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큰 상처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없으십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있어야 할 일 아닙니까. 저 아이도 각오하고 있었을 겁니다."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듯 주조가 가볍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채 주먹을 말아쥐고 바닥만 쳐다보던 류지가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누구보다 동생을 아끼는 그에게 자신은 무엇을 보여주고 만것일까, 문뒤에서 신음하는 렌조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악마와의 대립은 늘 있던 일이었고, 정십자 기사단에 소속된 이상 그 이상이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만큼 각오도 되있었고, 준비도 되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주위에 무관심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의무가 무엇인지를.
안이했었다. 악마를 상대하는 일쯤은 혼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창을 외는 자신은 완전 무방비 했었고, 그 사이 렌조가 끼어든것 이었다. 렌조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상처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제 어느정도 안정되었는지 자고 있는 렌조가 보였다. 이마에 길게 그어진 상처는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트라우마로 남아서 엑소시스트를 할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시마 가(家)는 주조가 이어받을 것이니 굳이 렌조까지 엑소시스트를 할 필요는 없었다.
"젠장…!"
허공을 맴도는 렌조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자 살짝 눈을 뜨곤 류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하하 웃더니 평소처럼 중얼 거렸다. 괜찮냐고 묻는 녀석이 야속했다. 그러면서도 손을 놓지 못했다.
"렌조."
"?"
"난 내 앞길이 막막해서, 너희들을 챙겨주지 못할지도 몰라, 앞으로 이런일이 안일어난다는 보장도 없고"
"하하…"
"그래도…"
만약 이게 내 이기심이라면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이일로 인해 네가 괴로워 지더라도 네가 이해해주길 바라, 어찌 되었건 난 너의 소중한 도련님 이잖아?
"그래도 내 옆에 있어줘,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렌조가 류지를 보더니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류지가 다 뻘쭘해질 정도 였다. 배를 붙잡고 웃던 렌조가 류지의 손을 잡았다.
"당연한거 아닙니까, 도련님."
AU여우의 요람
형이 말했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라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 절대 공존할 수 없다고, 하루는 인간의 아이가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첫째형은 그 아이를 도와주다가 인간들에게 잡혀 희생됬다. 지금까지 수많은 우리 종족이 그렇게 희생되고서 우리는 인간과의 관계를 아예 끊어 버렸다.
나는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인간은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우리 호인족(種人族)은 그렇게 점차 산으로 들어갈수 밖에 없었다.
호인족(種人族)은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산에도 얼마 안되는 가족이 살고 있다. 그래서 렌조와 같은 나이때는 없었고, 그나마 같이 놀던 코네코마루는 작년에 인간세계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럴것이다. 그쪽은 인간과 사는게 훨씬 편안할 터이니까. 그 후 쭉 혼자 놀던 렌조는 오늘도 역시 어린 토끼를 붙잡고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코를 킁킁 거렸다. 맛있는 냄새. 잡고 있던 토끼를 놓고선 냄새를 따라 산을 내려갔다. 산 중턱에는 작은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형이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곳이었다.
- 너 그러다 저주 받는다-
킨조형이 자주 놀리곤 했던 말이었다. 침을 꼴깍 삼키고는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호인족(種人族)은 호족(狐族)과 달리 평상시에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어서 의심받을 일은 없었지만 렌조의 귀와 꼬리는 충분히 의심받을만 했다. 아직 요력이 약한 그는 그 모습을 완전히 숨길수 없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오오"
절옆에 있는 부엌에서 따뜻한 죽을 발견했다. 한참이나 놀아서 피곤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겨울이었다. 먹을것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이렇게 따뜻한건 더더욱 더 어려웠다. 킨조형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형의 요리솜씨는 정말 꽝이었다. 주조 형이 없을 때마다 해주는 밥은 정말 최악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렌조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겠지. 하고 수저를 들었다.
*
그릇을 깨끗히 비운 렌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떤 인간의 솜씨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산으로 돌아가 볼까 하고 배를 팡팡 두드리고 뒤를 돌았다.
"누구야…?"
눈이 딱 마주치자 인간으로 보이는 소년이 물었다. 순간 꼬리가 움츠러 들고 귀가 푹 내려 앉아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인간이다. 인간이다. 형이 마주치지 말라고 했던 절의 인간이었다. 소년은 그릇과 렌조를 번갈아 보더니 네가 먹은거야? 하고 물어왔다. 하지만 렌조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인간은 우리의 귀와 꼬리를 잘라버리고 가죽을 벗겨, 그리곤 옷을 만들어 입곤하지
-…진짜?
-진짠지 아닌지…시험해 볼까?
꽤 오래전 킨조형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대로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년은 렌조의 귀와 꼬리를 보고 조금 놀라는것 같았다. 이봐- 하면서 붙잡아오는 손이 따끔거렸다. 소년의 손목에 옥빛 염주가 걸려있었다.
"손대지마!"
"읏…!"
렌조가 소리치자 몸에서 기(氣)가 흘러나왔다.
*
"렌조!!"
"야, 어딨어!"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렌조를 찾아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그의 냄새를 쫓아 산 중턱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그 이후 완전히 끊겨 버렸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운것 처럼.
