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자국 남았잖아. 에그시는 손목에 번지는 새빨간 자국을 보며 인상을 썼다. 가리면 되잖니. 그렇게 말하는 장본인은 이미 말끔히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에그시는 여전히 벗은 상태였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준비하렴.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피해주는 그를 보며 에그시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못 이기겠단 말이야.
해리 하트는 탐미주의자다. 물론 그것을 위해 살인이나 법을 어기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간혹 자신과의 잠자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치를 떨게 했다. 에그시는 첫 섹스에서 대번 그가 가지고 있는 변태적인 성향을 알아차렸다. 좋게 말하면 탐미주의, 혹은 사디즘. 나쁘게 말하면 변태. 해리 하트는 자신을 툭 치면 깨지는 유리조각처럼 다루다가도 어쩔 때는 굴러다니는 걸레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기도 했다. 제일 최악이었던 건. 그거였지. 엉덩이에 딜도를 쑤셔 박고 회의를 했을 때. 에그시는 그래도, 임무에 내보내지 않은 게 어딘가 하고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해리는 자신을 아꼈기에, 정말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다. 딱 쪽팔려 죽을 정도만 했다. 그 뒤로 모두가 나간 만찬장에서 천박하다며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맞은 것은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몰라야 했다.
이렇게 티내는 일은 드물었는데. 에그시는 손목에 남은 빨간 자국을 최대한 숨기며 차에 몸을 기댔다. 임무를 끝내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에그시는 해리가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통에 한동안 숨을 삼켜야 했다. 그대로 침대에 던져진 에그시가 왜 그러냐고 소리쳤지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통에 그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기분이 나빴나 보다. 하고 포기했을 뿐이다. 드물었던 것은, 손을 묶고, 목을 조르려고 했던 것. 에그시는 순간 참지 못하고 해리의 배를 걷어찼다.
“……이제는 나도 박제하려구요?”
충동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해리가 멈췄다. 넥타이로 칭칭 묶인 손은 쓸 수도 없었고, 그가 진심으로 날 죽이려고 한다면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나 에그시는 확신이 있었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해리 하트는 자신을 죽이지 못할 것이다. 죽은 시체를 가지고 한참을 울어도 박제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내 시체를 조각내 자신의 위장으로 삼키는 것을 택할 것이다. 해리 하트의 미(美)란 그런 것이다. 해리는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손을 묶은 넥타이가 자신이 정말 아끼는 것이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거 해리가 처음 사준 건데. 그리고 그 아끼는 물건이 금방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의 선물이라는 것에 웃음이 났다.
뭐예요? 해리가 내민 작은 상자를 보고 에그시는 미심쩍은 얼굴로 상자를 한번, 해리를 한번 번갈아 봤다. 그러지 말고 열어보지 그러니. 해리가 그렇게 말하는데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은 까닭은 전에 한번 선물이라고 준비한 상자에 요도 카테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루증을 고쳐준답시고, 삼일 밤낮을 괴롭힘당한 에그시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에그시를 보다 못한 해리가 한숨을 한번 내쉬곤 상자를 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돌기형 콘돔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었던 에그시는 의외로 평범한 넥타이핀에 헉 소리를 냈다. 해리는 상자를 내려두고 성큼 에그시에게 다가갔다. 머리 바로 위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에그시가 고개를 숙였다. 능숙하게 자켓을 벗기고는 와이셔츠 깃을 세운 후 엉망이던 -에그시도 처음 알았다.- 넥타이를 바로 매준 그가 직접 핀까지 꽂아줬다.
“해리…선물 고마워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오해만 했네요.”
“무슨 오해?”
“상자가 열면 울트라 돌기형 콘돔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오해?”
“오, 에그시.”
에그시가 기대에 찬 눈으로 해리를 올려다봤다. 그 누구라도 어리고 예쁜 애인이 저런 눈으로 본다면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해와 이해는 한 끗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