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쉬는 현재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의 주말 발렌타인데이라는 현대인의 행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데이’라는 것이 없어도 길거리만 가면 여자들이 알아서 따라붙는 그에게는 필요 없는 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얘기가 달랐다.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초콜렛을 건내고 있는 계집들과 평소에는 얼굴도 잘 비추지 않던 세이버마저 수줍게 웃으며 초콜렛을 들고 있었다. 반절은 없어진것 같지만 기분탓이렸다. 물론 초콜렛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다름아닌 그 대상이 전부 자신이 아닌 자신의 마스터인 ‘에미야 시로’라는 것이 문제였다.
“선배 이거 제가 만든거에요. 선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받아주세요!”
“응. 고마워 사쿠라.”
“딱히 에미야군에게 주려고 만든건 아니야! 아쳐가 만들다가 많이 남았다고 해서 가져온것 뿐이니까 괜히 착각하지 말라고!”
“알겠어. 고마워. 아쳐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줘. 토오사카.”
“저 시로…!!”
“세이버도 와줬구나! 고마워, 정말 기뻐 세이버.”
“아닙니다. 시로. 다음에는 아쳐에게 만드는 방법을 배워오겠습니다.”
그런 그녀들이 거실에 있는 길가메쉬를 한 번 보더니 싸늘한 눈으로 한마디씩 하고 나갔다.
“죽어. 길가메쉬.”
“…어…아직도 안죽었어?”
물론 길가메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녀들의 일방적인 폭언이었지만 길가메쉬는 얌전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인간이고-한명은 아니지만-자신은 서번트이자 자비로운 영웅왕. 이 정도는 그냥 흘러 들을 수도 있었다.
“당장 시로 집에서 꺼지십시오. 식충.”
물론 식충이라는 말에는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간에 시로가 끼어드는 바람에 결국 승부는 나지 않았다. 식탁이 동강나고 문이 뜯겨 나갔지만 그 정도는 거의 매일 있었던 일이라 시로는 한숨을 쉬며 사람을 불러 수리를 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몰고 지나가자 녹초가 된 시로가 차와 쿠키를 꺼내와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것도 초코 쿠키. 길가메쉬는 시로를 한 번 노려보더니. 짐을 우롱하는 것이냐? 하고 되물었다. 네놈이 받은걸 나보고 먹으라고?
이쪽으로 오너라.
싫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시로를 보고서 길가메쉬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시로. 재촉하는 목소리에 살기가 서려있다. 대체 이게 무어라고, 시로는 일단 첫 번째. 어째서 서번트가 목욕을 하느냐, 두 번째 그렇다면 왜 자신과 함께여야 하느냐, 세 번째 서번트가 목욕을 하 는것도 괜찮다. 생전에 좋아했을 수도 있었으니, 함께 하는것도 괜찮다. 욕탕은 넓고 혼자면 쓸쓸할 테니까, 그래. 쓸쓸할 테니까. 거기서부터가 잘못이었다. 시로는 마지막 세 번째, 이 넓은 욕탕에서 왜 굳이, 꼭! 옆으로 오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마주 보는 것이 싫다 하여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시로는 한숨을 쉬며 욕탕에서 나가려 했다. 갑자기 어깨가 붙잡혀 뒤로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이 욕실을 나가 잠 잘 준비를 했겠지.
"왜 그렇게 노려보느냐? 짐 덕분에 다치지 않았으니 눈을 깔아라."
할 수만 있다면 세게 치고 싶었다. 애초에 넘어진 게 누구 때문인데,
"싫다? 잡종 거울도 안 보고 사는 게냐? 지금 네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똑똑히 확인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