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꿈에
2.we found love in a hopeless place -버스데이 생일로그
3.kiss me darling -키스데이 로그
4.6화 이후의 이야기
5.기적
꿈에
버스데이는 감기에 자주 걸렸다. 특히나 늦가을에는 거의 달고 살다시피 했는데, 옷을 두껍게 챙겨 입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그러한 것이 떠오른 건 이제는 쓰지 않을 서랍장을 비우다가 우연히 그 이름이 적혀 있는 약봉투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레시오는 한동안 그것을 손에 쥐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레시오쨩? 커피 식어, 서랍장을 비우는 것은 이제 됐다. 레시오는 그것을 다시 넣곤 서랍장을 닫았다. 어, 하고 짧게 대답한 레시오는 천천히 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는 이미 차게 식어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하수구에 버린 레시오는 그가 앉아 있는 소파 옆으로 다가갔다. 티비에 집중하고 있었던 건지 다가와도 아무반응 없던 그는 그 프로가 끝나고 나서야 작게 하품을 했다. 늦었어, 자야지. 버스데이가 레시오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아직 여섯시야, 버스데이"
졸린데, 눈을 비비며 연신 하품을 하는 버스데이를 보고서 레시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침대에 가서 자. 물론 씻고, 레시오의 뒷말을 들은 버스데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연스레 방으로 향했다. 버스데이! 다그치듯 말하는 레시오에 버스데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시익 웃었다. 근데 레시오쨩 늦었어.
"응?"
늦잠잤다고, 그러게 내가 일찍 자라고 했잖아.
늦은 아침이었다. 그대로 소파에서 잠들어버린 것인지 옷이 구겨져 있었다. 핸드폰에는 이미 수십 통의 전화가 와있었고, 탁상위에 있던 커피는 식어 먼지가 내려앉았다. 정말이지, 레시오는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그러면 꿈속으로 다시 한 번 빠져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쉽사리 잠들지 않았다. 이미 의식은 깨어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버스데이, 작게 그 이름을 불렀다. 이제 이 커다란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부름센터 일은 그만뒀다. 본업은 의사이기도 했고, 그것은 버스데이를 도와서 했던 것이니 이제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물품은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늘 사용하던 컵도, 먹고 남긴 감기약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무언가 적혀 있는 수첩까지도, 어쩌면 돌아올 것이라고, 평소와 같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고 들어와 소파위에 누워있다가 내가 돌아오면 졸린 눈으로 마중 나올 것 이라고, 웃으며 인사하고, 입 맞추고 안아주고 싶다고,
"버스데이 대답해줘"
가끔 네 꿈을 꾼다.
"진짜 죽은거냐"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젠 널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이성이 레시오를 강하게 잡아챘다. 천천히 차오르는 숨이 턱 끝에 걸려 내뱉는 것조차 쉽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버스데이는 죽는다. 몇 분 아니 수십 초 이내 저 심장은 멈추고 뇌는 정지하여 완전히 어둠에 삼켜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모든 것이 버스데이가 살아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결론짓는 오른쪽 눈 때문이었다. 어떻게해도 네가 살아날 방법이 보이지가 않아, 차라리 이대로 너와 함께 죽고 싶다고 숨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울어? 레시오쨩, 그 말에 대답할 수조차 없었다.
"눈을 감아."
푸르게 빛나는 오른쪽 눈 위로 하얀색 손이 덮였다.
"울지마,"
"죽지마“
"건강해"
"눈을 감지마"
"안녕"
난 매일 꿈을 꾼다.
또 왔네, 버스데이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청첩장을 꺼내 들며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올해로 세 번째였다. 하긴 이제 나이도 있으니, 철컥 문 열리는 소리에 버스데이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서 청첩장을 한참이나 들여봤다. 매끈한 종이에 예쁘게 쓰여 있는 두 이름. 음, 가야겠지. 끙 몸을 일으킨 버스데이가 레시오에게 달려들었다. 쇼핑가자. 쇼핑
we found love
화창한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야외결혼식으론 딱 좋은 날씨였다. 레시오는 흐트러진 버스데이의 넥타이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식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오래된 친구와 신부.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였다. 얼마 있으면 자신들의 나이도 서른이 다 되어가니 지금쯤이 딱 좋은 시기였다. 하객석이 꽉 차 자리가 없었다. 뒤에 서서 대충 얼굴만 비치고 가려고 했더니 버스데이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어코 지나가는 와인을 한잔 든 버스데이가 살짝 빨개진 얼굴로 레시오에게 마실래? 하고 물어왔다.
