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Rain 01
달린다. 꿈속에서 소년은 계속해서 달릴수 밖에 없었다. 뒤쫓아 오는 무언가를 피해서 어두운 거리를 달리던 소년은 무언가에 부딪치고는 뒤로 넘어졌다. 소년이 그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는 소년을 일으켜세웠다. 어두운 곳에서도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서 소년은 이가 자신의 친구인 라이라고 깨달았다. 그 소년-한신우는 라이의 손을 다급히 잡고는 왜 여기있냐는 둥, 여긴 어디냐는둥, 꿈이 아니냐는둥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는 신우의 말을 거의 들은것 같지 않았다.
"신우."
"응?"
"일어나라."
자신의 어깨를 잡고서 명령하듯 말하는 라이를 보고서 신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꿈인거야?
"깨어나라."
********
신우가 눈을 뜬 곳은 이사장실 소파위였다. 왠만한 침대보다 푹신해서 자신이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겠지만 자신은 분명 수업중이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이었다.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잔다고 수업을 빼먹다니 진짜 맛이가도 단단히 갔다 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휘청. 순간 멀어지는 정신을 바로잡은 신우는 다시 소파위로 주저 앉았다. 손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마치 뱀파이어의 모습과 흡사했다. 어라? 몸에 이상을 느낀 신우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휘휘저으며 생각에 빠졌다. 무슨일이 있었지?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일도 없이 이사장실에 올리가 없었는데,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린 신우는 프랑켄을 발견하고서 반갑다는듯 웃었지만 프랑켄은 그러지 못했다. 과장하자면 저번 살인사건때보다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신우군. 무언가 기억나는게 있습니까?"
"네?...아뇨. 근데 제가 왜 여기에..?"
"벌받던 도중에 쓰러졌습니다. 조퇴증 줄테니 오늘은 집에 가도록 해요."
윽, 이 무슨 쪽팔리는 일이냐. 벌받는다 함은 분명 지각에 의해서 운동장 몇바퀴도는 것이었을 텐데. 평소와 다를것 없었을 텐데. 늦게 일어나고 아침은 늘 그래왔듯 재끼고, 전속력으로 달려왔는데 하필 담임이 있었을 뿐이고, 지각생은 나혼자고, 더욱더 화난 담임이 운동장 돌라고 시켰을 뿐인데,
조퇴증은 오바다 싶었지만 모처럼 이사장님의 권한으로 학교쉴수 있는거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고맙게 잘가려고 하는데 다시한번 프랑켄이 붙잡았다.
"혼자서 다니지 마세요. 아니 밖에 돌아다니지 마세요."
별 걱정을 다하시네. 신우는 알았다며 대답하고는 이사장실을 빠져나갔다. 신우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프랑켄은 안경을 벗고선 자리에 앉았다. 분명, 무슨일이 있는 것이다. 약해진 체력, 하얗게 질린 낯빛. 프랑켄은 M-21을 불러냈다.
"무슨일이지."
"오늘 하루 부탁하지."
"……."
"신우학생의 보디가드로…."
프랑켄의 말에 M-21은 피식 웃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군,
**********
근처에 놀러갈까. PC방을 갈까. 고민하던 신우는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오늘 컨디션이 안좋은것도 있고, 이사장님이 그렇게 말한거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근데 이봄에 찌는듯한 더위는 날씨가 미친걸까. 아님 내가 미친걸까. 주변사람들 모두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걸까. 결국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신우는 횡단보도 옆에 자판기를 발견했다. 아싸. 럭키. 하며 갔는데 생각보다 마시고 싶은게 없었다.
미칠듯한 갈증은 그저 액체만을 갈구하는게 아니었다. 결국 동전을 넣고 고민하던 신우는 새빨갛게 보이는 토마토 주스를 뽑아냈다. 과일주스 같은거 뽑아먹는건 돈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빨간액체가 너무나 맛있어 보였다.
"으엑…"
맛있긴 무슨 한모금 마시고는 나머지는 마시지 못하겠는지 옆에 있던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켜버렸다. 에이, 돈낭비했어. 애꿎은 자판기만 툭툭 치던 신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어?"
한순간 이었다. 눈앞이 파란트럭으로 가득차고 옆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쿵하고 벽에 부딪쳤다. 분명 죽을꺼라고, 이번에야 말로 죽는다고 생각했다. 벽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손으로 눈앞으로 막고서 눈을 감아버렸다. 분명 정신없을 꺼라고, 그대로 의식을 잃을꺼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은 생각보다 멀쩡하고, 몸이 아프지도 않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발짝 일찍 쾅 소리가 터졌다.
