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혼혈 어인 조로 보고 싶다,
원래 쓰려던것과 이만리 떨어졌네요
트라팔가 로우는 악마의 열매를 먹고 맥주병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힘에는 분명 피와 살을 깎는 노력이 있었지만, 악마의 열매를 먹고 나서야 강해질 수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애초에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당장 죽었을지도 모르는 몸뚱이였으니.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와 함께 바닷속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숨을 참을 수는 있겠지만 보통의 인간보다 짧으며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는 게 문제였다. 악마의 열매를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실수로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다. 바닷물을 토하며 몇 날 며칠 앓아누웠던 로우는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접을 수는 없었다. 세상의 전부가 바다로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세상에서 바닷속을 보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큰 불행인가? 괜히 악마의 열매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배를 잠수함으로 설계한 건 그 때문이었고.
"토라오."
그가 갑판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 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뭘 읽고 있냐.' 로우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는 챙겨두었던 수건을 조로의 머리 위에 올려주었다.
"체온이 많이 떨어졌구나. 수련은 좋지만 지나치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해."
수건을 받아든 조로는 얼굴과 머리를 닦으며 천연덕스럽게 얘기한다.
"나는 보통 인간이랑 다르다고"
"입술이 파랗게 질렸는데?"
아, 그러자 고개를 옆으로 돌리곤 뻔뻔한 얼굴로 말한다. '평소보다 조금 오래 있기는 했는데.'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상관없다는 태도에 로우의 미간이 한껏 비좁아진다. 그는 모자를 꾹 눌러쓰더니 '다음부턴 주의해라.'며 자리를 떠났다. 조로는 멀어지는 로우의 등을 보며 알겠다곤 대꾸하곤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걱정이 심하다곤 생각한다. 의사란 놈들은 다 저런가? 그가 오기 전까진 쵸파가 잔소리와 감시 담당이었다. 난 이 배의 선의이며 선원의 상태가 나빠지는 걸 그냥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가끔 자신이 어인 족과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무시하곤 했다. 물론 아주 미비하긴 했다. 게다가 스스로 밝힌 적도 없었다. 알려지게 된 건 우연이었지, 수혈을 위해 혈액형을 체크했는데 쵸파는 고개를 옆으로 한껏 기울이며 '조로는 혼혈이구나.'라고 했을 때였다. 어인 족과 혼혈이라는 말에 나미가 조로의 볼을 꼬집으며 어딜 봐도 인간이잖아? 라고 되물었고 쵸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 어인 족의 피는 10퍼센트 미만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루피가 호들갑을 떨며 그럼 조로 너도 입으로 물총 같은 거 쏠 수 있냐고 달려들었고 조로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며 루피를 밀어냈다.
'난 한 번도 내가 어인 족이라 생각한 적 없어!' 그가 어인 족과 혼혈이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밝히지 않아도 문제없었으니까.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었고, 그저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겉모습은 누가 봐도 인간이었고, 생활습관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인간과 다른 점은 그저 남들보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쉬고,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다는 것뿐. 누구도 그에게 어인 족이냐고 묻지 않았던 건 그가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조로라면 그럴 수도 있지. 물론 조로는 스스로의 강함이 종족에서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쵸파의 말대로 어인 족의 피가 섞인 건 아주 조금이었고 그 외에는 스스로가 익히고 노력한 것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미치도록 강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조로는 어릴 적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친구를 떠올렸다. 어쨌거나 그에게 어인 족의 피가 섞였다는 것은 남들보다 바닷속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최근에 물속에서 수련하게 된 까닭은 어인 섬에서 어처구니없이 붙잡힌 이후였다. 육지였다면 혼자서도 베어버렸을 녀석을 바닷속이란 이유만으로 붙잡혀 버리다니 크나큰 실책이었다. 그 후부터 물속에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도록 수련하고 있다. 선장과 선원의 절반이 맥주병이니 더욱 게을리할 수 없었다. 신세계에는 세상에 날고 긴다는 녀석들이 다 모여있었고, 커다란 배를 두 동강 내는 녀석도 있었다. 만약 이 배가 침몰하게 된다면, 바다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조로는 이 배의 선장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강해져야 했다. 그 어떤 상황이 오든 간에, 만약 자신에게 어인 족의 피가 섞여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때문에 로우의 걱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약속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도 조로는 올라오지 않았다. 물론 시간을 착각했을 수도 있다. 바닷속이고 수련을 하고 있다면 충분히 그럴 만 했다. 다만 로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저와의 약속을 가볍게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뭐, 약속으로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의사의 지나친 참견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고, 걱정이 심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바닷속에서 올라오지 않고 소식도 없는 연인에게 이 정도 참견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와 이 배를 이어주는 건 고작 밧줄뿐이었고,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해도 바닷속이었다. 로우가 난간에 기대어 바닷속을 빤히 바라봤다. 투명하고 맑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앞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서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만약 폴라 탱 호에 탄다면 그가 수련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나도 저 바닷속에. 그때였다. 강한 충격이 로우의 몸을 밀치곤 사라졌다. 순식간에 몸이 공중에 붕 뜬 로우는 눈만 깜빡거리더니 '아 실수!' 하는 루피의 목소리를 들었다. 순간 루피의 난동에 휘말려 바다에 빠지던 쵸퍼가 생각났고, 얼굴에 핏줄이 불룩 올라왔다. 저 새끼 죽여버리겠어. 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몸과 함께 푸른 바다에 풍덩 가라앉았다.
