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구시마
린시마
씹오글 8ㅇㅅㅇ8
"오랜만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렌조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결국엔 팔라딘이 된건지 제복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그가,
"오랜만이야, 오쿠무라군"
待ってるよ, あなたが ロるまで
스구로 류지x시마 렌조x오쿠무라 린
정십자 학원을 졸업하고 거진 5년만에 만난 린은 키가 조금 더 컸다는것 외에는 별달리 변한게 없어보였다. 순수한 미소하던가, 활기찬 모습과 말투는 여전했다. 렌조는 린을 데리고서 나무그늘아래 앉았다. 옷이 더러워 질게 뻔했지만 린 역시 별 신경쓰지 않는건지 털썩 앉아버렸다. 둘의 자연스런 대화는 마치 어제 만난 사람 처럼 친근했다.
"키 많이 컸네"
"응, 넌 어째 그대로네?"
"시비거는 거야?"
"설마"
린이 장난스레 웃었다. 분주한 절에 둘은 마치 동떨어진 사람들 같았다.
"어쩌면 류지보다 더 클지도"
린이 말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뒤로 물러나는 렌조를 다시 붙잡은 린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흐응 하면서 웃던 렌조가 '그건 무릴껄, 도련님은 아직도 성장기거든' 하면서 웃었고, 린 역시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석은 언제나 성장기 일꺼야, 렌조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입술이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시마…"
"응…"
"네 도련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구나"
"그렇지? 분위기를 몰라"
"알면 떨어지지 그래?"
쳇 하면서 떨어지는 둘을 못마땅하게 바라본 류지가 렌조를 일으켜 세웠다. 가봐. 하면서 짧게 말하자 렌조가 삐졌다는 듯이 고개를 획 돌렸다. 그 사이에도 린에게 신호를 보내는것은 잊지 않고서, -나중에 봐 하면서 입모양으로 말한 렌조는 급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모습을 눈으로 쫓던 류지가 린을 쳐다보지도 않은채 말했다.
"난 너를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
"너 말고도 연락할 사람은 많아"
린이 시익 웃으면서 제복을 두드렸다. 그래, 너도 팔라딘이다 이거지. 류지가 이마를 붙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용건은?"
"응?"
"본인의 의사도 묻지 않고서 찾아왔다는건, 다른 용건이 있어서 일꺼 아냐, 용건은?"
"아아…"
날씨가 좋네, 식올리기엔 정말 딱 좋겠어. 린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네가 결혼한다기에 신부 보러온것 뿐이야"
"……"
"내 신부도 찾을겸 해서 말이지"
*
일을 끝마친 렌조가 어깨를 두드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피곤한지 연신 한숨을 내쉬는 렌조는 어두운 방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벽을 더듬거렸다. 이쯤 어딘가에 스위치가 있었는데, 한참 벽을 더듬던 렌조가 드디어 스위치를 찾았는지 방안이 밝아졌고, 그 순간 렌조의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몸을 결박당했다.
"누구…!"
고개를 돌릴려고 한 순간 상대가 렌조를 억지로 무릎 꿇게 했다. 앞으로 털썩 넘어지면서 고개를 돌린 그가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했다.
"너…"
"가만히 있어"
"앗…으"
"좋아?"
"응…읏, 아파!"
"미안미안, 금방 풀어줄게"
"앗, 응 거기…"
"여기?"
"으응…, 더 세…앗, 아파…, 아파, 아아아! 아프다고 오쿠무라군!"
렌조의 비명소리에 린이 황급히 어깨에서 손을 뗐다. 어깨를 붙잡고 린을 노려보는 렌조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고여, 린의 손 힘이 얼마나 센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앉혀놓고는 안마를 해주겠다더니 이건 안마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렌조는 그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었고, 린이 힘이 세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었던일 아닌가 이건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비하면 얌전한 수준이었다.
