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x렌조
2012~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집안을 벗어났다. 오랜만에 나온 바깥은 아주 상쾌했다. 대체 얼마만인지…렌조는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산으로 올라가 바위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직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때문에 눈앞이 어질어질 했다. 아무리 집안이 안전하다지만 그곳은 너무나 숨막히고 답답했다. 하루종일 들려오는 경을 읊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생각해보니 난 엑소시스트가 되고 싶은게 아니었잖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평범한 학교에 입학해서 평범한 친구도 사귀어 보고 여자친구도 만들어보고, 또 킨조형 처럼 밴드도 해보고 싶었다. 꿈꾸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런 평범한 날따윈, 시마 가(家)에서 태어난 그 날부터 나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마장을 받은 사건 이후 난 평범과는 완전 거리가 멀어졌다. 아직도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작은 악마들이 보인다. 모르는 척 하면 되는 거지만 역시 눈앞에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젠장…!!"
눈앞의 악마들을 휘휘 손으로 치워버렸다. 하지만 금세 모여들어 어지럽게 했다. 눈을 감은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큰 나무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뺨위로 무언가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비?' 하고 눈을 떴을땐 이미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너 내가 보이는구나?
*
문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에 주조의 이마에 사거리마크가 떠올랐다. 집중집중집중 하며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문이 쾅 열리더니 킨조가 들어왔다. 네녀석일줄 알았다. 주조는 수행은 안하고 왜 왔냐는듯 그를 쳐다보았다. 킨조가 주조 에게 말을 했으나 주조는 알아듣지 못했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을 말하니까 그렇잖아!
"요점만 말해!"
"아 진짜!! 렌조가 사라졌다고!"
*
황급히 몸을 굴려 악마를 피했지만 그게 다였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도망치는 것도 무리였고, 석장도 부적도 없었다. 영창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아직 다 알지 못했다. 이렇게 무력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악마는 자신을 바라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악마는 금세 모습을 바꾸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바뀐 악마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며 웃고 있었다.
-어이 너, 마음속이 갈등으로 가득차있구나
"무슨…!"
악마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방어도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뒤로 한걸음 물러난 렌조를 보고서 악마는 또 웃었다.
-아하하하하하ㅡ, 뭘 그리 놀라시나 겁쟁이군.
"뭐하자는 거야!"
렌조의 외침에 악마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그를 째려봤다. 분명 같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세와 위압감에 코끼리 앞의 개미가 된 기분이었다.
-네가 너무 한심해서 그러잖아. 겁쟁이군
"뭐!"
-대체 뭐가 좋은건지도 모른 채 허구언 날 웃기만 하는 네 녀석이 한심하다. 제 의견은 말하지도 못한 채 도련님이라는 새끼한테 끌려다니는 꼴하고는,
"그건 내 의지였어!"
-의지? 네가 그녀석을 따라다니며 선택이나 결정을 한적이 있나? 네가 시마가(家)에서 태어나 무엇하나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 적은 있나? 그렇다고 형들이 너를 걱정해 준적은 있나? 하나같이 도련님,도련님!! 그 망할 자식 때문에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그 도련님은 알고나 있나? 모를거야. 아무도 모를거야!! 형도! 아버지도! 류지도!! 아무도 몰라!
"…으…"
-하지만 그렇게 웃지라도 않으면 안 돼. 힘들다고 하고 그만둔다고 하면 누군가가 너에게 관심이라도 써줄까? 그렇게 한다면 너를 '시마 렌조'로 봐 줄까? 아니야, 아니잖아. 너를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형들도 아버지도 아무도 너를 봐주지 않아. 알고 있잖아.
"……"
-불쌍하게도…
"으아아아악!!"
주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직 어린녀석이 마장을 받은 것도, 위로는커녕 화를 내버린 것도 자신이었다. 그 큰 방안에 혼자둔것 역시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렌조를 엑소시스트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살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이상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은 무척 위험하고 험난할 것이므로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에겐 알리지 않고 최소한으로 온다고 온 게 너무 늦어 버린건 아닐까 초조함에 더더욱 빨라졌다.
"렌조!!"
킨조가 먼저 그를 발견하고 뛰어갔으나 금세 발걸음을 멈췄다. 절벽 끄트머리에 서 있던 렌조가 서서히 뒤를 돌았다. 상처가 터져버린건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울고 있는 아이의 뒤에서 강한 기(氣)가 느껴졌다. 좋지 않은 기운에 서서히 뒤로 물러선 킨조가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영창 준비한다."
