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스구시마
주렌
킨렌
코네시마
유키시마
"내기 하나 하시렵니까"
오랜만의 대련이었다. 그것도 스구로가 먼저 신청한 것이 아닌, 시마가 먼저 대련부탁 한다며 말해왔다. 공부라든가 수련이라든가 질색하는 시마가 왠일일까 싶었지만 진지해 보이는 표정에 알았어. 하고 대답했다. 기숙사아래에 있는 지하층에 엑소시스트를 위해 마련한 대련장이 있었다. 그 이후 아무 말도 없이 대련장으로 향한 시마는 석장을 하나 건내주며 스구로를 쳐다봤다. 무슨 내기? 하고 물어보면 시마도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음. 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이,어이 하며 스구로가 부르면 시마는 다시 방긋 웃으며 '그것까진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하며 석장을 바로잡았다.
다시 굳혀진 표정에 스구로 역시 조금 긴장했다. 평소 대련을 하면 거의 시마는 대충대충 넘기는 식으로 자신이 이겼기에 괜찮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마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무언가 결심을 굳힌 모습이라 조금 긴장하고 있으면 시마가 갑니다. 하고 말했다. 완력은 자신이 강해도 실전에 강한 건 시마였다. 무엇보다 치고 들어오는 스피드는 자신이 따라가기엔 벅찼다. 날카로운 끝부분이 뺨을 스치고 간신히 받아쳐내면 시마는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서 말했다.
“진지하게 하시지 않으면 다칩니다.”
“진심이구나”
그렇게 말하면 시마는 다시 끔 석장을 부딪쳐왔고, 카랑 거리는 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설마 대련하면서 피를 볼 줄은 몰랐는데, 뺨에 살짝 흐르는 피를 닦아낸 스구로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요. 하는 시마는 웃었지만 그것은 평소와 다른 미소라, 약간 긴장했다. 이러면 마치 평소대련에는 봐주고 있었다, 하는 것 같잖아. 스구로는 밀려오는 기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기에 더더욱 질 수 없었다. 무언가 결심한듯한 시마의 표정을 보고서 스구로 역시 절대 질수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같이 하자, 평소대로만 하면지지 않는다. 하고 그의 버릇이 나오길 기다렸다. 근접전에서 시마는 몸동작을 크게 한다. 그것이 나쁜 버릇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칠 생각을 안하다니, 텅 비어버린 왼쪽 옆구리를 강타하고 다리를 걸면 시마는 중심을 잃고는 어라? 하면서 매트위로 넘어졌다. 석장을 쳐내고 끝이야, 하고 그 날카로운 끝을 얼굴에 노리면 시마는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폈다.
“역시 도련님한테는 못이기겠네요.”
“흥, 진심이 아니었던 주제에”
약간 토라진 듯 스구로가 석장을 정리하고 치우면 시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하하 웃었다. 그것이 평소의 하롱하롱 하는 미소와 같아서 그는 약간 안심했다. 그는 저대로의 시마가 좋았다. 다른 생각이라든가 행동은 하지 않고 평소와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어서는 시마의 표정은 보지 못했으나 분명 분한 표정이리라, 약간 어두워 보이는 것도 같았다.
“내기는 어떻게 하지?”
“제가 졌으니까 없던 걸로 하죠.”
저 녀석, 하고 노려보면 왜용, 하면서 웃는다. 거봐ㅡ 무언가 요구할 작정이었던 거잖아. 하면 역시 도련님, 변태라니까 하며 자리를 벗어난다. 시마가 대련장을 나가고 그 문을 한참 바라봤다. 뺨에 스친 상처가 쓰렸다. 시마가 무슨 요구를 할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나쁜 생각들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얼마 후 시마가 도련님- 하고 부르면 머리 아픈 듯 긁적이며 ‘어‘ 하고 대답했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하고 대련장을 벗어났다.
