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내가 뭘 사 왔는지 궁금하지 않냐?! 우솝이 낑낑거리며 커다란 거울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크기는 2미터를 조금 넘었는데 그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거울을 보며 나미가 또 돈 낭비를 했냐며 우솝의 뺨을 아프게 꼬집었다. 아야, 그게 아니라! 우솝이 거울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10년 후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어때 신기하지? 그렇지? 우솝의 말에 나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어디 사기꾼한테 속아서 돈을 펑펑 낭비하고 온 게 뻔했다. 쵸파만이 진짜? 대단하다! 하며 우솝의 옆에서 방방 뛰어 다닐 뿐 그 누구도 우솝이 사 온 거울이 진짜 '10년 후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믿지 않았다. 의외인 것은 루피가 별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나미가 루피를 부르자 루피가 고개를 젓는다.
"난 내 10년 후 모습 안 궁금해."
"왜?"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퍽 루피다운 말이었다. 나미는 그런가, 하며 머리를 긁었다. 그때 로빈이 뒤에서 나타나 웃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지금 본 미래가 꼭 내 모습이라고 할 순 없지." 뒤따라 나타난 산지가 지당한 말씀이라며 커피를 건넸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야. 나미는 방긋 웃으며 그럼 네가 먼저 서봐! 하며 우솝을 거울 앞으로 밀었다. 순식간에 앞으로 떠밀린 우솝은 중력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 채 바닥으로 얼굴을 콩 박았다. 야! 나미! 빨갛게 부은 턱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키는데 나미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거울 봐. 빨리." 우솝이 침을 꿀꺽 삼키곤 고개를 돌렸다. 호기심에 사 오긴 했는데 막상 자신의 모습을 보려니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천천히 돌아간 두 눈이 겨우 거울의 자신과 마주했을 때 우솝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과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코가 좀 길어졌냐."
산지가 턱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농담하지 마! 우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산지의 멱살을 잡고 당긴다. 너도 보자고! 그러나 산지 역시 변한 건 별로 없다. 산지는 얼굴을 매만지며 서른 살의 나도 잘생겼군. 하는 소리를 해댔다. "눈썹이 많이 동그래졌어." "뭐라고 했냐 코쟁이." 둘의 의미 없는 싸움에 나미가 둘을 밀쳐내고 거울 앞에 섰다. 역시 변한 건 없었다. 옷만 조금 바뀌었고, 머리 길이가 좀 더 길어졌다. 눈을 반짝이며 나미 옆에 선 쵸파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십 년이 지나도 겨우 서른인데 크게 바뀔 리가 없나? 미래를 비추지 못한 거울은 금세 방치되어 갑판 위를 굴러다녔다. 거울로도 쓰지 못하는데 어디다 버리냐.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밥부터 먹자고, 어이 마리모! 밥시간이다! 산지가 큰 소리로 그를 깨우자 온갖 소란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조로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조로의 시선이 구석에 세워둔 거울로 향한다. 못 보던 물건인데. 거울 앞에 선 조로의 고개가 잔뜩 기울어진다.
"그건 10년 후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하더군."
뒤에서 나타난 로우가 말을 걸어왔다. 조로는 흐음 하고 의미 없는 소리를 내더니 푸핫하고 웃어버린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안 보여서."
조로가 거울을 가리키며 웃는다. 난 10년 뒤에는 없나보다. 웃기는 거울이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끝을 고하는 그를 보고서 로우는 웃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문 그는 거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너한텐 뭐가 보이지?"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그다음에는 단순한 욕심. 10년 후 자신의 옆에 그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 '루피를 해적왕으로 만들고 나면 네 옆에 있어 주지.' 기약 없는 약속에 대한 기대.
"나한테는…"
차라리 눈이 멀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로우는 시선 끝에 걸리는 핏빛 세상에 눈을 질끈 감았다. 토라오? 예상 밖의 반응에 조로가 몸을 돌려 로우를 올려다본다. "나는." 로우는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더니 들고 있던 장검을 높이 치켜들고는 거울을 내리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진 거울의 파편이 두 사람의 발아래로 흩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로우는 파편 사이로 보이는 미래의 흔적에 속이 뒤집히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조로야, 그가 간신히 입을 열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단단한 두 팔이 허리를 감싸 안아왔다.
"내 미래에 네가 보였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너를 끌어안지도 못하고 오열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고,
-
그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로우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과거를 회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단란했던 가족, 원만했던 교우관계, 어쩌면 탄탄대로를 걸었을지도 모르는 자신. 병에 걸린 후에도 분명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착한 사람은 분명 있었고, 우리를 도우려는 이들도 있었다. 손을 잡을 순 없었지만. 그 후에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시체의 산더미 아래에 기어들어 가 죽은 척 바다를 건너던 나날들. 시체의 썩은 내가 코를 마비시키고, 내게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다. 종국에는 내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좋은 일은 있었다. 로우는 코라손을 만나고 나서 희망을 품었다.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는!! 그것은 나만 살고 싶다는 외침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를 만날 수 없다고 해도? 누군가 그리 물으면 로우는 웃으며 얘기할 것이다. 당연하잖아. 코라손을 만날 수 없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과거를 떠올리며 웃는 것은 그 나름의 방어기제였으나 '만약에' 같은 의미없는 가정은 그를 안에서부터 무너트렸다. 자신으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떠올렸다. 그중에 저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떠올렸다. '사랑한다.' 이어진 총성과 울음소리. 눈을 즈려밟는 수많은 발소리, 생명이 꺼져가는 소리. 어때? 그때보다 괴로운 일은 찾아오지 않을 거야. 그렇게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대상의 소중함은 그것을 잃었을 때 알게 된다고 했던가? 로우는 거울 속의 미래를 보는 순간, 그리고 거울에 조로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또다시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릴 수 있었는데! 그럴 능력이 충분했는데도 로우의 품에 돌아온 건 피투성이의 연인이었다.