"형…"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걸 책임지겠다. 준비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영창을 외기 시작한 킨조를 뒤로 한채 렌조에게 다가갔다. 서서히 뒤로 도는 녀석은 이마의 상처가 터져버린 건지 얼굴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돌아본 녀석은 울고 있었다. 내가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녀석은 한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은 안돼, 손을 뻗자 탁 쳐내었다.
"렌조…"
"오지마 형, "
목소리에서 울먹거림이 묻어났다.
"왜 왔어, 나같은거 하나 없다고 집안이 안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왔어!!"
무언가 씌여도 단단히 잘못 씌였다. 악마라기 보단 신(神)이 들린것 같았다.
"도련님은 어쩌고 나를 찾아왔어!! 왜!!"
"렌조!"
영창이 끝났는데도 렌조의 외침은 끝날 줄 몰랐다. 아아, 그제서야 이해했다. 녀석은
발을 헛디뎌서 절벽아래로 떨어지려는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손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녀석의 몸이 뜨거웠다. 살갗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녀석을 간신히 끌어올리자 녀석이 허망한 눈으로 쳐다봤다.
"살았다…"
"왜…왜 살렸어!… 왜!"
녀석이 원망스럽다는 목소리로 멱살을 붙잡으며 울음을 토해냈다. 미안해, 미안. 녀석을 끌어안고서 있었다. 몸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영창이 아예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는지 나쁜 기(氣)가 사라져 가는게 느껴졌다.
"동생이니까."
"……."
"소중한 동생이니까 그렇지, 넌 내 무엇보다 소중한 동생이다."
"……"
"도련님보다도 명타보다도 가족이 소중한게 당연하잖아. 네가 싫다면 엑소시스트도 시키지 않으마, 뭐 평생 끼고 살지"
"…형…"
"그러니까 그만 울어. 뭐가 예쁘다고 계속 울어"
엉엉 우는 녀석의 이마에 살짝 입맞췄다. 아직도 이마가 뜨겁다. 열이 있나, 상처는 아물었는데 말이지
뒤에서 둘을 쳐다보던 킨조가 한마디 던졌다.
"꼴값을 떨어라"
"시끄러"
기숙사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시마家 렌조는 뭐지? 하며 뜯어보며 내심 손이 떨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지? 하며 봉투를 찢고는 내용을 확인했다. 곧이어 다가온 스구로와 코네코가 뭐냐며 물어왔고, 렌조는 하하 웃으며 내용을 보여줬다. 둘은 놀란듯 그 내용을 읽으며 벌써? 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렇게 됐나보네요."
그렇게 웃고 있는 렌조의 미소가 굳어져 있다는것을 둘은 눈치채지 못했다.
오랜만에 보는 고향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었다. 여전히 촌구석- 이라고 생각한 렌조는 문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도련님과 코네코는 본가에 가 있겠다며 집부터 다녀오라고 먼저 가버렸다. 혼자 오는게 어색한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웠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문을 끼익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하면 제일 먼저 달려올 어머니와 킨형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렌조가 신발을 벗고선 복도를 거닐었다. 이상하게 조용한데? 킨형이 있는 집안이 조용하다는게 이상했다. 조심조심 걸어가보면 안방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화가 난 아버지의 목소리에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서 있자 곧이어 주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언가 때리는 소리에 당황한 킨형과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갑작스레 열리는 문에 나는 당황해서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시야가 가려져 킨형과 어머니, 아버지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의 주형은 확실히 괴로운 표정이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데 주형이 그 손을 잡아왔다.
"주형…"
"험한 꼴을 보였구나…"
그러면서 내 손을 이끌고 안방에서 멀어지는데 나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형을 따라갔다. 뒤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를 무시한 채 주형의 방에 들어가면 그제서야 주형이 손을 놓아주었다. 잡은 손이 아직도 뜨거웠다.
"형…피가"
"렌조, 이리와"
무릎을 툭툭 두드리는 형에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나이가 몇인데 하면서 투덜거리면서도 형에게 다가가 안겼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는 형에게 몸을 맡겼다. 연륜의 차이일까, 경험의 차이일까, 형의 키스는 정말 능숙하고 기분 좋았다. 그런거에 약간 질투심을 느껴 목에 팔을 두르면 형이 살짝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서서히 키스농도가 짙어지면 바닥에 몸을 눕히고는 주형을 바라봤다. 손을 뻗으면 이렇게 손을 잡아주는 형인데 오늘 조금 이상한것 같아
"렌조…"
"…응…"
티셔츠 안으로 들어오는 손에 빨개진 얼굴을 어찌할 바 몰라 눈을 질끈 감으면 그제서야 형이 손을 거두어 들였다. 어라? 형, 하고 의문스럽게 바라보면 형이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형 어디아파? 하면서 손을 뻗으면 다시 손을 잡아왔다.
