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not help와 이어집니다
밀짚모자 일당 절반을 토트랜드로 보낸 로우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와노쿠니로 들어간다 해도 작전을 실행할 순 없다. 중요한 전력이 빠진 지금 그들이 사황 카이도에게 덤빈다는 건 자살하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였다. '작전은 밀짚모자야가 돌아오는 걸 가정하에…' 로우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이마를 쓸어넘겼다. 밀짚모자가 동료를 데려오겠다며 달려간 그곳은 다른 사황 빅맘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어느 쪽이던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그들이 언제 돌아올지가 아니라 돌아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만약을 위한 작전도 짜놔야 해. 로우가 눈가를 꾹 눌렀다. 만약이란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시 남은 인원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로우는 몸을 바로 세우고는 의자에 똑바로 앉아 문 쪽을 바라봤다. "들어와." 무심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들어온 이는 한 손에는 술을 다른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이미 만취했다는 것은 그의 행동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얼굴에는 취한 게 잘 드러나지 않으니, 로우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저벅저벅 그의 앞으로 걸어가 술잔과 술을 빼앗아 들자 의외라는 얼굴로 그가 고개를 치켜든다. 무슨 일인데. 로우가 묻자 조로는 그냥, 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슬슬 선장님이 우릴 찾을 때가 된 것 같아서."
그는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를 보며 시익 웃었다. 로우는 자신의 술잔엔 술을 채우고 그게에 줄 술잔에는 물을 채웠다. 펭귄 녀석이 슬슬 다음섬에 도착할 거라고 하더군. 언제 친해졌는지 배의 항로까지 다 꿰는 모양이다. 술잔을 건네주자 그가 인상을 팍 쓴다. 술이 아니잖아? 로우는 술로 입술을 적시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인상을 쓰면서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서 작전은?"
작전이라, 로우는 밀짚모자가 돌아온다는 가정과 돌아오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작전을 짜야 했다. 물론 와노쿠니 섬 안의 분위기에 따라 변수도 따라오겠지. 허나 이 사내에게 밀짚모자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작전을 구상했다고 얘기한다면, 그는 납득할 수 있을까? 아니 날 죽이려 들지 않을까? 로우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아꼈다. 그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그때였다. 조로는 들고있던 술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가왔다. 침대가 그의 무게에 따라 출렁거렸다. 로우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을 빼앗아든 그는 술을 한입에 삼켜버리곤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무슨 고민하는지 알겠는데, 우리는 그냥 루피를 믿고 제 할 일만 하고 있으면 돼."
"…그게 언제가 될지 어떻게 알고?"
"언젠간 나타날 거야."
"안 나타나면?"
"……그럴 리가 없잖아."
불쑥 내뱉은 본심에 방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조로는 들고 있던 술잔을 책상 위에 천천히 내려놓고는 그가 써놓은 작전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만약 밀짚모자 루피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라는 말은 루피의 죽음을 얘기한 것인데 조로에게는 이해가지 않는 말 중 하나였다. 분명 루피는 돌아오겠다 얘길 했고,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금 그가 말하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조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름이 없어."
조로가 노트를 보더니 얘기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로우가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작전에 내 이름이 없는데."
아, 로우가 탄식하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직 다 짜지 못했어." 그 말에 조로가 흐음 하며 손가락으로 노트 제일 아래 적혀있는 작전조를 가리켰다. 난 여기가 좋아. 그러자 로우가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저었다. 거긴 안 돼. 노트를 접어 구석으로 밀어넣자 조로가 다시 노트를 들고 와 책상 위에 펼쳤다.
"어차피 남는 인원이면 이쪽이 낫잖아."
조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밀짚모자 일당의 중요한 전력 중 하나였고 이번 싸움에서도 분명 막강한 적을 상대해야 했다. 들은 바로는 카이도의 부하들만 해도 현상금이 10억이 넘었고, 대부분이 능력자인 집단이었다. 선장만 쓰러트린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장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이건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이도를 상대하기 전까지 선장은 체력을 유지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선원이 희생될지도 모른다. 롤로노아 조로는 그 희생되어야 하는 선원 중 하나였다. 물론 그는 희생될 만큼 약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너무도 강했다. 과연 그가 무사 할 수 있을까? 로우의 걱정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닌 척해도 동료를 아끼는 사내였다. 그는 양다리를 자르려고 하기도 했고, 동료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고도 했다. 그런 그가 무사 할 수 있을까? 옛날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걱정이 파도처럼 로우를 덮쳐왔다.
그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 작전을 짜는 내내 로우는 그 생각만 했다. 그를 우리의 발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적었다 지우길 반복했다. 그는 분명 중요한 전력이고 이번 작전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허나 그의 이름을 적어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남는 인원'이라고 얘기했고 로우는 크게 반박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남는 인원이 아니라 적고 싶지 않은 인원이었지. 동료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동료를 믿는다는 마음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폭풍우가 로우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허락할 수 없어."
"어이, 토라오."
"다시 말 안 해도 알아듣는다, 근데 나는 허락할 수 없어."