*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중얼거리면 린이 그러냐. 하고 작게 웃었다. 확실히 그 당시 시마는 무언가 이상했지만 그때만큼 진지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것이 오년전의 일이었다. 무엇을 요구하고 싶었던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그 후 시마는 대련을 요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가 바른 말이었지만 그해 졸업 후 스구로는 명타를 이어받는 주지가 되었고 더 이상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린이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린은 오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달리 변한게 없었다. 키는 조금 큰 것 같지만 여전히 자신보다는 작았고, 더 있으면 명예기사나 되는 녀석이지만 모르는 건 아직도 많았다. 조금 달라진 건 그에게서 담배냄새가 난다는 것, 왜? 하고 물으면 아버지를 닮고 싶어서, 하면서 웃었다.
*
나도 피어싱이나 할까요, 하고 시마가 말하면 스구로와 코네코마루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그렇게 안 어울릴 것 같아요? 하고 시마가 투덜거리면 코네코마루가 스구로의 눈치를 보면서 흠흠 하면서 웃었다.
“지나치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역 시 코네코! 하고 시마가 싱긋 웃으면 스구로는 뭐하러, 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자신이 피어싱과 염색을 한 이유는 기합이라곤 했지만 사실 무시받기 싫어서였다. 교토와 도쿄의 차이는 엄청났고, 중학교 시절 저주받은 절의 아이라며 무시해오던 녀석들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여기서 그러한 일이 알려질 일은 없었지만 그때 당시 기억은 자신을 괴롭혔다. 자신 때문에 옆에 있던 둘 역시 학교생활은 원만하지 않았으니까.
처음 시마가 핑크로 머리카락을 물들였을 때, 지나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색함이 없잖아 있었지만 자신의 머리를 보더니 실컷 웃고는 다음날 자신도 머리를 물들여 오다니 지나치게 섬세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피어싱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어차피 올해면 고교생활도 끝나는데 뭐하려고 하고 말하면 그래서요. 하고 말한다.
“도련님보단 내가 잘 어울릴걸-”
뿌뿌, 하며 입술을 삐죽이며 침대를 뒹굴거리는 시마를 보고서 생각한다. 그건 동감이야. 겉모습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성실한 스구로보다는 시마가 훨씬 잘 어울릴 것이라고 코네코 역시 생각한다.
그날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간다며 시마가 밖으로 나갔다.
*
어릴때와 같이 허둥지둥 하는 모습은 이미 그 둘에게는 없었다. 이 녀석은 또 왜 진지해져서는 스구로가 술잔을 빙글 돌리며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린을 쳐다봤다. 벌써 몇잔째지, 하고 생각하면 역시 악마녀석 술까지 세기는, 하고 투덜거린다. 그의 말이 농담인걸 알기에 린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음에 여유가 사라졌다. 어릴때와 같이 순수했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것을 알아차린 건 졸업하고 처음만난 날, 오랜만의 모임이라 가보면 어린시절의 미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당시 실망하던 린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시마 좋아하던 건 알고 있었어?”
“내가 너랑 몇 년 알고 지낸 사이라고 생각하냐”
알고 있었어?! 하고 소리치면 스구로가 조용히 하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하지, 하고 말하며 다른 애들도 다 알고 있었어, 심지어 시마 녀석도 눈치채고 있었을걸, 하면 린은 미치겠네, 하며 쪽팔려, 하고 말했다. 그리곤 너도 티내고 다녔어. 하며 말하곤 그래서 내가 그때당시 너를 무척 싫어했지, 하고 웃었다. 뭐 어때, 지난일이잖아. 하고 말하면 린이, 그래? 하면서 물어왔다.
“나에겐 아직 지난일이 아니야.”
“......”
“너에겐 지난일이냐”
오년도 더 지난일이지, 하고 작게 대답했다.
*
‘도련님- 지금 기숙사 앞인데, 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문자를 확인하고 나면 코네코에게 나갔다 올게 하고는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요 앞이라면서 어디에 있담.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사복을 챙겨입은 시마가 스구로 앞에 나타났다. 왠 사복? 하고 물어보면 상가에 갔다왔지요. 하며 자신의 귀를 보여준다. 하아- 결국엔 피어싱을 하고 왔구나 하고 말하면 시마가 네 하고 웃고는 손을 벌린다.
