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악마의 유혹같았다.
너의 손이 나에게 뻗어왔을때 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맞잡으려고 했다. 너는 평소의 내가 알던 너와 너무나 닮아서, 그래서. 나는 네가 저지른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순간 나를 부르는 형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내가 멈칫하고 뒤돌아보며 멈추자 네가 아주 슬픈표정을 지었다.
-같이 가자
어디로? 묻고 싶었다.
오쿠무라 유키오가 죽었다. 너를 지키다가 네 동생이 죽었어 린. 그 말을 하자 넌 마치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듯 폭주했다. 순간 나를 생각해주지 않았다는 것에서 화가 났고, 유키오가 죽었다는 것에 질투를 느낀 나를 경멸했다. 차라리 나도 죽었다면 너가 나를 위해 울어줄까 생각했다.
넌 정말 사탄의 아들이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네가 울었다. 아니 눈물을 흘렸다. 뚝뚝 하고 울었다. 그러면서 싫어? 하고 물어봤다. 난 싫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과 네가 우리 가족을 해쳤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어째서 린 너는 악마인거야, 대체 왜 하필이면 사탄의 아들인거야, 그렇게 물었다.
-렌조, 너는 어째서 인간인 거야
아, 그렇게 말하자 대답할 수가 없었다. 린은 평소보다 더한 살기를 내뿜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것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를 안아주지 못했다. 그의 불꽃이 온 세상을 태워버릴듯 활활 타올랐다.
-나와 같이가자 렌조
나에게 뻗은 손을 나는 결코 붙잡지 못하리라, 그것을 알면서도 너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매점에서 사온 빵을 텁 물은 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바쁘더라도 도시락은 챙기는게 나을거라는 결론을 얻은 린이 쿠로의 머리를 잠깐 쓰다듬어 주더니 이내 빵을 모조리 털어 넣어버렸다. 요즘 임무로 바쁜데 선생까지 맡아버려 밥먹는 시간까지 아까운 지경이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조금 있으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 날로부터 벌써 백년이란 시간이 흘러 있었다.
I Believe
모처럼 스구로와 코네코가 없는 둘만 있는 시간이었다. 린은 주변을 휙휙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렌조의 허벅지위로 머리를 뉘였다.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 같아서 렌조는 풉 하고 웃을수 밖에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린이 기분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그 손을 덥석 잡은 린이 짓궂게 웃었다. 뭐 어떤가 우린 이제막 사귀는 사이가 되었는데, 린은 손을 잡고는 따뜻하다며 웃었다. 봄이니까, 하면서 웃는 렌조에게 자신의 손발은 늘 차가워서 유키오가 싫어한다고 했다.
"난 시원해서 좋은걸"
그래? 린이 깍지를 끼며 웃었다. 아, 그리고 손발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데, 렌조가 키득거렸다. 거짓말 하면서 같이 웃던 린이 손등에 키스하며 눈을 감았다. 이런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이렇게만 있었으면 좋겠다…"
"……"
렌조가 웃었다. 아주 슬프게, 아주 슬프게 웃었다. 그 이유를 알아버린 나도 웃을수 밖에 없었다. 아주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은듯. 손을 뻗어 얼굴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퍼졌다. 이 온기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니 슬퍼졌다. 옷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면 그 숨결이,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왔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가고 싶다. 렌조가 흘리듯 말했다. 바다? 하고 되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학원과 수련을 동시에 하는 린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둘이서 따로 어디로 간적이 없었다. 임무로 나간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개판이 되어서 돌아온 기억 밖에 없었다. 린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이 맘때쯤에 다시 만나는게 어때?"
그러자 렌조가 좋은 생각이라며 웃었다. 난 그것을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다. 바다에 가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대체 그게 뭐라고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었다. 정십자 학원을 졸업하고 우리는 더욱 바빠졌다. 연락해 라며 웃는 너를 보고 나는 눈물이 핑 돌것 같았다. 이게 뭐야. 우리는 겨우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되버렸다. 그래도 가끔 교토로 출장을 가거나 하면 만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못다한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웃었다.
"렌조!!"
닿아라, 닿아라, 제발 닿아라
허탈하게 웃으며 쓰러지는 널 안은 나는 황급히 주변을 벗어났다. 어째서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너는 내 옷깃을 붙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꺼져가는 숨, 차가워지는 손끝이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 옷을 붙잡는 손에 힘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 이상 필사적이라 나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예전의 따뜻했던 넌 어디에도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 지고 점점 차가워졌다.
