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이치 +모브이치
- 도자기님 커미션
- 약간의 수위
- 이/이/체, 인/간/은 서/로/에/게 신을 바친다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아선 안 되었다.
마츠노 이치마츠가 피를 섞은 형제인 마츠노 카라마츠를 사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다정했으니까. 착해빠졌으니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가 어쩜 이렇게 다를까. 처음엔 혐오했던 적도 있었다. 얼마 가지 못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혐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쉽지만, 우습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이치마츠의 진짜 속내를 끝끝내 알지 못했다. 못할 것이다. 몰라야 했다. ‘무리야. 진즉에 약빨 떨어졌으니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썩 나쁘지 않은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이가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나, 친구와 함께 쓰레기가 쌓여있는 골목길에 앉아 있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과는 꼭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나이도 불분명한 남자의 성기를 빨아주며 탁한 액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왔을 때 이치마츠는 그것이 마치 자기 거라도 되는 것마냥 쪽쪽 빨고 삼켰다. 남자는 잘했다며 안 그래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잘했긴, 쓰레기. 죽어버려. 그건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이치마츠는 그 물음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치마츠?”
내리지, 못했다. 애초에 정해져 있던 답이 아닌가. 남자가 준 돈을 황급히 주머니에 구겨 넣은 이치마츠가 입가를 닦았다. 대꾸조차 하기 싫어 후드를 푹 눌러쓰고 골목길 끝으로 사라지려는 것을 카라마츠가 붙잡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여전히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놔…”
“아까 어떤 남자가 나가던데. 혹시…”
“이거 놓으라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팔을 쳐냈다. 평소와 같은 반응이었으나 어딘가 찝찝했다. 이치마츠는 그대로 아무 말도 없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지나쳤다. 차마 눈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혹시 뭐, 혹시 나보고 저 남자의 것을 빨아주기라도 했냐고? 돈이라도 받았냐고? 지나친 추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더욱 생각나기 마련이었다.
언제였더라. 자신이 마츠노 카라마츠를 좋아하게 된 날은. 달콤한 꽃향기가 나는 봄이었던가,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이었던가, 단풍이 나부끼는 쓸쓸한 가을이었던가, 추위 때문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자야 했던 겨울이었던가. 어떤 날이든 자신이 그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마음은 반드시 찾아왔을 것이다. 그 시기가 조금, 늦었을 뿐이었다. 차라리 우리가 사이가 좋았던 시절이었다면, 만약 아주 어릴 때였다면 다정하고 강한 형이라는 마음에 동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동경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는 지났지. 언젠가 들었던 오소마츠 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왱왱 울렸다. 여름날 제 짝을 찾아 맴맴 울어 재끼는 매미들 마냥.
사랑과 동경. 사랑과, 동경. 대체 사랑은 뭐고, 동경은 뭔데? 자신이 카라마츠를 좋아하는 게 정말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네 성기를 빨고, 네 정을 마시고 싶어. 그리고 네가 애욕에 젖은 표정을 하고 나를 내려다보는 것을 보고 황홀함에 푹 빠지고 싶었다. 이게 사랑인지 단순한 성욕인지는 모른다. 만약 사랑이라면 지금 자신에게 성기를 빨게 하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남자들도 저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건 절대 사랑이 아니었다. 제 얼굴에 정과 돈을 뿌리는 남자를 보며 이치마츠는 참 악취미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보다야 아니었지만. 남자는 다음에 또 보자며 이치마츠를 지나쳐 갔다. 또 보긴 뭘 봐? 입에 싸라고 했건만. 혹시나 해서 들고 있던 휴지로 대충 얼굴을 닦은 이치마츠의 눈앞에 별안간 남자의 몸뚱이가 날아왔다. 정확히는 저를 지나쳐 골목 구석에 처박힌 것이다.
아,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눈을 마주 보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치마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신을 구해줄 고양이는 없었다. 하늘은 더럽게 맑았고, 머릿속은 깨끗하게 비워진 쓰레기통마냥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발소리는 사자가 포효라도 하는 것처럼 우렁찼다. 남자의 멱살을 잡아 올린 카라마츠가 주먹을 들어 올렸을 때 이치마츠가 말했다.
“깽 값 물어줄 자신 있으면 때려.”
우뚝. 허공에서 멈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집어 던질 듯 남자의 멱살을 놓은 카라마츠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치,마츠.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물에 가득 잠긴 듯 먹먹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부름에 대답하는 대신 그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남자에게 속삭였다.
“아저씨 맞고 싶지 않으면 어서 꺼져.”
남자는 짐짓 분한 듯 무어라 소리를 쳤지만 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골목에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어째서, 툭 떨어진 공백에 이치마츠는 눈을 감았다.
