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릭, 울리는 휴대폰을 그대로 무시한 채 남자의 앞에 선 에그시가 시익 웃었다. 샴페인 안으로 잠수한 휴대폰은 아직도 울리고 있었으나 그 번호의 주인은 이미 모든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소파위에 길게 누워 에그시를 바라봤다. 언뜻 보면 무심해 보이는 눈빛과 달리 손에 쥔 샴페인 잔은 떨리고 있었다. 롱코트를 입은 에그시가 천천히 단추를 풀었다. 남자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샴페인만으로는 축여지지 않는 입술을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맞추고 싶어 하는 듯 했다. 툭 떨어진 코트 아래로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코르셋으로 바짝 조인 허리와 가슴위로 올라온 옷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손끝에 커프스에는 빨간 단추가 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에그시가 허벅지 사이로 손을 넣어 옷을 정리하려 몸을 숙이자 가슴골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꿀꺽, 남자가 침을 삼켰다. 탁, 옷과 피부가 마찰하는 소리마저 외설적으로 들렸다. 또각, 또각. 하이힐이 대리석 위를 걸어 다녔다. 에그시가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 사이에 있는 새하얀 꼬리가 움직였다. 남자의 시선이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선반 옆으로 다가가 샴페인 병을 들고 남자의 앞에 선 에그시가 천천히 남자의 무릎에 앉았다. 남자의 손이 에그시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마냥 하얗기만 한줄 알았던 피부가 손에 착 감겼다. 아, 에그시의 신음이 바로 귀 옆에서 울리자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손이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더듬고 옷 사이를 들쑤셨다. 어느새 채워진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킨 남자가 에그시를 눕히곤 그 위에 올라탔다. 출렁 거리는 침대에 그대로 몸을 맡긴 에그시가 남자의 목에 팔을 감았다. 허벅지 사이로 앞섬이 스치자 남자가 금세 흥분했다. 새빨간 입술이 다가와 제 귀를 깨물고 핥았다.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에그시의 목에 얼굴을 묻고 제 흔적을 남기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자는 낭패라는 얼굴을 한 에그시의 얼굴을 보며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해리! 제정신이에요?”
에그시는 제 위로 쓰러진 남자를 밀치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해리에게 올려 졌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갑작스레 처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제 목표물을 가로챈 해리를 보며 에그시가 뭐라 소리쳤지만 해리의 미간엔 주름만 깊어졌다. 샴페인에 빠진 휴대폰을 구출한 해리가 물었다. “왜 지시를 무시했지?” 해리의 말에 에그시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에그시. 대답해.”
“저는 완벽했어요.”
“이게?”
에그시가 황급히 목을 가렸지만, 해리가 못 봤을 리가 없다. 해리가 커프스를 잡고 당기자 그대로 끌려간 에그시가 해리를 올려다봤다. 첫 잠입 임무였다. 나름의 기대도 각오도 하고 왔었다. 분장을 해야 하는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해리는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에그시는 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런 일인 줄 알고도 있었다. 해리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하지만 일은 일이었고, 해리는 해리였다. 단순히 에그시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가 보고 싶지 않다고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공과 사를 잘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에그시의 말에 해리가 눈을 내리깔았다. 옷 같지도 않은 옷을 입고 있군. 해리의 말에 에그시가 고개를 돌렸다.
“잠자리까지 하지 않아도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어.”
“하지만 잠자리를 가지라고 한건 해리였죠.”
한마디도 지지 않는 에그시를 보며 해리가 안경을 벗었다. 그 말인 즉 멀린의 말은 무시하겠다는 뜻이었고, 에그시도 이어피스를 샴페인에 빠트렸다.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꺼지기가 무섭게 입을 맞춰오는 해리를 보며 에그시가 몸을 꺾었다. 허리를 감은 손이 아래로 내려와 엉덩이를 꽉 쥐었다. 아, 에그시가 입을 벌리자 침범한 혀가 입안을 헤집어 놨다. 뜨거운 숨과 함께 침대위로 넘어간 에그시가 입을 벌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새로 보여진 분홍색 혀가 해리를 못 견디게 했다. 자켓을 벗고 보타이를 끌어내리는 해리를 보며 에그시가 다리를 벌렸다. 팽팽하게 긴장한 허벅지 사이에 입을 맞추자 신음이 샜다.
“못 말리겠군.”
“…하……그래서 이제 어쩌실 건데요?”
위스키를 삼킨 것 마냥 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말이지, 에그시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질투가 많은 남자였고, 소유물에 관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것이 물건이건, 동물이건 혹은 사람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