로우가 냉담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조로는 노트에서 손을 떼곤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다시 저를 올려다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로우는 불만을 읽어냈지만 들어줄 여유 따윈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곧 도착하는데, 그때까진 설명해주겠지?"
사실은 난 네게 배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섬에는 내리지 말고 배에 있으면서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라고, 그게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나를 믿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너는 작전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다고, 너를 믿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네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네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너를 사지로 몰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그저, 너를,
로우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강하고 용감하며 또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입이 험하기는 해도 어리고 약한 것들에겐 한없이 물렁물렁하게 굴곤 했으며, 그 누구보다 선장 명령에 잘 따르기도 했다. 그들과 처음 동맹을 맺고 전투에 임했을 때 그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 일당 애먹을 거라며, 동맹을 맺었으니 널 지키는 것도 내 몫 중 하나라고 얘기하던 너는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데 불쾌하긴커녕 이상하게 심장이 뛰던 말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말들이었다. 동료를 아끼고 선장을 아끼는 그에겐 자신 목숨따윈 없는 것처럼 굴었다. 너는 동료를 구하고자 아무렇지 않게 사지에 뛰어들고 몸을 날리고,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는 것처럼, 몸이 강철이라도 되는 것처럼 적 앞에 서며, 자신의 목숨만 거둬가고 다른 이들은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로우는 진심을 말할 수 없었다. 제가 말한 진심은 그에겐 닿지 않을 것이고 되려 튕겨 나와 저를 찌르고 도망갈 것이 뻔했다. 내가 걱정하는 이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으므로 앓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었다.
-
"미안하다 조로야, 진심이 아니었어."
'너와 바다를 여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한 그날 밤 로우는 단련실에 찾아와 그에게 사죄했다. 막상 조로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는 로우 손에 들고 있는 술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둘의 싸움은 반나절도 가지 못하고 끝나 버리고 만거다.
"그 거울 때문에 그러냐?"
조로가 술로 목을 축이며 말하자 로우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잖냐, 신경 쓰지 마."
그 거울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고, 조로의 잔은 이미 비워진 채였다. 그때 로우가 잔을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다시 잔을 채우던 조로가 로우를 바라봤다. 그는 양손으로 눈가를 가린 채 비명을 지르듯 말을 내뱉었다. "네가 죽어가던 와중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나는 선장이자 의사였는데도 네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 말이다." 조로가 두 번째 술잔을 비워냈다. "어이 토라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로는 그의 술잔을 가져왔다. 아직 술이 반쯤 남아있었다. 마셔도 되려나. 조로는 힐끔 그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조로가 술잔을 가져가는 것은 보지 못한 채. "너는 나를 무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로써 확실해졌다, 조로야. 나는" 조로가 그의 술잔까지 비워내곤 바닥에 내려놨다. 주절주절 떠드는 것이 시끄러워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자신의 쪽으로 당기자 잔뜩 일그러져있던 미간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넌 너무 말이 많아."
-
와노쿠니로 들어가기 전 작전을 설명하는 내내 로우는 이 결정이 맞는가 수십 또는 수백 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를 사지로 내몰고 싶지 않다는 진심과 그가 없다면 전력에 큰 손실이 오기 때문에 그를 미끼조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충돌했다. 누구 하나 희생하지 않으면 이번 작전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희생이 제 연인에게까지 닿지 않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 역시 있었다.
"조로야, 너는…"
이게 정말 옳은 일인가? 그를 사지로 내모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 모두를 지키는 것과 하나를 지키는 것 중 나는 어느 걸 선택해야 하지? 나는 왜 네가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냔 말이다. 로우는 작전을 짜는 내내 생각했다. 그 망할 거울 때문이라고,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그 때문이라고 그게 당장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종국에는 생각하길 멈추었다고.
밀짚모자가 합류하면서 작전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변수도 많았지만 카이도가 쌓아놓은 업보로 인해 동료도 늘어났다. 그러나 로우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로우는 작전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조로와 의견이 엇갈렸다. 그는 자신을 사지로 내몰길 원했고, 로우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나 말고 그럼 누가 간다는 건데? 조로의 외침에 로우는 너 말고도 강한 녀석들이 많다고 응수했다. 조로가 이를 뿌득갈았다.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작전에 들어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셈이 되었지만 로우로서는 그게 차라리 편했다. 그가 안전한 것이 로우에게는 안심하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러므로 사황 카이도와 싸우기 시작했을 때 유스타스 키드가 의식을 잃고, 밀짚모자 루피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한쪽 팔이 날아갔을 때도 로우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도와줄까."
카이도의 커다란 발톱이 그의 검에 막혔을 때 로우의 세상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주 눈부신 절망이었다.
"저쪽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조로!"
루피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선 나타났다. 또 그 꼴이냐. 조로가 혀를 차며 웃었다. 나 오 분 후면 힘이 돌아오는데 그때까지만 막아줘. 루피의 부탁에 조로가 카이도를 노려보며 턱을 쓸어넘겼다. 오분이라. 토라오 싸울 수 있겠냐? 조로는 그의 날아간 한쪽 팔을 보고선 고개짓을 했다. 로우는 밧줄로 팔을 묶고 지혈한 후 이를 악물었다.
