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로우조로
요즘 너무 좋아져서 미치겠는중
밀짚모자 해적단과 하트 해적단의 기나긴 동맹이 끝을 맺었다. 동맹을 시작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목적은 단순했고,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사황 카이도를 쓰러트리고 목적을 달성하긴 했으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으며 지나간 일들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트라팔가 로우는 크게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제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특히 동료들이 다친 걸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이 섬에 제대로 된 의사라고 해봤자 몇 명 있지 않을 것인데 본인이 쓰러질 순 없었단 말이다. 제일 먼저 밀짚모자 루피의 몸을 살폈다. 또 수명이 단축됐겠군. 깊게 잠든 루피의 몸에 응급처치를 하자 그의 선의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루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듣지도 못할 상대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뒤이어 그의 동료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하나같이 중상임에도 선장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그 꼴을 보고 있으니 제 동료들이 몹시 그리워져 로우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곤 괜찮다고 대답했다. 깊게 잠든 것 뿐이야. 어서 옮기기나 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에서 비명을 지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한 발 내딛자 비명이 새어나갈 것 같았다.
"너는 괜찮나?"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제 몸을 붙잡았다. 로우는 바닥에 그려진 핏자국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사황 카이도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 섬의 모든 이들이 덤빈다고 하더라도 그의 패기에 절반 이상이 나가떨어질 것이고, 그 자리에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혔다. 그중엔 저 사내도 있었다.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길게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그에게 덤벼드는 사내였다. 상처가 덧나던, 피가 터지든 상관없이. 마치 붕대가 액세사리라도 되는 것마냥 이 정도 다친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달려들던 사내였다. 괜찮냐고? 로우는 너무도 괜찮았다. 사황을 상대로 사지가 멀쩡한 것만 해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걱정할 상태가 아니었다. 로우는 입술을 달싹였다. 바짝 마른 입안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섣부른 발언은 그를 상처입힐지도 모른다. 나보단 네가 더 심각한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 오죽하면 앙숙 같던 금발의 요리사가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뛰어왔겠는가. 너 미쳤어? 이 상태로 어딜 돌아다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줄줄 늘어놓았다. 요리사의 천둥 같은 목소리에 선의가 뒤를 돌아보고는 또 비명을 질렀다. 조로!! 거진 울 기세였다. 펄쩍 뛰어와 조로의 상태를 보던 선의가 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로우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평소였다면 못한다며 거절했겠지만, 저 사슴의 눈망울을 거절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롤로노아 조로. 로우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난 괜찮다니까! 그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붕대에서 피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떻게 저런 몸으로 소리까지 지를 수 있지? 선장이고 선원이고 다 괴물이 따로 없구만. 로우는 제 상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곤 그를 인적이 드문 곳까지 데려왔다. 그의 성격을 고려한 나름의 배려였다.
"조로야, 여긴 아무도 없다. 네 선장도 선의도 너를 그렇게 걱정하는 동료들도 없는 곳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 참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실질적인 부선장이었고, 그건 그가 쓰러질 수 없음을 뜻했다. 선장이 쓰러진 지금 부선장마저 쓰러지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게다가 네가 쓰러지면 기함할 선의를 생각해서라도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되었다. 조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한숨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상처를 볼까. 그의 말에 상의를 탈의하자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붕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한쪽 팔은 덜렁거렸다. 무식한 놈. 로우는 말을 삼키곤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제때 처치를 하지 않으면 팔이 썩어서 떨어졌을 거야."
"…목숨값치고는 싼 편이지."
"검사가 한쪽 팔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 아닌가."
게다가 넌 삼검술을 쓰잖아? 로우의 말에 조로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검술을 쓰면 돼."
"나머지 한쪽 팔마저 없으면?"
"그땐 한 자루만 들고 다니지 뭐."
한마디도 지지 않는 사내다. 로우는 급한 응급처치만 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여긴 환경이 열악하고 수술 도구도 없어. 게다가 나도 한계야. 능력을 쓰는 것마저 힘들단 말이지. 붕대를 묶어주는 손에 조로가 힐끔 그의 안색을 살핀다. 창백하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아까 물었잖아, 넌 괜찮냐고."
"안 괜찮다. 근데 의사가 환자한테 안 괜찮다고 할 순 없잖아."
"난 괜찮다고 했어."
"조로야."
