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그들은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바다 위에서 생활했다. 운이 좋으면 섬을 찾아 물자를 보급하고 간만의 육지 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운이 없으면 몇 날 며칠, 몇 주 동안 바다에 떠다니기도 했다. 다만 밀짚모자 해적단에겐 다른 해적들에겐 없는 게 있었으니 뛰어난 선의와 요리사였다. 물론 계산능력이 뛰어난 항해사도 있었고 귀신같이 강한 전투원도 있었지만, 선의와 요리사만큼은 다른 어떤 배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하트 해적단과 헤어진 지 한달 쯤 지났다. 종종 정보를 교환하는 연락이 오가긴 했지만, 사적인 안부를 묻는 일은 전혀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거 아냐? 나미가 웃으며 말했다. 루피는 그럴지도 몰라, 그 녀석 은근 부끄럼쟁이니까 하곤 들고 있던 고기를 꿀꺽 삼켰다. 아, 마리모랑 비슷한 타입이지. 산지가 빈 접시를 치우며 끼어들었다. 닮은 사람끼리 사귄다더니 답답해 죽겠네. 나미는 창밖의 조로와 쵸파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배의 항해사는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때마침 산지가 홍차를 들고 나타났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요, 바보 마리모 따위.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창밖에서 엄청난 비명이 들려왔다. 조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쵸파였고, 그의 바로 앞에 앉아있던 조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귀 안 먹었어. 때아닌 실랑이에 밀짚모자 일당이 모두 모인 건 당연했다. 엔간해선 화내지 않는 쵸파가 그를 향해 모진 말을 잔뜩 내뱉었다. 대체 어쩌려고 그랬냐며 대책 없이 그러면 어떡하냐며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까지 맺힌 채였다. 조로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거 하나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조로!"
분노로 털을 잔뜩 세운 쵸파를 우솝이 진정시켰다. 그만해, 무슨 일인데? 나미의 말에 조로가 귀찮다는 듯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쵸파의 입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조로가 심장이 안 뛰어! 밀짚모자 일당의 고개는 자연스레 쵸파에게서 조로에게로 넘어갔고 그는 브룩을 가리키며 저 녀석도 안 뛰잖아, 그거랑 비슷한 거야. 하고는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정확히는 도망치려고 했다는 게 맞다. 다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사람이 어떻게 심장이 안 뛸 수가 있어? 하는 말을 했지만 조로가 부정하지 않자 다들 안색이 창백해져 뛰어왔다. 야, 가슴 좀 보자. 하며 옷을 찢을 기세로 덤벼드는 프랑키를 보며 조로가 미쳤냐며 발길질을 했다. 너 진짜 없어? 나는 남자 가슴에는 흥미는 없지만, 산지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며 물었다. 진짜 없다니까! 조로가 옷을 여미며 식식거렸다. 그럼 대체 그의 심장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적의 소행이라면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기엔 조로가 너무도 평온했고.
"조로, 누구야."
루피의 단호한 목소리가 조로를 붙잡았다. 조로는 루피의 눈을 피하지 않더니 이내 혀를 차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토라오."
"빼앗겼어?"
"…내가 줬어."
-
섬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해군이 따라붙었다. 그들이 아무리 괴물 같은 체력을 가졌다곤 하지만 사황을 상대하고 나서 나타난 해군은 상대하기 버거웠다. 게다가 마지막에 나타난 건 해군대장 키자루. 루피의 현상금이 십억이 족히 넘어가는 지금 그의 등장은 놀라울 게 아니었지만, 상황은 충분히 절망적이었다. 배 위에서 능력자들의 전투가 얼마나 배에 무리를 줄지 안 봐도 뻔한 상황에서 루피가 뿌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등장은 항상 루피에게서 모든 것 앗아가곤 했다. 동료도 가족도 그리고 꿈마저. 꿈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맞닥트려야할 인물이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래서…"
-
키자루는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제안을 해왔다. 자기 혼자서 밀짚모자 일당을 전부 상대하는 건 무리이며, 너희들 역시 여기서 나를 상대하다간 전력의 절반을 잃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2년 전에 놓친 롤로노아 조로의 목만 가져가겠다는 터무니 없는 제안을.
『……계속 얘기해』
조로는 제 가슴 위를 더듬었다. 말을 해줘야 할까. 녀석은 화를 내려나.
"빛이 내 심장이 있던 위치를 관통했지."
산지의 상처가 터지고 루피가 바다에 빠졌다. 황급히 프랑키가 그를 구하러 뛰어들었다. 배 위에 당장 키자루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조로밖에 남지 않았다. 과거의 일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피로가 쌓였느니, 부상이 있느니 하는 것은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조로에게 상처란 약하다는 증거였으니.
수화기 너머로 탁, 탁, 탁 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는 소리가 났다. 그는 계속해보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운이 좋은 건지, 네가 운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요. 키자루는 쓰러진 조로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약해진 상대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다며 가슴 위로 손을 올린 그는 예의 사람 좋은 얼굴을 하며 웃었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근데 내 심장은 알다시피 나한테 없어."
