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아이자크x교도관 프리드리히 AU 이어서 보고 싶은것만 써봄
이걸로 끝~ 약간의 아이 > 에바랑 애들 레어네타 주의해 주세요
3.
아이작은 마스크를 쓰고 멀뚱히 프리드리히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고 불을 켜면 눈앞에 펼쳐진 책장 사이로 낡은 책 냄새가 올라왔다.
“청소 잘하냐?”
“조금…”
세탁실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아이작은 갑작스런 프리드리히의 방문에 놀랄 틈도 없이 끌려왔다. 앞뒤 다 잘라먹고 할 일 없냐는 물음에 대답할 수도 없었지만 사실 할 일은 없었다.
“교도관 책도 읽어요?”
“이제 내가 만만하지?”
아이작은 프리드리히를 따라 서고 깊숙이 들어갔다. 보기만 해도 머리 아파 보이는 제목들뿐이었다.
“요새 애들은 책을 안 읽어요.”
“교도관이 너무 늙은 거예요.”
“몽둥이찜질하고 싶냐?”
아이작이 입을 꾹 다물었다. 프리드리히는 한참이나 무얼 찾는듯하더니 작고 두꺼운 책을 아이작의 품에 안겨줬다.
“청소시키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요?”
“어차피 올 사람도 없는데 무슨 청소는 청소냐, 그건 핑계지”
갈색 가죽으로 덧씌운 얇은 종이들이 아이작의 손에서 흘러내렸다.
“성서?”
“너한텐 딱이지”
“교도관”
“종교 권하는 거 아니야. 나도 안 좋아해. 그렇지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야.”
퍽 싫은 표정이었는지 프리드리히가 어색하게 웃었다. 강요는 아니니까. 그만 돌아갈까, 손에 먼지를 털어낸 프리드리히가 돌아섰다. 괜한 짓을 한 것 같아서 주춤한 발걸음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작이 그를 붙잡았다.
“읽으면 뭐가 달라 지나요?”
“마음가짐”
4.
아이작에게 면회 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 딱 한 명밖에 없었지만 프리드리히는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아이작의 죄목을 들어보면 오는 것도 용했다. 단정한 동그란 안경에 차분한 검은 머리.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만 프리드리히는 그가 에바리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작이 심심하면 하는 소리가 그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면회도 오늘이 마지막이 되는 듯하다. 프리드리히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최대한 둘의 대화를 듣지 않으려고 했다.
“에바, 그게 무슨 소리야? 농담이지?”
“아이작”
“에바리스트!”
투명한 창이 쿵 하고 흔들렸다. 프리드리히는 헛기침을 하며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의자를 밀고 일어선 아이작은 금방이라도 에바리스트를 덮칠 기세였다.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제일 잘 알면서도 그러했다.
“이제 여긴 오지 않아. 오늘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뿐이야.”
“에바…”
“아이작…너무 멀리 와버렸어. 이젠 안 돼”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지 않아?”
꾸득, 짚은 유리창에 하얗게 손자국이 남았다.
“포레스트 힐이야.”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있다. 빨갛게 멍울진 손끝이 유리창을 긁어내렸다.
“우리들의 고향이라고!!”
“가끔!”
에바리스트가 처음으로 큰소리를 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작을 잡아끌어 의자에 앉히고선 다시 뒤로 물러났다. 끼어들어선 안되는 곳에 끼어든 기분이었다.
“네 사고를 이해하기 힘들어. 아이작”
“에바…”
에바리스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면회실을 벗어났다. 철문이 쿵하고 닫히는 소리만 요란했다.
5.
“신을 믿으면 과거 돌아갈 수 있나요.”
“…….”
“과거로 가면 에바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에바를 만나고, 동료들과 교관을 만나면 그럴 수 있다면”
아이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남은 한쪽 눈으로 뚝뚝 우는 것을 프리드리히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이 말하는 과거는 대체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 저 어린 나이에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얼마나 될까. 프리드리히는 알 수 없는 고독의 깊이에 눈을 질끈 감았다. 요즘 부쩍 상처가 쑤셨다.
불쑥 고개를 든 아이작이 시계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 시간이에요. 울음을 애써 집어삼킨 목소리에 프리드리히가 그래, 하고 대꾸했다.
“다 울었어?”
“모른척해 줘요.”
모른척하기엔 눈이 너무 빨간데, 프리드리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교도관”
“응”
“교도관은 제가 죽을 때 옆에 있어 주실 거죠?”
“……그래”
“고마워요. 잘 자요.”
탁. 문이 닫히기 전까지 프리드리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6.
아이작은 알고 있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친구의 탓도 아니며, 에바리스트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자신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괴로워했다. 차라리 몰랐다면 그는 친구를 살해할 일도 에바리스트와 멀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 아이작은 절망 속에서 소리쳤다.
그의 친구는 과거에 에바리스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에바리스트는 자신의 품에서 죽었다.
프리드리히는, 아이작은 거기까지 생각하곤 손에 있던 권총을 그러쥐었다. 문밖에선 프리드리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문은 부서질 것이다. 살해당할지도, 어차피 사형수였으나 프리드리히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역시 괴로웠다. 낡은 종이냄새와 먼지 쌓인 선반이 그리워 질 것이다. 결국 성서는 읽지 않았다. 그 옛날 검술의 교본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사람의 본성이란 참으로 어리석지. 결국 또 제자리걸음이었다. 과거를 되돌릴 순 없는 거겠지 그렇다면 다시 한 번만이라도 꿈에서라도 좋으니, 짤깍.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지겹도록 들었던 소리가 이토록 소름 돋을 줄이야. 아이작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프리드리히에게 사죄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본 얼굴이 너무 반가워서 그만 어리광을 부리고 말았으니, 그래도 퍽 즐거운 시간이었다.
“프리드리히…”
교도관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교관님”
실로 그리운 감각에 아이작은 시익 웃었다.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변한 건 자신뿐이었는데, 미치지 않은 건 자신뿐이었다.
“안녕”
포레스트 힐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0.
툭. 펜을 내려놓은 프리드리히가 책상 위로 쓰러졌다. 때려치울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지금만큼 절실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은 죽었다.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적어도 프리드리히의 눈에는 그랬다. 서고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피로 얼룩진 선반은 아무리 닦아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아이작 보든.
그것은 서류상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겠지. 프리드리히도 언젠가 아이작을 머릿속에서 지울 것이다. 이곳 포레스트 힐은 하루에도 수 십 명의 수감자가 들어오고 나간다. 아이작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작 로스바르드와 아이작 보든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모른다. 둘 다 진짜일 수도 있고, 둘 다 가짜일 수도 있다.
‘제 이름은 로스바르드가 아니에요. 교도관’
그래도 그 오래전 포레스트 힐에 아이작이란 녀석이 살고 있었다고,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보든. 아이작 보든입니다.’
안녕
나의 오랜 제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