"린…린,린"
"응…"
"좋아해…"
"응…"
린은 신을 믿지 않는다. 만약 신이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이토록 불행하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 진짜 신이 있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빌고 싶었다. 제발 이 사람만은 빼앗아 가지 말라고, 이 사람은 안된다고, 언젠가 헤어질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식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었다. 눈이 감기려 하고 손에서 힘이 빠져 옷을 놓치려 할때 린이 렌조를 불렀다.
"렌조"
"……"
"미래에서 기다릴께…, 꼭 와야해, 꼭…"
그러자 렌조가 푸시시 웃으며 어 하고 대답했다.
그것이 벌써 백년전의 이야기 였다. 이미 자신의 친구들은 세상을 떠났고, 그들을 기억하는 이 조차 없다. 그저 기록속에 남고,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이야기였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제는 바빠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난날일 뿐이었다.
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학생명부를 살폈다. 대체 어떻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메피스토의 추천으로 들어왔다니, 결코 평범한 학생이 아닐꺼라 예상했지만, 이건 예상을 벗어나 자신이 놀랄수 밖에 없었다. 사진속 학생은 생각보다 너무나 평범하고, 그리고…
"선생님!"
한 학생이 린을 크게 불렀다. 화들짝 놀란 린이 학생명부를 덮고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뭐가 응이라는건지, 학생은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왜부르셨어요"
"아, 아하하하…렌조"
검은 머리카락이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린은 렌조에게 옆에 앉아보라고 하고는 성적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렌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자신도 학기초반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터라 이런 소리 하고 싶진 않았는데 선생이다 보니 어쩔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심 유키오가 내 성적을 보더니 한숨을 내쉰게 생각났다.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에로책 걸린 벌로 교실 청소다."
어쩜 이런것 까지 빼 닮았을까 생각하며 린은 빨간 표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렌조는 한번만 봐주라며 매달렸지만 절대 그럴수 없다는듯 네가 자꾸 이러면 이 책을 버려 버린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했다. 오래전 렌조가 형들에게 협박당하는걸 봐서 혹시나 했을 뿐이다.
"…치사해…알겠어요! 하면 되지! 하면!"
어라? 예상밖의 전개에 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애의 평소 성격을 보아해선 절대 한다고 할 애가 아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렌조를 붙잡은 린이 그의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순간 심하게 발버둥 치는 렌조를 힘으로 눌렀다. 잠깐, 잠깐이면 된다니까, 린이 소리쳤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진속 렌조는 머리카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확실히 보였다. 이마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상처-마장이, 대체 무엇? 이라고 묻자 렌조가 손부터 치우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어릴때 악마한테 받은거에요"
"…뭐?"
"아씨… 제가 저번에 말씀안드렸나? 어릴때 산에서 놀다가…"
이럴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어째서, 린이 자리를 뛰쳐나갔다. 멀리서 렌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에라도 알아야 겠다. 저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체 누구인데 자신을 이렇게나 뒤흔들어 놓는것인지. 이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언제나 그랬다는듯 메피스토가 웃으며 앉아 있었다. 마치 올것을 알고 있었다는듯 두잔의 차까지 준비해서 말이다.
"저 애 누구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 녀석, 시마 렌조 네 추천으로 들어온 아이 말이야!"
"아아… 그 아이 말이죠. 그건 그쪽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린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제서야 단정했던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알아들을수 있게 말해!"
"……형님한테 말버릇이 없군요. 언제나 신중하지 못한 오쿠무라 린군."
윽. 린이 정곡을 찔린듯 내리쳤던 손을 거두었다.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흥분해 버리면 안되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저쪽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메피스토는 혀를 쯧쯧 차며 자리에 앉아보라고 말했다.
"말했다시피 전 그 아이에 대해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하지만 궁금한게 있다면 대답은 해드리죠."
싱긋 웃는 메피스토는 정말 사람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대부분 -모릅니다. - 가 다였고, 슬슬 뚜껑이 열리려던 찰나 린이 마지막이라며 물어왔다.
"혹시, 백년전 영창기사 시마 렌조라고 기억하고 있어?"
