에서 꺼낸 버스데이가 그것에 열심히 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건네라고 했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주지 않았다.
"이 정도는 불수 있다고!" 결국 숨이 차 헉헉거리면서도 공에 숨을 불어넣은 버스데이는 자랑스레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날 비치볼이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햇빛은 너무 따가웠고 모래사장은 맨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서 결국 바다 안에서만 놀았던 날이었다.
"레시오쨩 안 들어오고 뭐 해!!"
버스데이의 유품은 모두 버렸다. 소중하다, 소중하지 않다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레시오에게 버스데이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흔적이었다. 그것을 모두 버린다고 하던들 버스데이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영원히.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이안에는, 이 비치볼 안에는 아직 버스데이의 숨결이 남아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새어나가 언젠가 사라져 버릴 그것을 끌어안고 레시오는 한참이나 주저앉아 울었다. 혹여나 이것마저 사라져 버릴까 아주 조심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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