"형 설마…"
"그 설마는 아니길 바라야지"
절이나 신사에 들어가면 그 기운이 지워져 버린다- 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만약 그렇다면 빨리 찾아내야 한다. 킨조는 송곳니를 들어내며 살기를 흘렸다. 아무리 사고뭉치 라지만 동생은 동생이었다.
"킨조…진정해"
"형 여기 절이라면 하나밖에 더 있어?"
"거긴 안 돼"
딱 잘라 안된다고 하는 주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몰라서 그래? 하고 묻는 킨조의 말에 주조는 망설였다. 그 절은 오래전부터 자신들과 연을 맺고 살아온 곳이었다. 그 절이 있음으로써 산이 사라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그건 선대로 부터 내려온 약속이었다. 서로 피해주지 말자는 약속
"……"
"형!"
"…가자"
그래도 렌조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약속을 깨는것 보단 동생이 훨씬 중요했다. 단서가 있으면 잡아야 했기에 그는 결정을 내릴수 밖에 없었다. 절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형...혀엉...."
"그만 좀 울어….."
깨어나자 마자 형을 찾으며 우는 렌조를 보며 류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 아이를 붙잡아 놓은 것인지. 소리를 지르며 날뛰는 아이를 잠재운 아버지는 나보고 이 아이를 돌보고 있으라고 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게 아니니까 걱정말라고 하시며 절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론 그 기(氣)때문에 자신이 피해 본 일은 없지만서도 영 찝찝한건 지워지지 않았다. 귀와 꼬리를 살랑 거리며 울고 있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당혹감 보다는 놀라움과 신비함이 먼저 들었지만. 저 귀와 꼬리를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얼마후 아버지가 술을 들고서 방에 들어왔다. 다른 한 손에는 봉지가 들려있었는데 그 안에는 사탕이며 초콜렛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사탕하나를 물려주며 뚝. 이라고 외치자 아이는 거짓말 처럼 울음을 뚝 멈췄다.
"무슨 생각이야…"
"기다려 봐라. 곧 온다."
아버지는 술을 잔에 따르더니 눈을 감았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방안에 두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아니, 사람이라기 보단 이 아이와 같은 요괴에 가까울까. 그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앞에 나타났고, 아버지는 하하 웃었다. 뭐가 웃겨! 어린 내가 알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살기에 몸이 움츠러 들었다.
"형!"
"렌조!"
꼬마가 흑발의 사내에게 다가가 안겼다. 그리곤 뒤에 있던 금발의 사내가 아이를 건네 받았다. 여기 저기 안아보는게 다친곳이 있나 없나 살펴보는것 같았다. 금발의 사내는 살기를 거두고는 흑발의 사내에게 손짓했다. 그냥 가자. 하는듯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들을 가로 막았다. 그냥 가려는 요괴들을 왜 잡아! 아버지는 여전히 웃으며 그들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흑발의 사내는 살기만 더 내뿜을뿐 그러지 않았다.
"먼저 약속을 깬건 사과드리죠. 하지만 이렇게 아이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을 텐데"
"선조들이 멋대로 정한 약속이야 깨든 말든 난 상관안해"
"……."
"내가 그 아이를 붙잡아 둔건 이유가 있어서지…뭐 그 아이를 빌미로 다른일을 꾸미거나 하진 않았으니 그 송곳니좀 치우지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허허 하면서 다른 한잔에 술을 따랐다.
"성인식은 했는가?"
"……."
"나원참 이렇게 딱딱해서야 어떻게 얘기가 되겠나. "
"용건만 말하시죠."
남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아까보다 누그러든 살기에 주변을 살폈다. 형에게 안겨있는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금세 눈을 피해 버렸다.
"뭐 특별한건 없어. 그냥 가끔와서 류지와 놀아줬으면 좋겠어"
"……?"
"아버지?!"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말하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채 말했다.
"보시다시피 여기가 절이고, 산 중턱이라 올라오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아이는 더더욱 그렇지. 우리 류지가 너무 외롭지 않을가 생각해서 말이야. 그쪽 아이가 나이때가 비슷해 보이더라고"
"……."
"그리고 가끔 와서 술친구나 해줬으면 좋겠고"
말이 끝나자 마자 그들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황급히 아버지에게 달려가 무슨 짓이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라지기 직전 그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좋겠구나."
"……"
"친구가 생겨서"
|
"기대에 부흥하지 못해 미안하군."
그렇게 말하는 스구로에게 시마는 농담입니다. 하고 웃었다. 뒤돌아보는 스구로의 등을 쳐다본 시마는 입가가 굳어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스구로는 농담삼아 한 말일 것이고,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가슴 한 구석이 미친듯이 뛰어오는 건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은 무엇을 기대 한 것일까, 무엇을 바란것일까.
결계가 사라졌을때 도련님의 생사가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쪽? 정말로 도련님이 죽었을까봐 걱정 되었던 것? 아니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그 추악한 마음을 한 구석에 찌그러 트린채 시마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아주 조금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고
당신이 내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도 평생 말하지 못할테지, 시마는 돌아보며 알아, 하고 웃는 스구로에게 쓴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