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는 에그시가 꼭 자신보다 먼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살아가는 여생에 별 커다란 사건이 없는 이상 해리는 에그시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이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에그시의 모습은 때때로 흐릿한 환영처럼 혹은 조각난 유리거울처럼 잡히지 않았다.
에그시에게는 약이 아주 많았다. 이건 감기약. 이건 두통약. 보통의 집에 있어야 할 약들이었지만 해리는 에그시의 말을 믿지 않았다. 종종 에그시는 잠에 들지 못해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약을 한웅큼 입에 털어 넣곤 다시 침대에 올라와 잠을 청했다. 그러면 아주 죽은 듯 자곤 했다. 해리는 그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는 에그시의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몸을 한참이나 가만히 보고 있거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곤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에그시가 원래 살던 집 바닥에는 무언가로 긁힌 자국이 많았다. 하루는 짐을 가지러 왔던 날 해리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자 에그시가 씁쓸하게 말했다. “엄마가 가끔.” 자살을 하려고 했어요. 숨겨진 말을 알아차린 해리가 괜찮다는 듯 에그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에그시의 방에도 똑같은 자국이 있었다. 에그시는 누군가 목을 그러쥐거나 만지는 것에 극도로 예민했다. 급소니까요. 해리가 물었을 때 에그시는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톡 쏘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해리에게는 사랑스러워 보였다.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것도 모르고, 해리는 에그시를 끌어안았다.
아쿠아리움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정보를 입수됐다. 하루동안 텅 빈 아쿠아리움엔 요원들이 폭탄을 찾는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그 곳을 지휘하러 해리가 있었다. “그냥 경찰한테 시키면 될텐데.” 에그시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별 말이 없었다. 이미 확인이 끝난 구역에 들어서자 물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에그시가 어린아이 처럼 유리벽에 붙었다. 얼굴에 파란빛이 돌아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해리가 우뚝 멈춰섰다. 에그시가 유리벽을 기대곤 해리를 바라봤다.
“여기서 익사해 죽을 거 같아요.”
“…….”
“숨 막혀요. 해리.”
에그시는 가끔, 아니 자주 해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약을 먹고, 목을 매달고 그래도 죽지 않는 몸뚱이를 저주하고, 결국엔 자신을 꿋꿋이 살려내는 해리를 원망했다.
에그시의 목을 감싸 쥐던 손을 내려놓은 해리가 에그시를 끌어안았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은 하릴없이 흔들렸다. 해리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