“집에 가자.”
“아직 안 돼”
술에 약한 편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취한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는 탓에 레시오는 묵묵히 그의 옆에 서 있어야 했다. 한잔 두잔 세잔째 들었을 때 레시오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버스데이! 호통치는 레시오를 보고서 살짝 눈살을 찌푸린 버스데이가 손사래를 쳤다. 주례가 이어졌다. 조용한 식장에 나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딜 바라보는 건지 몰라도 멍하게 앞으로 시선을 두던 버스데이가 중얼거렸다.
“부럽다.”
버스데이는 부럽다고 말하면서도 한없이 무표정하게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것은 버스데이에게선 있어선 안 되는 미래이며, 바라서도 안되었다. 그가 그렇게 정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자신과는 그 누구도 함께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행복 때문에 누군가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다고, 그는 죽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미래를 염두에 두며 행동한다.
“버스데이”
“응?”
“나랑…결혼할래?”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그대로 뱉었다. 레시오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례가 들린 듯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눈에 눈물이 고일정도로 괴로웠지만,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선글라스를 벗고서 눈가를 닦아 내렸다.
“그거 프러포즈야?”
“네 맘대로 생각해”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버스데이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레시오 옆에 찰싹 붙어 섰다. 혹시 누가 들을세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레시오쨩이 드레스 입으면 생각해볼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데이는 시익 웃으며 레시오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농담이야. 그 한마디에 레시오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놀리면 재밌어?”
“…조금?”
아, 키스했다. 버스데이는 몸을 일으켜 박수를 쳤다.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폭죽이 터지고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물이 날 정도로, 버스데이는 레시오의 옆구리를 퍽 치며 말했다.
“그리고 프러포즈는 좀 더 무드있게 하는 거야”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버스데이는 말을 받아치며 레시오를 쳐다봤다. 웃음이 터졌다. 언젠가 멀어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버스데이는 버스데이의 길로, 레시오는 레시오의 길을 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이다. 이 관계는 그때까지만 유지되면 되는 것이다. 미래는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집에 가자”
“응.”
2
아침에 한참이나 손을 만지작 거리던 레시오가 미안하다며 옷을 갈아입었다. 비몽사몽으로 눈을뜬 버스데이는 무슨 뜻인지 한참이나 이해하지 못했다. 겨우 일어나 탁상위에 달력을 보고서야 본인의 생일이란걸 인지한 버스데이가 다시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랬다. 자신의 생일이었다. 어제 그렇게 떠들어대고 다니더니 밤새 일에 집중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버스데이’ 문 밖에서 레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시트를 둘둘 말고 나온 버스데이를 보고서 사색이된 레시오가 다시 들어와 버스데이를 세웠다.
“오늘은 일찍 들어올거지?”
“최대한 노력해 볼게”
오늘 내 생일인데, 거기까지 말하니 레시오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도 그럴것이 매번 버스데이의 생일에는 시간을 비워놓고 있었는데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버스데이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딱히 생일 같은거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해본소리야, 버스데이는 어쩔줄 몰라하는 레시오의 양뺨을 끌어모아 키스했다.
“잘다녀와요. 닥터. 이러니까 꼭 부부같다.”
“다녀올게”
레시오의 등을 떠밀고 문을 잠근 버스데이가 베란다로 달려갔다. 얼마후 모습을 들어낸 레시오가 위를 쳐다본다. 매번 그렇게 확인하곤 했지, 버스데이는 손을 흔들며 레시오의 모습이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바닥에 주륵 주저 앉았다. 졸려, 혼자 있는 집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3
“버스데이, 손...”
응? 손? 버스데이는 저도 모르게 레시오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마치 말 잘듣는 개가 된 기분이었다. 올린 손을 꽉 잡은 레시오가 품에서 꺼낸 작은 반지를 건냈다. 손가락 사이로 쏙 들어온 반지를 보고서 버스데이는 한참이나 레시오와 반지를 번갈아 봤다. 그러고 보니 최근 레시오가 자신의 손을 계속 만지긴 했다. 손가락 사이를 몇 번이고, 문지르고 매만졌지, 그것이 설마 이런것을 위해서 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버스데이, 생일 축하해”
버스데이의 이름은 무사히 태어난것을 축하하여 부모님이 지어준 것이었다. 태어날때부터 살 가망성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일년, 그 다음에는 오년, 이제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병마로부터 버스데이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거 하루하루 즐겁게 매일을 생일 처럼, 그렇게 다짐했다. 매해 생일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을때마다 내년에도 또 이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년에는 좀 더 근사한걸 선물해줄게”
그것을, 당장 내일도 다짐할 수 없는 버스데이에게 레시오는 당연한듯 미래를 말한다.
