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을 잡고서 학교 담장을 뛰어넘었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건지 그냥 흥미가 없었던 건지 오전 내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버스데이가 점심시간이 돼서야 벌떡 일어나 레시오의 책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땡땡이 치자!!” 이렇게나 당당한 땡땡이 선언이라니 레시오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
레시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책상에 엎드린 버스데이가 떼를 썼지만 레시오는 굽힐 줄 몰랐다. 아니 애초에 굽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땡땡이라니 안 그래도 수업시간에 태도가 안 좋다고 자주 지적받는 버스데이였다. 이러다간 졸업도 못하게 될 것이다. 간신히 일반 학교로 다시 진학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결국 먼저 포기한 버스데이가 쳇 하고 돌아섰다. 생각보다 빠른 포기에 레시오는 그의 등을 빤히 쳐다봤다. 시간을 확인한 버스데이가 가방을 들쳐매곤 교실을 빠져나갔다. 황급히 뒤를 쫓은 레시오가 버스데이의 어깨를 잡아챘다.
“어디 가?”
“땡땡이 치러”
“혼자서?”
“네가 같이 안가니까 혼자 가야지?”
레시오는 아주 잠깐 고민했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아침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것이 지금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 마냥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둘은 우산도 챙겨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교실에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린다면 비가 그칠지도 몰랐다. 어쩌면 친구에게 빌려 쓰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깨가 조금 젖겠지만 감기에 걸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레시오는 정말, 아주 잠깐 고민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일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도 가”
“안 간다며?”
“네가 가잖아.”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가니까. 버스데이는 자신의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은 채 가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혼자 보낸다면 어디서 지독하게 비를 맞고선 내일 끙끙 거리며 학교를 못 올지도 모른다. 분명 그럴 것이다.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버스데이는 잠깐 신기하다는 듯 레시오를 보고서 휘파람을 불더니 맘대로, 하고선 앞장섰다.
학교 담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파쿨타스 학원에서 훈련받았던 둘에게는 좀 더 높았어도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방으로 대충 머리만 가린 둘은 주변을 살펴봤다. 레시오가 먼저 담장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발아래를 살핀 레시오가 버스데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시야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주임이었을 것이다.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담장을 넘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버스정류장 아래에서 비를 털어내던 레시오가 힐끗 버스데이를 훔쳐봤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과 머리를 탈탈 털어낸 버스데이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잔뜩 찡그린 맨얼굴 위로 빗물이 뺨을 타고 턱 끝에 매달렸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은 레시오가 장갑을 벗은 채 그의 얼굴을 훑었다.
“레시오?”
버스데이의 눈과 마주쳤다. 한쪽 눈을 찡그리고선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되지 않는 것들을 뚝뚝 흘리면서. 레시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흔들렸다. 평일 낮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하물며 비가 펑펑 쏟아지는 날. 거리를 활보할 녀석은 없을 것이다. ‘버스데이’ 레시오가 중얼 거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얼굴에 버스데이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키스해도…돼?”
대답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서 입술을 포갠 레시오는 버스데이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뒤로 돌아 도망칠 것 같았다. 젖어서 달라붙은 옷 위로 차갑게 식은 몸이 덜덜 떨렸다. 숨이 찼는지 천천히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뜨거운 숨이 몸 안 깊숙이 끼쳐왔다. 이렇게 떨고 있는데 입안은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았다. 고른 치열 사이로 말캉한 혀가 엉켰다.
한 발. 버스데이가 뒤로 주춤했다. 저도 모르게 그의 후두부를 꽉 잡아 누른 레시오가 다시 끔 버스데이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어깨를 붙잡은 손에 손톱을 세운 버스데이가 다른 한 손으로는 레시오의 가슴께를 때리며 혀를 살짝 깨물었다. 윽, 레시오가 저도 모르게 버스데이의 양손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버스데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벽에 머리를 부딪친 건지 인상을 팍 쓰고 레시오를 노려봤다. 레시오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손을 풀어주면 분명 도망가겠지. 놔. 버스데이가 낮게 으르렁 거렸다. 레시오로선 딱히 그 말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자신은 버스데이의 고집을 하나 들어줬고, 이건 보답이었다.
“싫어”
“레시오”
“버스데이. 입 벌려”
입을 꾹 다문 버스데이의 뺨을 핥고선 귀를 깨물었다.
“어차피 네가 감기 걸리 면 돌봐야 하는 건 나잖아. 그 보답이라고 생각해”
“…네가 걸릴 수도 있잖아.”
“그럴일은 없어”
다시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스스로 입을 벌린 버스데이가 먼저 혀를 건드렸다. 짜릿짜릿한 것이 등줄기를 타고 머리를 쭈뼛 세웠다. 그의 양손을 결박한 채 레시오는 다른 손으로는 버스데이의 옷 안을 훑었다. 움찔, 몸이 떠는 것이 입안까지 전해졌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안 돼” 간간이 입을 뗀 버스데이가 애원했다. 그 목소리에 레시오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입술을 뗐다. 선글라스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우리집 가까우니까…우리집에 가자”
“…그래”
버스데이는 혼자 살고 있었다. 썩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사람 둘 누우면 꽉 차는 일인용 침대와 욕조. 숨소리가 가득 찬, 방음도 되지 않는 방. 레시오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다.
'2D > 하마토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마토라 전력 ~11/8 (0) | 2015.01.03 |
---|---|
하마토라 전력 ~10/4 (0) | 2014.10.13 |
하마토라 전력 60분 ~9/19 (0) | 2014.09.24 |
레시버스 3 (0) | 2014.09.24 |
레시버스 2 (0) | 201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