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장 보통의 존재
2. I was born to smother you with flowers. -하나하키병
3.행복의 시간
4.레시버스(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딸꾹질 / 또박또박 / 사랑해
레시오는 잘생겼다. 물론 키도 크고, 의사니까 돈도 잘 번다. 차도 좋은걸 가지고 있고, 집도 넓고, 성격도 좋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레시오가 나를 위해서 라던가, 나 때문에 라던가 아무튼 그 생활에 내가 중심이라는 거에 가끔 우쭐하기도 한다. 진짜 아주 가끔 말이다.
“버스데이 너는 매사에 조심성이…말을 들어!!”
그러니까 넘어졌을 뿐이라고, 그래서 손바닥이 쓸린 것 뿐이라고, 버스데이는 레시오가 들고 있는 붕대를 레시오 입에 쑤셔 넣으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다른 때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수준이기에 버스데이는 부들거리는 주먹을 애써 그러쥐었다.
“손 펴!”
“네”
그러니까 레시오는 걱정이 조금 많지만 운전도 되고, 요리도 되고, 딜도 되고 힐도 되고, 자신과 정반대 성격인 것 까지 포함해서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인 아주 완벽한 소꿉친구였다. 제로가 뭐가 완벽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가끔가다 사소한 다툼도 있었는데 대부분 레시오가 한숨을 쉬며 끝냈다. 거의 그런 식이었다. 자신이 사고를 치면 레시오가 화를 내는 식으로 레시오 혼자서 화내고, 가라앉혔다.
한번은 버스데이가 연락 없이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동거는 하고 있었지만, 방은 따로여서 다음 날 아침까지 레시오는 버스데이가 귀가하지 않았다는 걸 몰랐다. 아침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나오지 않는 버스데이 방을 들어간 레시오는 차갑게 식은 방에 안색이 파래져 노웨어로 달려갔지만 노웨어에도 역시 없었다. 폰에도 연락 온 건 없었다. 역으로 연락을 취해봐도 폰이 꺼져있다는 음성만 들려올 뿐 버스데이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더 지나서야 집에 기어들어 온 버스데이를 보고서 레시오는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버스데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레시오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버스데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선 천천히 레시오 앞에 앉았다. 결벽증인 레시오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청소를 하곤 했는데 테이블 위에는 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딜 가는 건 좋아, 뭘하는지도 상관 안 해”
레시오는 자신에게 많은걸 바라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모든걸 줄 것처럼 굴면서
“적어도 연락 한번은 해줄 수 있잖아…”
어디에 있는지, 몸은 어떤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잤는지, 아주 사소한 것들. 그러니까 평소에 웃으면서 물어볼 수 있는 것들. 굳이 주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원했다.
“미안해…”
“대답은”
“알겠어”
그제서야 레시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버스데이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자라는 말에 응 하고 대답했다. 사실 잠 따위 오지 않았지만 그리 대답했다. 자신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 녀석마저 자지 못할게 뻔하니까.
뭐 대충 그런 식이었다. 십 년을 넘게 지속해온 관계는 아슬아슬 깨질뻔한 적도 있었고, 세상 하직할 뻔한 적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살아있지만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서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우정이었다. 우정이라기엔 기묘한 형태였지만 버스데이는 그 선에서 타협 봤다.
“네가 내 애인도 아니고 그만해!!”
평소였으면 아주 사소한 말다툼으로 넘어가고 레시오도 한숨을 내쉬며 알겠다고 그만뒀을 것을, 끼이익 급정거에 버스데이는 보고 있던 유리창에 이마를 박았다. 소리가 꽤 크게 났는데도 아무 말도 않는 레시오를 이상하게 생각한 버스데이가 등지고 있던 몸을 돌려 레시오를 바라봤다.
“…….”
“…….”
“…….”
“…레시오?”
“…….”
“레시오”
“…….”
“레시오!”
“응?응,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다시 차를 몰기 시작한 레시오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넘겼다. 그래 이게 평소의 대화였다. 버스데이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버스데이는 거울 앞에 적혀 붙어 있는 쪽지를 확인하고서야 레시오가 자신을 깨우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냉장고에'로 시작하는 쪽지는 매우 간결하고 짧았지만 다정함이 있었다. 괜히 몸이 간지러워 황급히 쪽지를 떼버렸다.