“레시오쨩 프러포즈 처음이지?”
“시끄러워”
버스데이는 한참이나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다른 여자들 처럼 가늘지도 곱지도 않은 상처로 얼룩덜룩한 손이었다. 지독시리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절대 같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갈수 없으니까, 그와 동시에 나는 절대 결혼 같은거 생각해서도 바라서도 안되는 거라고, 얼굴로 열이 몰렸다.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쩌지, 선글라스는 어디로 치웠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도망칠곳이 없었다. 버스데이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생쥐마냥 얼굴을 푹 숙였다.
“죽을것 같아”
“어?”
“내가 죽으면 다 네탓이야. 레시오군”
레시오는 키스를 할때 언제나 눈을 꼭 감는다.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손이라던가, 움찔 거리는 어깨도 귀여웠지만 파르르 떨리며 꼭 감은 눈은 제일 귀여웠다. 분명 보이지 않는 한쪽 눈도 떨리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데이는 레시오의 목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데이는 천천히 떨어졌다.
레시오는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다. 혀로 입술을 핥고 애타게 입을 맞춰도 절대. 처음에는 그저 부끄러워서 그런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벌린 입술사이로 열기가 오가고 혀가 섞였을때 버스데이는 난생처음 혀를 깨물렸다. 피가 날정도로 세게 깨물려 그대로 밀쳐졌는데 레시오는 말도 없이 한참을 어쩔줄 몰라하더니 그대로 사라졌고, 한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대체 어디갔다왔냐고 물어보는데도 대답도 하지 않더니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쭉 이상태다.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을 꾹 다물고 요지부동, 입술을 땐후에는 항상 입을 닦아낸다. 정말이지 배려심이 없다고 해야하나, 아님 넘쳐난다고 해야하나. 싫다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는것을,
“그만 내려갈까”
한템포 늦게 반응한 레시오가 입술을 훔치더니 응, 하며 버스데이의 뒤를 따라갔다.
*
버스데이 주위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그도 그럴것이 버스데이는 반의 분위기 메이커였고 화제의 중심이었으며 그런 그가 정반대 타입인 레시오와 가장 친한것은 희대의 미스터리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갔다. 절반은 쓸데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열기를 띈 소재는 첫키스 상대였다. 남자들 밖에 없는 교실은 점점 수위를 높여갔고, 그 가운데서 버스데이가 소리쳤다.
“내 첫키스는 초등학교때 엄청 가슴큰 옆집 누나였다고!!”
과장된 손짓을 하며 소리친 버스데이에게 일제히 야유와 환호가 쏟아졌다. 가슴은 얼마나 컸냐느니, 이뻤냐느니 하는 질문에 못 이겨 빠져나온 버스데이가 손부채질을 하며 레시오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더워, 하고 레시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시오...화났어?”
“아니”
“얼굴이 엄청 무서운데”
딱딱하게 굳어 있는 뺨을 쿡 찌르며 살금살금 달라붙자 갑작스레 어깨를 잡아왔다. 레시오?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밀어내는 손길에 당황한 버스데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레시오를 올려다봤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버스데이가 아프다고 하는 소리에 손을 뗀 레시오가 자리에서 벗어났다. 어깨에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아파, 버스데이는 어깨를 주무르며 레시오가 나간 교실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서 싸웠냐는 소리에 그럴 리가, 하며 대답해주는 것도 잊지 않고서
*
역시 자국 남았어, 옷을 밑으로 내려 확인하자 빨갛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요즘 운동한다고 했지, 버스데이는 레시오의 뒷모습을 살짝 노려본 뒤 옆의 침대에 풀썩 누웠다. 학교는 전원 기숙사제였다. 결벽증이 있는 레시오는 다른 사람과는 방을 쓰지 못했고 버스데이 역시 레시오가 편했으니까 잘됐지, 누워서 레시오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버스데이가 툭 내던졌다.