가슴 위로 구멍이 뚫리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조로를 보고서는 키자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혀를 찼다. 고문은 취향이 아닌데. 멀리서 쵸파가 이름을 불렀다. 일어나지마 조로! 본인 몸도 성치 않은 주제에 누굴 걱정하는 건지, 조로는 끝내 일어나 키자루의 앞에 섰다. 심장을 꿰뚫어도 죽지 않는다면 목을 비틀어야지.
"그러다 루피가 다시 돌아와 녀석을 바다로 날려버렸지. 제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능력자인 이상 바다에 빠지면 속수무책이잖아?"
『……』
밀짚모자 해적단은 그 자리를 전속력으로 벗어났다. 당장 그를 상대하기엔 어려웠다. 다행히도 쫓아오는 해군병력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서 며칠을 보냈다. 선의와 다친 이들을 위해 밤낮없이 움직였고, 요리사는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부엌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조로는 상처에 피가 멎자마자 새벽에는 보초를 서고, 낮에는 훈련을 시작했다. 루피는 사흘 만에 깨어났다. 루피는 웃으며 아, 살았다! 하고 소리쳤다. 살아있잖아. 살아있으니까 됐어. 그 말을 듣고서 나미와 우솝이 울음을 토해냈다. 빨리 다음 섬으로 가자! 루피가 해맑게 얘기한 덕분에 키자루의 얘기는 더 나오지 않았다.
"섬 이름이 케이맨제도였던가."
『…조로야.』
책상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들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한테 그 얘기를 해주는 저의가 뭐지.』
"……그냥."
『조로야, 네 심장 소리가 너무 시끄러운데.』
조로의 목부터 얼굴까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분명 제 심장은 그가 가지고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옆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건…너무 치사한 거 아냐? 조로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보고 싶네.』
"……."
『보고 싶다, 조로야.』
"……나도 그래."
-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근육과 뼈, 뇌와 심장 같은 의학적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사람을 직접 만들겠다고 하는 이들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보고 싶어서, 내가 원하던 이상의 만남을 가지고 싶어서 혹은 신이 되고 싶어서.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모든 요구 조건을 다 갖추고 나서도 그것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사람의 영혼이란 대체 어디서 오는가.
심장이 없어도 그는 잘만 돌아다녔다. 술도 마셨고, 수련도 계속했다. 자신보다 강한 적 앞에서 두려움이란 모르는 사람처럼 버티기도 했고, 죽을 것만 같은 순간에도 웃어 보였다. 로우는 제 손위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는 심장이 소중한 듯 품에 넣다가도, 폭력적으로 다루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종하게 될까 아니면 혀를 깨물까. 혀를 깨문다고 해서 그가 죽을 수는 있을까? 그는 어째서 죽지 않지? 그는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걸까. 그는 대체 무엇으로 움직이는 걸까. 그의 영혼은 어딜 보고 있는 걸까.
섬에는 밀짚모자의 해적선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로우는 배 안에 조로의 기척이 없다는 걸 알고는 섬 안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조로라면 대낮부터 술집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길을 잃고 터무니없는 숲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고, 오래간만에 상륙한 육지의 땅을 천천히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까. 로우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서 움직였다. 그와 미리 연락해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시시껄렁한 생각을 했다. 연락한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상대였다면 헤어진다고 초조할 일도 없었겠지.
로우는 악마의 열매 능력을 얻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의술을 연구했다. 어째서 제게 심장을 빼앗긴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이 가능한가? 단순히 악마의 열매 능력이라고 하기엔 모순적이지 않은가? 아니 모순적이기 때문에 악마라고 불리는가? 허나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밝힐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로우는 저 멀리 해변을 걷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주 먼 거리였는데도 그가 롤로노아 조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게 자른 푸른 머리카락과 걸을 때마다 덜그럭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세 개의 검. 세상 어디에 가도 그처럼 눈에 띄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때였다. 그가 멈춰서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빨리 안 오고 뭐해?"
아,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냐는 말은 전제가 완전히 잘못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어떻게 살아있는가가 아니라 왜 살아있는가였다. 왜? 그 어떤 과학으로도 인간의 감정을 정의할 순 없었다. 로우는 제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제게 사랑한다 말해주었던 이는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었다. 물론 그가 바란 것은 복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라면 분명 너 자신을 위해 살라며 등을 밀어주었겠지. 그러나 인생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로우는 원수의 손에서 복수심만을 키우며 살았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지금 그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동료들을 위해? 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은인을 위해? 그는 도플라밍고와의 싸움에서 이미 죽음을 각오했고 동료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렇게 한가로이 해변을 걸으며 웃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 없었다. 모든 일은 예상을 깨고, 그의 세계를 제자리로 돌려놨다.
화내고 소리 지르고, 짜증도 내며 동맹이란 이름하에 맺어진 너를 걱정하고 배려하던 이 감정의 정체를 눈치챈 로우가 입술을 깨물고 검을 꽉 쥐었다. 평생을 심해 밑바닥에서 외로이 죽어갈 거라 생각했던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알고도 모른 척 감추었던 것들이 있었다. 로우는 가까이 다가온 조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뭐든 좋으니 제 표정을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끌어안은 가슴 사이로 틈이 없어 로우의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조로의 가슴을 두드렸다.
"심장으로는 모자랐나?"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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