그가 바닷속에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십초였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멀리서 헤엄쳐오는 이의 모습을 눈에 새겨넣었다. 언젠가 함께 바닷속을 유랑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로가 무어라 소리쳤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제 몸을 양팔로 꽉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괜찮냐?"
따뜻한 손이 제 뺨을 툭툭 두드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저를 내려다보는 조로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쵸파, 이 녀석 정신 차렸어. 그제야 제가 누워있는 곳이 의무실 침대 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로가 몸을 일으키자 쵸파가 다가와 로우의 안색을 살폈다. 바다에 빠진 건 오랜만이냐는 소리에 로우는 태어나서 두 번째라며 대꾸했다. '아주 어릴 때, 막 악마의 열매를 먹었을 때 뭣도 모르고 빠진 적이 있었어, 그때도 죽다 살아났는데 지금도 비슷한 기분이군.' 쵸파는 로우의 얘기를 들으며 방긋 웃었다. 말을 많이 하는 거 보니 멀쩡한 것 같은데, 조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진짜. 로우가 몸을 일으키자 쵸파가 말렸다. 그래도 체온이 제법 떨어졌으니 누워있는 게 좋다며, 로우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쵸파의 뒤에는 조로가 서 있었다. 결국 몸을 다시 뉜 로우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쵸파가 조로에게 로우를 부탁한다며 의무실을 나섰다. 어. 대충 대답하곤 의자에 털썩 앉은 조로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바다에 뛰어든 거야."
그건 네 녀석의 선장 때문이라고 버럭 화를 내려다가 그만뒀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봤자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고, 마침 조로와 둘이 되었는데 화를 내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컸다.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댄 로우가 손으로 침대를 툭툭 쳤다. "조로야." 그의 손짓에 조로는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개 부르듯 부르지 말라고."
침대가 그의 무게만큼 내려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로우가 양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쵸파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으로 보이진 않았는데."
게다가 밖이 막 시끌벅적해졌다. 아마 한동안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너야말로 갑자기 이러는 거 이상하다고."
"살아있는 걸 만끽하는 중이니 조용히 해라, 조로야."
로우는 물속에서 보았던 조로의 모습을 기억에 새기고 또 새겼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잊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유연하게 헤엄쳐 오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웃기지 말라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상한 곳에서 부끄럼을 타는 녀석이니까. 더는 숨을 참을 수 없게 되어 벌어진 입술 위로 따뜻한 체온이 닿았다. '견뎌.' 꼭 녀석다운 말이라 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맡겼다.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넣고 꽉 끌어안자 가슴이 꼭 붙어서 심장 박동이 제 머릿속을 쿵쾅쿵쾅 뛰어다녔다.
"…이제 됐으면 떨어져."
"싫다."
어깨 위로 이마를 비비고 고개를 돌려 목덜미에 숨을 떨어트리자 그의 몸이 흠칫 떤다. 야, 하며 어깨를 밀어내는 손을 붙잡고 침대 위로 내리누르자 쉽게 몸을 맡긴다. 진심으로 화를 내고 힘을 쓰면 제가 떨어져 나갈 것을 아는 그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붉어진 얼굴 위로 입을 맞추자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조로의 체온은 남들보다 조금 더 높았다. 이렇게 입을 맞추고 옷 안으로 손을 넣으면 불에 덴 듯 뜨거웠고, 벌어진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안쪽을 잔뜩 헤집어 놓고는,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흥분에 젖은 아래에 제 성기를 삽입하면 꼭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를 소중하게 다루고 싶다가도 엉망진창으로 망가트리고 싶기도 했다. 이건 질투였다.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에 대한 질투였고, 그를 집어삼킨 바다에 대한 질투이기도 했다.
그를 가지고 싶었다.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그를 내 동료로 두고 온 바다를 여행하고 싶었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갈망이 로우의 안에서 소용돌이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론 약했다. 내가 이 배에 내리는 순간 연인이란 이름은 아무 소용없는 약속이었고,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바다는 넓고 위험했으니까. 그의 탄탄한 허리를 붙잡고 안쪽으로 제 욕망이 부딪칠 때마다 들려오는 밭은 숨소리에 이성이 마비될 것 같았다. 죽다 살아나서 그런 것일까, 평소보다 몸짓이 거칠었다.
"토라오…"
투박한 손이 로우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싫다, 정말 싫었다, 자기를 다 안다는 듯한 눈빛과 꼭 안된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 나를 개 부르듯 부르는 건 너잖냐. 그러나 나는 잘 훈련된 개처럼 네가 부르자 몸을 숙이곤 감긴 눈 위로 입을 맞추었고, 너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꼭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진정됐냐."
"…한참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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