나긋한 목소리에 조로가 혀를 찼다. 다른 사람이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처도, 출혈도 그 어떤 것도 저는 죽지 않는다. 그걸 2년 전에 이미 확인했고, 조로는 제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물론 재수가 없었으면 죽었겠지 하지만 나는 운이 좋거든. 그 말에 로우는 웃지 않았다. 기다란 손가락이 조로의 가슴 위 상처를 꾹 눌렀다.
"조금만 비껴갔어도 심장에 칼이 박혔을 게다. 그땐 의사도 필요 없게 되겠지."
"…선장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우리 사이에 그보단 다른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를 바라보는 깊고 탁한 눈동자에 조로가 고개를 돌렸다. 루피가 토트랜드로 망할 요리사 녀석을 데리러 간 그 며칠간,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전부터. 우리 배에 녀석이 탄 이후부터 미묘한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부딪칠 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녀석은 우리배에 스스로 올라탔음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항상 조로가 있던 자리에 그가 앉아있었으니까. 자리를 비켜주려는 녀석에게 그냥 있으라고 말한 것도 조로였다. 여기는 다른 해적선과는 느낌이 다르지. 술병을 들고 옆에 털썩 앉은 조로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로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맹이라곤 해도 해적과 해적이었다. 해적단 사이의 동맹은 무너지기 쉽다. 해적들의 특기 중 하나가 배신이니까. '동맹'이라는 말 하나로 덜컥 다른 배에 탄 녀석이 이상한 거다. 물론 로우는 그만큼 싸움에는 자신 있었고, 밀짚모자 루피가 저를 배신하지 않으리란 믿음 역시 있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해도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밀짚모자 일당에는 루피만 있는 게 아니니까. 로우의 날 선 모습에 조로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한잔할래? 맥없는 목소리에 로우가 고개를 돌렸다. 술에 취한 모습은 아니었다. '긴장감을 푸는 데는 술이 최고지.' 로우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곤 술을 받았다. '그런 것치고 너는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던 것 같은데.' 조로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이 배의 전투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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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에 가장 중요한 건 선장이다. 그다음은 항해사와 선의, 조선공, 요리사. 배가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녀석들이지. 조로의 말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2년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딱딱하기 그지없는 말인 거 빼면 틀린 말도 아니었고. 선장인 루피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지만 꼭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우린 이전까지 너무 루피에게 부담을 줬어. 조로의 말에 산지는 들고 있던 접시를 내려놓고 담배를 꺼냈다. 2년 전, 2년 전이라….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지. 아니 저 녀석은…. 평소라면 망할 마리모가 맞는 말도 한다며 비웃었을 것을 그러지 못했다. 녀석은 루피가 얼만큼의 고통을 받았는지 알고 있었고, 아마도 제 몸만 성했더라도 이렇게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솝이 그럼 나는? 하며 물었다. 조로는 뭘 묻냐는 듯 너는 나랑 똑같은 전투원이지. 하고 대꾸했고 우솝은 싫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전만큼 울면서 떠들어대진 않았다. 우리들은 강해졌고, 앞으로 더 높은 곳으로 갈 것이다. 약한 소리를 하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돌아갈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론을 말하자면, 앞으로 전투에서 나는…. 조로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루피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랜만이라 배 안을 헤맸다며 웃는 모습에 다들 웃고 말았다. 대신 조로 옆에 앉아있던 우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냐며 물었지만 조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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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입을 맞춘 건 충동적인 일이었으나 그 후 몸을 섞은 과정은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밀어낼 수 있다면 진작 밀어냈을 것이며 거부의 말을 했다면 로우는 두 손을 들고선 물러났으리라. 그는 왜 밀어내지 않았을까.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서? 로우는 조로가 그런 사내가 아니란 걸 안다. 루피와 약속한 후 폴라 탱에 올라 탔을 때 조로는 매번 로우의 방으로 찾아왔다. 길을 잃었나? 하고 물어보면 조로는 말없이 입을 맞춰왔다. 애정어린 말도, 다정한 손길도 서로에겐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다고 로우는 믿었다. 이 말 없는 사내와 저는 말보다 중요한 다른 걸 나누었다고.
잠에서 깨자 익숙한 천장이 로우를 반겨줬다. 폴라 탱의 선실이었다.
"깼냐."
"조로야."