렌조는 시무룩해져 있는 린을 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넌 이상한데서 소심해지더라- 라는 말을 아주 오래전에 한것 같기도 한데 그건 여전하구나, 렌조는 괜찮다는듯 린의 머리칼을 흐트려 놓았다. 그제서야 밝게 웃는 린을 보고서 렌조는 어색하게 웃었다. 대형견을 키우면 이런 기분일까, 이제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지 흔들 거리는 꼬리가 시야에 머물렀다.
어찌되었든간에 린은 자신이 데려온 손님이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물론 린은 이제 성인이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사탄의 아들인건 둘째치고, 하는 행동은 아직 어린애였다. 유키오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일까, 대단한 브라콤이야
렌조는 린에게 이부자리를 내어줬다. 그러자 린이 입술을 뿌우 내밀며 왜 따로따로냐며 어린애처럼 물어왔다. 곤란해진 렌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나 왜 부른거야?"
"……"
"나, 너 아니었으면 안왔어. 여기"
"오쿠무라군…"
"위로해달라는거 아니었어?"
린이 어느새 렌조의 자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피할 생각도, 마음도 없었던 렌조는 린이 가까이 오는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수만가지 변명이 한데 뭉쳤다가 다시 흩어졌다. 그 어떤 변명도 이제 하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울렁거리는 속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입을 맞추고 온안으로 손이 들어올때까지, 렌조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전 울면서 린에게 전화했을때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때 그렇게 울지만 않았어도 린이 이렇게 까지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쿠무라군…?"
"……"
곧 울것만 같은 린의 얼굴이 시야에 아른거렸다. 왜 그만둬? 라는듯 린을 바라봤다.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위치를 끄고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미안…"
"……"
"잘자"
*
다음날 렌조가 눈을 떴을때 린은 옆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점심시간이 될때까지 렌조는 린을 보지못했다. 분명 짐은 그대로 있었고, 간다고 해도 연락도 없이 휭 가버릴 린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오랜만입니다."
"와카센세"
"그 호칭 언제까지 쓰는거죠?"
선물을 사들고 온 유키오가 증거였다. 다른 임무로 하루 늦게온 유키오에 렌조는 형을 부탁한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이제 유키오의 입에서 형소리가 안나오는게 이상했다.
"형은?"
그럴줄 알았다. 렌조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린이 일부러 안나타난다는거 일수도 있지만, 자신 역시 바빴다는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말이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뒷뜰인것 같아 보여 황급히 유키오와 함께 달려갔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린과 도련님이었다. 처음만날때 부터 사이가 좋지 않더니만 아직도 둘의 트러블은 여전한지 서로 노려보며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몰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일 식을 올릴 사람이 손님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안좋은 소문이 퍼질게 분명했다.
"도련님!"
"형!"
유키오와 렌조가 둘을 막아선 후에도 한참이나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엇때문인진 몰라도 상당히 열받아 보이는 도련님은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점심시간이 무의미하게 가버리는 구나 하고 렌조는 한숨을 쉬었다. 어째 요즘들어 십년은 늙은것 같아 미간을 쭉쭉 피는데 상처가 따끔거렸다.
"시마"
"응?"
"어디가, 일로와"
린이 손짓했다. 렌조는 아무런 생각없이 린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류지가 어깨를 낚아챘다.
"어… 도련님?"
"가자, 나 배고파"
뒤돌아서 가는 동안 난 린의 표정을 보지못했다.
"…머리 많이 길었구나"
"……"
린은 지금쯤 나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상처를 헤집는듯한 도련님의 한마디가 가슴을 쑤셔왔다.
*
유키오가 끝까지 있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형을 부탁한다며 기사단으로 돌아갔다. 유키오 선생님은 엘리트니까 하고 웃으니까 린이 나도 엘리트인데 하며 반박했다. 유키오는 웃으면서 말썽이나 피우지 말라고 했다.
"머리 많이 길었네"
"응"
린이 렌조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스르륵 빠져나가는게 간지럽고 묘했다.
"아까 왜 말렸어"
"내일 식올리는 사람이 얼굴에 상처나면 큰일이잖아"
"그것 때문에?"