“뭐...”
“도련님 피어싱 하나 주면 안되요?”
그렇게 말하는 시마의 귀에는 이미 새빨간 피어싱이 하나 있었다. 교환해요. 하고 말하는 시마의 목소리에 어려운 일이 아니네, 하면서 바꾸면 시마는 기쁜 듯 활짝 웃고는 스구로에게 안겼다. 왜,왜이래, 하면서 떨어트리려 하면 시마가 더더욱 세게 안겨왔다. 어께가 축축해져 시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스구로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왜 울어”
“......피어싱이 너무 아파서....”
말도 안 돼, 하고 웃으면 시마가 진짠데요. 하고 대답했다. 시마가 우는 것은 매우 드물어 잠깐 이렇게 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생각했다. 드물다니, 드문 정도가 아니라 시마는 울지 않았다. 처음 마장을 받았을 때도, 부모님께 혼났을 때도 무슨 소리를 들어도 그는 울지 않았다. 아, 그가 우는 것은 처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우는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미 평소 웃는 모습으로 돌아간 시마는 눈가만이 붉게 번져 있을 뿐이었다.
“그럼 도련님”
“응?”
“안녕히....”
*
“그럼 내가 시마 데려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린이 일어났다. 순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스구로가 린을 쳐다보면 린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에겐 오년이나 지난일일지라도 나에겐 여전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시마에게 잘 전해줄게, 너에겐 지난일 이었다고”
그 소리는 마치 네 녀석이
“시마는 지금 내 보좌로 있어. 물론 내년이 되면 나와 같이 바티칸으로 갈 생각이고”
“......”
“그 말을 들으면 이제 일본에 남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
“너......”
“미안, 처음부터 노린거였어”
난 너를 친구로 생각하지만 시마를 생각하면 역시 네가 싫어. 그렇게 말하는 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쇠를 사용했다. 언뜻 문 넘어 시마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다.
*
그날 이후 시마가 종적을 감췄다. 처음엔 큰일을 당한게 아닐까, 악마에게 끌려간 것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교토에 돌아갔을 때 그 걱정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깨끗이 치워진 방안, 시마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고향에서 스구로는 아버지에게도 야오조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렌조가 결정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조를 붙잡았다. 대체 누구 맘대로, 시마는, 렌조는
“제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도련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
“렌조를 위해서입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부탁하는 렌조를 위해서였다. 어릴 때부터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고 부탁하지 하지 않았다. 그런 렌조가 주조에게 매달리며 아버지에게 매달리며 부탁했다.
“그러니까 도련님도 그만 잊어주세요.”
렌조를 위해서 라고 말하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제나 동생보다 스구로를 우선시 하는 그가 처음으로 렌조를 위해서 라고 말했다. 파르르 떨리는 주먹이 그 누구도 원망하지 못한채 사그라 들어갔다.
그렇게 일년만의 동창회에서도 시마는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그때 당시 실망하던 기색이 역력한 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진짜 못말리는 녀석이다. 쪽지에 적힌 주소를 보며 스구로는 눈앞의 주소와 비교했다. 린 녀석이 장난치는게 아니라면 여기가 맞다. 문고리를 잡으면 스륵 하고 돌아가는게 이 두 녀석은 보안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벌컥 열린 문안으론 아직 온기가 가득해서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말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면 큰 거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쿠무라군 일찍 왔네...”
“너......”
“........”
아직도 그대로인 분홍머리카락은 약간 길어져 검은머리가 언뜻언뜻 보였고, 그새 눈이 나빠진건지 안경을 쓰고 있는 녀석은 무언가 잘못봤다는 듯 안경을 벗고는 다시 쳐다보고 안경을 쓰고는 다시 쳐다봤다. 그제서야 스구로가 진짜 인걸 알아차린 시마가 벌떡 일어나서 황급히 열쇠를 들곤 문쪽으로 달려갔다. 너, 또! 하고 말릴새도 없이 열쇠로 벌컥 열고 들어간 시마를 뒤따라 스구로가 힘으로 닫히려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뒤돌아본다.