"영창기사라… 글쎄요. 워낙 스쳐지나간 학생들이 많다보니"
"그럼 당신은 신을 믿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메피스토는 예? 하고 되물었다. 하지만 이내 미소를 띄우고는 웃었다. 웃기지도 않는 질문이었다. 그- 메피스토 펠레스 에게 신을 믿냐고 물어보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건 사람 나름이죠. 전 믿지 않지만, 마신이 있다면 그쪽도 다른 신이 있겠죠. 신이라는건 애초에 사람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허상이니까"
그렇지? 린이 웃었다.
"나도 신은 믿지 않아"
오늘도 역시나 매점에서 빵이었다. 린은 허탈하게 허공을 바라봤다. 결국 건진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우연이었던 거다. 모든게 우연의 일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무언가가 콧잔등 위로 쿵 떨어졌다. 무슨 짓이냐며 말할 틈도 없이 옆에 털썩 앉는 렌조를 보고서 린은 멍하니 쳐다볼수 밖에 없었다.
"어제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제 책 주셔야죠."
"……청소 안했잖아."
"주스사줬잖아요."
이건 매점에서 파는 가장 싼 주스잖아. 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싫음 내놔요. 하며 빼앗아 가려는걸 잘마실께 하고 따버렸다. 결국 마실꺼면서 튕기시긴. 렌조가 중얼거렸다. 평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어디두고 온건지 한가로워 보이는 렌조를 보며 린은 정말 닮았다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쿠로에게 장난을 치고 있던 렌조가 네? 하고 되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돌렸다.
흐응. 렌조가 빤히 린을 바라보며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이런건 닮지 않아도 되는데, 린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 시선을 무시하자 렌조가 저 갈래요. 하면서 일어났다.
"어? 왜?"
"선생님이 자꾸 절 피하시잖아요. 불편한것 같은데 그냥 갈께요."
쿠로도 나중에 봐. 하면서 손을 흔드는 녀석을 나도 모르게 잡아버렸다. 순간 전해져 오는 온기에 눈물이 핑 돌것 같았다.
"선생님…손이 정말 차갑네요."
그래서 싫어? 하고 묻자 렌조가 고개를 저었다.
"시원해서 좋은걸요."
"……"
"그리고 손발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잖아요."
여름다가오기 때문에 그런말을 하는건지도 모른다. 저건 누구나 한번씩 들어본 말이라 하는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그 얼굴이, 목소리가, 온기가 향기가 모든것이 너무나 닮아 있어서
"선생님?…어, 왜,왜 울어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백년전 약속을. 바다에 가자고 하자던 네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 급속도로 렌조와 나는 친해졌다. 교사와 학생이라기 보다는 정말 친구같은 사이였다. 그때 울어버린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렌조는 그때 이후로 그 얘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불편해 한다는걸 알아서 일까,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에 렌조가 중얼거렸다. 바다에 가고 싶다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그 익숙함에 린은 웃어버렸다. 학생들은 다 바다를 좋아하나봐?
"바다에 가면 비키니 누님부터…"
"…기각"
저런건 닮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에로책을 들킨 이후부터 녀석은 틀려먹었다. 녀석은 습관처럼 내게 달려와 안기거나 허벅지 위로 머리를 뉘이거나 했다. 난 그것이 나쁘지 않아 그대로 두었더니 이제는 잠까지 자고 있었다. 하루는 녀석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핑크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그제서야 나는 아, 저녀석은 검은 머리가 어울리는 거였구나 했다. 그때 나는 왜 하필이면 핑크일까 했다. 저도 모르게 촌스러워 라고 했는데 렌조가 그렇게 심한말을 할 수 있냐며 다시 검은머리로 물들이고 나타났다. 사실, 너무 잘 어울려서 그랬다. 저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리게 하니까,
자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짧게 친 머리카락 사이로 마장이 보였다. 그럼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 상처에 입을 맞췄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이대로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저도 모르게 또 생각해 버렸다.
믿을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렌조를 보며 린은 고개를 숙였다. 경멸도, 비난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학생에게 자신은 품어서는 안되는 마음을 품어버렸다.
"선생님. 종쳤어요."
그것을 모르는척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다. 그것은 거절과도 같은 의미였으니까. 주먹을 꽉 쥔 린이 그를 불러세웠다.
"왜요?"
"내일 시간있어?"
내일 시간있으면 바다나 가지 않을래? 재밌을꺼야, 그러니까. 중얼거리는 린을 바라본 렌조가 웃었다. 그때와 똑같이 슬프게 웃었다.
"약속있어요. 죄송해요."