린이 렌조앞에 앉았다. 키리크를 닦고 있던 렌조가 왜? 하면서 눈을 맞췄다. 그러자 린이 손으로 앞머리를 올리면서 상처를 들추어냈다.
"넌 이렇게 상처입고서, 그 녀석 걱정을 하는거야?"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
"같아, 난 네 상처까지 이해해, 그쪽 신부도 이해할꺼야"
"이미 끝난일이잖아, 결론이 뭔데"
살짝 화난듯 신경을 치켜세우는 렌조에게 린이 말했다.
"상처를 감추지 말라고…"
"……"
"그녀석 죄책감 정도는 느끼게 해줘야지"
*
화창한 날씨에 식이 진행됬다. 싹뚝 자른 머리카락을 보고서 형이 많이 아쉬워 하긴 했지만 난 나름 개운했다. 도련님이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죄책감같은거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언젠가 이렇게 될거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디가?"
"바람쐬러"
자신이 나온건 어떻게 알았는지 린이 따라왔다. 식은 지루했고, 조용해서 몸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중간에 나온다고 애를 먹긴 했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괜찮았다. 언뜻 도련님과 눈이 마주친것 같기는 했으나 금방 스쳐지나갔다. 이대로 나가서 친구들이나 만날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린 덕분에 다 깨어졌다.
"나도 같이가"
따라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하고도 같이 있고 싶지가 않았다.
"혼자있고 싶은데"
"멀리서 있을께. 밀어내지마"
결국 난 멈춰설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어느새 내 앞에선 린이 나를 감싸안아왔다. 불가항력이었다. 어쩔수가 없었다. 린의 품에서 엉엉 울어버린것은 나도 어쩔수가 없었던 일이다. 그렇게 안아주는게 네가 아니라 도련님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좋아한다고,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나"
"……"
이제는 멈춘 울음소리에 린이 등을 토닥거렸다. 울지만 말고, 하면서 어린애 달래듯이 살살 등을 문지르기도 했다. 너란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 착해서 웃음이 나왔다.
"지금 당장 대답하란 소리안할께 난 시간이 많거든"
린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날 선택해"
"……"
"네 평생을 내게줘. 시마"
식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내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아도, 넌 여전히
그 입술을 막아라
오쿠무라 린x시마 렌조x스구로 류지
기억해? 우리가 만난지 벌써 십년이야, 린이 그렇게 말했다. 시마가 작게 웃었다. 십년사이에 많은게 변했어, 린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벌써 류지녀석은 애까지 있고, 시에미는 결혼날짜 까지 잡아놨어, 시마는 웃으며 그래? 하고 말했다.
"나도 변했어"
"오쿠무라군이? 여전한것 같은데"
키득키득 그가 웃자, 린이 약간 샘통이 난 얼굴을 하며 고개를 획 돌렸다. 봐ㅡ, 여전하잖아. 여전히 바보구만, 그가 등을 돌리며 반대편으로 걷자 린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숨이 멎을것만 같아, 시마가 숨을 크게 삼켰다.
"봐, 나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
"너랑 이렇게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
"진짜…아무렇지도 않아"
*
정십자학원을 졸업하자마자, 교토로 돌아간 류지는 정해진 약혼자와 식을 올려 벌써 다섯살난 여자아이까지 있었다. 린은 그대로 바티칸으로 발령나 벌써 명예기사까지 취득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그는 웃으며 박수를 칠수밖에 없었다. 류지가 결혼하던 날도, 린이 명예기사가 됬다며 찾아온 날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할수 있었다.
안주인을 웃으며 반길수도 있고, 류지의 딸을 이뻐해줄수 있다. 그는 그랬다. 그때마다 옆에 있는건 어쩐지 류지가 아니라 린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웃을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럴필요가 있었다.
린은 임무를 핑계삼아 자주 교토에 오곤 했다. 그에게 주어진 열쇠가 있었지만 항상 린은 열차를 타고 내려와 문앞에서 시마- 하고 부르곤 했다. 돌아갈때 역시 열쇠를 두고 왔다며 그에게 매일 배웅을 받았다. 시마는 그때마다 어쩔수 없는 바보다. 하고 비웃었지만 린은 상관없는듯 했다. 돌아갈때마다 시마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다음에 또 봐. 하고 말했다. 그때마다 시마는 뭘 또 봐, 하고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확실히 외로움이 묻어나서 돌아가려는 린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돌아가고 나면 린은 매일밤 악몽에 시달렸다.