“레시오는 내가 싫어?”
“…뭐?”
“아니…그냥 있잖아”
내가 싫은데 억지로 어울려 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은인이란 이름으로 너한테 짐을 주는 것 같아서, 버스데이는 거기까지 말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말하고 나니 비참해지긴 했다. 애초에 친구사이에 키스라는 것 자체가 이상했지. 자신의 억지스러운 요구에 레시오가 응해주고 있다면 모든 게 들어맞는 거잖아. 버스데이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아 선글라스를 살짝 벗곤 소매로 얼굴을 닦아냈다.
턱, 또다. 버스데이는 가까이 온 레시오의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고 마주봤다. 어깨를 강하게 잡아채는 레시오의 손길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파, 밀어내려고 해도 어느새 밑으로 깔아 눕혀져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 분명 키도 체격도 비슷했다고 느꼈는데 어느새 이렇게 차이가 나버린 것인지 버스데이는 새삼 느껴지는 체격차에 입술을 깨물었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잠깐…!!”
선글라스가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아 밀치려던 게 얼굴을 스쳤다. 안대가 옆으로 툭 떨어졌다.
“보지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애써 두 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소용없었다.
“버스데이”
“비켜!”
“버스데이!!”
팔을 잡아 침대에 결박한 레시오가 두 눈으로 내려다봤다. 유달리 새파랗게 빛나는 오른쪽 눈에 버스데이가 고개를 돌렸다.
“날 봐”
“……”
“나 좀 봐줘”
바로 위에서 들리는 간절한 목소리에 버스데이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간지럽힐 정도로 가까워서 버스데이는 괜히 눈을 감았다. 입술에 접촉한 열이 뜨거웠다. 평소에도 지겹도록 하는 짓인데도 그랬다. 버스데이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틀어 입을 벌렸다. 도망치지 마,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숨에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겨우 떨어져 나간 입술에 천천히 눈을 뜬 버스데이가 입술을 훔쳤다. 뜨거워, 뜨거워서 금방이라도 불타 사라질것 같았다. 한참이나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 못한 레시오를 보며 버스데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널 싫어하지 않아”
곧바로 입을 꾹 다물어야 했지만, 버스데이는 고개를 든 레시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이미 들킬 건 다 들켰다. 더는 물러날 곳도 없었다.
“좋아해”
“……”
“네 처음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아마 큰 오해를 했다고 생각한다. 버스데이는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레시오를 불렀다.
“…레시오”
“근데…근데…”
듣지도 않았지만,
“잠깐, 레시오”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어른이 될 때까지는 안된다고”
말하지 말까, 버스데이는 잠깐, 그러니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
“그거 뻥이야”
“응?”
“내 첫키스는…그…너야”
그러니까 그건 거짓말이었다고, 레시오가 거짓말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서도 버스데이는 말해야 했다.
“거짓말?”
“응…”
“진짜?”
“응”
그리고 이거 아픈데, 버스데이는 붙잡힌 손목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놓아줄 생각이 없나보다. 불쑥 다가온 레시오가 아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투정은 무리일것 같았다. 잠깐, 변명도 무리겠지.
위험한 일은 언제나 있었다. 하는 일이 떳떳지 못한 일이다 보니, 다치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번번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버스데이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고 섰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으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꿉친구의 부축으로 간신히 차에 올라탄 버스데이는 그대로 자리에 몸을 기댔다. 일이 끝나고 나니 몰려오는 피로와 고통에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힐끗,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에 버스데이는 바로 몸을 돌려 웃어 보였다.
“일단 병원부터 가보자. 몸은 어때, 어지럽진 않고?”
“하나씩만 물어봐주라, 썩 괜찮진 않네. 딱 죽을 것 같아”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고개를 슬쩍 들어보니 초조해 보이는 모습에 버스데이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시트 깊숙이 파묻었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천천히 가자”
“버스데이”
“그러니까 천천히....”
조금씩 작아지는 버스데이의 목소리에 레시오가 엑셀을 밟았다. 터진 상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새빨간 핏방울이 하얀 붕대를 적셨다. 이내 숨소리가 점점 느려지고 소음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버스데이의 시야는 완전히 암전됐다.
"너무 위험해“
“레시오...”