가족도 무엇도 아닌 사인데 고작 친구사이인데, 그것도 같은 남자인데, 보통은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버스데이에겐 친구가 많이 없었다. 그건 레시오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이쪽 세계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서도 곁에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레시오는 유일한 이해자 이자 친구였다. 비교할 사람이 없었다. 레시오도 그럴 터이니까 물어봐도 모를 것이다.
핀치라면 나름 핀치 상태였다. 아침도 안 먹고 일어나서 대충 씻고 노웨어로 갔다. 레시오는 본업이라 혼자 일을 해야 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혼자 있었을 때 의뢰는 거절했을 것이다. 위험하기도 했고, 무슨 일 있으면 레시오한테 혼날 테니까. 라고 생각했던 게 불과 세 시간 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휴업이라고 생각하고 레시오한테 놀러갈까 전화를 했었지, 버스데이는 벽에 몸을 기대며 무릎을 끌어안아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버스데이는 '오지마 방해야' 하는 레시오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응. 그렇지. 하고 전화를 끊은 버스데이는 웃으며 코네코를 불렀다. 역시 할래. 그 의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레시오도 일하고 있는데 나도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상대는 전투형 미니멈홀더는 아니었다. 그래서 방심했던 것도 있다. 무슨 미니멈홀더가 칼을 들고 다니냐고 생각했지, 덕분에 스턴건도 떨어트리고, 완전히 독 안에든 쥐잖아. 버스데이는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숨을 죽였다. 막다른 골목, 전선하나 없고, 상대는 칼을 들고 있었다. 완력으로 덤비자니 자신이 없었다. 힘쓰는 건 체질이 아닌데,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웅크렸다. 베인 상처가 아팠다.
“버스데이”
“…무라사키”
그래도 빈틈을 노려서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게 뒷덜미를 잡혔다.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나타난 뜻밖의 인물에 버스데이가 얼빠진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나이스가 너한테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조금 늦었나?”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에 무라사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버스데이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음, 아 하더니 대충 닦아내고는 고마워, 라고 대답했다. 보수는 코네코한테 물어봐.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 버스데이를 붙잡은 무라사키가 잠깐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레시오한테 가보지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근데 이 정도는 괜찮아”
“피가 많이 나는데”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안뇽, 하고 뒤돌아가는 버스데이는 다시 한 번 잡아오는 무라사키에게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럼 내가 해줄게, 레시오 만큼은 못하지만"
뜻밖의 제안에 버스데이는 잠깐 고민하는듯하더니 무라사키의 손을 떼어놓고는 작게 웃었다.
“…부탁할게”
*
“순순히 따라와서 놀랐어”
침묵을 고수하던 무라사키가 먼저 말을 걸자 버스데이는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못한다고 한 치료는 생각보다 솜씨가 좋았다. 주변에 애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버스데이는 무라사키가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구급통을 정리한 무라사키가 뭐냐는 듯 눈을 맞췄다.
“나랑 레시오가 어떻게 보여?”
“…뭐?”
“나랑 레시오…보통의 친구사이로…보이지 않아?”
그러니까, 무라사키는 곤란한 듯 안경을 올려썼다. 느닷없는 버스데이의 진지한 얼굴은 당해내기 힘들었다.
“곤란한 질문해서 미안, 보수는 너 가져”
“필요 없어”
“레시오한테 의뢰받았지? 비밀로 해달라고”
음, 그제서야 무라사키는 입을 다물었다.
“빚지는 건 싫으니까. 레시오 대신 나한테 받아”
사실 뭐라고 말한다 한들 들을 버스데이가 아니었지만, 정말 못 당하겠다고 생각했다. 버스데이도, 레시오도
*
저녁도 혼자였다. 버스데이는 야근이라는 말에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멀리서 레시오 목소리가 들렸는데 무시했다. 종국에 바닥으로 추락한 핸드폰은 그대로 꺼졌고, 버스데이는 소파에 풀썩 드러누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 종일 굶었었지, 다치고, 구르고, 그런데 돈은 땡전 한 푼 없었다. 밀려들어오는 자괴감에 버스데이가 머리를 그러쥐었다. 왜 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즐겁지 않은 하루였다. 매일 즐겁게 살자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날도 많았다. 차라리 죽으면 이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될 텐데 대체 자신은 무어라 이렇게 바락바락 살고 있는 것일까.
