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님 리퀘, 단어 파레트 15번 -춘곤증/4번째 창가자리/너랑 나랑 딱 봐도 다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안하는데
하이큐로 받았어요!
츠키시마 케이는 눈앞에 까만 등을 멍하니 쳐다봤다. 언제부턴가 고정된 자리에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저 앞에선 교사가 노려보고 있었고, 바로 눈앞에선 카게야마 토비오가 졸고 있었다. 아마 배구부라는 말에 크게 혼내지 못하는것 같았다. 체육특기생의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츠키시마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보더니 창밖을 내다봤다. 운동장 주변에 벚나무가 만발하여 바람에 흩날렸다. 갑자기 짜증이 치솟아 앞에 의자를 살짝 발로 찼다.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에 이번엔 발끝으로 의자 다리를 밀었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아이들 웃는 소리가 교실에 가득 울려퍼졌다.
“…야”
원망스런 목소리, 츠키시마는 그제야 슬쩍 웃으며 왜? 하고 되물었다.
보통 운동부 애들은 같은 반에 넣지 않았다. 학급 분위기 때문이었던가, 그런데 그와 같은반이 된 건 아주 큰 실수였을 것이다. 전산을 잘못 돌렸다던가, 어찌됬든 간에 한번 같은 반이 된거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덕분에 아주 귀찮은 일이 늘어났지만 츠키시마는 최대한 그것에 맞춰주도록 노력했다. 정말 귀찮았지만, 공부도 도와줬다. 배구부 일에 지장이 생길테니까. 매우 짜증 났지만, 밥도 같이 먹었다. 보통은 야마구치가 찾아오거나 혼자 먹거나 했는데 성화에 못 이겨 같이 옥상이나 벤치에서 밥을 먹었다.
아주 가끔 카게야마가 어색하게 야, 츠키시마 하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는 귀가 너무 간지러워서 괜히 못 들은 척 하다가, 야 안경 하고 부르면 고개를 돌리곤 했다. 새빨간 얼굴이 자기도 창피했는지 그 후로는 츠키시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츠키시마 케이에게 카게야마 토비오는 딱 거기까지였다. 한없이 무관심해질 순 있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그것은 둘의 관계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츠키시마가 그렇게 정했다.
바람이 아주 세게 불던 날 운동장의 모래들이 눈에 들어가 눈물이 뚝뚝 흐르던 그 날 삼 학년들은 졸업을 했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지만 노력한다면 계속 연락할 수도 있지만 츠키시마에겐 그럴 생각이 없었다. 동기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기대한 후에 상실감을 안다. 그래서 주는 쪽보단 받는 쪽이 되고 싶었다. 자신이 먼저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체육관의 발소리보다 더 큰 심장소리가 단순히 숨이 차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살짝 닿은 손이 간지러운 건 타인이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 감정을 깨닫는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삼 학년 모두가 떠나던 그 날 울음을 터트린 너를 보며 그리고 그것을 달래는 것이 결코 내가 될 수 없다는걸 알아차렸을 때 츠키시마는 차라리 저 삼 학년이 되어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것은 몹시 추운 겨울날 결코 전할 수 없는 감정이 되어 버렸다.
결국, 참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담임은 카게야마에게 혼을 내며 화장실 청소를 시켰고, 같이 끝내고 오라는 주장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결국 같이 청소했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낯선 상황에 조금 어색했는지 돌아가는 길에 한마디도 없던 카게야마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탓에 츠키시마는 혀를 차며 왜, 하고 물었다.
“그 도와줘서 고맙다고”
“…주장이 시켜서 한 것 뿐이야”
카게야마를 앞질러 가려던 것을 붙잡혔다. 츠키시마는 저도 모르게 우뚝 섰다. 단단한 손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우,우린 친구잖아?”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던 카게야마가 손을 내밀었다. 츠키시마는 그것을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안경을 다시 올려 쓰곤 손을 쳐냈다. 그의 섬세한 손가락이 손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아 간지러웠지만 상관없었다. 츠키시마는 최대한 화를 삭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쳐낸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여름도 아닌데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츠키시마는 슬쩍 한발 물러났다. 금방 전 웃었던 건 거짓말인 것처럼 둘 사이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카게야마였다. 조금은 화나고, 분한 목소리로, 츠키시마를 쏘아보았다.
“그럼 넌 나랑 뭐하고 싶은데? 졸업할 때까지 이대로 있을거야?”
어이, 왕님. 츠키시마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할 말 없냐?”
할 말이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츠키시마 케이는 그와 처음 손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어떻게 했더라, 잡힌 손에 열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그대로였다. 이 열기는 떨쳐낸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확실치도 않은 이 말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했다.
“나는…너랑 조금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은 우리가 적응도 하기도 전에 바뀌어버렸다. 앞으로 1년 8개월 좋든 싫든 같이 있어야 했다. 츠키시마는 이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벚꽃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