퇴원 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레시오의 과보호는 여전했다. 조금만 위험한 의뢰라도 받지 못하게 했으니 버스데이는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큰 상처도 아니었다고 소리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짜 죽을 뻔했다.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치병에 걸린 자신이 병이 아닌 다른 일로 죽게 되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건 변수였다. 그런 변수도 있으니 재밌는 거지. 버스데이는 그렇게 말했다가 레시오에게 맞을 뻔했다.
며칠간은 절대 안정이라며 들어온 의뢰도 뻥뻥 차버리는 걸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런다는 것을 버스데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할지도 모르나, 버스데이는 나름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했다. 비록 학원에선 자퇴를 강요당했지만 말이다. 들어온 의뢰를 주르륵 살펴보던 버스데이는 스턴건과 핸드폰을 챙기곤 현관으로 나갔다. 어디가냐고 묻는 말에 산책이라고 대답했다.
“혼자 갈 거야”
레시오가 일어나기 전에 말했다. 움찔, 그의 어깨가 떨렸다. 천천히 돌아보는 눈빛에선 불안한 기색이 스쳤다.
“그냥 산책일 뿐이니까. 혼자가게 해줘”
그래, 한숨 섞인 대답이 나온다. 일찍 들어오란 말에 버스데이는 대답 대신 시익 웃어 보였다.
레시오의 감정은 무겁다.
버스데이는 자신들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떠올렸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학원을 따라 나왔을 때? 아니 함께 살기 시작한 날부터였을까, 버스데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이미 넘어선 안 되는 선까지 넘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다녀왔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버스데이가 큰소리로 레시오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분명 신발은 그대로 있는데, 방에도 거실에도 부엌에도 심지어 화장실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딱 한곳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곳은 버스데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이었다. 서재, 레시오가 업무를 보는 방. 버스데이는 일년에 한번 들어갈까 말까 한 방이었다. 애초에 책이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레시오 역시 버스데이가 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들어 가본적이 없었다. 버스데이는 문앞에 서서 노크했다. 레시오쨩, 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들어간다.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들어가자마자 스치는 책 냄새에 버스데이는 괜히 코끝을 훔쳤다.
“레시오쨩?”
이러니까 대답이 없지,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보며 버스데이는 혀를 찼다. 어디 덮을 거라도 없나 싶어 찾아보면 한쪽 서랍 위에 있는 담요를 덮어주었다. 최근 많이 바빴지, 본업도 해야 했고, 무리해서 자신을 돌봐주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레시오는 듣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게 자기 탓이라도 되는 것 마냥 굴었으니, 그렇다면 본업을 좀 쉬는 것도 좋았지만 레시오는 그럴 성격이 못됐다. 성실한 남자니까. 불편해 보이는 안대를 풀어주면 간지러웠는지 그 세 고개를 돌린다. 버스데이는 돌린 얼굴을 따라갔다.
심부름센터 일도 원래는 혼자서 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같이 하게 되었지만, 무리해서 도울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 앞으론 더 무리하겠지. 버스데이는 머리의 상처를 더듬으며 쓰게 웃었다. 자신이 방심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레시오는 몇 번이고 상처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결국 레시오는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서야 표정을 풀었다. 정말로 바보 같은 남자다. 자신이 무어라고 이렇게나 하는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은인이니 뭐니 하는 건 이제 됐다. 버스데이는 그만 레시오가 혼자 서길 바랐다. 자신의 옆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옆이라도 좋았다. 그저 혼자 설수 있게 되길, 자신에게 얽매이지 않길. 그렇지만 무리일 것이다. 이 남자에겐 자신의 병이 났지 않는 이상. 레시오는 평생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다. 자만 같은 게 아니었다.
다만, 이 감정을 말하게 된다면 그땐 자신이 레시오를 붙잡아 두는 꼴이 되어버리니까. 분명 레시오는 거절하지 못할 것이니까.
“.....레시오”
그리고 생각의 끝에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비참해져, 버스데이는 울음을 삼켰다. 결국 레시오는 자신이 불치병이 아니었다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거란 생각에, 옆에 없었을 거란 생각에, 정말 못됐지만 이 병이 영원히 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레시오가 더 이상 치료법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버스데이가 죽었다. 그 지겹던 불치병도, 위험하다던 뒷세계일도 아니었다. 단순히 뻥소니였다. 신호등에서 몇미터 떨어진 곳에 멍하니 누워있었을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의 레시오로서는 알 수 없었다. 살 수 있었다. 분명 바로 병원에 왔더라면, 레시오가 알았더라면, 함께 있었더라면 살 수도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몇 시간. 몇 분. 몇 초.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버스데이는 살아있었다.
