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키스데이고..
전 이걸 쓰기 전에 불한당을 봤습니다...ㅠ
키스데이 챙기고 싶었는데 너무 졸리네요
오타수정 못했습니다..ㅠㅠ
때 아닌 한파가 콜헨을 덮쳤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는 무거운 눈에 고개를 푹 숙였고, 마굿간에는 두터운 나무판자가 겹겹이 쌓였다. 용병단이고, 상점이고 할 것 없이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퐁퐁 피어올랐다. 이그나호 강도 꽁꽁 얼어붙어 출항도 문제가 생겼다. 눈을 치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다들 무릎까지 쌓인 눈을 보고선 질색하며 옹기종기 모여 몸을 녹이기 바빴다. 종종 용병들이 눈을 치우긴 했으나 금세 쌓여버리기 일수였다. 삽이 파삭 소리를 내며 부러지자 누군가 탄식을 터트렸다. 마을은 때 아닌 홍역을 앓았다. 작은 마을에는 의원하나 없었고 앓던 이들은 고스란히 혼자 견뎌내야 했다. 로체스트에 가서 의원을 불러오려고 해도 눈 때문에 마차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헤기.”
허크는 눈도 뜨지 못하고 끙끙 앓는 헤기의 옆에 앉아 물수건을 갈아주었다. 가끔 눈을 뜨고 입술을 달싹이기도 했는데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얗게 갈라진 입술이 야속해, 허크는 커다란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헤기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에른와스는 옮는다며 걱정했지만 어차피 같은 방이었고, 옮는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헤기의 몸은 너무 유약했고, 한겨울의 한파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얀 눈처럼 창백한 피부가 곧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언제나 따뜻한 온실 속에서 자랐을 것만 같은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긴 속눈썹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우습게도 허크는 그 누구보다 전장을 가까이 한 사람이고,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죽어나간 동료들은 샐 수도 없이 많았고, 그것에 일일이 슬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제가 손을 쓸 틈도 없이 죽어나갔다. 아, 헤기. 허크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머나먼 과거를 떠올렸다. 때 아닌 혹한. 홀로 남은 대장간. 쓸쓸한 장례식.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헤기의…
툭. 헤기의 손등이 허크의 팔에 닿았다. 헤기는 잔뜩 부은 눈으로 허크를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허크.”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허공에 툭 던져졌다. 허크는 대답대신 손을 꽉 잡았다. 매년 겨울을 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았다. 허크는 헤기가 꼭 그럴 것 같다는 불안감에 손등에 입술을 꾹 맞추고는 헤기의 말을 기다렸다. 꼭 유언을 듣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상상에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헤기의 입이 통증을 호소하고 나서야 허크는 힘을 풀었다. 평소보다 적은 힘이었는데도 헤기는 인상을 쓰더니 눈물을 툭 떨어트렸다. 열 때문인지, 손이 아팠기 때문인지. 무엇 때문이든 허크는 손을 뻗어 벌겋게 부은 눈 밑을 손으로 닦아냈다.
“미안해.”
허크의 사과에 헤기가 고개를 저었다. 일어난 김에 먹을 것과 약을 준비해주고 싶은데 방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시선을 떼면 다시 잠들 것 같아서 그래서 영원히 눈을 뜨지 않을 것 같아서.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허크는 이제 그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 해두고 있었고, 그건 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헤기에만은 예외를 두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상이 헤기가 된다면 허크는 늘 최악의 상황을 염두 해 두었고, 어느 순간부턴 늘 헤기가 옆에 있었기에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래, 가령 네가 죽는다거나. 헤기가 세차게 기침을 해댔다. 몸을 들썩 거리며 기침을 하던 헤기의 손에 피가 묻어나오는 순간 허크는 시간이 과거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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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렴입니다.”