그래? 어색하게 웃었다. 난 그때와 같이 침착하고, 담담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사실 나도 약속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실 약속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지키지 못했던 그 약속 때문에 나는 아직도 이 장소에서 그 녀석을 기다리는게 버릇이 되었다. 간단하게 사복을 차려입은 나는 오늘이 주말이라는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쿠로, 다녀올께. 이 날짜. 이 시간이 되면 쿠로는 당연하다는듯 집안에 남아있었다. 응 린. 하며 집을 지켰다. 쿠로 어른스러워 졌구나. 그렇게 말하자 너보다 어른이었다며 그르릉 거렸다.
난 신을 믿지 않는다. 운명이라느니, 신이라느니 다 헛소리에 불가했다. 내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신이 왜 필요할까. 린은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도 신의 농간일까 생각했다. 아니면 진짜 내가 신이기 때문에 녀석이 내 눈앞에 서 있는 걸까. 아니면 모든게 꿈일까,
"약속있다며…"
"…선생님이야 말로 한가한거 아니었어요?"
"그 호칭 그만둬"
"……"
"내 이름을 불러주면 안 돼?"
입술을 깨무는 렌조를 보며 이제 확신이 들었다. 있을수 없는 일 따위 없었던 거야. 나는 믿었다고, 너를
가까이 다가간 린이 그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얼굴. 뭘 참고 있는거야 드디어 만났잖아.
"……늦게 와서 미안, 린"
그게 문제였던거야? 린이 웃었다. 왜 울어, 린이 짧게 입을 맞췄다.
"미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잖아…왔으니까 됐어"
End
중간에 린이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한 이유는
절대 환생이라고 믿지 않는 다는 자기 암시 같은 거
그 웃는 얼굴이 어색하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한 걸음 뒤쳐지는 그 걸음걸이가 결코 느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 함께 걷지 않았고, 그 귓가에 이름을 속삭여주지도 않았다. 그 웃는 얼굴이 어색하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지만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곧 걸음을 바로잡고, 고개를 들어올린채 다시 끔 미소를 지었다. 완벽해. 하고 말 할 수 있을 만큼의 미소는, 내가 봐도 정말 완벽했다. 정말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 하고 말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결코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엄격한 집안이라 하더라도 막내는 막내였던 거다. 특유의 어리광이 묻어나 조금 귀찮은 행동을 하는 그는 자주 울었다. 여자애들 한테 거절당했어- 이즈모가 날 거절했어- 도련님 너무해요- 하며 자주 울었다. 최근에는 그가 벌레가 무섭다며 달려온 적이 있었다. 한심하게 그게 뭐야, 하고 말하면 진짜 무서운걸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를 살살 달래며 등을 두드려주면 곧 다시 웃는게 역시 막내구나 생각했다.
눈이 웃질 않고 표정 역시 굳어졌다. 움찔 한 어깨는 축 늘어졌고, 손끝이 벌벌 떨려왔다. 곧이어 그 동그란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면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뺨으로 눈물이 타고 흘렀다. 손으로 닦아보고 눈을 막아 보려고도 하나 그것은 쉽지 않은듯 했다. 닦으면 다시 흘러 눈물 자국을 만들고 눈을 가리면 손틈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작게 떨리는 어깨를 잡고 안아주면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어깨에 얼굴을 묻어왔다. 하얀 교복위로 눈물이 묻어나왔다. 코를 훌쩍 거리는 소리와 목이 메이는 소리가 났다. 손은 옷을 꽉 쥐고 놔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꽉 잡아왔다. 옷의 주름이 꾸깃꾸깃 해지게 나고, 힘이 풀린 몸을 지탱하고 있으면 더 큰 소리로 울음소리가 샜다.
"오쿠무라군, 오쿠무라…"
"응, 응 시마"
"오쿠무라군… 나… "
무언갈 토해내듯 내뱉은 말은 그간 그의 고통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 사실은… "
"시마!!"
애절한 린의 외침이 들리면 시마는 미소지었다.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할 만큼, 모든걸 포기한듯 한 미소를 지었다.
인상을 찌푸린 그를 보며 시마는 웃어줘야 겠다고, 안아줘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린이 자신의 남동생을 찾고, 황급히 구조반을 부르면 몸이 붕뜨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따뜻한데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평소완 다르게 이번엔 죽는 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쿠무라군, 하고 입모양으로 그를 부르면 단 한번도 이름을 불린 적 없던, 나와 같은 그가 내 손을 꽉 잡아왔다.