하루 전이었다. 정확히는 네가 죽기 31시간 전,아주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별로 화낼 문제도 아니었는데 레시오는 버럭 화를 냈고, 버스데이는 질렸단 얼굴로 집을 나갔다. 그리고 10분 전 네게 문자가 왔었다. '미안.' 이미 화는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대체 왜 그렇게 싸웠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레시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그만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일이 끝나면 전화를 하자, 그리 마음을 먹고서. 그게 마지막이었다. 결국, 레시오의 사과는 영영 닿지 못했다.
레시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에 올라탔다. 더이상 이 장소에 있고 싶지 않았다. 버스데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그가 여전히 웃고 있을것만 같았다. 텅빈 옆좌석에 속이 쓰리고, 두통이 밀려왔다. 어째서 그가 죽어야 했을까 왜 그여야만 했을까. 인생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가 대체 왜, 죽는건 차라리 자신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죽지 않겠다고 했잖아.
눈앞이 반짝 빛났다. 아마 커다란 트럭이었을 것이다. 상관없었다. 단지, 죽는다면 너와 함께이고 싶었다. 마지막도 너와 함께이고 싶었다.
기적
"…오"
"……"
"…레시오!"
"……"
"무슨 잠을 그렇게 자?"
환하게 비추는 햇빛에 레시오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빛 때문만은 아니리라,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레시오는 잠깐 그가 하는 양을 보고만 있었다.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열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모습을 보며 레시오는 숨을 삼켰다.
"내가 좀 잘생기긴 해도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데"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 버스데이는 곧 레시오가 고개를 숙이고 뚝뚝 우는 걸 보고 당황했는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결국, 봇물처럼 터진 눈물은 한참이나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31시간 전이었다. 자신이 늦잠잔 것을 빼면 30시간 전, 그날 아침은 늦게 일어난 버스데이의 식생활을 고쳐주려다 싸웠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었지만, 당시엔 정말 진지했다.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좀 더 건강한 생활을 하길 바랐고, 버스데이는 즐거운 생활을 하길 바랐으니 충돌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눈 밑이 빨개진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타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타임워프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꿈이었던 거다, 지독한 악몽. 버스데이가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역시 조금 부끄러웠다. 어디 가지 말라니, 그것도 울면서 그런 말을 한 자신이 창피했지만 이미 내뱉은 건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었다. 아마 한동안 버스데이는 그 일을 가지고 놀릴 것이 분명했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내일까지만 아니 그 뒤로도 쭉 그가 자신의 옆에만 있었으면 좋겠다.
"버스데이…자?"
하루는 정말 빨랐다. 차를 타고 저 멀리 항구까지 드라이브를 갔다 오며 수도 없이 떠들었다. 평소에 과묵하던 레시오쨩이 웬일이냐며 버스데이는 조금 들뜬 듯 말했다. 혹시 죽을 때가 된 건 아니냐는 소리까지 했지만 레시오는 웃고 넘겼다. 넘길 수 있었다. 심야 영화까지 보고 들어온 집안은 적막했다. 피곤했는지 버스데이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고, 레시오는 샤워를 하고서 그 옆에 누웠다.
이상하다, 버스데이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오늘은 씻으라고 안 하네, 웃으며 중얼거리는 입가를 한번 꾹 누른 레시오는 괜찮다며 대꾸했다. 잡은 손에선 여러 가지 냄새가 났다. 자신과 같은 비누냄새, 바다의 모래사장 냄새, 소파 귀퉁이의 냄새.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버스데이"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멀리 가지마"
"……으응……"
"어디 가더라도 꼭 연락하고"
"……"
"혼자 가지마"
"…어응………"
"……혼자 두지 마…"
그날 새벽 아주 오랫동안 잠을 설쳤다. 눈을 뜬 건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타이어 소리 때문이었다. 뭐야 아침부터, 뒤늦게 몸을 일으킨 레시오가 옆자리를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버스데이? 화장실에 있나 싶어 살펴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 어제밤 꿈이 머릿속에 스쳤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은 익숙한 번호였다. 그러니까 마치 그 꿈에서 본것과도 같은
시야가 다시 한번 암전됬다.
버스데이가 사고로 죽었다.