“오쿠무라군 너무하지 않나요....”
“...몰라...”
그렇게 두사람이 도착한곳은 교토의 본가였다. 린이 미닫이 문밖에 없어서 불편하다며 투덜거리며 다시 만든 문이었다. 그 녀석, 하면서 스구로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그리고 시마를 바라보면 흠칫하고 놀라는게 옛날과 변한게 없어보였다.
“도련님...”
“언제까지 도련님이라고 부를 거야”
자신도 이제 엄연한 주지였다. 다들 주지님, 혹은 류지님으로 부르지만 시마는 그게 안되었다. 그가 주지가 되기전의 공백이 시마에게는 너무컸다. 곤란한 듯 웃는 시마를 보고서 스구로는 됐어, 하고 말했다.
“그럼 이제 변명이라도 들어볼까.”
“에...보내주는거 아니었습니까...”
미쳤냐, 하고 말하는 듯 스구로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내가 몇 년만에 어떻게 해서 너를 찾았는데 보내주겠냐, 하며 투덜투덜 말하면 시마가 그렇습니까, 하고 웃었다.
“변명이랄 것도 없습니다. 언제 제가 큰 이유가 있었던적 있었나요.”
“.......”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진짭니다.”
그렇게 말하는 시마가 못마땅한 듯 노려본 스구로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넌 변명을 해보라고 해도 거짓말만 하고 있냐, 그렇게 말하면 시마는 ‘거짓말 아닌데요-’ 하고 말했다. 그것도 거짓말, 그렇게 생각하곤 그를 쳐다보면 그가 이제 비켜주시면 안됩니까? 하고 물어왔다.
“피어싱,”
“......”
“아직도 하고 있네”
그렇게 말하면 시마는 곧 울 것만 같은 얼굴을 했다.
“그건, 도련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나치게 가까워, 그렇게 생각한 시마가 약간 뒤로 물러서면 스구로가 다시 바짝 다가갔다.
“시마, 내기 기억하냐”
“...없던 걸로 하자고 했잖습니까”
“그건 네가 이기고 나서 말해야지, 내가 이겼잖아”
“그때 도련님이 발만걸지 않았어도 제가 이길 수 있었는데요.”
어쨌든 내가 이겼잖아! 하고 스구로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어쨌든 기억하고 있단 말이잖아, 하고 말하면 시마는 잊을 리가 있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시마”
“네”
“이제부터 렌조라고 불러도 될까”
렌조라는 두 마디에 굳어진 시마가 스구로를 올려다 보았다. 그때보다 좀 더 커진 스구로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올려다보지 않으면 안되었고, 올려다본 스구로는 그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하고 있는 자신의 새빨간 피어스가 눈에 띄었다.
눈물이 서서히 번져나오고, 눈가가 새빨갛게 변했다. 이제야 보는구나 네 우는 모습. 그렇게 생각하고 끌어안으면 울음섞인 목소리로 시마가 치사합니다. 하고 말해왔다.
“치사합니다. 진짜, 치사해요”
그렇게 말하는 시마의 목소리는 떨려왔고, 옷을 쥐는 손끝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저도,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뭔데”
“이제부터 류지씨라고 불러도 됩니까”
물론 단 둘이 있을때만이지만, 그렇게 덧붙인 시마에게 입을 맞추며 스구로는 웃었다. ‘씨’는 빼도되. 그렇게 말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져와 눈물과 같이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
그렇게 다시 명타로 돌아오라고 말하면 시마는 고개를 저었다. 바티칸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명타로 돌아가진 않습니다. 전 이미 명타를 배신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시마는 웃으며 류지씨 쓸쓸합니까? 하고 물어왔다. ‘씨’는 빼라니깐 그렇게 말해도 존댓말이 입에 붙은 시마는 그러지 못했다.