“…….”
당연하잖아. 레시오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는 이유는 레시오 때문이었다. 자신이 죽게 되면 녀석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니까. 나를 살리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에 차마 포기하고 죽을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 레시오를 혼자 설 수 있게 해주자고 다짐했었다. 그랬다면 자신 역시 편하게 죽을 수 있을 테니까. 더 이상 레시오 때문에 라는 속박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버스데이는 레시오와 결코 깊은 사이가 될 생각이 없었다. 좋게 끝나지 못할 것이다. 알고 있었다. 결국 레시오가 혼자 설 수 있게 됐을 때 멀어지는 게 힘들어 질 것이다.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레시오는 크게 슬퍼할 것이다.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약, 레시오가 정말 자신이 필요 없게 된다면, 혼자 설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실망하는 건, 힘들어지는 건 슬퍼하는 건 자신이라는걸 버스데이는 알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레시오는 자신에게 방해라고 했다. 오지 말라고 하는 말이 마치 이제는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 같아서, 버스데이는 자신이 그 말에 얼마나 크게 실망했는지, 그리고 실망한 자신을 보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고 있었다.
눈을 뜬 건 침대 위에서였다. 버스데이는 자신이 몽유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팔에 붕대까지 다시 감진 않았겠지. 버스데이는 또 적혀 있는 쪽지를 이번엔 떼지 않고 지나쳤다. 랩에 싸여 있는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무언가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옷을 챙겨 입고 휴대폰과 스턴건을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은 버스데이는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등을 돌렸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이어야 했고, 이제 더 이상 같이 살 필요는 없겠지. 애초에 동거도 레시오가 제안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거절했어야 했는데 친구와 같이 산다는 것에 들떠 그만 그러자고 해버렸었지. 짐은 없었다. 버스데이는 대부분을 사고 버리고 사고 버리곤 했다. 소비성 습관이 나쁘다며 야단맞은 적도 있지만 영 고쳐지지 않았다. 사고, 버리고, 가졌다가 놓았다가, 품었다가 내쳤다가, 늘 상 그래왔었지 그 차례가 돌아온 것뿐이었다. 너무 오래 알고 지냈다. 근 십년.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오래알고 지냈지. 이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레시오가 아닌 자신이 그럴 것이었다. 본래 무언가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단지 레시오라서, 레시오가 자신에게 해준 만큼 버스데이도 그리했을 뿐이었다.
일단 노웨어에 가서 의뢰를 받고, 집을 구해보자. 그리 생각했다.
“없어요.”
“하나도?”
“하나~도!”
아, 진짜 되는 일이 없군. 노웨어서 뒹굴 거리던 버스데이는 영업방해라며 코네코에게 쫓겨난 후 거리를 쏘다녔다. 의뢰가 하나도 없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일단 일이 그러하니 버스데이도 할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휴업이라고 즐겁게 돌아다녔을 것이지만 오늘은 진짜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이 일이던 게임이던 좋았다. 지금 머릿속에 들쑤시는 이 생각들을 정리할 수만 있다면,
“…….”
레시오에게 자신보다 우선하는 게 생기다니 상상도 한적 없었다. 어쩌면 너무 비현실적이라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타인, 자신 이외의 사람. 레시오를 일으켜줄 수 있는 곁에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절대 생길 수 없다고 어쩌면 자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레시오와 자신의 사이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니까, 오래된 친구라던가, 생명의 은인이라던가, 그런 단순한 관계가 아니니까. 그것보다 좀 더 깊은 유대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버스데이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가장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려워했다. 결국엔 찾아올 이 시간을 버스데이는 외면해야만 했다. 오늘 아침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와 거리를 두기로 그랬는데도 치밀어오르는 화에 참을 수가 없었다. 배신감, 분노, 슬픔, 외로움 그 모든 것이 섞여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었을때 버스데이는 애써 자리를 벗어나 모른척했다. 잘된 것이다. 잘되었다. 자신도 타인을 끌어들여 놀곤 했다. 레시오와의 사이도 있었지만 그것은 철저히 외면한 채 그리했다. 그리고 그것이 되돌아온 것 뿐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레시오는 어떤 존재일까, 또
레시오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왔다.