눈을 살짝 감는 시마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에 린은 그를 불렀다. 그럼 작게 눈을 뜨며 살며시 웃었다. 곧 있으면 유키오 녀석이 올거야, 하고 말하는데 그의 마장은 이미 너무 크고 벌어져 있었다. 분명 자신이 살수 없다는 것을 아는 시마와 그를 살릴수 없다는 것을 아는 린이었지만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손에 힘이 점점 풀려가는 걸 느끼면 린이 불안한 듯 그를 불렀다. 시마의 인상이 찌푸려지고 눈에 물기가 고였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두번째로 보는 진심이었다.
"… 시마?… "
"…… 린… "
"………… "
눈을 감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있다. 아직 남아있는 손의 온기도 곧 있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가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불렀지만 진짜 부르고 싶었던 이름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시마?"
황급히 달려온 것일까, 거친 숨을 내뱉는 스구로의 목소리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그것은 뒤의 시마 주조와 킨조도 마찬가지 였는지 조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미동도 없는 둘을 보고서 순간 이해가 가지 않은 건지 스구로가 시마를 다시 한번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가 도쿄에 남겠다고 한지 오년만의 재회였다. 목소리는 간간히 들었지만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였다. 그 재회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 진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얀 시트가 새빨갛게 물들고 창백해진 얼굴로 잠이 든것 처럼 눈을 감고 있는 시마를 보고서 스구로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절망인지 이것을 대체 누구에게 풀어야 하는지 모른채, 갈 곳 잃은 감정이 린에게 쏟아졌다.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면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렌조… "
분명 함께 나란히 걷고 싶었을 것이다. 분명 이름을 불리고 싶었을 것이고, 슬플때는 울고, 기쁠때는 진심으로 웃고 싶었을 것이다. 그 미소가 어색하게 된 것은 언제나 웃고 있어서 였을 것이고, 분명 누군가가 알아차리길 기다렸을 것이다.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지만 네가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불러준것은 너를 좋아한 나를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을 것이다.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사실은
평소와 같은 악마 소환수업시간이었다. 조금 다른 것은 오쿠무라 린이 개인 수련으로 인해 수업을 빠진다는 것 뿐이었다. 어차피 안될거 왜 하는지 몰라, 시마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하얀 종이위를 바라봤다. 조잡하게 생긴 마법원, 이라고 생각하며 김빠지게 웃으면 도련님이 집중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주문도 없는데, 적당히 둘러대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옆의 이즈모와 시에미가 각각의 사역마를 불러냈고, 도련님과 코네코는 역시 센스가 없어, 하며 안된다는 듯 종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나는게 없어, 하고 바늘로 손끝을 찔러 종이에 문지르면서 생각했다. 오쿠무라 군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 가슴큰 여선생과 일대일 수업이라니 조금은 두근두근,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종이가 갑자기 푸른 불꽃에 휩쌓였다. 어라? 하고 보면 당황한듯 보이는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을 뒤로하고 손을 따라 온몸에 푸른 불꽃이 휩쌓였다.
"시마!!"
온몸이 오싹해지고 주변을 삼킬듯 일어나는 불꽃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뒤로 물러나게했다. 그 몇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 몇시간 처럼 길었고, 순간 온몸을 누르는 무게에 뒤로 넘어지면 불꽃도 사라지도 없었다. 머리를 박은듯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면 거기엔 조금 풀린듯한 눈을 한 린이 위에 있었다.
놀란 것은 주변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과 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것은 사탄의 아들, 아무리 각성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최고위급을 자랑하는 악마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막히고, 재능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오쿠무라?!"
"오쿠무라군?!!!"
어째서?! 하고 말하면 린은 알아듣지 못한건지 시마의 멱살을 붙잡았다.
"시마…"
"오,오쿠무라군? 어디서 나온거야?"
"너…맛있는 냄새가나"
"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에 입술을 가져다댄 린이 으득 하고 살을 씹었다. 악, 하며 비명을 지른 시마에게 린이 시익 웃으며 마주봤다. 마치 뱀파이어에게 물린듯 목이 빨갛게 되고, 상처가 생겨 피가 조금 흐르면 시마가 울것만 같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오쿠무라 적당히 하라고…!"
뒤에서 말려오는 스구로의 팔을 뿌리친 린이 시마를 붙잡고 입술을 부딪치면 주변이 정적이 되었다. 민망할 정도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와 입술 부딪치는 소리에 이즈모가 소리쳤다.
