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에미야 시로수~ 합작에 썼던것 링크(http://shiroshiro.tistory.com/13)




 

길가메쉬가 주는 애정은 알기 쉽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예고도 없이 내리는 비에 아이들은 창가에 매달려 연신 탄식을 내뱉었고, 그건 시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빨래를 널어놨었는데. 그가 걷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영웅왕이 빨래를 걷는 것은, 그것도 비가 와서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되어 시로는 금세 생각하는 것을 관두었다. 이불빨래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건 포기했다. 보아하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아이들은 대부분 뛰거나 가방을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아, 책이 젖는 건 정말 피하고 싶은데. 신발장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려 고개를 숙였을 때 자신의 위로 지는 그림자와 주변의 웅성거림에 시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것이 마음에 편했다.

 

“시로.”

 

하늘은 먹물이라도 뿌려 놓은 듯 꾸리꾸리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오징어를 해동 시키고 나왔었다. 지금쯤이면 다 녹아 흐물흐물 해졌겠지. 시로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도 고개를 들어 그를 봐야 했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우산이 들려 있었다. 집에 다른 우산도 많은데. 시로의 말에 그는 더욱 얼굴을 구기다 집어 던질 것처럼 우산을 들었다. 팡! 팽팽하게 펴진 우산이 시로의 시야를 뒤덮었다. 이미 주변의 시선과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둘이 지나가는 자리로 필드라도 펼친 것 마냥 학생들이 둘로 갈라졌다. 과연 영웅이다. 혹시 길가메쉬는 생전에 모세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이렇게 갈라질 리가 없지. 시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길가메쉬는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황급히 뛰어가 우산 안에 자리를 잡자 그가 흥, 하는 새침한 소리를 냈다.

아 정말, 그가 주는 애정은 너무 벅찼다.

아마도 이 분홍색 우산을 들고 온 이유는 가장 큰 우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나와 함께 걸어간 이유는 주변이 시끄러워 질 것 같아서 일 것이다. 큰 키와 큰 보폭을 가졌으면서도 한참이나 멀리 갈 수 있었음에도 천천히 걷는 이유는 헛수고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래도 어째선지 시로는 그가 빨래를 걷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길가메쉬의 얼굴에 시로는 황급히 몸을 뒤로 빼려고 하다가 그의 손이 등 뒤에 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들었다. “비에 젖는다.” 기다란 손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어깨를 붙잡았다. “가자.” 반사적으로 걸음을 옮긴 시로는 어깨에 붙어 있는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애정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일까. 그는 자신에게 무언 갈 바라지 않았다. 차라리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편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벅차진 않았을 것이다. 자기 멋대로 애정을 줬다. 나에게 보란 듯이 행동했다. 그런데도 그의 눈동자는 지극히 평온해서 시로는 대체 그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신호등의 앞에 멈춰서자 온갖 잡음이 주변을 둘러쌌다. 차가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 우산을 함께 쓴 여학생들의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 아저씨의 투덜거리는 소리. 비를 피해 재빨리 몸을 날리는 어린 꼬마들. 그 안에서 시로는 유일하게 다른 목소리를 잡아냈다. “시로.” 그것은 너무 작고, 희미해서 나만이 눈치 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그의 입모양이 보였다. 시로는 그것을 천천히 따라 읽었다.

 

사.

“사”

“랑”

“....한”

“....”

그가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시로는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우산이 앞으로 내려갔다. 이미 신호는 바뀐 채 둘을 재촉하고 있었다. 깜빡. 깜빡. 그 몇 초의, 시간이라고 하기도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길가메쉬가 몸을 숙였다. 입술이 맞닿은 것은 그것보다 한참 길었다. 시로는 떨어지는 입술이 매우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가자.”

 

길가메쉬가 주는 사랑은 매우 알기 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겐 너무 벅찼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그랬다. 사랑에는 원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란다. 아주 오래전 타이가가 했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얼마 없는 어른스러운 모습에 시로는 알고 있다고 대꾸했지만 타이가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시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뿐이었다. 시로는 그런 사랑이 제게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에 시로는 너무 어렸고, 경험도 없었다. 길가메쉬가 주는 애정은 모성애와 비슷한 것이면서도 자신도 무언 갈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길가메쉬.”

“음.”

 

시로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돌아오는 그의 대답에 목안에 가시가 콱 박힌 것처럼 아팠다. 어떻게 말해야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까. 어떻게 말해야 오해하지 않을까. 어떻게 말해야 그의 마음에 들까. 고민하던 시로는 고개를 젓고는 웃었다.

 

“저녁은 뭐가 좋아?”

 

길가메쉬가 고개를 들고 잠깐, 아주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시로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 촉수 같은 건 아니었음 좋겠구나.”

“오징어?”

“그래, 그거. 생긴 게 기분 나빠.”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 길가메쉬의 말에 시로가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최대한 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세 알아차린 건지 시로의 뺨을 꼬집으며 뭐가 그리 웃기냐고 되물었다. 그야, 최강의 서번트라고 불리는 영웅왕이 오징어를 무서워 할 줄은 몰랐으니까.

 

“무섭지 않다. 기분 나쁘다고 말했을 뿐이야.”

“네, 네.”

“시로.”

이크. 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시로가 미안하다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길가메쉬가 다가왔다. 허리를 붙잡은 손과 맞닿은 어깨와 속삭이는 목소리에 시로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비에 젖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는 굳이 시로에게 사랑을 말하게 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것이 제 손안에 떨어지길 기다리며 아주 공을 들이고, 오랫동안 빗어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할 말을 찾지 못해 이내 도리질만 치는 에미야 시로는 매우 귀중했다.

 

“고...마워.”

“그래.”

 

아, 이런 소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하고 있다.

'2D > 페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사] 아침점심저녁  (0) 2015.08.12
[금사] 폐허  (0) 2015.08.12
궁사 고백  (0) 2015.04.15
금사 2  (0) 2015.03.18
게임2  (0) 2015.03.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