버스데이가 미니멈홀더에게 살해당했다.
버스데이가 난간에서 떨어졌다.
수술이, 병이, 버스데이가 죽었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봐도 버스데이는 죽었다.
"버스데이 미안해…"
"왜 그래 레시오"
"이번에도 널 살리지 못했어, 미안해"
"난 여기 있잖아"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가지말라고"
내가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봐도 버스데이는 죽었다. 아주 비참하게도 그랬다. 몇번째인지 새는것도 지쳐서 그만뒀다. 단지 레시오가 깨달은건 버스데이가 죽고, 자신도 죽으면 그 하루전날로 되돌아간다는것 뿐, 그것이 레시오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는거라고, 몇십번이라도 몇만번이라도 널 다시 만날수만 있다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버스데이에게도 말해봤다.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농담하지 말라고 웃어넘긴적도 있었고, 크게 화내 싸운적도 있었다. 미니멈홀더도 있으니 그런 일이라고 없겠냐며 진지하게 같이 고민해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게 허무할 정도로 그는 죽었다.
"데자뷰?"
반쯤은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시오는, 버스데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몇번째일까 네가 죽는걸 보는것이. 이제는 익숙해진 네 시체 앞에서 울수조차 없었다.
"…네가 죽어"
"몇번짼데?"
레시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가 죽는다. 그것도 비참하게 죽을것이다. 그것을 너는 아무렇지 않게 묻고 있었다.
"그런거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만번은 넘었을거야"
와오, 버스데이는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버스데이, 레시오의 목소리가 질책하듯 버스데이를 불렀다.
"그치만 난 지금 살아있잖아"
"그렇지만…"
"레시오쨩은 걱정이 너무 많다니까."
그렇게 위안을 해주던 너는 내가 손쓸수도 없이 죽어버렸다.
"나한테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레시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저 얼굴을 보는게 도대체 몇번째일까, 저 말을 들은게 몇번째 일까. 언제였지, 몇번째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레시오는 힘없이 뭔데, 하고 대답했다.
"내가 죽거든 혼자 살아"
버스데이는 짐짓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뭐?"
"그건 아직 안해봤잖아? 내가 죽거든 혼자 살아봐"
"버스데이"
"레시오"
버스데이가 레시오에게 다가왔다. 이마를 맞대곤 그의 양뺨을 쓸어내렸다.
"고마워, 나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줬구나"
"……."
"그러니까 이제 쉬어도 괜찮아. 힘들었잖아?"
"…하지만 버스데이 난…"
"사람은 언젠가 죽어"
웃음기가 사라졌다. 손을 덜덜 떨던 레시오가 마른세수를 했다.
"버스데이, 그러니까 너는 나보고 혼자서 살라고 하는거지"
"그래. 내가 죽는다고 따라 죽는건 바보같은 짓이야"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모두…"
"미안해, 고맙다고 생각하곤 있어. 하지만 나도 사람이야. 죽는건 당연한거잖아"
그러니까 너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이 모두 헛수고였다고, 쓸모없는 거였다고, 이제는 너를 두고 혼자서 살라고, 지금까지 했던것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린 영원할 수 없어. 레시오"
그럴리가 없잖아.
얼마 전 거리에서 총기 난사사건이 있었다. 버스데이는 거기에 휘말려 한번 죽었다. 한번 루트를 알고나니 구하는건 손쉬웠다. 언제나 칼로 배를 가르는 짓은 할 수 없으니까, 네가 죽으면 나도 죽기 위해서 그래서 구해놨던 총이었다.
"레시오"
"버스데이"
조금 있으면 자정이 넘어, 그전에 너는 죽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정확히 심장을 노렸는데 어떻게 알고 피한것인지 바닥을 구른 버스데이가 신음을 흘렸다.
"뭐하는…거야"
"괜찮아. 내가 다 해결해줄게"
"레시오…"
"다시 만나자"
"용서못해…"
레시오가 버스데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버스데이가 입술을 깨물곤 으르렁 거렸다.
"절대로…용서하지 않아. 레시오"
한발의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2D > 하마토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마토라 전력 60분 ~9/19 (0) | 2014.09.24 |
---|---|
레시버스 3 (0) | 2014.09.24 |
레시버스 오메가버스 (0) | 2014.09.24 |
레시버스 굿바이마이프렌드 (0) | 2014.09.24 |
레시버스 수위글 (0) | 201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