"조, 종이를 찢어!!"
그러면 시마가 놓친 종이를 스구로가 황급히 찢었고, 어라? 하며 매서운 눈으로 뒤를 돌아본 린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평소와 같은 악마 소환수업시간이었다. 조금 다른 것은 오쿠무라 린이 개인 수련으로 인해 수업을 빠진다는 것 뿐이었다. 어차피 안될거 왜 하는지 몰라, 시마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하얀 종이위를 바라봤다. 조잡하게 생긴 마법원, 이라고 생각하며 김빠지게 웃으면 도련님이 집중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는 주문도 없는데, 적당히 둘러대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옆의 이즈모와 시에미가 각각의 사역마를 불러냈고, 도련님과 코네코는 역시 센스가 없어, 하며 안된다는 듯 종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나는게 없어, 하고 바늘로 손끝을 찔러 종이에 문지르면서 생각했다. 오쿠무라 군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 가슴큰 여선생과 일대일 수업이라니 조금은 두근두근, 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종이가 갑자기 푸른 불꽃에 휩쌓였다. 어라? 하고 보면 당황한듯 보이는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을 뒤로하고 손을 따라 온몸에 푸른 불꽃이 휩쌓였다.
"시마!!"
온몸이 오싹해지고 주변을 삼킬듯 일어나는 불꽃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뒤로 물러나게했다. 그 몇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 몇시간 처럼 길었고, 순간 온몸을 누르는 무게에 뒤로 넘어지면 불꽃도 사라지도 없었다. 머리를 박은듯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면 거기엔 조금 풀린듯한 눈을 한 린이 위에 있었다.
놀란 것은 주변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과 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것은 사탄의 아들, 아무리 각성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최고위급을 자랑하는 악마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막히고, 재능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오쿠무라?!"
"오쿠무라군?!!!"
어째서?! 하고 말하면 린은 알아듣지 못한건지 시마의 멱살을 붙잡았다.
"시마…"
"오,오쿠무라군? 어디서 나온거야?"
"너…맛있는 냄새가나"
"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에 입술을 가져다댄 린이 으득 하고 살을 씹었다. 악, 하며 비명을 지른 시마에게 린이 시익 웃으며 마주봤다. 마치 뱀파이어에게 물린듯 목이 빨갛게 되고, 상처가 생겨 피가 조금 흐르면 시마가 울것만 같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오쿠무라 적당히 하라고…!"
뒤에서 말려오는 스구로의 팔을 뿌리친 린이 시마를 붙잡고 입술을 부딪치면 주변이 정적이 되었다. 민망할 정도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와 입술 부딪치는 소리에 이즈모가 소리쳤다.
"조, 종이를 찢어!!"
그러면 시마가 놓친 종이를 스구로가 황급히 찢었고, 어라? 하며 매서운 눈으로 뒤를 돌아본 린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선생의 목소리가 지루하게 울려퍼졌다. 내 옆에선 덥다면서 앞머리를 짚어 올리고 책으로 부채질하는 린이 있었다.
오쿠무라 린x시마렌조
아마, 박이 이 교실을 떠나고 시에미와 이즈모가 함께 앉게 된 날 부터였다. 린이 갑작스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서 '시에미가 날 버렸어' 하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장난스럽게 이즈모도 날 버렸어- 하고 받아쳤다. 그렇게 몇일 함께 앉게 되었다. 둘다 모범생은 아닌데 같은 자리에 앉아서 졸거나 딴짓하거나 해서 선생님한테도 많이도 혼났다.
"렌조"
"… 어?"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린은 작게 나를 불렀다. 창문을 열어놓은건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그에 맞추어 린이 계속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선 내손을 잡았다. 차갑게 식은 린의 손에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린은 깍지를 끼더니 헤헤 하면서 웃었다. 왜 그래? 무슨 할 말있어? 작게 물었다. 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좋아서"
"……"
"좋아해 렌조"
린이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한건지 주변은 평소와 같이 고요하기만 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린역시 책상위로 엎드렸다. 린은 슬쩍슬쩍 내쪽으로 다가왔다.
' 사귀자'
입모양으로 우물쭈물 말하는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리고선 '응' 하고 말했다. 린이 고개를 살짝 들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눈을 살짝 감고서 수줍게 웃는 린에게 나도 말해줬다.
'좋아해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