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키타구구au입니다
분량조절 실패에요 ㅇ<-<
완결을 정말 많이 생각했는데 이게 최선인것 같고...ㅠㅠ
12.
그렇게 마물과 인간은 몇 십 년이고, 몇 백 년이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함께―라는 행복한 이야기라면 얼마나 기쁠까. 헤기는 어느 책에서 봤던 동화를 떠올렸다. 우리는 그럴 수 없겠지. 왜냐면 당신은 인간을 먹는 마물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허크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에 깨어나면 식탁에 갓 차린 따뜻한 음식이 있는 걸 보면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닌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허크라면 제 눈을 피해 얼마든 절 볼 수 있었으니 치사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아하는 이유도 이해가 갔다. 헤기는 따뜻한 스튜를 입에 넣으며 며칠 전 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 백년 지나지 않았어요?’ 그때 허크의 당황한 얼굴이란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였다. 당황이라―몇 백, 몇 천 년을 산 마물이 고작 백년 산 인간의 말에 당황한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허크에게 제가 단순히 ‘백년을 산 맛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제 오랜 소원은 허크 손에 죽는 것인데 그것마저 이루지 못 할 테니까. 그렇다고 다른 인간을 먹지 않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허크는 늘 배가 부르다고 했고, 헤기는 허크에게서 나는 희미한 피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허크…”
백년이 넘게 지났지만 헤기는 여전히 작았고, 피부도 좋았으며 머리카락도 까맸다. 아마, 앞으로도 허크와 함께 한다면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백년…이백년…영겁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그러면 죽을 수 있을까? 허크는 저를 죽일 수 있을까? 죽여줄까? 약속을 지킬까? 그게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생을 끝내야 할까. 전에 벨라가 그랬지, 백년을 산 인간은 자신이 더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마물과의 악연을 이어 가던가 둘 중 하나라고. 하지만 벨라, 제가 인간이 아니면 뭐겠어요.
“보고 싶어요.”
인간이기에 그를 용서한 거겠죠.
13
허크가 가져다주는 책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그 중에는 마법서도 있었다. 헤기는 모래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혼자 마법을 공부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조차 없었다. 가르쳐줄 사람도, 지적해줄 사람도 없었다. 허크라도 나타나서 짠 하고 가르쳐 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제가 잠드는 사이에만 움직이는지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헤기는 지난밤 잠결에 저를 쓰다듬던 허크를 기억해내곤 고개를 푹 숙였다. 일부러 진한 피냄새를 풍기고, 저를 절대 먹지 않겠다던 그 얼굴은, 상상이상으로 절망적이어서―빨리 허크가 저를 먹어주었으면, 달게 삼켰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14
사랑은 예측 불가능하고, 감추기 힘든 것이라, 어떻게 해서든 티가 나게 되어있다. 허크는 처음 헤기와 키스했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잊으리라. 그렇게 달디 단 키스는 처음이었거늘. 실수로 입술을 깨물어 피가 툭 터지지만 않았어도, 헤기가 아프다고 고갤 빼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서 먹어버릴 수 있었다. 허크는 수많은 ‘기회’에 대해서 생각한다. 몇 번이고, 헤기를 먹을 기회는 있었다. 단지 아직 백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맛있어 질 수 있기 때문에 라는 핑계로 피해왔을 뿐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순간, 헤기를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저는 얼마나 미련하고 한심한 마물인가. 백년이 지났단 말을 듣고 지래 겁을 먹어 너를 피하는 것은, 함께 있고 싶은데 혹여나 너를 먹어버릴까 배가 부르도록 인간을 먹고 벌레도 울지 않는 깊은 밤에만 너를 찾아가는 것은, 사랑이란 핑계로 너를 인간에게서 떨어트려놓고 이제는 내게서 까지 떨어트리려는 것은 그저 내 이기심이겠지. 헤기.
“헤기. 나와 백년을 해줘.”
모래 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헤기 앞에 나타난 허크가 말했다. 헤기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선 그가 걸어온 자국을 보았다. 멀리서, 아주 천천히. 제가 달아나지 않도록…커다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건, 협박인가요?”
허크가 헤기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커다란 손이 헤기의 손을 잡았다. 흙투성이 손에 입을 맞춘 허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헤기를 바라봤다. 아주, 오래전. 허크를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눈빛이었다.
“부탁이야.”
허크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많은 이들을 만났지, 그리고 모두 죽었다. 마물이라고 영생을 사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태생이 약해서 죽기도 했다. 그 중에 허크는 강한 마물이었다. 영겁이란 시간을 가지며,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런 허크에게 헤기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약점이었다. 처음에는 맘만 먹으면 죽여 버릴 수 있다고, 당장 목을 물어뜯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저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가 인간을 더는 죽이지 못하도록 하늘이 내린 저주. 하지만 저주라면 혼자 앓다가 끝내는 편이 나았다. ‘보고 싶어요.’ 하지만 이대로 제가 사라져 버린다면 헤기 역시 혼자 앓겠지. 어쩌면 영원히. 허크는 이제 헤기가 영원히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가 그렇게 만들었다. 헤기가 그러길 원했다. 허크가 그러길 바랐다.
“어째서요?”
사랑은 예측불허니라, 그러므로 의미를 갖는다.
헤기는 인간이다. 인간이었다. 이제 와서 자신이 인간이니 마물이니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건데 인간은 아니었지만, 태어나길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본질을 따지는 건 소용없었다. 그저 저를 이렇게 만들고서도 또 백년을 함께하길 원하는 마물에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헤기는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었으므로, 정의하지 못했으므로. 또는 이 감정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크는 조심스레 헤기의 손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어째서일까, 나도 생각해봤어…널 어째서 먹지 못하는지……다른 인간들을 아무리 먹어도 널 보면 허기가 나, 하지만 먹지 못하는 건……”
허크는 제 감정의 끝을 원했다. 그만 괴롭고 싶었다. 그만 하고 싶었다. 무엇인지도 모를 이 감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헤기만이 끝낼 수 있었다. 물론 끝은 아니겠지.
혼자 앓는 시간보다, 함께 앓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우리는 몇 번이고, 위기를 거치겠지. 죽을 고비를 넘기는 순간도 올 것이고, 정말 누구 하나를 남겨둬야 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끝내 영영 혼자 있는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크는 그 시간을 내내 기다릴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약속과 사랑을 증명할 것이며, 때때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네가 소중해. 먹어 없애버리고 싶지 않아…나는 백년이고, 천년이고 너와 함께 하고 싶어.”
허크가 조심스럽게 헤기를 품에 끌어안았다. 저항은 없었다. 헤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여태껏 참아왔던 설움이 복받쳤다.
“널 사랑해.”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지독한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웃기지도 않는 신파였고, 허크는 거기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첫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허크는 헤기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따라 올라온 헤기의 눈동자가 반짝 거렸다. 백년, 이백년, 천년………
“저와 영원을 해주세요. 허크.”
어쩌면 영원히.
“저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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