술을 병째로 마시며 다른 손에도 술을 들고 온 조로는 하나뿐인 의자에 털썩 앉아 술을 마저 털어 넣었다. 그러곤 웃으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역시 나보단 네가 약골이라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 앞으로 다가온 조로가 술을 건넨다. 마실래? 로우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자신이 쓰러진 이유는 환자를 한계까지 돌본 이후였고, 그 환자가 바로 롤로노아 조로, 눈앞에 이 녀석이었다. 쓰러졌다는 말도 이상했다. 한계까지 힘을 끌어다 쓴 로우는 길바닥에서 잠들었고, 그걸 누군가 방으로 옮긴 것뿐이다. 쓰러진 게 아니야. 로우의 말에 조로는 그게 그거지 라며 나머지 술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잠든 지 얼마나 지났지?"
"이틀은 꼬박 잤지."
"다른 녀석들은?"
"루피는 깨어나긴 했는데 밥을 먹곤 다시 잠들었고, 나머지 녀석들은 파티 중이다."
"…너 술은…"
"몰래 가져왔지."
아마 녀석들의 선의가 본다면 몸집을 잔뜩 부풀린 채로 달려왔을 것이다.
"파티를 즐기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는 뭐지."
로우의 말에 조로가 술병에서 입을 뗐다. 음…. 그는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말한다.
"우리 항해사가 선장이 일어나는 즉시 이 섬을 떠나자고 하더군."
"……."
"그리고 너희들도 어서 떠나는 게 좋을 거라며 얘기해주던데."
사황을 쓰러트렸으니 현상금은 더 높아졌을 것이고, 해군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며. 조로가 덧붙인 말에 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판단이다. 이 섬에 더 있어봤자 폐만 끼칠 뿐이며 이 섬 주민들은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다. 파티도 한때일 뿐이다. 내일 새벽이면 이들은 소리도 없이 모습을 감출 것이고, 폴라 탱 호 역시 바다 깊숙한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선원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겠지. 로우는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앉았다.
"조로야."
"응?"
"우리 배에 타지 않을래."
조로가 술병에서 입을 떼곤 혀로 입술을 핥았다. 짧고 무거운 침묵 사이로 술병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단호한 대답에 로우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작게 웃었다. 조로 역시 그를 따라 웃으며 침대 위로 올라갔다. 술 냄새가 훅 풍겨오자 입을 벌렸다. 진득하게 얽혀오는 입술을 혀로 핥고는 한 손으론 그의 목덜미를 다른 한 손으론 허리를 감싸 안았다. 네가 그 말을 할 줄 알았지. 예상했다는 듯한 미소와 정해놓은 대답에 로우 역시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밤이 되는 거군."
찐득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입술 위로 제법 단호한 말이 튀어나왔다. 로우는 조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었고, 상대는 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는 서로의 선원을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조로야…"
네 두 팔과 다리를 잘라 내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제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폴라 탱 호 저 지하 밑바닥에 너를 가두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해저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 네 동료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숨어있으면 된다. 평생 제 속을 숨기며 살아왔던 로우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네게 미움받을지언정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험난한 바다에서 너를 한 번이라도 놓치고 만다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파도처럼 로우를 덮쳐왔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야."
조로는 로우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한다.
"나는 그 배의 부선장이자 전투원이고, 내 최우선은 루피의 꿈이다."
언젠가, 루피가 해적왕이 되고 원피스를 찾게 되면 그땐 네 곁에 있을지도 모르지. 거짓말이다. 조로는 루피가 해적왕이 되고 원피스를 찾았다고 해도 계속 옆에 있을 것이다. 그가 항해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그의 옆을 떠나지 않겠지.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대신 이걸 주마."
조로가 로우의 손을 잡고 제 가슴 위로 올렸다.
"나는 알다시피 루피에게 모든 걸 걸기로 맹세했어, 때문에 네겐 목숨도 몸도 줄 수 없지. 이 배에 타는 것도 불가능해."
언젠가,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은 듯 잠만 자길래 정말 죽은 게 아닐까 하고, 그의 심장 소리는 주인을 닮아서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심장이 아니라, 목이 잘리거나 몸이 반 토막 나도 죽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커다란 손이 조로의 몸 안쪽으로 깊게 파고든다. 심장을, 그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에 로우의 입안이 바짝 타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말이 많던 조로 역시 입술을 꽉 깨물곤 고통을 참는다. 기절할 거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절하고도 남을 충격과 통증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절하지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두근, 두근 뛰는 심장이 로우의 손에 들어왔다.
"잘 보관해두라고. 토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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