누군가 옆에서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살짝 눈을뜬 신우는 믿을수 없다는듯 주변을 살폈다. 분명 뒤로 밀린건 확실하다 자판기가 사정없이 부서져서 음료들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한건 눈앞에 트럭이 한손으로 막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막은 사람은
"라이?"
"괜찮은가?"
"너야말로! 손은 괜찮아? 다친덴 없어?"
트럭에 손을 떼자 선명하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신우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라이의 안부만 살폈다.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라이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곧 주변에서 경찰차소리와 앰뷸런스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렇다. 어느 사람이 봐도 신우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고, 라이는 그것을 막았다.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신우는 자신의 안전은 무시하고선 라이부터 살폈다.
"신우. 너야말로 괜찮은가?"
당연하지! 신우가 대답하려는 찰나 트럭이 옮겨지면서 눈이 부셔왔다.
"괜찮아?"
"아저씨!"
한발짝 늦게 도착한 M-21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만약 신우혼자였으면…...
주변에서 더욱더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트럭을 손으로 치우는 남자와 그 트럭에 치였는데도 살아돌아온 두 남자 때문이었다. 라이와 신우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M-21은 꽤나 골치아픈 상황이란걸 짐작했다.
라이는 신우를 일으킨 후에 M-21을 스쳐지나갔다. '좀 더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늦고싶어서 늦은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신우앞에서 그럴순 없었고, 나중에 프랑켄이 자신의 주인에게 소리쳤다는 사실을 알게될게 더더욱 두려웠다.
"근데, 아저씬 여기 왜?"
"…근처에 일이 있어서."
대충 둘러댄 M-21은 귀찮으니 자리를 피하자며 신우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물론 이미 집가는 길은 익혀두고 있었고, 질질 끌려가다 싶이 따라가는 신우는 매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이렇게 힘이 세었나? 트럭을 옮길 정도로? 하지만 곧바로 의문은 라이에게로 넘어갔다. 곤란해 할까봐 모른척 했는데 역시 이상하다. 라이가 약하게 생겼다는게 아니다.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던 트럭을 맨손 그것도 한손으로 막을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지? 그리고, 분명 라이는 학교에 있었을 텐데.
"야"
"……."
"한신우?"
"네?"
"다 왔다."
무엇보다 내가 이 아저씨한테 우리집 간다는 소리를 한적이 있었나? 우리집을 가르쳐 줬었나? 밀려오는 기억과 알수 없는 상황에 신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안그래도 모범생은 아닌데, 간만에 머리가 복잡해지니 터질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 손이 너무 차갑다. 신우야? 하면서 이마를 만지는데 열이 확 날아가 버릴것 같았다.
Let It Rain 02
다음날 소년은 또 무언가에 쫓기듯 깨어났다. 저번보다 훨씬 강열하고 생생한꿈. 동물인지 사람인지 형체가 알수없는 생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소년은 너무나 큰 갈증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때에는 입가와 손에 피를 묻히고 있었고, 무언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인간이라기엔 너무나 차가운 기를 가지고 있었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도망칠수 밖에 없었다. 꿈의 끝은 항상 똑같았다.
항상 자신의 친구인 라이가 그 끝에 있었다. 묘하게도 라이가 말을 하면 깨어나는 것이었다.
"따라와라."
라이가 하는 말은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가득차있었고, 난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것이 이 꿈에서 이 악몽에서 깨어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
그날 역시 평범하게 흘러갔다. 왠일인지 지각을 해도 벌을 주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누워있어도 별 지적이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어제일때문이라. 친구들 역시 걱정했는지 안부부터 물었지만 평소와 다를바 없는 소년의 행동을 보고서 역시 한신우야 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창가에 자리한 라이의 자리는 햇빛이 잘들어오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꿈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서 라이가 혹시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던 것이 한순간에 무산됬다. 소년이 알고 있는 뱀파이어란 햇빛을 싫어한다.
그리고 매운음식을 싫어한다. 라면에 김치까지 먹어 버리는 라이의 평범한 입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
"……."
기척을 느꼈는지 라이가 신우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멍하니 라이의 뒷모습만 감상하던 신우는 갑작스레 맞춰오는 시선에 어찌할바를 몰라 그저 눈을 똑바로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라이의 눈은 꼭 피같이 붉었다. 그것에 대하여 한번도 의심한적 없고, 의문을 가져본적도 없었다. 물론 레지스와 세이라도 같았지만 라이는 뭔가 더 특별했다. 그 눈은 마치 꽤뚫어 버릴듯한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신우야! 라이! 뭐해! 매점가자!"
