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전력 주제 <선물>
기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해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것이라서 해리는 에그시가 혹시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하고 혼자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 해리 하트에게 연애라는 건 아주 멀리 있는 것이었다. 킹스맨이 되고 난 후부터 가족이라던가 연인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 해리 하트에게 연인이라니! 그것도 아주 어리고, 젊은 소년이라니. 란슬롯이 살아 있었다면 해리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어린 연인이 기쁨을 참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해리는 고민에 빠졌다. 대체 왜 참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불안해서? 해리는 에그시가 웃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기쁨에 젖어든 곱게 휘어지는 눈꼬리와 붉게 물든 뺨.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는 작은 입술.
제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해리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혹시나 제 선물이 너무 부담스러운 걸까. 지금까지 에그시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에그시가 이것을 거절하거나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면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해리가 돌아왔고, 아서의 자리도 채웠으며 새로운 갤러해드도 생겼다. 하지만 발렌타인이 터트린 사건은 킹스맨 이래 유례없는 인력난을 겪게 했으니 아서 역시 움직이는 건 당연했고, 해리도 그것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투정하는 것은 오히려 에그시 였다. 이제 막 병상에서 일어난 사람을. 하며 투덜거리는 에그시를 보며 해리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투정을 받아줬다.
난장판이 된 무도회에서 에그시는 연신 욕을 내뱉었고, 해리는 묵묵히 총을 쐈다. 갑작스레 터진 총성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갔고, 적과 아군 그리고 일반인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 홀에서 멀린의 목소리만 또렷이 들렸다. [홀 중앙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요. 두 사람 모두 빨리 탈출하세요.] 그게 말이야 쉽지. 에그시는 힐끔 해리를 쳐다봤다. 해리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뭐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멀린이 재촉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뛰기 시작했다. 인파 속에 숨어 뛰쳐나가던 에그시는 갑자기 되돌아가는 해리를 봤다.
“어딜 가요! 미쳤어요?!”
에그시가 붙잡자 그 역시 난감한 얼굴로 에그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요한걸 놓고 와서 말이다.”
“그 중요한 게 목숨보다 중요한 거 아니면 버려요!”
그러자 해리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에그시로서는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에그시의 손을 놓고는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먼저 나가 있으렴 뒤따라 갈 테니.”
아, 젠장. 에그시는 저 말을 이미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랬잖아. 여기 얌전히 있으라고, 내가 올 때까지 있으라고 그러고 오지 않았잖아. 못 올 뻔 했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다 쏟아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해리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뒤돌아 다시 홀 중앙으로 돌아가려는 해리를 쫓아가려던 에그시는 울음소리를 들렸다.
“fuck…”
하늘도 무심하시지. 에그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서 건물을 뛰쳐나오는 것 뿐이었다. 총을 정면으로 맞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건물을 뛰쳐나온 에그시는 안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연이어 들리는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은 건물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해리. 에그시가 중얼거렸다. 해리. 해리, 제발. 그러나 건물이 모두 불길에 휩싸이고 에그시가 그 앞에 주저 앉을 때까지 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깨 위에 두른 담요가 에그시를 짓눌렀다. 안경은 중간에 떨어트려서 멀린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주변을 수습하는 경찰들 사이로 언뜻 시신을 발견했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해리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 에그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지 않았던가. 해리가 죽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무사히는 아니지만 살아 돌아왔을 때 에그시는 언젠가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란 걸 예상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현실은 더욱 비참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에그시에게 기쁨을 참는 버릇이 생긴 건 해리가 돌아왔을 때부터였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서 눈물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해리가 주는 감동은 언제나 에그시의 예상을 뛰어넘었으니까. 그러니까.
“에그시.”
이번에도 예상을 뛰어넘을 거라고.
“걱정을 시켰구나.”
잔뜩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에그시 앞에선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드는 에그시를 보며 웃어 보였다. 잔뜩 굳어 있던 얼굴이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분노로 변하는 것을 보였다. 제 어깨에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알지 못하고 벌떡 일어난 에그시는 욕설을 내뱉으며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젠장, 대체 놓고 온 게 뭐길래 그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요?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죽을 생각이었어요?”
에그시의 폭언을 얌전히 듣고 있던 해리를 보며 분을 삭이지 못한 에그시는 그의 손안에 들린 작은 상자를 눈치채곤 빼앗아 들었다.
“대체 뭐길래 그렇게 애지중지 하는지좀 봐……”
야 겠어요. 하는 말이 쏙 들어갔다. 해리는 조금 멋쩍스런 얼굴을 하고서 에그시를 내려다봤다. 상자 안에 있는 반지를 보고 에그시는 고개를 들어 그것과 해리를 번갈아 봤다. 이건 영락없는 결혼반지였다. 아무리 에그시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저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을 다이아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해리는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괜찮을까. 이번에는 만족할까. 그런 생각을 하던 해리는 난데없는 욕설과 제 품에 던져지는 반지를 보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fucking 해리 하트. 결혼을 할 거면 미리 알려주던가.”
“에그시?”
“헤어지자는 말을 이런 식으로 듣기는 처음이네요.”
오 마이 갓. 해리는 지금 눈앞에 어린 연인을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무엇이 에그시를 짓눌렀나. 무엇이 그리도 에그시의 자존감을 할퀴었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었다. 해리는 상자 안에서 반지를 꺼내어 든 다음 천천히 에그시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떨구고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에그시를 보며 제 가슴도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구나.”
“됐어요.”
그런 의미의 사과가 아니었는데도. 해리는 에그시의 손을 잡았다. 몸집에 비해 작은 손은 제 손에 꼭 들어왔다.
“도저히 널 기쁘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지.”
에그시가 잠이 들었을 때 몰래 재었던 손가락의 크기는 앙증맞았다. 그리고 그 손에 딱 맞는 반지가 끼워졌다.
“이건 네 것이란다.”
“…….”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제 손과 해리를 번갈아보던 에그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축 처진 눈꼬리가 더욱 내려갔다. shit, 이깟 반지 때문에. 에그시가 중얼거렸다. 고작, 반지 때문에 거길 뛰어 들어…작은 입술에서 언뜻 욕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나와 결혼해 주겠니.”
해리 하트는 언제나 에그시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이제 에그시는 제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해리는 오롯이 자신만을 보고 있었다. 발갛게 물들은 뺨이라던가 곱게 접힌 눈가라던가 작게 사랑을 속삭이는 입술은 없었지만 해리는 제 품에 안겨오는 에그시의 얼굴을 알 수 있었다.
“Yes…yes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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