브린이 덤덤하게 말했기에 허크는 순간 폐렴이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게 다야? 허크의 물음에 브린이 살짝 짜증난 얼굴로 툭 말했다. “심각한건 아닙니다. 약 먹고 푹 쉬다보면 좋아질 거예요. 제가 의원도 아니고 더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브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져온 약을 협탁 위에 척척 올려놓았다. 따뜻하게 데워 드시면 됩니다. 식후, 하루 세 번입니다. 허크는 약병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빛이 도는 녹색이었는데 헤기는 보기만 해도 입 안이 쓴지 연신 입술을 핥았다. 허크는 갈라진 입술이 더 갈라지잖냐. 하면서 물수건으로 닦아주기만 했다. 티이가 준 연고도 꼼꼼히 바르고 밥도 먹은 헤기는 커다란 컵에 한가득 담겨있는 약을 보고는 인상을 썼다. 사실 냄새부터 별로긴 했다. 꼭 강물을 그냥 마시는 것 같은…
“먹기 싫어요…”
헤기의 때아닌 투정에 허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의원이 오려면 앞으로 나흘은 더 있어야 하고, 브린이 준 약은 임시방편에 불가했다. 헤기는 허크를 빤히 바라보다가 코를 막고는 약을 벌컥벌컥 마셨다. 구역질이 올라오는지 가슴이 들썩 거렸는데 입을 꽉 다물고 끝까지 삼킨 걸 보자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허크는 헤기가 입을 아- 벌리고 다 삼킨 것을 확인하고는 잘했다며 입을 맞췄다. “…옮아요.” 헤기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서 말했다. 허크는 입술을 떼고는 옮기면 좋고, 하며 입술을 핥았다. 약 냄새는 심했는데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약은 꽤 독했다. 헤기는 늘 약을 먹고 나면 몇 시간이고 죽은 것처럼 잤다. 허크는 몇 번이고 헤기가 죽은 건 아닐까 걱정하며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며 호흡을 확인했다. 몸집도 작은 게 숨도 작게 쉬어. 겨울이라 두꺼운 이불 때문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허크의 심장마저 멎을 것 같았다. 몇 겹의 따뜻한 이불속에서 차게 죽어가는 것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허크는 그것이 트라우마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헤기를 보면 늘 그때가 생각난다. 잊을 때가 됐거늘 잊혀지지가 않았다.
“넌 아플 때도 예쁘네…”
색색 거리며 숨을 내뱉던 헤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발갛게 부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쵸…”
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소였다면 대답도 하지 않거나,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부끄러워했을 텐데. 허크는 평소처럼, 농담처럼 죽을 때라도 됐냐. 하고 말하려다 입술을 깨물었다. “저 안 죽어요…” 헤기가 중얼거렸다. 꼭 허크의 속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그랬다. 헤기는 기침을 몇 번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누굴 두고 죽어.” 감기는 지독시리 헤기에게 붙어있었다. 하루 세 번의 키스에도 떨어질 줄 몰랐다. 차라리 내게 왔으면 나를 삼켰으면.
헤기는 눈이 녹아 내릴때 쯤 침대에서 일어났다. 의원이 오고 나서는 빠르게 호전된 몸은 이제 전투에 나갈 정도였거늘 허크는 늘 조심하라며 헤기에게 옷을 두껍게 입히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약을 거의 다먹어갈 쯤 헤기가 입맛을 다셨다. 약 더 없어요? 헤기의 말에 허크는 이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냐며 아직도 몸이 안 좋냐며 물었지만 헤기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약에 중독 성분이 있는 건 아닌 가 허크가 잠시 걱정했지만, 헤기의 말에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안 아프니까 예쁘다고도 안 해주고…, 뽀뽀도 안 해주고…”
하루에 세 번 먹던 약을 두 번으로 줄였다. 사실 검사차원에 입안을 확인하고 키스를 한 것인데.
허크는 점심때마다 레몬 사탕을 입안에 굴리는 헤기를 알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입이 심심해서 라고 생각했지, 제가 키스를 해주지 않아서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허크는 팔을 뻗어 헤기의 얼굴 붙잡고 올렸다. 힘에 끌려 올라온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헤기가 눈을 깜빡거렸다. 잘 정돈된 속눈썹이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눈 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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