명타에서도 시마에서도 아무도 널 뭐라고 하지 못해, 오히려 반긴다고 해도 시마는 말을 듣지 않았다. 열쇠가 있으니까 자주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시마는 하롱하롱 웃으며 스구로에게도 열쇠를 쥐어줬다. 류지씨도 쓸쓸하면 놀러오세요. 하고 말하는 시마가 얄미웠다. 앞으론 계속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시마를 되찾고 나서 첫봄이 왔다. 교토가 분홍빛으로 변하고 벚꽃이 휘날리면 시마가 방긋 웃었다. 역시 교토만한 곳이 없네요. 하며 말하는 시마는 그때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있는 듯 했다.
“렌조”
“네?”
“만약, 그때 네가 이겼다면 무엇을 말할거였냐”
곤란합니다. 하고 웃는 시마는 약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지난일이니까요. 하고 말했다.
“저를 잊어주세요. 도련님.”
“......”
“하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류지씨”
“......”
“하지만 당신과 헤어진 그 순간 무척이나 후회했습니다.”
다시 만난 순간, 다시 당신과 이어진 그 순간 역시 저는 당신이 없으면 안된다는걸 알았구요.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 않게 말을 이어가는 시마가 활짝 웃었다. 아아, 나도 그래. 스구로가 술잔을 빙글 돌렸다. 너를 다시 본 순간, 다시는 놓치면 안되겠구나. 나에겐 네가 필요하구나 하고, 생각했어. 시마를 따라서 그 역시 활짝 웃었다.
end
| |
| |
그가 크게 다쳤다. 황급히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실려간 그는 몇일동안 사경을 헤메다가 오늘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파서 울법도 한데 그는 약간 찡그릴뿐 곧 웃으며 괜찮습니까 도련님, 코네코 하고 말해왔다. 도련님은 화냈고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가 또 상처 입었다는 사실에 절망해갈 뿐이었다.
*
그는 그- 시마 렌조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웃기만 하고 조금 느슨해 보이면서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지만 나는 이제 그가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다. 싫다.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도련님 옆에 있어주었다. 우리들의 말도 안되는 부탁도 고분고분 들어주었다. 하지만 언제 였을까 저 미소가 거짓이란걸 알게 된 것은,
아니 언제부터 였을까 저 미소가 거짓으로 바뀐 것은
린이 시마! 하고 뛰어들면 스구로가 유키오가 말렸다. 중상의 환자이기 때문에, 형의 힘은 지나치게 세기 때문에 라고 연타 콤보를 맞은 린은 시마! 하며 침대에 다가가 괜찮아? 하며 물어왔다. 당연하지 오쿠무라군, 하는 그의 목소리에 거짓이 섞여 있다는 것을 오직 자신만이 알아 차렸다.
렌조가 마장을 받았다. 명타 절 뒤에 있는 산등지에는 버려진 사당이 하나있었다. 당시 호기심이 왕성했던 도련님은 무모하게도 그 사당에 올라갔고, 난 위험하단걸 알면서도 도련님을 말리지 않았다. 그저 도련님이 가신다니까 네 하고 따라갔을 뿐이다.
당시의 내 어리석음을 난 아직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간다고 정한 순간 렌조가 도련님을 불러세웠다. 조금 망설이는 듯한 표정의 렌조는 꼭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킨형이, 하면서 말끝을 흐린 렌조는 작게 소리쳤다.
“거긴 위험해요...가지 않는 편이...”
그렇게 말하면 도련님은 시마는 겁쟁이구나, 하면서 그를 무시하곤 사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도련님! 하고 부르더니 이내 우리를 따라 사당으로 올라갔다. 조금 으스스한 느낌에 도련님의 옷깃을 붙잡고 돌아가요. 하고 말하면 도련님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조금만 더 하고 말했다. 렌조 역시 나와 마찬가지 였는지,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도련님!!”
순간 렌조가 도련님을 들이받고 넘어졌다. 도련님은 옷을 털고 일어나며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려는 것을 멈추었다. 새빨간 피가 이마를 타고 턱 끝으로 흘러내렸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판단을 하기도 전에 렌조가 나와 도련님의 손을 붙잡고 사당에서 뛰쳐나갔다. 시마?! 하고 소리치는 도련님도 상황을 모르겠는지 그에게 이끌려 갔고, 그는 서서히 지쳐가는 건지 뛰는 것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코네코...”