"이번엔 진짜 임무때문이야"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린이 투덜거렸다. 모처럼 린과 유키오, 시에미가 한 팀이 되어 교토를 방문했다. 그게 얼마나 강한 악마인가ㅡ 에 대해서는 이제 문제될리가 없다. 명타에서도 꽤나 전력이 되는 사람이 있었고, 무엇보다 린이 있었다. 문제는 그 악마가 어디있냐ㅡ 는 거였기에 그들은 악마가 나타날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가씨- 하면서 그녀를 찾는 시마가 투덜거렸다. 어디로 간거람, 설마 밖으로 나갔나 싶어서 대문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린이 뒷덜미를 잡고서 시마를 끌어당겼다. 무슨짓이냐고 소리칠새도 없이 린이 살기를 띈 얼굴로 문 기둥에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그거…"
"누군진 모르겠지만 유치하게 노는군"
그 기척이 확실하지 않아, 살기가 주변으로 퍼지자 시마가 린을 말렸다. 이러다 사람들 오겠어. 린은 칫 하며 뽑힌 화살을 보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화살에 쪽지를 묶어논 방식이 어느시대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유치하고,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시마가 허둥지둥 쪽지를 풀어보고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굳혀진 표정에서 지금까지 본적 없던 그의 기분변화에 린이 쪽지를 봤다. 린 역시 표정을 굳힐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꺼야?"
"…시마가(家) 독단으로 진행해야지"
"흐응"
"비밀로해줘 오쿠무라군"
알았어. 하고 말하는 린은 관심이 없어보였다. 아니 오히려 개운한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있다. 되찾고 싶으면 스구로 류지혼 자 아래 장소로 찾아와라- 그렇게 씌여진 쪽지를 꾸깃꾸깃 구겨버린 시마가 주먹을 펴지도 않은채 뒤돌아갔다.
*
"네가 왜 여깄는건데"
"나도 있고싶어서 있는거 아니거든"
둘은 여전히 티격태격이었다. 린이 젠장하면서 시마를 찾았지만 그가 나타날리가 없었다. 한동안 안주인이 본가로 돌아간다며 따라가겠다고 자신 대신 린을 호위로 붙여놓겠다 하는건 물론 시마의 거짓말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린역시 답답했고, 그것을 모르고 있는 류지 역시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린은 류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자 류지의 이마에 사거리 마크가 생기면서 불만있으면 가던가?!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린은 싫은데- 하면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러자 이번엔 쯧 하면서 린이 불만을 토로했다. 싸우자는거냐? 하며 스구로가 뒤돌아 보면 린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나도 결혼하고 싶어…"
오쿠무라 린과 오쿠무라 유키오는 악마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다는것 자체가 안된다는 바티칸의 명령을 받았다. 물론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자신의 아래 아이까지 사탄의 자식으로 만들이유가 없다ㅡ 라는게 유키오와 린의 생각이었다. 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생각보다 아쉽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평생 결혼못할거다. 하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린의 사정을 알고 있는 류지였기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그 다음말은 참을수가 없었다.
"렌조가 여자였으면 벌써 너희 애만큼 됬을껄"
갑작스레 울린 폰에 린이 -시에미 라고 뜬것을 확인하고 일어섰다. 목소리가 다급하게 자신을 찾으며 도와줘, 라고 말하는게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뒤에서 부르는 류지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서 시에미가 말한 장소로 뛰어갔다. 악마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라기보다 린이 무엇보다 강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시에미가 부상을 입은듯한 유키오를 붙잡고 눈물이 글썽인채로 자신을 바라봤다. 무슨일이야, 하고 묻자 시에미는 숨을 크게 들이 삼키고는 다른 한쪽을 가르키며 말했다.
