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머저리. 바보. 축구. 에그시는 자신의 코끝에 걸쳐진 안경을 짜증스럽게 밀어 올리며 욕을 삼켰다. 옆에서 찰리가 어울리지 않게 웬 안경이냐고 물었지만 에그시는 손등으로 브이를 날려주며 그를 무시했다. 그렇다. 에그시는 눈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시력이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리가 없었다. 그가 안경을 쓴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룸메이트인 해리 하트 때문이었는데, 에그시는 아직도 어젯밤에 자신에게 망언을 한 그의 얼굴이 지독히 무표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라리 조금 부끄러워했다면 귀엽기라도 하지. 어느새 강의실에 들어와 자신의 옆에 앉은 해리가 인사했고, 찰리가 대꾸했다. 그러고도 한참 자리에 앉지 않고 있는 해리를 보며 에그시가 고개를 홱 돌렸다.
“너네 싸웠냐?” 찰리가 눈치 없게 물어왔다. 시발, 에그시가 입으로 그를 욕했다.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인 찰리가 해리에게 얼른 앉으라고 했고 에그시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안녕. 에그시. 해리가 어제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해와도 말이다.
“네 눈 진짜 야하다.”
책에서 눈을 땐 해리가 말했다. 에그시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해리를 바라봤다.
“핥고 싶어.”
음. 에그시는 지금 해리의 취향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래도 애인이라고, 애써 감싸는 꼴이 우스웠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해리가 에그시를 끌어안았다. 왜 그래. 내일 시험이라며, 에그시가 억지로 그를 밀어내려고 어깨를 세게 붙잡자 해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그대로 눈가에 입을 맞춘 해리가 갈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예뻐. 박제하고 싶을 정도로.”
그 뒤에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에그시는 해리가 미안하다고 안 그럴 테니까 제발 나오라고 할 때까지 틀어박혀 있었다.
물론, 해리가 정말 자신의 눈을 뽑아서 박제하……………려나? 에그시는 해리의 집에 있던 나비박제와 미스터 피클스를 떠올렸다. 나비 박제야 수집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가 어릴때부터 키웠던 개를 박제한 것을 보고는 조금 웩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뭐 이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었다.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해리는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이 아니었다면 에그시는 이렇게 유난스럽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박제 안할거지?”
“응.”
“내가 죽어도, 시체 박제는 안 돼.”
“………응.”
“뭐야. 침묵 뭔데. 야 해리 하트.”
“………시체는………”
“……….”
“안할게.”
해리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교수가 들어와 출석을 불렀고, 둘은 금세 수업에 집중했다. 강의실에 교수의 낭랑한 목소리와 필기소리. 책 넘어가는 소리로 넘쳐날 때, 에그시는 제 책 위로 툭 떨어지는 종이 쪼가리에 해리를 쏘아봤다. 아무것도 모른 척 앞을 보고 있는 해리를 보며 에그시가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안경 잘 어울리네]
동글동글 한 글씨가 정말 귀여웠지만 에그시는 무시한 채 계속 수업에 집중했다. 다음 쪽지가 오기 전까지.
[유리관 안에 박제해논 것 같아]
퍽킹 해리 하트!!!! 에그시가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며 해리의 옆에서 바짝 물러났다. 그덕에 옆에 앉아 있던 찰리가 짜증을 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친 해리 하트씨. 이러다가 정말 박제 당할지도 몰라. 해리가 자신을 돌아보며 시익 웃었다. 세 번째 쪽지가 툭 떨어졌다. 이번엔 에그시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었다.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주먹을 보며 해리가 자신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