“응?”
“도련님을 부탁해”
내 손을 도련님에게 쥐어준 렌조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무슨 생각이야, 시마! 하고 그를 불러 세우면 렌조가 소리쳤다. 도망쳐 주세요. 도련님! 그렇게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니 목소리뿐만 아니라 손끝이 벌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꼭 주저앉을 것처럼 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렌조는 악마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섭도록 우리들을 쫓아오는 악마를
“코네코 부탁해”
그렇게 말하는 렌조의 말에 난 도련님의 손을 붙잡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뿌리치려는 도련님을 눈물로 호소하며 끌고 갔다. 지금 저희들은 렌조를 도울 수 없어요. 도련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시 빨리 어른들을 불러오는 것, 그 무력함에 도련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 후 주조씨가 렌조를 업고 데려왔지만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며칠 동안 문병도 하지 못 하게 해 그가 얼마나 아파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
렌조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지키려다 다친 것이다. 영창을 끝마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 앞을 가로막고서 악마에게 정면으로 부딪치면 금이 갈 것 같은 소리가 났고, 키리크를 조금 뒤튼 순간 옆구리로 악마의 손톱이 쑤시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영창이 끝나고 멀리서 도련님과 선생님이 뛰어오면 난 망연자실한 얼굴로 렌조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희미하게 웃는 듯 우는 듯 그는 나에게 무사하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사과를 동그랗게 깎으면 시마가 헤헤 웃으며 코네코 손재주 좋네, 부러운 걸 하면서 폭폭 찍어 먹었다. 이정도야, 하면서 웃으면 시마는 그래도 부러워, 하면서 무릎에 얼굴을 받치며 고갤 숙였다. 렌조, 어디 아파? 하고 물으면 고개를 젓는다.
그가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조금 아픈 것처럼 보여 코네코는 과도와 사과를 내려놓고서 시마에게 다가갔다. 렌조? 하고 부르면 그가 약간 벅찬 듯 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이상하단 걸 깨달은 코네코가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병실에는 자신과 렌조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교대로 간병하기로 한 그들은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황급히 비상벨을 누르고 렌조를 부르면 렌조가 괴로운 얼굴로 이불을 붙잡고 가슴이 통증을 호소했다.
“렌조?! 렌조, 정신차려!”
“코네코....코네코....”
달려온 간호사들은 렌조에게 산소호흡기를 씌우고 황급히 상황을 체크했다. 곧이어 올라온 의사는 괜찮다는 듯 코네코에게 웃으며 인사했고, 코네코는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해 그를 올려다봤다.
“스트레스와 빈혈로 인한 일시적인 과호흡 상태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렌조를 쳐다보면 렌조가 눈물 맺힌 눈으로 호소했다. 괴롭다고, 살려달라고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할 말들이 눈 속에서 헤매었다. 얼마 후 산소호흡기를 땐 렌조가 코네코를 작게 불렀다.
“도련님껜 비밀로 해줘”
“...”
“코네코라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
“...당연하잖아”
그러면 잘게 웃으며 코네코의 옷깃을 붙잡았다. 렌조? 하고 부르면 그가 아무것도 아냐, 하며 손을 떼었다. 그 손길이 무척 애처로웠지만 다시 잡아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
렌조는 나와 도련님 사이의 연결고리 같은 거였다. 물론 렌조가 없는 날에도 도련님과는 잘 다니고 있지만 뚝 끊어진 대화의 단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 마다 옆에서 웅얼거리는 렌조가 없으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나치게 완고한 도련님의 고집은 나로선 전혀 꺾을 수 없었기에 평소 무리하는 그를 나는 말릴 수 없었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 역시 렌조의 역할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끔은 역시 도련님 옆에는 렌조가 필요해 하고 생각해 버리니 나는 정말 구제불능 같아 자괴감에 빠진 적도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를 이끌어 주는 것 역시 그였다. 나를 알아차린 건 그 뿐이었다. 어째서 알아 차렸을까 하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채,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이끌려 갔다.
