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풀기 ~.~9
겨울은 좋은 계절입니다. 커플에게만요.....
겨울이 되면 이그나흐 강도 꽁꽁 얼어붙었다.
콜헨의 겨울은 유독 시리 추웠다. 눈이 사흘 내내 펑펑 쏟아졌다. 처음에는 밟히는 소리가 좋았다가도 제 무릎만큼 쌓인 눈을 보면 질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천장이 무너질지도 몰라. 케아라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눈도 쌓이면 꽤 무거우니까. 마렉이 거들었다. 아무리 눈을 치운다고 해도 밤새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다들 따뜻한 식사를 하고 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여관 앞에서부터 길을 냈다. 삽을 들고 눈을 푹푹 파냈다. 간밤에 내린 눈은 아침에 빨리 치워야 수고가 덜 한다. 이미 단단하게 굳은 쪽은 어쩔 수 없었다. 허크는 지들도 하겠다며 장갑을 끼는 헤기와 린의 삽을 빼앗고는 다른 이들에게 줬다. 동상 걸려본 적 있냐? 허크가 묻자 둘은 고개를 저었다. 저기 잭 보이지. 동상 걸리면 저렇게 되는 거야. 잭은 오른쪽 손에 손가락이 세 개뿐이었다. 그는 둘에게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둘이 뻣뻣하게 굳는 걸 보며 한바탕 웃던 사람들이 다시 제 일을 했다.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마족들도 몸을 사렸다. 할 일 없이 근육만 꿈틀거리며, 손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은 이들은 하루종일 눈을 파냈다. 그러다가 동상에 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다들 마족이 아니라 눈이랑 싸우다 손을 자르냐며 웃었다. 헤기는 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헤기가 들어오고부터는 사정이 나아졌다. 치유술을 쓸 수 있으니 붓고 까진 손은 금세 치유할수 있었다. 그러니까 넌 다치면 안 되지. 허크가 헤기 앞에 난로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덕분에 헤기는 종일 따뜻한 곳에 앉아있을수 있었다. 다들 손에 감각이 없을땐 헤기를 찾았다. 날이 어두워 질때쯤 사람들은 삽을 내려놓고 여관에 옹기종기 모였다. 용병들이 모여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싸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헤기는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 사이에서 허크를 찾았다. 허크는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다. 그는 삽을 구석에 세워두고는 헤기 옆에 앉았다. 손을 녹이려고 장갑을 벗었을때 꽁꽁 얼어버린 허크의 손을 봤다. 헤기가 걱정스레 바라보자 허크는 괜찮다며 웃었다. 매년 그랬어. 이 정도는 괜찮아. 금세 나아. 허크는 술잔 두개를 받아 헤기에게 내밀었다. 마실 수 있지? 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에 취한 탓인가. 허크는 다음날 아주 늦게 일어났다. 처음 눈을 떴을 땐 머리가 아팠고, 고개를 돌려서 본 반대쪽 침대엔 헤기가 없었다. 하긴 시간이 늦었으니까. 허크는 제 어깨까지 올라온 이불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창밖을 보자 아직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오면 치우기도 쉽지 않다. 금세 쌓여버릴 테니까. 안타깝지만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허크는 추위를 잘 탔다. 더위를 잘 타지 않냐면 그건 아니었는데 차라리 더운게 나았다. 전투중에는 종종 차라리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겨울에는 길이 얼어 전투를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여름이 나았다.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린인가. 허크는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는 나갔다. 이미 아침 식사는 끝난 후였다. 에른와스는 허크 몫이 남아있으니 섭섭해하지 말라고 했다. 섭섭할 것이 있나, 제가 늦게 일어난 것을. 따뜻한 스프와 빵으로 배를 채우고 고기를 으적으적 먹던 허크가 물었다. 애들은? 추운데 안보이네. 티이가 말했다. 린님은 리시타님과 함께 겨울 낚시를 하러 간다고 했어요. 허크는 감기걸려 죽으려고 환장했다며 웃었다. 헤기는 브린씨 집에 간다고 하던데. 음. 허크는 포크를 내려두고 로브를 둘러맸다. 브린의 집은 콜헨에서 가장 구석에 있었다. 눈을 어떻게 치우는 건지는 몰라도 주변은 항상 깨끗했다. 허크는 문을 열자 여러 갈래로 퍼져있는 발자국을 봤다. 커다란 것은 카록의 것일테고 좁은 보폭으로 함께 이어져 있는 건 리시타와 린의 것일 테다. 허크는 그중에서 가장 작은 발자국을 찾았다. 한 발짝, 한 발짝. 혹여나 눈에 미끄러질까 봐 더딘 걸음으로 이어져 있는 발자국.
"허크 뭐해요?"
허크는 그 발자국을 아주 오랜 시간 보아왔다. 눈이 오지 않는 날에도…한참 아래에 있는 땅에 고개를 처박으며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으니 모를 리가 없다. 행여나 넘어질까 봐, 혹여나 길을 잃을까 봐.
"들어줄게."
허크는 헤기 품에 있는 커다란 책을 빼앗아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운데 어떻게 이 눈을 헤치고 다녀왔는지. 허크는 다른 한 손으론 헤기의 손을 잡았다. 넘어지지 말라는 배려였으나 혹시 닿 을때 제 심장 소리까지 닿는 건 아닐까 숨을 죽여야 했다. 헤기의 작은 손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동상 걸린다니까. 헤기는 그 말에 웃으며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이러면 괜찮아요. 허크가 우뚝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해맑게 웃던 헤기가 고개를 들었다. 허크? 허크는 그 웃음을 아주 오랫동안 보아왔다. 왜 그래요? 헤기가 웃는 얼굴로 허크를 바라봤다. 허크는 다시 고개를 돌려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헤기가 넘어지지 않도록, 혹여나 손을 놓치지 않도록. 네가 바보같은 소릴 하니까…… 허크는 지금이 겨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귀가 빨개진 걸 들키지 않을테니까. 얼굴이 빨간 건 찬바람에 베여서 그런거니까. 그러니까… 겨울이라서 낼 수 있었던 용기였다. 손을 잡는 것. 허크는 추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헤기가 있으니까, 헤기는 추위를 매우 잘 탔다. 옷을 꽁꽁 껴입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때도 있었고, 너무 춥다며 같이 자면 안 되냐고 한 적도 있었다. 알까? 헤기가 제 마음을 알고 그러는 것일까. 허크는 잠든 헤기의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면서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봤다. 겨울이면 헤기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지곤 했다. 그래도, 네가 웃어만 준다면.
"고마워요."
헤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왜 장갑은 안끼고 나온 거야. 허크는 한소리 하려던 걸 그만뒀다. 자기도 일부러 벗었으니까.
"눈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
"……네."
눈은 밤새도록 내렸다. 지붕이 무너지면 어쩌죠? 헤기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허크는 음, 하고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럼 같이 죽지 뭐. 죽을 생각이 전혀 없는 목소리였다. 헤긴 그게 뭐냐고 웃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았다. 강이 꽁꽁 얼어붙어도, 눈이 내려 무너질 것 같은 천장도. 차갑게 식은 손도.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내딛는 걸음도.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계절이었다. 겨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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