버스데이는 여자와 있을 때도 레시오 생각을 했다. 주로 아, 이 노래 레시오가 좋아하는 건데, 이거 레시오가 좋아하는 커피인데 나중에 사다줘야지. 정도로 아주 사소한 생각이었다. 남자와 있을 때도 레시오 생각을 했다. 레시오 이런 차 좋아할 것 같아. 사실 차 브랜드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지만 그러했다. 그래도 기대고 있을 때 등의 감촉은 레시오 차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닿아오는 살결마저도,
돈이 없다고 쫓겨났다. 반쯤 취해있었는데 버스데이는 텅 빈 주머니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돌아갈 차비도 없네. 돌아갈 곳도 없었지만, 이미 밤은 늦었다. 몇 번이고 걸려오는 전화에 버스데이는 전원을 꺼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주저앉았다. 눈앞이 핑 돌아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버스데이는 눈앞에서 자신을 일으키는 남자를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본적 있는 남자였다. 아마도 최근에 신세를 졌던 적 있던 남자였다. 오늘 하루는 그래도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스데이는 얌전히 몸을 맡겼다.
“버스데이”
어깨를 붙잡는 억센 손에 버스데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레시오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끌고 자리를 벗어났다. 뒤에서 남자가 소리치는 게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버스데이는 붙잡은 손을 어떻게든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레시오의 힘을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놔”
“…”
“레시오, 놓으라고!”
결국 문앞까지 끌려와서야 레시오는 손을 놓았다. 얼마나 걸은 건지 술이 다 깼다. 버스데이는 숨을 몰아쉬며 레시오를 한번 힐끔 쳐다보곤 걸음을 돌렸다.
“버스데이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우뚝 멈춰선 이유는 단순했다. 고작 할 말이 그것뿐이냐고 따지려고 했다.
“내가 연락하라고 했잖아. 너도 약속했고, 근데 왜 안 해”
“…….”
“버스데이”
먼저 받지 않은 건 너였다. 먼저 밀어낸 것은 너였다. 내가 아닌 타인과 있었던 것은 너였다. 날 먼저 붙잡은 것도 너였으면서, 버스데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가 내 애인도 아닌데 연락해야 해?”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자기 애인이나 챙기세요. 닥터”
질투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버스데이는 자신이 레시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레시오가 붙잡았지만 뿌리칠 수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인 것도 자신이었다. 끝을 내야하는 것도 자신이면서 지나치게 붙잡고 있었던 것도 자신이면서 그러면서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다. 마치 나만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내 애인이야?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데?”
레시오의 물음에 버스데이는 자리를 뛰쳐나가려고 했다. 붙잡는 손이 뜨거웠다. 코앞까지 다가온 레시오를 차마 밀어내지도 못한 버스데이가 시선을 피했다.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은 거야”
“소문 아니야”
“그럼?”
끈질겨, 버스데이는 괜히 추궁받는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는 레시오의 눈에 항복선언을 했다.
“아까 낮에 너 다른 여자랑 잘 있던데”
“…….”
“할 말 없지? 놔”
레시오는 잠깐 고민하는듯했다. 언뜻 보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레시오의 속내는 워낙 알 수 없어서 버스데이는 손을 바르작 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거 의뢰였어”
“…뭐?”
“그 여자가 스토커에 시달리고 있다길래, 하루정도 같이 있어준 거였어”
“근데 왜 네가 의뢰를 받아?”
“너 다쳤잖아. 그래서 들어온 의뢰는 모조리 나한테 말하라고 했지, 넌 다쳤으면 집에서 쉬고나 있지 대체 왜 나온 거야? 약도 먹어야 하는데 술까지 마시면 어떡해”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만 싶었다. 버스데이는 다른 할 말을 찾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버스데이, 난 그 누구와도 사귈 생각 없어”
그건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생각 없다고,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랬다.
“너 하나로도 벅차”
그래서 너와 함께 있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 그렇게 농담 삼아 했던 말이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레시오 앞에서 우는 건 처음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할 소리…….”
“응”
“나도…너 하나로 벅차…”
“알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마”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돼는 관계가 있듯이 말로 설명할 수없는 관계도 있다. 우리가 그랬다. 결코 말하지 못할거야. 말해서도 안되겠지 잃고 싶지 않으니까. 곁에 있는게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너는 나의 가장 보통의 존재.
