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는 아직 말랑말랑한 어린 아이 같은 손바닥은 스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에그시는 항상 자신의 손을 보며 소녀 같은 손이라고 하며 투덜거리곤 했다. 남자가 이게 뭐에요? 전 좀 더 남자답고 싶어요. 앙증맞다고 하면 앙증맞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살피던 에그시가 해리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살폈다. 해리 생명선 엄청 기네요. 난 짧은데. 손가락을 가지고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에그시는 조금 실망한 듯. 그렇지만 재밌다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믿는 건 아니에요. 진짠데? 해리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들고 있던 펜으로 에그시의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긴 선을 그었다. 으악! 에그시가 급히 손을 떼다 그만 옆으로 비죽 튀어 나가긴 했으나 상관없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만 같았던 에그시가 잠잠해졌다. 길어졌지? 해리의 말에도 에그시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에그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손 씻으면 다 지워질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쁜 것을 숨기지 않았다. 고마워요.
에그시의 시체를 눈앞에 뒀을 때 해리는 조용히 칼을 들고 묶여 있던 손발을 풀어냈다. 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아주자 마른 피가 자국을 남겼다. 어린 아이 같던 손은 어느새 딱딱한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자신에 비해 한참 여렸지만, 에그시는 어렸다. 손에는 아직 선 자국이 남아 있었다. 비죽 튀어나간 볼품없는 선이. 몇 번이고 다시 그은 듯한 자국.
해리는 록산느가 대신 가겠다던 에그시의 집에 찾아갔다. 날아온 것은 차가운 물벼락이었다. 당신 결국 또!!! 여인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도 해리가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그래야만 했던 것은 그 순간마저 스파이로서의 의무를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해리는 미쉘에게 고개를 숙이곤 메달을 탁상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피했다.
가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지. 그 자제가 명분이니까. 입 안이 썼다.
그 애의 가족이 되어 주고 싶었다. 해리는 에그시에게 솔직해 질 수 없었다. 같이 살 수는 있었지만 사랑은 할 수 없었다. 같은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장례식이 있었지만 갈 수 없었다. 에그시에게 해리는 그 무엇조차 될 수 없었다. 가족도 연인도 하다못해 친구도 될 수 없었다. 내려앉은 침묵위에 무너진 한숨을 해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