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쳐시로 생일 축하 ㅇㅅ<
앙리도 축하해!
그 잔상과도 같은 남자와 강제로 계약을 한 지 석 달이 흘렀다. 에미야 시로의 손등에 남아 있는 붉은 령주는 아직 하나도 쓰지 않았지 만, 그의 등에 있는 무수한 칼자국은 일반적인 마스터와 서번트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국자를 든 손이 벌벌 떨렸다.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젯밤은 유달리 사나웠다. 남자는 자신을 탐하는 것으로 모자라 칼을 들고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쭉 줄을 그었다. 시로는 그것이 마치 배를 갈라 안에 있는 욕망을 꺼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시로의 속에서 무언가 자꾸 갈구하던 남자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꺽꺽 울었다.
안아 주고 싶은데. 시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말 자신이 죽을 때가 다 된 건가 싶었다. 자신을 강간하다시피 안고, 제 배를 갈라버리는 남자가 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아 주고 싶다니. 남자가 이렇게 불쌍해 보이다니. 누가 봐도 지금 불쌍한 사람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시로는 손을 뻗었다. 손이 간신히 올라가 얼굴을 가린 손등을 툭 두드리자 남자가 빨갛게 부은 얼굴로 시로를 내려다봤다.
“…아….”
에미야 시로는 다정했다. 그것이 남들과 조금은 다른 비참함과도 같은 기분이라 남자는 그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것은 다정함으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고독. 에미야 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독이었다. 그것은 자신과 비슷한 것이었다. 당연하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남자가 처음 에미야 시로를 봤을 때. 그리고 자신을 봤을 때 근본적인, 사람의 기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쳐…아, 쳐……”
그리고 남자는, 에미야 시로에게 아쳐라고 불리는 남자는 그 다정함이 무서웠다. 그것은 언젠가 에미야 시로를 그리고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다.
“울…지마…”
눈물이 툭 떨어져 시로의 얼굴 위에 흘러내렸다. 아쳐는 시로의 얼굴에 흘러내린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야말로.”
아침에 눈을 뜨니 상처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다 꿈이었다는 듯이. 하마터면 속을 뻔한 것을 찢어진 제 옷과 난장판이 된 이불을 보며 시로는 한숨을 내뱉었다. 빨래할 거리가 늘어 버렸어. 그것이 시로의 감상이었다.
아쳐는 낮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그것이 한편으론 편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매번 얼굴을 마주 봐야 할 사이이니 친해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쪽에서 이렇게 나와 버리니 시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매번 밥 시간 때는 와주면 좋겠는데. 시로는 멍하니 칼질을 하다 국이 끓는 것도 모른 채 방치했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지? 에미야 시로.”
으아악! 갑작스레 나타난 아쳐에 저도 모르게 들고 있던 칼을 휘두르자 아쳐가 혀 차는 소리를 했다. “드디어 미쳤나보군.” 시로의 손에 든 칼을 뺏어든 아쳐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줄이고 마무리를 했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시로가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그 옆에 섰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에 다른 사람과는 무슨 대화를 했더라? 아니 영령은 다른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시로는 아쳐가 저를 보고 있음을 알고 고개를 들었다. 저보다 한 뼘은 더 큰 키 때문에 항상 목이 아팠다. 지금도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시 한 번 냄비가 끓어올랐다. 시로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말을 돌렸다. “다, 다됐다. 밥 먹자.” 제가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어색한 톤에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대로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앞치마를 벗고 자연스럽게 그를 지나치려는 것이 막혔다. 손목을 붙잡은 손은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뿌리칠 수 없었다.
“에미야 시로.”
그 이름이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모른다. 아쳐는 항상 그것을 매번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로는 그것이 진짜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럴 것이다. 차마 시로는 뒤돌아보지 못했다.
“생일 축하한다.”
시로는 단 한 번도 남자를 싫어한 적이 없었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저를 죽이려 달려들던 그 날까지 남자가 좋았다. 그것은 첫눈에 반했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은 아니었다. 저를 싫어하면서도 죽이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을 참고, 견디고 울고 하는 모습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남자는 모른다. 아마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남자는 저를 진짜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에미야 시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가 저를 죽이려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제 목을 조르고, 배를 가르려고 함에도 “생일 축하한다.”라는 한마디에 다 괜찮아질 만큼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