“고마워”
그대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선물하리다.
나는 그대를 꽃으로 파묻기 위해서 태어났노라
얼마 전부터 버스데이에게서 꽃향기가 났다.
처음에는 향수냄새라고 착각했는데 점점 진해지는 냄새는 이제 버스데이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어떻게 된거냐고 물을 수도 없는 게 이 냄새는 나 이외의 사람은 못 맡는것 같고, 본인 역시 모르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지독하지 않다는 거였다. 평소에 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째선지 버스데이에게서 나는 냄새는 달디 달았다.
봄을 탄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님에도 달리 빗댈 말이 없었다. 버스데이에게선 봄의 냄새가 났다. 그가 걸어가는 걸음걸음마다 꽃잎이 떨어졌다. 나는 항상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구둣발에 밟힌 꽃잎은 무참히 일그러졌다. 종국에는 그것이 무슨 형태를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게 됐다. 레시오는, 버스데이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좋았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었다. 어디에 가도, 무엇을 해도, 설령 모습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버스데이만은 알아 볼 수 있었다.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같은 방은 아니었다. 애초에 정반대 성격인 두 사람이 함께 산다고 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선 큰 충격이었지만, 버스데이를 생각하면 아주 못살 것도 아니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니까. 답지 않은 말에 레시오는 그를 힐끔 노려보며 말했다.
“애초에 내 집이었어.”
“제안한건 레시오쨩이잖아? 방도 두 개니까 겸사겸사”
할 말이 없어 레시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처음부터 버스데이를 들일 생각으로 산 집은 맞았다.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아주 잠깐 따로 살게 되었지만 원래 이게 맞았다. 이제 레시오는 매일 아침마다 그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밤마다 그가 무사히 집에 들어갔는지, 몸에 이상은 없는지 혹시 새벽에 발작은 일으키지 않았는지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눈을 뜬 순간 가장 처음 본 얼굴이 그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매우 좋았다.
이젠 버스데이의 방에서도 꽃 내음이 났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면 차가운 봄바람을 따라와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버스데이 일어나”
버스데이에게선 꽃향기가 났다. 그것은 흡사 초콜릿 한통을 입에 처넣은 듯한 향기였다. 노랑, 분홍, 빨강, 주황. 그의 옆에는 수만 가지의 꽃이 있었다. 종류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실존하지 않는 거일수도 있다.
“좋은 아침”
“뭐가 좋은 아침이야. 십분 늦었어”
버스데이가 밍기적 거리며 옷을 입을 때 레시오는 그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혈압도 맥박도 모두 정상이었다. 다른 이상한 점도 없었고, 단 한 가지 주변이 꽃 투성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뭐라도…보여?”
“아니 아무것도”
씻고 나오라며 버스데이를 화장실에 밀어 넣은 레시오는 꽃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리는 꽃들은 기분 나쁘게도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모두 빼앗기듯 그랬다.
우당탕, 쾅! 욕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레시오는 황급히 욕실 문을 열어 젖혔다. 넘어간 세면도구, 물이 흘러넘치는 세면대, 그리고 그 위를 온통 수놓은 꽃잎들 사이로 넘어져 있는 버스데이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많이 놀란 것인지 한참을 말이 없던 버스데이는 애써 입가를 닦아내며 웃었다. 괜찮아.
“내가 치울 테니까 나가있어.”
“레시오”
“괜찮으니까 나가있어, 옷 갈아 입고”
핏물인지 꽃물인지 분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새빨갛게 물들은 그의 옷을 보며 레시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쯤 되면 세면대가 막힐 법도 한데 물은 그와 상관 없다는 듯 줄줄 흘러내렸다.
“오늘 의뢰는 취소할까.”
“뭐? 왜?”
버스데이가 TV를 보던 시선을 돌려 레시오를 쳐다봤다.
