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리리-크리스마스




겨울이 길어졌다. 사실 이제는 봄과 가을은 없다고 봐도 무방비했다. 추울 때는 한없이 춥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거워졌으니까. 그것도 리즈에게는 별 상관없는 얘기였다. 겨울에는 땀이 덜나서 좋았고, 여름에는 거칠 것이 없어서 좋았다. 그것을 보고 자신의 연인-이라고 해봤자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프리드리히는 혀를 내둘렀으나 꾸준히 찾아오기는 했다. 추울 때는 목도리와 귀마개를 하고서, 더울 때는 시원한 얼음물을 제 귀에 대고선 연병장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아니 엄청나게 민망한 일이었다. 형질상 혼자 훈련을 해야했던 자신을 보러 와준 사람은 미리안이나 엔지니어 말고는 드물었다. 그중 대다수는 리즈의 몸을 실험해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었고, 당연하게도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프리드리히가 찾아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마음은 단순한 거부감이라고 생각했다. 오지 마. 리즈의 말에 프리드리히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더니 말했다. 싫어.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아서 리즈는 프리드리히를 한번 노려보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싫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냐는 듯이 프리드리히는 연병장 구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첫 날에는 그리 생각했다. 물론 오지마라고 한 다음날 바로 오지 않았기에 자신이 조금 심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그래도 명색의 연인이고, 개인 시간을 쪼개서 찾아오는 것일 텐데. 리즈는 항상 프리드리히가 앉아 있던 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가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평소보다 훨씬 빠른 귀가였다.


눈이 많이 쌓였다. 12월은 보통 겨울에 속하니까 그럴 법도 했다.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은 프리드리히가 앉아 있던 자리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따뜻했다. 꼭 금방이라도 누군가 있었던 것 같았다. 리즈는, 그날 자리에서 한참이나 후배들이 눈 치우는 걸 구경하다가 그냥 방에 돌아갔다. 그날도 프리드리히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작 이틀이었는데 한 달은 지난 것 같았다. 리즈는 제 방 침대에 누워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딱, 이거다! 할 정도로 집히는 것은 없었다. 나흘째 프리드리히가 보이지 않았다. 리즈는 이것이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런 게 거부감일 리가 없지. 바보 같은. 

보고 싶다, 라거나 사랑한다, 라거나 그러한 것을 직접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우린 아직 어렸고, 그만큼 미숙했으며,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정도로 긴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리즈는 아직도 프리드리히가 먼저 사귀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를 떠올린다. 어째서 승낙해 버린 건지. 스스로도 미련스럽다고 생각했다.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건지, 먼저 연인 선언을 한건 녀석인데 벌써 포기했느냐에 대한 섭섭함인지. 아마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뻣뻣한 자신이 이렇게나 원망스러울 리가 없었다.


닷새가 지나려는 날 밤. 프리드리히가 방에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리즈는 어떤 미친놈이 겁도 없이 자신의 방 문을 두드릴까 고민했다. 몇 사람 없었는데 보통 미리안이거나, 미리안이거나. 음. 미리안이었다. 그래서 리즈는 느릿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프리드리히를 보고 시계를 한 번 보고, 다시 프리드리히를 한 번 봤다. “너…뭐냐?”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리즈는 갑작스러운 옛 연인의 방문에 예정에도 없던 말이 튀어나왔다. 프리드리히는 조금 들뜬 얼굴을 하다가 이내 뭐냐니! 하고 소리쳤다. 크리스마스잖아! 아직 시간 안 지났지? 물론 아직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었고, 대부분은 소등했을 시간이며 프리드리히의 목소리는 너무나 컸다. 리즈는 급히 프리드리히를 제 방에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았다. 순간 자신의 어깨로 무너지는 녀석에게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겼다.


“너 술 마셨냐?”

“베른하드랑 조금?”


그건 녀석의 쌍둥이 형이었다. 리즈는 한숨을 푹 내쉬며 프리드리히를 제 침대에 옮겼다. 그러고 보니 유명했다. 입대첫날 선배들이 주는 술 다 받아 마시고는 옷을 벗었다는 소문은. 리즈는 꾸물꾸물 옷을 벗으려고 드는 프리드리히의 팔을 보고는 이마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야, 야. 프리드리히. 리즈의 부름에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돌렸다. 응. 선배.


“어디 갔었어.”


리즈의 말에 프리드리히가 응? 하고 되묻다가 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 크리스마스니까 선물 준비한다고, 베른하드랑, 휴가, 나, 갔, 어.


“나한텐 왜 안 말했어.”


리즈가 프리드리히의 옆에 앉았다. 침대가 금세 꽉 찼다.


“선, 배…가…오, 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왔어.”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에 참을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웃음이 나왔다. 키만 컸지 어린애 같은 모습이 귀여웠다. 그게 다였다.


“보고 싶어서 왔어…안 돼?”


방은 더웠다. 창문 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는데, 발치에 와인이 굴러다녔다. 프리드리히를 제 품 아래에 가둔 리즈는 그대로 입을 맞췄다. 그에게 맞지 않는 지나치게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아니.”


나도 보고 싶었어, 그 간단한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 리즈는 다시 한 번 프리드리히에게 입을 맞췄다. 손도 못 잡아 본 사이에선 지나치게 낯간지러운 말이었다. 그런 리즈를 알기에 프리드리히는 손을 뻗어 리즈의 얼굴을 끌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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