“저번에도?”
“…그래.”
시선이 따라붙었다. 위아래로 훑는 게 아닌 오로지 제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해]
그건 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딘가 이질적인 소리에 둘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노란 고양이가 둘 사이를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인간의 말을 하며. [좋아해] 순간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제 속마음이 모두 까발려졌다고, 내가, 너를.
고양이를 품에 안고 골목을 빠져나온 이치마츠는 그대로 강변을 쭉 달렸다.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중얼거리는 고양이를 한 대 때려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다. 쓰레기는 자신이었고, 애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그것뿐이다.
-
“이치마츠. 이제 그런…짓은 안 하면 안 되겠나.”
“그런 짓…이라니?”
이치마츠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웃어야 한다. 웃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녀석 앞에서는, 이 녀석 만큼은 마츠노 카라마츠에게 만큼은 결코 약점을 보이기 싫었다. 이치마츠는 손짓으로 남자의 성기를 연상시키듯 움직이며 혀를 쭉 내밀었다. 이런 짓? 자칫 과장스러워 보일 수 있는 모습에도 카라마츠는 전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표정. 그저 안타까워하는, 씁쓸해 보이는. 그래 너는 그런 인간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도 그렇게 친절한데 피가 섞인 형제에게는 어떨까. 하물며 동생이란 명사의 앞에서.
“용돈이 부족하다면 형이 보태 줄 테니까.”
역겹다. 속이 니글니글 거렸다. 먹은 거라곤 다른 사람의 정밖에 없는데.
“용돈?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해서 이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후에도 몇 번이고 남자의 성기를 빨아주며 돈을 받았다. 번번이 카라마츠의 방해를 받기도 했으나 성공하는 날이 더 많았다. 사실, 성공하는 날에는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그 좋지 않은 이유가,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마츠노 카라마츠가 자신을 찾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에 이치마츠는 그 짓을 그만두지 못했다. 일종의 도박과도 같았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이 넓은 마을에서 제가 어디에 있을 줄 알고 카라마츠가 저를 찾아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해 버리는 이 마음은 마을 어디쯤 굴러다니고 있을까. 혹 누군가 툭 차버려 강물을 타고 흘러가 주지는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형은 특별히 싸게 해줄게. 형제 좋다는 게 뭐겠어.”
“……”
“아니면 뭐야. 나랑 섹스라도 하고 싶다는 거야?”
내 마음을 차버리는 게 만약 너라면, 그래서 저 바다에 잠겨 죽을 수 있다면.
저벅저벅 다가온 카라마츠가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폐 몇 장을 꺼내 그대로 제 손에 쥐여주는 것을 보며 이치마츠가 헛웃음을 들이켰다. 진짜? 마츠노 카라마츠가 자신과 몸을 섞고 싶어 한다고? 그 다정하던 남자가. 그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 빠진 남자가? 이치마츠는 손에 쥐어진 돈을 꾸깃꾸깃 쥐어짰다. 빌어먹을 기대를 한 건 누구였나. 그러나 카라마츠란 사람은 언제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정말, 빌어먹게도.
“돈으로 살 수 있다면…네 마음이라도 사고 싶다…이치마츠…”
“…….”
“좋아해.”
[좋아해] 그건 누구의 마음이었나.
피가 섞인 형제, 성격만 다르다 할 뿐 똑같은 얼굴을 가진 쌍둥이―하지만 그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츠노 이치마츠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저 다정한 남자가, 모두에게 친절하고 착해빠진 저 남자가.
“이치마츠…”
저를 경멸하는 것이었으니.
“너를 사랑해.”
봇물 터지듯 터져버린 마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끝끝내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모두 드러낸 이치마츠는 스스로가 절망의 끝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었다. 아, 마음에는 끝이 없구나.
“사랑한다.”
“…….”
“이런 형이라도…받아주지 않을래?”
받아주고 말 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마츠노 카라마츠를 사랑하니까. 그 누구보다 더. 여섯 쌍둥이 중에서도 하필 너를. 모두에게 다정한 너를.
“돈은…필요 없어.”
이치마츠는 들고 있던 돈을 다시 카라마츠의 품속에 내던졌다.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 지폐들이 축축하게 젖어 갔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그 짓거리를 한 게 아니었다. 그저 너의 다정함을 이용하고 싶었다. 분명 나를 찾아올 테니까. 그럴 테니까. 이런 결과를 바란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기뻐서.
“나도 형을 사랑해.”
우리는 그렇게 쉽게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아선 안 되었다.
서로의 다정함을 알고서 쉽게 사랑해 버릴 것이 분명했기에.
그 누구보다 다정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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