“네가 많이 놀란 것 같아서”
레시오는 버스데이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별로 아픈 것도 아니었고, 그보다 오늘 의뢰 보수 높았잖아? 후딱 처리하고 오자고”
“…그럴까”
어깨에 팔을 둘러오며 그리고 돈을 받고, 술도 마시고, 그런 말을 하는 버스데이를 떠올리며 레시오는 그때 딱 잘라 거절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눈앞의 광경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세계 같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버스데이에게서 나는 꽃내음은, 그의 자리마다 피어나는 알 수 없는 꽃들은 자신의 환상이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새빨간 꽃이 피어나왔다. 그것은 이제 겨우 남은 벚꽃을 다 삼켜 버릴듯한 기세로 레시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꽃 내음이 진동했다. 평소보다. 더 진득하고 기분 나쁘게, 버스데이의 옷 위로 스멀스멀 올라온 꽃들은 지치지도 않고 피어났다.
“레,시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말 한마디 마디마다 꽃이 피어났다.
“…미안해…”
병원으로 이송된 후 버스데이는 의식을 잃었다. 상처가 깊다고 했다. 어쩌면 깨어나지 못할거라고도 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레시오는 언뜻 그런 말도 들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 멀쩡하던 버스데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있는 그를 보며 레시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꽃 내음은 나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꽃이 피어나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입을 틀어막은 레시오가 헛구역질을 했다.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하아…하.…윽…”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간 레시오는 입안을 헹구곤 자리에서 주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선 꽃냄새가 가득 퍼졌다.
그것은 더 이상 단내가 아니었다. 역겹고, 쓰디쓴 미련함의 잔해였다.
하나하키 병 유행해서 써봄
버스데이가 토한건 꽃이 아니라 피
행복의 시간
미니멈이 소멸한지 한 달이 지났다.
안대는 버렸다. 오른쪽 눈이 조금 간지러웠지만 이제 더 이상 가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미니멈이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세상이 한 눈에 들어왔다. 미니멈을 잃은 사람의 증상을 알고 있어서 였을까, 레시오는 바로 의사로서 복귀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들었다고 한들 미니멈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버스데이의 병은 점차 호전되고 있었다. 그것을 자신의 오른쪽 눈이 아닌 차트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버스데이가 의식을 차렸을 때 그 역시 다른 미니멈홀더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 자신은 무어라 답을 해줘야 할까. 그가 행복하다고 웃는다면 자신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천천히 병실 문을 열자 마주친 두 눈에 레시오가 우뚝 멈춰 섰다.
“버스데이!”
황급히 다가가 그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미니멈이 없으니 하나하나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레시오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버스데이가 입을 열었다. 아주 천천히 조곤조곤하게 그리고선 활짝 웃는데 레시오는 아무 말없이 그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쉼 없이 고민했지만 나오는 결말은 없었다. 그가 떠날까 봐 무서웠다. 사실을 말하면, 그가 절망할까 두려웠다. 그 모든 것이 달아날 만큼 행복해 보이는 미소에 레시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레시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버스데이...미니멈이..사라져버렸어”
“알고 있어. 나도 느낄 수 있어”
버스데이가 자신의 스턴건을 꽉 쥐더니 이내 서랍 위로 던져버리곤 시익 웃었다.
“근데 그게 뭐? 미니멈이 없어도 나는 나고, 너는 너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에 레시오는 아주 작은 위안과 함께 참을 수 없는 절망감이 차올랐다. 서랍 위에 있던 스턴건을 빤히 바라보던 버스데이가 레시오, 하고 불렀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레시오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나를 똑바로 보는 구나”
울컥 감정이 차올랐다.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기쁨도 아니었고 하물며 원망도 아니었다. 레시오 자신마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게 아니야!! 나는.. 미니멈이 없으면 너를..”
“레시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를 구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버스데이”
길을 잃었다. 레시오는 자신의 오른쪽 눈을 저주하면서도 한편으론 버스데이를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렇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에 있는 버스데이의 병세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너를...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너를...구해주고 싶었는데...이제 나는 너를 구할 수 없어”
그랬다. 이건 절망이었다.
“네 옆에 있을 수 없어..”
“하아...”
레시오가 움찔 할 정도로 크게 한숨을 내쉰 버스데이가 레시오와 눈을 맞췄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짝! 양 뺨을 얻어맞은 레시오가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기도 전에 버스데이가 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아팠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툭 하고 맞댄 이마가 뜨거웠다. 열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눈을 천천히 감고서 호흡을 바로잡은 버스데이가 레시오를 마주봤다.