"나와, 아이를 지키려다가…"
무슨말인지 알겠어, 린이 다정하게 말하며 시에미를 다독였다. 근데 무슨 아이? 하고 말하자 시에미가 소환한 악마를 거두어들이며 그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두명이 보였다.
"스구로군의 부인하고 그 딸…"
"……"
"딸은 살렸지만 부인은 이미…"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시에미. 저 여자와 아이는 분명 납치됬다고, 시마가 그랬는데, 어째서 여기에.
"……"
-…시마가(家) 독단으로 진행해야지
"……"
-비밀로해줘 오쿠무라군
어째서 그가 나에게 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
확실히 악마만 상대하다보니 인간의 기척에 둔해진건 사실이다. 입가를 누르는 축축한 천에, 달콤한 향기에 정신을 놓아버린건 아마 그녀와 아가씨가 잡혀 있다는것을 알고 그들에게 반항해봐야 좋을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때는 온몸이 흐물흐물해진것 처럼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자 그들이 일어났나? 하면서 다가왔다.
턱을 잡아끄는 그들이 얼굴을 이리저리 돌렸다.
"뭐ㅡ 본인이 나오지 않을거라는건 예상했으나, 이거 예상밖의 인물이 나와주셨어"
무슨 말을 하는거야, 하고 말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스구로 류지에게 남첩이 있다, 그래서 부인과의 관계를 거부한다ㅡ 하는건 유명한 얘긴데 몰랐나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남자가 무슨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처음들어보는 얘기야, 그런건, 그러자 남자는 맞아. 지금 상황에선 아무런 상관도 없겠지. 하고 말했다.
"시험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그래."
"…하아…"
"과연 자신의 부인을 인질로 삼아도 나오지 않았던 스구로 류지가 너같은 놈을 붙들고 있으면 나올까 하는 "
시마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을 쳐내자 그가 뺨을 때려왔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상황파악이 아직 안되? 순순히 말듣지 않으면 그년들 어떻게 될지 몰라."
내 자신이 한심해서 어쩔수가 없었다. 억지로 범해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탈출할 생각조차 못하는 내가, 이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내가, 이 상황에도 도련님이 와주길 바라는내가 한심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엎드리고 허리를 들면 억지로 들어오려는 이물감에 비명을 지르고,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끈적한 느낌에 눈물이 뚝뚝 흘렀다.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나"
남자들이 중얼거렸다.
"야 사진 찍어"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 고개를 숙이면 다른 남자가 다가와 억지로 얼굴을 들게했다. 남자의 것을 억지로 입안에 넣고 액을 삼키고 나면 그 짓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했다. 끝날것 같으면 다른 녀석이 왔고, 또 끝날것 같으면 그것의 반복. 결국 비명과 울음소리대신 신음이 흘러나오고, 받아들이는게 익숙해질때쯤에 그것이 끝이났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부탁했다. 몇번이고 말했다. 그래봤자 도련님은 오지 않아. 아무도 이 장소를 몰라. 아무도, 아무도,
도와줘요. 도련님
*
그녀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린의 임무도 끝이 났다. 모두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며 눈물을 보였지만 류지만은 그러지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굳혀진 표정이 풀릴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먼저가보겠다며 돌아가던 유키오가 쥐어준 열쇠를 보고서 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교토를 방문하거나 떠날때 절대 열쇠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탁 하고 닫힌 문뒤에 시마가 있을것을 생각하면 곧장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사용하지 않았던 열쇠였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나? 하고 뒤돌아서면 그곳엔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고서 아직도 있었냐며 웃고 있는 시마가 보였다.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와봐야지"
"……"
"오쿠무라군은 이제 돌아가는거?"
수군거리는 주변사람들은 무시하고서 그렇게 서 있는 너는 정말이지 바보같은 녀석이다. 아직 사흘도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몸의 상처가, 마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조금만 건드려도 덧날것이 분명한데 너는 어째서. 너는 내 옷깃을 잡고 소리쳤지, 제발 비밀로 해줘 오쿠무라군, 하고, 그럼 그 비밀을 나에게는 말해줘도 괜찮은 거잖아.
