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 아래로 추락하는 자왕난에게 날아간 카라카가 가볍게 그를 낚아챘다. 얼굴이고 가슴이고 피가 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몸을 관통했다. 숨을 쉬는 게 기적이었다. 카라카는 지금만큼은 자하드의 핏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차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추워. 자왕난이 몸을 웅크렸다. 카라카는 자왕난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자신은 분명 저 싸움에 전력이 되지만 자왕난이 없다면 무의미한 싸움이었다. 신수가 부딪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카라카는 로브를 벗어 차디찬 바닥에 깔고 자왕난을 눕혔다.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자왕난을 치료하고 따뜻한 침대에 눕히고 싶었다. 그러면 살아날 것이다. 물론 지금 죽는단 소리는 아니었다. 너 끈질기잖아. 카라카가 자왕난의 손을 꽉 잡았다. 응? 거머리처럼 끈질긴 녀석이었잖아. 눈을 뜨지 않는 그가 야속해 괜히 잡은 손에 힘을 줘 가슴팍에 끌어당겼다. 힘없이 딸려온 손이 너무도 비참했다. 숨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그야, 자하드의 신수니까. 자하드의 힘이었으니까. 찬란한 금빛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정확히 자왕난을 노렸다. 알았는데, 막을 수 있었는데, 자왕난이 아니라 자신이 대신 맞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순간 네가 죽는다는 생각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카라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우리가 정말 죽을 수 있다면. 카라카는 간신히 호흡하고 있는 자왕난의 가슴에 이마를 가볍게 내려놨다. 이제 하나 남았다. 너를 위해 탑을 바꾸겠다는 생각도 먹었고, 그토록 싫어하던 이들과 손도 잡았다. 오직 너를 위해. 그런데 모든 게 바뀌고 네가 정말 염원하던 것을 이루던 그 자리에 네가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네 손에 죽고 싶어.”
종종 생각했다. 자왕난은 자신을 다 용서한걸까? 하고. 그의 동료들이 죽는 걸 방관했다. 때로는 지시하기도 했고, 일부러 함정에 빠트리기도 했다. 그리고 너도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죽는다면 네 손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그것조차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내 염원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를 빼앗아 가려고 하고 있다. 내게 신은 너 뿐인데. 내가 믿는 것, 바라는 것, 사랑하는 것 그 모든 근본은 너였다. 네가 죽는다면 세상은 의미가 없었고, 탑이 바뀌어도 카라카는 바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죽지마…“
“카…라카…“
우리는 쉽게 죽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정말 이번에 마지막 삶 일거라고, 이 지겹고 악독한 생에서 벗어날 거라고 늘 희망했지만 너를 만나고 나서는 삶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너를 만나고 나서는 세상이 빛이었고, 낮이었고, 태양이었다.
“울지 마……”
차가운 손이 카라카의 뺨을 감쌌다. 평생 가면을 써왔던 얼굴이었다. 너를 만나고 나서는 한 번도 쓰지 않았지. 신 앞에서 신자는 늘 경결해야 했고, 너는 내 유일한 신이었으니까.
“만약…내가 죽으면.”
카라카는 당장에라도 닥치라고, 말하지 말라고 소리쳐야 할 것을 그러지 못했다. 만약 진짜 이번이 네 마지막이라면 난 네 유언도 듣지 못한 채 너를 보내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잖아. 나를 가면도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낮에는 눈을 뜨고, 밤에는 잠을 자게 만들어 놓고, 미래를, 행복을 가지고 싶게 만들어 놓고 너만 훌쩍 떠나는 건. 너는 내게 남아서 유일한 불멸자가 되어줬어야지, 낮에는 태양이 되고 밤에는 달이 되어 줬어야지. 내 미래가 되어줬어야지, 같은 행복을 빌어줬어야지.
“네가 왕이 되어줘…”
함께 하자고 말해줬어야지. 카라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가서 일행을 도우라든가, 자하드를 쓰러트리라던가, 탑을 바꾸라던가, 왕이 되라든가 그런 흔해빠진 말이 아니었다. 카라카는 자왕난이 울기를 바랐다. 울면서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길 바랐다. 곁에 있어 달라고, 같이 죽어달라고 하길 바랐다. 자왕난이 그러지 못한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해주었으면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카라카는 자왕난의 뺨에 흘러내리는 것이 제 눈물임을 알면서도 닦아냈다. 울지마. 그건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카라카가 자왕난의 손을 꼭 잡았다. 하늘에선 섬광이 터지고, 대지가 울렸다.
“이대로 조금만 있자.”
아주 조금만,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네가 잠들 때까지만.
네가 왕이 되어 달라면 못할것도 없다. 신이 되어달라면 신도 되어 줄 것이다. 폭군이 되겠지만, 카라카는 잠든 자왕난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곤 몸을 일으켰다. 나의 빛, 나의 교리. 나의 유일한 맹신. 그게 너였다. 전부 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