마침 점심시간 종이 울렸고, 그동안 우리는 꽤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다. 묻고 싶은게 듣고 싶은게 너무도, 너무도 많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묻고 싶은지 무엇이 궁금한지 알지 못했다. 신우의 마른 눈이 두어번 깜빡 거리고 나서야 라이와의 시선이 엇갈렸다.
라이가 일어서 익한이에게 갈때까지 신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스치듯 지나가는 그 순간은 불과 몇초였으나, 신우에겐 몇분같이 느껴졌다. 결국 참지 못한 신우가 라이의 옷깃을 붙잡았으나 급히 손을 떼어냈다.
"…신우?"
"아냐, 아무것도"
말하고 싶다. 듣고 싶다. 무슨표정일지 궁금하다. 입안이 바싹 마른듯 신우는 침을 삼켰다. 갈증이 났다.
"가자. "
그것이 무엇을 갈구 하는건지도 모르고 신우는 라이를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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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Rain 03
Let it Rain
w. 아라타
그래, 그날은 비가 내렸고, 네가 있었고, 나도 있었다. 모든 비들이 마치 너를 피해가듯 너는 머리카락 한올도 젖지 않았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었던 나는 그저 멍하니 너를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온몸에 멍이 든듯 아프고, 괴로웠는데 죽을수가 없어서 더 괴로웠다.
그래, 난 알고 있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비가 내렸다. 갑작스런 비인줄 알았는데 모두 우산을 챙겨왔길래 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더불어 오늘은 익한이와 같이 가지 못한다. 타오형과의 개인수업이라나 뭐라나 엎친데 덮친격으로 비는 내일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모든 학생이 하교를 하고 나서도 신우는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 생각보다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었다.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너무 힘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이나 몸이 약해졌다는걸 느꼈다. 겨우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 뿐인데도 힘이 빠지고 어깨가 축 처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 자신의 주변으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신우는 그 사실을 인지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늘어진 앞머리를 뒤로 하며 고개를 들었을땐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라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우산은 없었다. 신우는 꽤나 오랫동안 그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베시시 웃었다.
"언제왔어"
"신우"
"난 가끔 네가 참 신기해, 마법사 같다니까"
"감기걸려"
"괜찮아."
괜찮아 라이, 그 빗속에서 라이는 한참이나 신우를 붙잡고 서있었다.
************
꿈에 네가 나와.
그 말을 듣는 순간 라이의 표정이 굳었다. 원래 변화 없는 얼굴 이었지만 눈에 띄게 움찔 한게 티가 났다. 하지만 신우는 모르는듯 수건에 얼굴을 묻고는 이 향은 분명 이사장님 취향일 거라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나오는데…"
작게 늘어뜨린 끝부분이 살짝 걱정스럽게 들렸다. 그러자 신우는 황급히 손을 내저의며 그에게 소리쳤다.
"이,이상하게 나오는게 아니라!"
그러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변명할 거리를 찾는게 분명했다. 신우는 속으로 자신을 원망했다. 바보 같이도 왜 오해할 만한 말을 해서 자신은 이 어색한 상황을 만드는가.
"…알람…"
"……."
"알람이야, 네가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막 그런꿈"
"……."
"진짠데. 못믿어?"
신우가 살짝 눈을 내리깔고 묻자 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라이가 농담할 성격이 아니라는것을 알기에 신우는 살풋 웃으며 라이옆으로 다가가 누웠다. 더블 사이즈의 침대는 다 큰 고등학생 둘이 누워도 텅텅 남았다.
약간의 민망함 때문인지 멀찍이 떨어져 누운 신우가 아직 앉아 있는 라이를 올려다 보았다.
"오늘은 안꾸겠지?"
"……."
"네가 옆에 있으니까, 그런꿈 안꾸겠지…"
그런 신우위로 라이의 손이 드리워졌다. 눈을 살짝 감기는 손동작에 신우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라이…? 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얼굴위로 올려진 손이 약간 떨리는것 같았다.
"…라이"
"신우"
"……."
오늘만큼은, 그저 단 하루. 오늘만큼은 편하게 잠들고 싶다고, 편하게 재워주고 싶다고. 소년은 조용히 눈을 감았고, 손을 땐 그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