"선장 세 명이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한 상대야 각오해둬."
로우는 자신의 능력이 도망치는 것에 아주 탁월하다는 사실을 지금보다 감사히 여긴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작전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어쩔 수 있나, 지금 이 게임 안에서 자신은 플레이어였고 그는 자신이 말하는 대로 움직이는 전사일 뿐이다. 전투 중에 충돌하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소리치는 그를 자신의 곁으로 옮긴 후 다시 작전을 짜는 것까지 고작해야 몇 초였다. 일방적으로 퍼붓는 말이었지만 조로는 알아듣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로우의 능력을 알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불만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 사이 유스타스 키드가 깨어났고, 조금 있으면 밀짚모자의 힘도 돌아올 기세였다. 이길 수 있다. 그런 희망이 맴돌던 그때 자신의 반대쪽 팔마저 날아갔다. 가장 성가신 능력을 가진게 자신이라 여긴 카이도가 목표를 바꿨기 때문이다. 키드가 카이도를 막아서고 조로가 황급히 로우의 몸을 끌고 뒤로 물러섰다. 야, 괜찮냐. 당황한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저었다. 양팔이 없어선 안 돼. 당장 붙일 수는 없어? 붙인다 해도 몇 분이나 걸린다. 그 사이에 둘이서 카이도를 상대하겠다고? 유스타스야는 이제 막 정신을 차려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밀짚모자야가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리고.
"…도망쳐라 조로야."
왜 이제와서 그 거울의 모습이 생각나는지 모를 일이다. 당장 떠오르는 비극적인 기억을 지우려고 애쓴 그가 내뱉은 한마디에 조로의 얼굴이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죽는다면 난 그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내인 거지."
그가 검을 고쳐잡았다. 단 몇 초, 그들이 얘기한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딱히 죽음을 걱정한 게 아니었다. 죽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다만 죽는다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웃으며 등을 돌렸다. 밀짚모자가 힘을 되찾기까지 2분. 그가 사황 카이도의 힘을 정면으로 받아 낸것이 수십차례. 자신의 팔을 다시 붙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로우는 검을 입에 물고 싸울까 고민도 했지만, 지금으로선 방해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에게 전투 내내 선장으로 있길 명했고, 자신도 선원으로 있겠다고 했지만 제 양팔이 잘려나간 그 순간 조로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쳤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말하던 사내가 흔들리고 만 것이다. 로우는 그 속에서 조로의 패배를 읽었고, 그가 도망치길 원했다.
내가 그렇게 큰 걸 바랐나? 사랑하는 이가 내 곁에 있어 줬음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내가 살고 싶다고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내게 죽음이 오게 되더라도 그만은 살아갔음을 바랐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내게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는 이를 사랑했다. 제가 수십 수 백번 사랑한다 고백하고 속삭여도 그는 그때 한번 나 역시 그렇다며 말할 뿐 먼저 말해준 적은 없었다. 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속상한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 나는 최우선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루피의 외침이 로우에게 닿았다. 팔을 붙이기 위해 집중했던 그 몇 초간 이미 승부가 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토라오, 조로를 부탁할게."
밀짚모자의 목소리에 로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배에 구멍이 뚫린 채 숨을 헐떡이는 연인을 보고 평정심조차 유지하지 못하는데, 양팔을 잃은 탓에 당장 그를 살릴수조차 없는데 말이다. 불로불사 수술은 아주 정교한 수술이었다. 능력자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수술이었으니, 양팔이 떨어져 나간 지금 그에게 불로불사 수술을 할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난 무엇을 바랐던 거지. 네가 영원토록 살아있었으면 했나?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은 살리고 싶다고 생각한 건 신에 대한 기만이었을까? 로우는 무릎으로 기어가 그의 앞에 앉았다. 우리 둘 다 꼴이 엉망진창이군. 그리 말하는 이를 보며 로우는 웃을수가 없었다. 엉망진창인 건 너지, 나는 팔만 붙이면 끝이라고, 근데 너는 뭐냐고 배가 뚫려 살이고 내장이고 전부 날아가지 않았느냐고, 이대로라면 수십 분 이내에 죽게 될 거라고. 로우가 그의 가슴 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는 비명을 삼킨 채 작게 웅얼거렸다. '살아라, 살아나라, 제발 살아나라고.' 끔찍했던 기억의 데자뷰였다.
"언젠가…약속했던 것들이 있었지……."
그가 피를 토하며 소리치듯 얘기한다. 자신의 목소리조차 그에겐 이미 들리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속이 뒤집어지는 듯한 격통과 함께 언젠가 찾아올 필연적인 운명의 순간이라는 좌절감.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 그가 팔을 들어 어깨를 툭 쳤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속이 쓰렸다. "살아라, 살아나야 한다. 조로야, 살아야." 그가 이마로 가슴께를 툭툭 쳤다. 그러나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함께 바다로 떠나자고 했잖아…"
네가 내 배에 타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그때 내가 한 말은 모조리 거짓이었다고,
"사랑한다,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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