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스맨 전력 <지키다>
퍼시벌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아니다 싶을 정도로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며, 그와 동시에 무감각했다. 아니, 감정소모가 힘들었다. 예전부터 주변에서 냉혈한이라고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에 대하여 화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게 정확한 말이겠지. 그런 것으로 인해 상대와 말다툼을 하고, 인상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더 스트레스였다. 어차피 소문이라는 것들은 제가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질 것이다.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정도로 퍼시벌은 섬세하지도,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킹스맨은 그런 퍼시벌의 성격을 아주 잘 커버해줄 수 있는 직장이었다. 가끔 아서가 짜증나는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갤러해드.”
그렇게 불린 소년은 저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17년만에 새로 뽑은 랜슬롯과 갤러해드는 올드 맨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대화거리였다. 물론 그들은 잘 모이지도, 대화할 일도 없었지만, 가끔 열리는 만찬에선 꼭 그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갤러해드는 특별했다.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로. 아서는 죽었다. 전 갤러해드는 돌아와 그 아서의 자리에 올랐고, 브이데이서 큰 공을 세운 언윈은 멀린의 강력한 추천으로 갤러해드의 자리에 앉았다. 언윈의 공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세계를 구했고, 그들의 가족, 친구 혹은 이웃일 수 있는 사람들까지 구했다. 그 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절차를 어긴 것은 분명했기에 그들은 조금씩 그를 깎아내렸다.
예전부터 갤러해드의 자리는 무거웠다. 전대 갤러해드만 해도 킹스맨 최고의 요원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고, 바로 아서의 자리에 올라갈 정도로 명망 높았다. 그런 그에 비해 언윈은 인생에 빨간 줄 몇 개 끄인 워킹클래스였으니, 아무리 공을 쌓아 올린다고 해도 이미 쓰여 진 과거는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번엔 내 백업을 맡아줬으면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만찬에서 퍼시벌이 입을 열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대상이 갤러해드. 그러니까 언윈 이라는 것은 가웨인이 놀라 헛기침을 할 정도였다. 킹스맨들은 철저히 서로의 임무를 비밀리에 해냈고, 그 중 퍼시벌은 단독임무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굳이 백업을 요청하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힘은 쓰지 않았다.
“나 혼자선 벅찰 것 같아서 말이야.”
랜슬롯에서 부탁하고 싶지만. 퍼시벌은 말을 아꼈다. 그녀는 지금 장기임무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퍼시벌이 싫은가? 하고 묻자 에그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시,싫다뇨 그건 아니고. 아니고? 이미 만찬장은 둘의 대화로 집중 되어있었다. 에그시가 힐끔 해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서가 허락을. 에그시가 말하자 이번엔 시선이 해리에게로 돌아갔다. 해리 역시 조금 놀란 듯 퍼시벌을 바라봤으나 곧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만찬이 끝나고 하나둘 자리를 떠난 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던 에그시가 퍼시벌을 불렀다.
“저…고마워요.”
딱히, 상관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축 처진 어깨라던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바로 앞에 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분명 평소라면 그것마저 귀찮고, 제 일도 아니었으니 무시해버리면 됐을 것을 퍼시벌은 부러 에그시를 감쌌다. 이것으로 조금은 그가 무능력 하다느니, 아서의 능력으로 들어왔다느니 하는 소리를 지우고 싶었다.
“일부러 그런거죠? 멀린이 그러던데 퍼시벌은 단독임무에서 뛰어나다고.”
비단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지만, 퍼시벌은 한걸음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아직 문밖에 해리가 있었다. 그는 분명 에그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킹스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퍼시벌은 자신보다 한 참 아래에 있는 에그시를 위해 고개를 숙이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퍼시벌?”
“내 본명이야.”
서로 필요하지 않는 이상 본명을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이름과 성 하나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자칫 잘못하다간 주변인물이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에그시에게 자신의 본명을 가르쳐준 이유는 단순했다. ‘해리.’ 그 언젠가 자신이 그처럼 다치는 날이 온다면.
“제 이름은요.”
“알고 있어.”
화악 붉어진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조금 마음에 들었지만 그만 그를 놓아주기로 했다. 빨리 보내주지 않으면 언젠가 아서가 저를 저 먼 알래스카로 보내버릴지도 몰랐다.
“갤러해드.”
“네. 퍼시벌.”
서로의 본명을 알고 있다 한들 그들은 여전히 코드네임으로 불렀다. 그것이 약속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랬다. 퍼시벌은 에그시가 입고 있는 정장을 보며 아서가 꽤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서는 그러니까 해리 하트는 섬세한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바보 같았다.
“긴장돼?”
“조금요.”
에그시가 침을 삼키며 대꾸했다. 그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퍼시벌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써 넘긴 머리가 엉망이 되자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퍼시벌. 갤러해드. 임무에 집중하시죠] 멀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두 사람의 등이 바짝 밀착했다. [돌입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평소라면 퍼시벌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했으나, 에그시의 존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응이 느려졌다. 오히려 에그시가 퍼시벌 보다 더 한 일을 해냈으니 돌아가면 아서에게 깨질 것이다. 가뜩이나 에그시의 문제로는 예민한 사람인데. 퍼시벌이 짜증을 토해냈다.
“내가 왼쪽을 맡지.”
“네. 그럼 저는 오른쪽을 맡을게요.”
“무리하지 말고.”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예요? 긴 복도가 이어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길에서 마주친 시선을 떼기 무섭게 총소리가 울렸다. 어느 한쪽은 함정일 게 뻔했다. 그래도 가야 했다. 그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이었으니까. 암호가 걸린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퍼시벌은 옆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지는 것을 들었다. 함정은 에그시 쪽이었다. 멀린의 다급한 음성과 쌕쌕 거리는 숨소리에 퍼시벌의 걸음이 빨라졌다.
“갤러해드, 갤러해드!”
아, 젠장. 퍼시벌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에그시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쉬운 일이었다. 쉬운 일을 자신이 망쳤다. 에그시를 데려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혼자 했어야 했다. 답지 않은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네가 내게 웃어줬을 때부터. 눈물을 보였을 때부터 거리를 뒀어야 했다. 해리를 잃고 방황하는 그를 내버려 뒀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퍼시벌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다. 내비치지 않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달랐다.
[…하…하……퍼시벌…]
에그시의 숨소리가 가늘어졌다. 퍼시벌은 제 손에 땀이 나는 것도 모른 채 멀린에게 위치추적을 부탁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전송된 위치로 달려가자 애써 몸을 일으키는 에그시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도,
“에그시!!!!”
분명 커다란 총성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퍼시벌의 귀에는 에그시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가 마지막에 불렀던 이름까지. 기절한 에그시를 안고 헬기에 올라탄 퍼시벌이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어 던졌다. 이 아이는 자신이 다친다면 분명 병실까지 찾아와 울어 줄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만약 죽는다면 신문 한켠에 실린 제 본명을 보고 울며 무덤가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위에 있는 흙을 모두 적실 때까지 울지도 모른다. 아니 울 것이다. 착한 아이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결코 제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아서와 아이가 가지는 감정을 안다. 그렇게 뻔히 드러내고 다니는데 모르는 게 바보였지.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단 한 가지. 그 하나가 그를 미치게 했다.
“내겐 언윈과 지켜야 할 약속이 없어.”
남들이 모르는 딱 하나.
해리 하트는 평생 에그시 언윈을 받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 잘난 신념 하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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