다른 시간에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렌조는 아무 탈 없이 퇴원했다. 많이 걱정했습니까, 하고 방긋방긋 웃는 렌조에게 도련님은 바보녀석이라며 꾸짖었고 렌조는 헤헤, 하면서 나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불행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오랜만의 기숙사에서의, 오랜만인 셋 이서의 잠자리에 들뜬 것인지 렌조가 베개를 꽉 끌어안고는 침대로 뛰어들었다. 도련님- 오랜만에 같이 잘까요? 하고 묻는 렌조는 장난 끼 가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방긋 웃었고, 도련님은 당황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좁으니까, 저도 사양이거든여”
흥,칫,핏 하면서 그렇게 싫어하다니, 하며 훌쩍인 렌조가 이번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코네코는 거절하지 않을거지?”
‘이미, 누웠잖아 렌조‘ 하면 렌조는 그렇네 하면서 코네코를 끌어안았다. ’이렇게 안고 자기 좋은걸’ 하면서 머리에 뺨을 부비적 거리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코네코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막내인 것이다. 렌조도, 그렇게 웃으면 도련님도 한숨을 푹 내쉬더니 불끊다 하며 버튼을 딸깍 눌렀다. 환자인 렌조를 배려해서 다 나을 때 까지는 그를 우선시 해준다는 거였다.
그렇게 잠에 빠져가면 렌조가 잘 자 코네코 하며 말했다.
‘어라.’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옆자리가 허전해서 몸을 일으키면 그곳엔 렌조가 없었다. 혹시나 떨어졌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불편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나 싶어서 살펴봤지만 아니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도련님을 깨우려 했지만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그곳으로 다가갔다.
벅찬 듯 가슴께를 붙잡고 거칠게 숨을 내뱉는 렌조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장실 벽에 기대있었다. 도련님이 깨지 않게 그에게 다가가서 화장실 문을 닫으면 그가 조금 놀란 듯 이쪽을 바라보더니 나라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렌조...괜찮은거 아니었어?”
“괜찮아...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렌조가 내 옷깃을 꽉 잡았다. 손끝이 차갑고, 빨갛게 변하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렌조!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면 그가 괜찮다는 소리만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조차 벅찬 건지 숨을 내뱉었다. 숨이 넘어 갈 듯 보이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책에서 읽었던 응급처치 법이 생각났다.
‘렌조 실례’ 그렇게 말하고 그를 차가운 바닥에 눕히면 그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 봤다. 옷깃을 잡아오는 손에 힘이 풀려 있어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
입을 맞추는 이 행위는 키스라기 보단 인공호흡이었다. 책에서만 봐서 제대로는 모르지만 숨을 불어넣으면 렌조가 조금씩 진정되어 가는 게 보였다. 뜨거운 숨결이 닿을 때 마다 렌조가 작게 천천히 숨을 내뱉었고, 다시 한 번 입을 맞추면 이제는 호흡이 안정된 듯 보였다.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는 조금 지쳐보였다. 코네코, 하면서 기대오는 그는 역시 막내인지라 내 어깨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잠든 그를 보면 내가 드는 것도 무리, 깨우는 것도 무리, 그렇다고 도련님을 부르는 건 렌조가 싫어할테니 무리. 하면 역시 그가 깨어날 때 까지 여기서 있는 수밖에 없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렌조의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하면 안정된 숨소리가 귓가에 닿아왔다. 조금, 아주 조금 그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곧이어 포기했다. 거절될 것이 두려워 나는 포기했다. 그래도, 우리 둘은 공감할 수 있다고, 서로 안아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아침이 조금 늦게 오길 바랐다.
end
| |
'2D > 청의 엑소시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autiful 시리즈 (0) | 2014.07.03 |
---|---|
아마이몬+시마 렌조 (0) | 2014.07.03 |
스구시마/린시마 (0) | 2014.07.03 |
킨렌 (0) | 2014.07.03 |
유키시마 (0) | 2014.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