"시마…"
"오,오쿠무라군…"
"시마, 시마"
꽉 껴안은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벗어나려는 너의 몸을 더 꽈악 끌어안았다. 말하고 싶었다. 들려주고 싶었다. 너의 눈을 마주보고서 소리치고 싶었다. 당황하는 너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맞추면 더더욱 당황해서 눈을 가린 손마저 치워내려고 하고 있는 네가 보였다.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기도 전에 너의 귀를 막았다.
시마 잘 들어, 주변에 쓸모없는 녀석들의 말은 그저 듣고 흘러버려, 네가 잘하는 짓이잖아. 그리고 그리고
"좋아해."
네 눈을 가리고, 입을 맞추고, 귀를 막아도, 난 여전히
"좋아해, 시마"
다음에 내가 올때는 너를 바티칸으로 데려갈때 일 거야.
*
긴 탁상이 방을 가로지르고 그 앞으로 회의를 열듯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녀가 죽은 이후, 거의 방안에만 있던 류지가 갑작스레 그들을 불러모았다. 류지는 머뭇거리는 시마를 보고서 옆을 탁탁 치며 앉으라는듯 손짓했다. 그제서야 환하게 밝아지는 표정을 보인 시마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매끄럽게 진행됬다. 그동안 못했던 주변일의 처리 바티칸과의 교류, 여러 문건들이 지나쳐 갔고, 그들중 한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무리 후손이 있다곤 하나 그건 엄연히 여자아이인데 다시 부인을 얻는게 어떠냐는 소리였고, 거의 다른 사람들도 동의하듯 보였다.
이번엔 웃을수 없다. 라고 느낀 시마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쥔채로 가만히 있으면 탁상아래로 잡아오는 큰손에 심장이 철렁거렸다.
"두번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말은 이게 다야"
"도련님!"
"대를 잇기위해서 또다시 그녀에게 상처줄순 없는 일이야"
맞잡은 손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나는, 우리들은 그저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고 그렇게.
그댄 달라요
오쿠무라 린x시마 렌조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너를 보고 나는 눈물이 핑 돌것 같았다. 그래서 더 슬펐다. 너는 나를 친구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경멸스러웠다. 좋은아침- 이라고 말하는 너를 보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그저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러자 네가 에엑? 오쿠무라군 무시하는거야? 하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어깨를 붙잡고 늘어지는 너를 보고서 나는 작게 좋은 아침, 하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바보같은 인사였다고 생각한다.
어릴때는 마냥 좋았던것 같다.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고, 즐거웠다. 그렇게 서서히, 빠져들어 버린것 같다.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학교보다 학원에 가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매일매일이 너무 기대됬고, 나를 보고 웃어주는 너를 보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라는 거리를 좁혀지지 않았다. 사실 내가 두려웠던 것도 있었지만 네가 그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절대 다가갈수 없는 그 거리, 맞닿을수 없는 그 거리에서 나는 너를 보고 말았다. 그 이상의 거리에서 스구로에게 기대고 있는 너를 보고 말았다. 그 녀석의 옷깃을 붙잡는 너를 보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너에게 고백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을 감고, 입을 닫고, 귀를 막고ㅡ
그렇게 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네가 연락해, 하며 웃으며 교토로 돌아갔고, 나는 너를 잊으려고 했다. 그럴려고 했었다. 류지녀석의 결혼소식이 일년도 되지 않아서 들려왔다. 19세가 되는 나이에 명타를 위해 대를 위해 처음보는 여자랑 결혼하는 녀석을 보며 너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웃는 이유를 모르겠어, 둘을 보고 축복해주는 너를 이해할수가 없어, 류지의 어디가 행복해 보인다는거고, 네 미소의 어디가 웃고 있다는 거야,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보다도 녀석들이 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나는 이해를 하지도,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포기했으면 너희둘이 잘되야 되는거,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가는거야, 오쿠무라군?"
