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풀었던거 +a
에그시에게 행복은 아주 소소한 것이었다. 「해리 하트」와 아침을 맞이하며 그의 품에서 늦장을 부리고, 그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JB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백화점에 들러서 엄마와 데이지의 선물을 고르고, 그리고 「해리」몰래 그에게 줄 넥타이를 사서 같이 계산하고, 저녁은 마티니와 함께 빌려온 DVD를 보며 그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드는 아주 소소한, 그런 행복.
행복(幸福)
happiness 1.행복 2.해리 하트. 3.그리고 에그시 언윈.
그러나 에그시의 일상은 혼자 새벽에 일어나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본부로 출근해 멀린과 사적인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임무를 받아, 점심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침을 삼키며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긴장해야 했고, 임무를 마치면 이미 머리 위에 별이 총총 떠다녔으며, 지친 몸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제집으로 돌아가 대충 넥타이를 풀고 술로 허기를 달랜 채 차가운 침대에 몸을 눕히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가끔 JB의 밥을 챙겨 주는 것. 그것이 에그시의 현실이다. 행복과는 조금 거리가 먼.
사실 이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에그시가 바라는 행복은 「해리 하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마 이런 형태였지 않을까 하고 가끔 생각했다. 잔뜩 일그러지고, 흐려져 이미 알아보지 못했지만, 에그시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와 데이지를 빌어먹을 딘에게서 떼어낸 후 예쁜 옷과 맛있는 것을 사주며, 자신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킹스맨이 썩 안정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인정해주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그런, 바쁜 하루.
어쩌면 행복은 아주 착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권력인 것 같다. 행복은 절대 소소하지 않았다. 그건 아주 특별해야 했으며 많은 걸 요구했다. 안정적이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직장과 엄마와 여동생의 행복. 그리고 「해리 하트」의 존재.
에그시의 행복은 「해리 하트」의 부재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행복이 없다면 에그시는 행복할 수 없었다. 그것을 짓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에그시 언윈은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고 일어설 정도로 냉담하지 못했음으로 행복하지 못했다.
행복의 부재
에그시가 눈에 띄게 말랐다. 록시가 멀린에게 말했지만 멀린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도 이미 말했었고, 에그시는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웃었다. 몸 관리도 신사로서의 도리라고 말하려다 그만 입을 꾹 다문 멀린은 다음에는 좀 더 쉬운 임무를 주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으나 지금 킹스맨 내부 사정상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아서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때문에 멀린 역시 다른 사람의 배는 일을 해야 했고, 에그시를 따로 신경 써주기엔 너무 바빴다.
에그시의 무너짐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V데이 이후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각국의 고위 간부는 물론이고 유명인사까지 모두 사라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이들도 자신의 나라를 수습하기 바빴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사상자는 다수였다. 발렌타인의 수하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는 그에게 위성을 빌려준 “E"의 존재였는데. 아직 그의 소재조차 잡지 못했으니 멀린은 없는 머리가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최악인 하루였다. 아침부터 JB가 흙 묻은 발로 카펫을 더럽히지 않나. 대충 만든 스크램블에서 달걀 껍데기가 씹히질 않나. 멀린이 준 파일에 손이 베이질 않나. 에그시는 손가락 끝을 쪽쪽 빨면서 울상을 지었다. 분명 해리가 본다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손수건을 건네줬을 것이다. 퍽. 그러고 보니 제 주머니에 아직 해리가 준 손수건이 들어 있었다. 에그시는 그것을 들어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그제야 시야가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흥건하게 젖은 손수건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에그시는 두절됐던 통신이 희미하게 다시 들려오는 것을 알았다.
발목을 다쳤다. 심한 부상이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에그시는 제가 체조를 했을 때 얼마만큼 다쳤더라, 하고 어렴풋이 생각 했지만 아마 그때가 더 아팠을 것이다. 그때는 일어서지도 못했으니까. 아무튼, 에그시는 이를 악물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E”에 대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에그시는 이 잡듯 그들을 털어냈다. 멀린이 복수심으로 임무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사실 복수라기엔 조금 달랐다. 복수는 이미 발렌타인을 죽임으로써 끝났으니까.
부재(不在)
absence 1.그곳에 없다. 2.에그시 언윈. 3.그리고 해리 하트.
천천히 눈을 떴다. 에그시는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제 위로 커다란 돌무더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귓가에서 멀린이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가 다치고 어디가 무사한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무사하다니, 건물에 깔렸는데 어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이상 무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눈앞이 다시 흐릿해졌다. 에그시는 마지막으로 본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얼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제일 중요한 게 기억나지 않다니. 미치겠군. 바스스 건물들이 다시 한 번 커다란 소리를 냈다. 두 번째 붕괴가 시작되려고 하는 것이다. 에그시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했다.
눈가에 손수건이 닿았다. 어라, 에그시는 눈 위를 덮고 있는 손수건을 치우고 싶었지만 팔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하고 묻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향이었다. 절대 그럴 일 없다고,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서 나타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에그시는 눈물이 흐르는 걸 참지 못한 채 꽉 막힌 목에서 말을 짜냈다.
“해리.”