"형…"
"미안하다. 오늘은 그만 가봐"
정사후의 형은 상냥했다. 티슈로 닦아주는 손끝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큰손도 졸리다며 투정부리면 끌어안아 주는 넓은 어깨도 너무나 좋았다. 이불 위로 늘어져 있는 렌조를 보고서 그는 쓰게 웃었다. 렌조가 형? 하고 지친 목소리로 불러오면 그는 왜 하면서 티슈를 꺼내 들었다.
"아니… 오늘따라 조금 이상한것 같아"
그래? 하면서 닦아내오는 손끝은 여전히 다정했는데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끝이 닿는 부분마다 발갛게 데인것마냥 뜨거워졌다. 정사후 민감해진 피부는 조금 스치기만 해도 흠칫흠칫 거렸다. 그때마다 이불을 꽉 잡고 입술을 악무는 렌조는 사랑스러웠지만 그만큼 걱정도 컸다. 완전히 남자에게 익숙해진 몸이었다. 여자가 좋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안겨오는 아이였다. 이제 며칠 후면 이 아이는 정십자 학원에 들어가 삼년간 보지 못하게 된다. 자신은 여자여도 상관없지만 렌조는 달랐다. 이미 알아버린 성욕처리를 누구에게 할 것인가 에 대해 생각하면 그의 머리가 아파왔다.
어쩔 수 없는 독점욕에 그는 렌조의 발목을 잡고 다시 다리를 벌리게했다.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다리를 벌리는 아이를 보고서 그는 허벅지에 입술을 묻었다. 이미 울긋불긋하게 남아있는 자국 위로 다시 한번 입술을 내리면 다리를 작게 떨어오며 움찔거렸다.
"렌조… "
"아,… 응 형… "
너는 다른 남자에게도 이렇게 다리를 벌릴 것인가? 그렇게 묻자 렌조가 그를 노려봤다. 그럴리가 없잖아. 하고 말해도 그것을 알고 있어도 본능이라는건 성욕이라는건 스스로 누른다고 다 눌러지는 것이 아니기에 특히 남자의 몸으로 자제한다는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렌조… 발목이 가늘구나… "
꽉 쥐어진 발목은 한 손에 잡힐 정도로 가늘어 금방이라도 부러뜨릴수 있을것만 같았다. 서서히 쥐어지는 힘에 렌조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무표정으로 렌조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의 형과는 다른, 형이라기보단 독점욕에 물든 남자의 눈을 하고 있는 그는 중얼거렸다.
"코네코마루도 있는데… 굳이 네가 도련님 옆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 형… 무슨… "
"엑소시스트가 되지 않아도 좋아… 이대로 내가 거두어줄 테니… "
"하지마, 그만둬 형!"
"렌조… "
"형, 주형!!"
얼마후 무사히 도교행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된 렌조는 도련님이 부르는 소리에 네- 하고 대답했다. 아직도 멍자국이 남은 발목이 욱신거려 걸을 때마다 아파왔지만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 그때 당시 형을 이제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형은 그 후 나와 아무런 관계도 가지지 않았고 나와 눈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배웅 정도는 해줄 줄 알았는데 출발시간을 십분남겨둔 이때까지 형은 비치지 않았다. 결국 기차에 오르고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보면 그제서야 멀리서 비춰오는 형이 보였다.
"형… !!"
"렌조… "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형이었다. 품에 뛰어들어 안기면 형 특유의 어른스런 향기가 퍼져와 안심이 됐다. 그런 렌조의 어깨를 꽉 붙잡은 그는 작게 숨을 몰아쉬며 렌조의 귓가에 속삭였다.
"렌조 잊지마라… "
"… … "
"형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소름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에 렌조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올려다본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 모습에 악마를 본것 처럼 놀란 렌조가 그를 밀어내려고 했으나, 오히려 렌조의 머리를 붙잡고 다시 끌어당겨 입을 맞춘 그는 렌조가 숨이 차다며 눈물이 뚝뚝 흐를때 놓아주었다. 멀리서 도련님이 빨리 오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다녀오거라"
"… 응, 형"
"잊지마라 렌조… 네가 누구의 것인지"
"… 하아… 하… "
"누구밑에서 발버둥치든 잊지마라 "
"… 형… "
"오늘을 잊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