열쇠를 꺼내드는 나를 보고 시마가 아쉽다는듯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확실히 외로움과 슬픔이 묻어나서 나의 발목을 붙잡았지만 나는 어쩔수가 없었다. 내일부터 다시 임무야, 하고 말하자 시마가 그래, 하고 말했다. 문을 열고나면 익숙한 방이 보였고 아직 닫지 않은 문 뒤에는 시마가 손을 흔들며 잘가 하고 말했다. 이대로 문을 닫으면 된다. 닫으면 다시 시마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가 슬퍼하는건 자업자득이다 하고 생각했다.
문의 닫히려는 찰나 다시 문을 열면 네가 주저 앉은채 울고 있었다.
"……"
"오쿠무라군…"
"……"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 대체 왜, 나는, 너를,
좋아해 시마ㅡ 처음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그말을 나는 아직도 삼키고 있었다. 끌어안은 몸은 확실히 떨리고, 끅끅거리는 목소리는 울음을 삼키고 있어서 나는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내가 너를 잊을수 있을리가 없다.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매일 기억하고 있어.
아무렇지 않을리가 없었다. 너를 바라만 봐도 이렇게 떨리고, 목소리만 들어도 긴장되는데ㅡ 혹여나 네가 내 이름이라도 부르면 아직도 심장이 쿵쿵 거리는데, 내가 너를 이렇게 가까이 하고도 아무렇지 않을리가 없었다.
류지녀석의 아내와 아이를 보며 웃어주는 너를 보고 나는 작게 웃었다.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나는 화낼수도 없었다. 그저 귀여운 아이와 너를 보며 웃고 예전처럼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쁜 그런 날을 보내고 싶었다.
항상 자신이 있었다. 그랬던것 같다. 너는 나에게만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래, 나는 어째서 그가 나에게 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엉망으로 된 시마를 보며 린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수 밖에 없었다. 이미 재가 되어버린 다른 녀석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시마 아래에 남은 끈적한 흔적만이 이전의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린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서서히 뻗어지는 손은 떨려왔다. 손이 뺨에 닿자 시마가 흠칫 떨어오더니 고개를 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마…"
"……"
"하지마세요…그런다고 도련님은 오지 않아…"
어두운 창고안에서 시마는 린이 왔으리라는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몸을 망가지도록 유린당한 시마가 제정신일리가 없었다. 입술을 깨문 린은 자신의 추한 마음을 한구석으로 뭉게버리고 시마를 끌어안아 올렸다. 그제서야 상대방을 확인한 시마가 린을 바라봤고 린은 그런 시마를 억지로 끌고 창고안을 벗어났다.
비가 내리는 밖에서 시마가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척 강제로 그를 끌고 갔다.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시마가 그제서야 린을 불렀고, 그가 뒤돌아보지 않자 손을 놓을려고 안간힘을 썼다.
"오쿠무라군…! 이거 놔줘!"
"빨리 가야지, 가서 녀석한테 니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보여줘야 될꺼 아냐!"
"아니, 아니야! 그전에 내가 가면 안주인이랑 아가씨가!"
"그년은 이미 죽었어!!"
그년은 죽었어, 딸은 치료중이고, 사람들 모두가 네 잘못이라고, 너를 욕하고, 악담을 하고 있단 말이야. 지금 가서 풀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허탈하게 웃는 시마를 보고서 린은 고개를 숙였다.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건 네가 한 모든것이 헛수고였다는거니까, 그저 놀아난것 뿐이라는 것을 네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했다. 그것이 설령 너를 상처주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해야 했다. 네가 상처받는것도 싫지만 다른 사람이 네 욕하는것도 싫어, 아니 다른 사람 입에서 네 얘기가 흘러나오는것 조차 싫어, 나는
"오쿠무라군…"
"……"
"이번 일 도련님께는 비밀로 해줘"
"너…"
"아니 명타 모두에게 비밀로 해줘"
부탁이야, 하면서 쓰러지는 시마를 보고서 린은 젠장 하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네가 그렇게 부탁하면 난 거절할 수가 없잖아.
*
시마 렌조를 바티칸 강제소환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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