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의 손에 있던 작은 귤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먹은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로가 그의 입으로 귤을 넣어줬다. 주황색 껍질을 벗겨내곤 하얀 섬유질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떼어냈다.
"떨어져." "이제와서 앙탈은…"
아, 하고 귤을 받아 먹은 길가메쉬가 뒤에서 시로를 끌어안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금색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뺨에 스치자 고개를 옆으로 젖힌 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다시 고개를 들은 길가메쉬가 귤을 받아 먹더니 "셔!!" 하고 소리치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시로…" " 이건 달다."
들고 있던 것을 길가메쉬의 입에 밀어넣은 시로가 싱긋 웃었다. "달지?" 하는 말에 아무말도 못하고 귤을 삼킨 길가메쉬가 입술을 쓸어내리곤 대꾸했다.
"나쁘지 않군…" "자. 아-"
다시 한 번 권해오는 시로의 손을 잡은 길가메쉬가 이번엔 시로의 손가락까지 입에 넣었다. 흠칫 놀라 뒤로 도망가려는 것을 붙잡곤 진득한 혀가 손가락에 달라붙었다.
"…야…길."
표정을 보지 못하는게 아쉽군, 그렇게 생각하며 손가락을 혀로 핥아내렸다. 도망가려는 몸을 다른 한손으로 가볍게 제압한 길가메쉬는 손가락에서 입을 떼곤 덜덜 떨리는 몸을 끌어안았다.
"흥분했느냐." "그건 네가," "짐이?" "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시로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뜨거운 열기가 옷 넘어로 느껴졌다. 살짝 이를 세워 귀를 깨물자 어깨가 튀어올랐다. 하얀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저항이 심해졌다. 길가메쉬는 그대로 시로를 바닥에 내리눌렀다. 윽, 비명이 터졌다.
"오늘따라 앙탈이 심하구나. 시로."
아, 젠장. 시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 나쁘지 않지만."
덜컥, 미닫이문이 요란스레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길가메쉬는 텅 빈 거실에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을 불렀다. 정확히는 소년이 가장 싫어하는 호칭으로
“어이, 잡종.”
거실에도 부엌에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렇지 않게 시로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 길가메쉬는 이미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 방안을 짜증스레 둘러보곤 문을 쾅 닫았다. 일부러 찾아와줬는데 헤매게 하다니. 사실 평소의 그였다면 시로가 먼저 오기 전까지 거실에 누워 TV를 시청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눈이 부셨고, 이런 날 방 안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죽이긴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로가 들었다면 순전히 자기 멋대로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원래 그랬다. 남의 의사 따위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모처럼 자신이 먼저 그를 찾아와서 나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그가 나빴다. 영웅왕 길가메쉬는 그렇게 납득을 하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꽤 큰 집이었다. 자신이 살던 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남자애 혼자. 혹은 또 몇 명 같이 산다고 하더라도 컸다. 정원을 따라 이어진 복도 끝을 돌았다.
“...잡종?”
햇빛을 받으며 하얀 이불 위에 늘어져 있는 것이, 잠이 든 것 같다. 길가메쉬는 저도 모르게 그 옆에 다가가 푹신한 이불 위로 몸을 숙였다. 볕이 잘 드는 자리였다. 평소에도 빨래를 하고 나면 이곳으로 오곤 했다. 설마 자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길가메쉬는 천천히 시로의 얼굴을 훑어봤다. 어딜 봐도 평범한 고교생.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 없고, 귀염성도 없었다. 자신만 보면 꽥꽥 거리며 소리치기 바빴으니까. 그래도 나쁘진 않다.
“에미야.”
나쁘진 않아. 자신만 보면 꽥꽥 거리고 소리치고, 화내기 바빠도 그래도 조금만 더 이 관계를 유지해보고 싶다고, 처음으로, 노력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