“레시오, 너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내게 구원이었어”
숨이 멎었다. 버스데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눈물 때문인지 역광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는 너를 만나서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거짓말. 거짓말이다. 나는 너를 구할 수 없다. 구한적도 없었다. 하지만 너는 그 한마디로 다시 한 번 나를 붙잡아 주었다. 아마 평생 혼자 설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네가 없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네가 행복하다면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할 수 있었다.
“너는 그렇지 않아?”
너는 나의 구원. 유일한 도피처.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사랑.
“나도...그래”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나를 이끌어준, 매번 절망으로부터 나에게 손을 뻗어준 너는 나의 행복 그 자체였다.
딸꾹, 아
버스데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된 버스데이가 입을 억지로 올리며 웃었지만,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져, 몸을 들썩이는 버스데이를 보다 못한 마스터가 찬물을 내줬지만 소용없었다. 숨을 참아보기도 했고 혀를 잡아당겨도 봤지만,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다. 나이스가 미니멈으로 놀래켜도 봤지만, 한순간뿐이었다. 다시 딸꾹질을 시작한 버스데이를 보며 나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왜 딸꾹질을 하루종일 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잖아."
분명 악의가 담긴 말이었다. 분명했다.
버스데이는 레시오의 눈매가 가늘어진것을 보고 더 크게 딸꾹질을 했다. '얼씨구' 나이스의 혀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데이 오늘은 쉬는 게 어때"
"무,무슨 소리야."
"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
"할 수 있,히끅.....어.."
레시오의 차에 올라탄 버스데이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말했다. 한마디 할 때마다 딸꾹질이 멈추질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버스데이는 그러니까 세간에 말하는 딸꾹질 멈추는 법이란 법은 모두 시도해봤지만, 도무지 멈출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숨 쉬는 것도 힘들 지경에 버스데이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자,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딸꾹,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흐끅, 딸꾹, 속도도 줄이지 않고 과속방지턱을 넘는 바람에 버스데이의 몸이 튀어 올랐다.
"이러면 멈출 줄 알았는데"
사색이 된 버스데이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의사라며 좀 더 상식적인 방법을 생각해봐!"
끼익. 안전벨트 덕분에 몸이 앞으로 부딪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갑작스런 급정거에 버스데이가 입을 뻐끔거리며 무어라 말하려고 했다. 정작 나와야할 말은 안나오고 딸꾹질만 해댔지만
"딸꾹"
"안 멈추네"
"저기,끅, 레시오,.."
안전벨트를 붙잡은 버스데이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매드닥터, 매드닥터 하더니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우선 이 차를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버스데이는 천천히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다. 진짜 그러려고 했다. 갑자기 손을 잡아오는 레시오만 아니었다면 벌써 탈출해서 노웨어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버스데이"
"히끅"
점점 다가오는 레시오 때문에 버스데이는 점점 시트 깊숙이 몸을 숙였다.
"사랑해"
"히,....응?"
선글라스가 벗겨졌다. 커피 맛, 버스데이는 무의식중에 살짝 입술을 벌렸다. 틈새로 뜨거운 숨이 들어왔다. 찰칵,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풀었던 안전벨트를 다시 채우는 손길이 능숙했다. 몇 초나 지났을까, 입술을 뗄 생각을 하지 않는 레시오를 보고서 버스데이는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제야 떨어진 레시오가 버스데이를 향해 물었다.
"멈췄지?"
"어...?응"
숨을 크게 들이쉰 버스데이는 레시오를 힐끔 쳐다봤다. 정말, 단순히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나, 아무런 미동도 없이 시동을 거는 레시오를 보며 버스데이는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숙이고 있었던 건지 허리가 아팠다. 부드럽게 출발한 차는 아까처럼 방지턱에 걸리지도 않았고, 급정거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버스데이는 마른 목을 축이며 팔을 쭉 뻗었다.
그리고 뭘 하려고 했더라,
"나도"
"응?"
"모름말어"
물병의 포장지를 뜯어내던 버스데이가 이내 싫증이 났는지 글로브박스에 던져넣었다.
"버스데이 거긴 쓰레기통이 아니야!"
"네네"
"대답은 한 번만 해!"
"날씨좋구"
노웨어에 가서 나이스에게 밥을 사줘야겠다. 그리 다짐하며 시익 웃고는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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