“그래.”
“해리. 해리, 진짜 해리에요?”
“그렇단다.”
“얼굴 보여줘요.”
그제야 손수건을 치웠지만 제 눈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고개를 돌려 보아도 눈물은 계속 차올랐다.
“저 데려가려고 왔어요?”
“무서운 소릴 하는구나.”
“fuck…농담 아니에요.”
에그시가 인상을 쓰는 것이 퍽 웃겼는지 그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음이 나와요?! 에그시가 소리쳤지만 금세 고개를 돌렸다.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는 쉬. 하고 에그시를 달랬지만 도저히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넌 아직 어려.”
“fuck! 죽는데 순서가 어딨어요!”
“게다가 죽기에는 너무 아름답지.”
존나, 씨발. 만약 움직일 수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의 입을 막았을 것이다.
“에그시.”
“아, 왜요!”
“내가 한 말은 잊으렴.”
해리! 에그시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어쩐지 등을 돌린 것 같았다.
“해리. 가지 마요.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제발, 제발 해리.”
“에그시. 손수건은 버리렴. 새로 사는 게 낫겠구나.”
“당신이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따라갈 거예요.”
“술은 적당히 마시고, 그리고 JB 교육도 다시 시키는 게 좋겠지. 시간만 있다면.”
“내가 못할 줄 알아요!!”
“밥은 꼭 챙겨먹고, 멀린이 걱정이 심해.”
“해리!!”
“그리고”
뚝 끊긴 단어 사이에 에그시는 그의 눈을 봤다. 다정하고, 사랑스럽다는 듯 부드럽게 녹아든 갈색 눈동자를.
“행복해야 한다.”
멀린은 천천히 에그시의 상태를 체크했다. 운이 좋았다. 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 큰 건물이 무너졌는데도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그 속에서 발견된 에그시는 다리가 부러진 것 외에는 크다 할 외상도 없었다. 그대로 통신이 끊기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분명 죽는다고 생각했건만.
며칠 지나지 않아 깨어난 에그시는 평소와 같았다. 말 잘 듣고 시키는 일 잘하고, 조금 어설프지만, 신사의 흉내를 내는 작은 꼬마. 하지만 그것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에그시는 다치기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고, 잘 웃었다. 그러다가 가끔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슬픈 영화도 책도 보지 않았고, 딱히 슬픈 분위기도 아니었다. 록시나 퍼시벌이랑 대화하다가도 울었다. 퍼시벌이 한숨을 쉬며 손수건을 건네주자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에그시가 고맙다며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해리가 준 건?”
그전에도 에그시와 멀린은 해리에 대해 종종 말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멀린은 아무렇지 않게 해리에 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퍼시벌의 얼굴도 굳게 했다.
“해리가 누군데요?”
그 뒤로 멀린에게 붙잡혀 각종 질문과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을 밝혀지자마자 에그시에게 휴가가 내려졌다. 에그시는 모처럼 받은 휴가인데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머리 한구석에 해리라는 이름이 가득 찼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한 이름이었는데도 도저히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같이 놀던 친구였나. 해군에 있을 때 동기의 이름이었나. 아르바이트 할 때 사장님이었나. 몇몇 짚어봤지만 자신과 손수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에그시는 그만 생각을 멈췄다.
정장을 입고 쫓겨나자 갈만한 곳이 없었다. 날씨도 좋은데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엄마와 데이지는 여행을 갔다고 했고, 친구들도 바빴다. 그렇게 거리를 거닐다 에그시는 서점에 들어가 책을 사고, 점심으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백화점에 들러 엄마와 데이지에게 줄 선물을 사고, 그리고.
어라? 에그시는 왜 자신이 넥타이를 고르고 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코너에서 서성이자 옆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선물하시게요?”
아, 또 모르는 기억이다. 에그시는 이곳을 오늘 처음 와봤다. 분명 그랬다. 저도 모르게 백화점을 뛰쳐나온 에그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DVD 대여점에 들려 자주 보던 영화를 골랐다. “전에 본건데. 또 보시게요?” 알바생이 물었을 때 에그시는 네. 하고 대답했다.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누군가와 같이 왔었냐고 물어보기 겁이 났다.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가 에그시를 붙잡았다. 자신보다 훨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길을 물어봤다. 에그시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등을 돌렸다. 그때 남자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에그시.”
“…….”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행복하니?”
그리고 뒤를 돌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에그시는 그제야 이 집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지금까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제 취향과는 아무것도 맞는 게 없는 이 집이 왜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을까. 들고온 물건들을 대충 던져 놓고 침대로 쓰러진 에그시가 베개를 그러쥐었다.
행복했었다. 그건 언제적 이야기였던가. 적어도 요 며칠간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에그시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행복하냐고? 에그시가 되물었다. 자신은 행복한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머릿속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에그시의 행복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직장과 엄마와 여동생의 행복. 그리고 「 ■■■■」의 존재.
에그시의 행복은 「■■■■ 」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부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이며. 다른 것으로 대체 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깨닫는 순간 산산이 부서져 내릴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 ■■■■ 」를 잃어버린 에그시는 전혀 행복할 수 없었다.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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