어째서 다른 크루들은 멀쩡했는데 조로만 아무것도 비추지 못했는가? 어째서 그만 제품에서 죽어갔는가? 그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썩어가는 나무 받침 대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커다란 유리거울이 비추는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로우에겐 중요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곳에 비친 미래는 형태는 바뀌겠지만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운명에 가깝다는걸 로우는 느꼈다. <수술수술열매>의 능력은 능력자의 지식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그 열매의 진짜 능력 <불로불사 수술>은 도플라밍고를 제외하고 나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알려질수록 위험했고, 신변에 위협도 컸다. 로우는 이 힘이 분명 도움이 되지만 언젠가 큰 해가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항상 몸을 숨겼고, 누구와도 깊게 엮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하루가 반복되던 어느 날 접근금지를 내려놓은 땅 위로 누군가 길을 잃고 발자국을 찍어놨다. 로우는 그 발자국의 주인이 누군지 대번 알 수 있었다. 항상 바라봤으니까. 우연히 길을 잃은 그를 데리고 배에 돌아오던 찰나 바닷물에 젖은 모래 위로 자기보다 작은 발자국 하나가 길게 따라오고 있었다. "토라오." 일평생 검만 잡아 온 단단한 손이 로우의 손을 붙잡았다. 잡은 손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들자 금색 장신구가 반짝거렸다.
"바다위랑은 다른 느낌이지?"
그는 반대쪽 손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 멀리 수평선 위로 해가 지고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었다. 해가 지는 것 따위 얼마든지 봤고, 앞으로 살아있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감상에 빠질 이유가 있나? 로우는 조로의 손을 잡고 당기며 가자고 얘기하려다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속이 바짝 타고 입안이 메말랐다.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당장, ─무뚝뚝하다 못해 목석같던 이 사내가 감정을 드러낼 때는 술을 마시거나 화를 낼 때 뿐이었다. 뭐, 화도 잘 내지 않으며 대부분 크루들을 걱정해하는 소리였지만, 특별히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로우는 그가 편했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을 하든 그는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로우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무엇을 하든 자신에게 피해만 오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허나 지금은 어떤가. 그가 자신에게 피해를 줬나? 아니면 특별한 행동을 했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우는 당장, 그를 끌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했기 때문에? 맞잡은 손이 덜덜 떨려서? 그가 불안에 떠는 것 같아서? 조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건 로우의 추측에 지나지 않았고, 그 모든 게 그를 끌어안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로우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하트(heart)에 찍힌 발자국을 확인하고 나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는. 그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직감이 로우를 날카롭게 찌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직감은 아슬아슬하게 하트를 피하고 지나갔으며, 반대로 저를 돌아본 우수에 젖은 붉은 눈동자는 정확하게 로우의 하트를 관통했다. 덜덜 떨리는 건 그의 손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었다. 로우는 조로의 손을 놓고는 제 입가를 가렸다. 나는 어떤 표정이었지? 불안에 떨고 있었나? 울 것 같았나? 아니면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나? 파도가 발을 적시고 사라졌다.
트라팔가 로우의 사랑은 티가 났다.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그에 대한 질투도 슬픔도 원망도 그는 당당하게 드러내 보였다. 가히 맹목적이었다. 어쩌면 저주받은 운명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사랑받는 이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로우의 행동은 박차를 가했다. 동맹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로우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했다. 럼주 향이 스며 나오는 창고에서 서로의 옷을 벗기고 몸을 끌어안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달빛조차 배를 비켜 가는 날에는 전망대 위에서 입을 맞췄다. 섬에 내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관에 처박혀 서로 한참을 탐하고 배로 돌아왔다. <10년 후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헤프닝 후에는 조로는 로우를 배구석으로 끌고 가 어린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쓸어내렸다. 고개를 숙여 조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로우는 조로의 허리를 끌어안다가 팔을 올려 그의 가슴을 바짝 끌어안았다. 조로야, 조로야. 로우가 주문처럼 이름을 불러댔다. 조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 동맹이 끝을 맺고 서로의 배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 로우는 조로를 자신의 배에 태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도 네 미래에 내가 보였다는 건 10년이 지나도 함께 있다는 소리잖냐."
언젠가, 루피가 해적왕이 되고 나면 네 배에 타고 있을지도 모르지. 조로가 웃으며 그런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로우는 조로를 자신의 배에 태웠을지도 모른다. 네가, 내 배에. 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가 내 배에 타는 날은 오지 않아."
그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선 로우를 올려다봤다. 조로의 얼굴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대체 무슨 소리냐?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너와 바다를 여행하지 않을 거란 소리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조로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더니 그러냐. 하고 자리를 떠났다. 툭 어깨를 밀치고 지나간 그의 손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속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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