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토시로의 독백
히지카타 토시로는 스스로가 특별히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란 걸 안다. 그의 어렸을 때는 사방에 불빛이란 횃불이 다였고, 곳곳에서 전쟁이 터졌으며 하루에 수십 또는 수백 수천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시대였다. 어렸을 땐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줄 알았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잃고 갈 곳이 없던 나를 거둬준 형마저 잃을 뻔했어. 아니, 나 때문에 그는 인생을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니 죽인 거나 다름없겠군. 그렇게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서 길생활을 했지. 배가 너무 고파서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으면 염치없이 집으로 돌아가 끼니를 해결하곤 했어. 그때마다 형은 나를 반겨주며 함께 지내자고 했지만 나는 매번 말없이 집을 떠났지. 그의 입술이 술에 젖어 번들거렸다. 지나가던 시체에서 검을 가져왔어, 목검이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사람을 벤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처음으로 사람을 베었을 때 감각이 너무 소름 끼쳐서 한동안 날붙이는 가까이하지도 못했거든. 지금이야 이게 없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지만. 그는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제복을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을 차고 있었다.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인간은 원체 자기얘기를 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것도 있었지만 (묻는 말에 대답은 곧잘 했다.) 그의 유일한 술친구인 사카타 긴토키가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쁘다는 것도 한몫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주절주절 들어주다 보면 어느새 만취해있었고, 새벽이었고, 그의 집이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히지카타는 그와의 관계가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기에 그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대부분 빠칭코에서 얼마를 날려 먹었느니 오늘 의뢰는 어땠느니 하는 얘기였고 나머지는 해결사 사무소 운영에 대한 정확히는 신파치와 카구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특별히 약속을 잡고 만나지는 않았다. 그런 것 치고는 마주치는 일이 잦았지만 크게 신 경쓰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가웠지.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한 친구답지 않게 그들은 눈이 마주치고는 아무말도 없이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우리의 취향은 정반대였고 만나기만 하면 세금 도둑이냐 날 백수건달이냐, 마요라는 식문화의 붕괴가 아니냐, 너의 천연파마야말로 미용 문화의 붕괴다. 하는 시답잖은 말씨름을 하게 되는 낮과는 달리 밤만 되면 분위기가 풀어졌다. 술 때문인가. 히지카타는 텅 빈 옆자리를 한참 바라봤다. 오늘은 안 오려나, 혼자서 데운 사케를 두 병째 비우고 있었다.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역시 말동무가 없으니 심심하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문 앞에서 나타난 긴토키가 나 늦었어? 하고 얼빠진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진즉 떠났을 것이다. 늦었냐니,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약속을 잡은 적도 없이 그 말은 이상했다. 꼭 자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지 않은가? 히지카타는 못 들은 척 그에게 인사했다. 누구 만나기로 했나 봐? 그러자 긴토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주 찰나였지만 긴토키는 바로 표정을 풀고는 히지카타의 등을 토닥였다.
"히지카타군 들어봐 오늘 아주 어마무시한 일이 있었다니까?"
그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는 자연스레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벌써 두 병이나 마셨어? 히지카타의 자리를 보고는 긴토키가 웃는다. 긴상이 없다고 외로웠구나~ 하는 쓰잘데기 없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히지카타는 대꾸하지 않고는 담배를 꺼낸다. 안 펴, 그냥 물고만 있을 거야. 긴토키가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는 걸 아는 히지카타가 덧붙였다. 물론 그를 배려해서 불을 붙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 담배를 피면 더 우울해질 것 같단 말이지. 히지카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긴토키가 나타나자 안도했고, 같이 술을 마시자며 붙잡는 손에 기뻤으며, 기뻐하는 자신을 보고는 우울해졌다. 아니라고, 녀석을 기다린 게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해왔건만 술에 취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진 히지카타는 이루어질 리 없는 짝사랑과 자괴감에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잇었다. 그에 비해 이 천파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히지카타를 보며 긴토키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 있어? 히지카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식사할 만한 거 있어? 나 오늘 쫄쫄 굶었어."
"준비해줄게"
시끌벅적한 술집에 긴토키의 목소리가 울린다.
"밥도 안 먹고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
그제야 입을 여는 히지카타를 보며 긴토키는 그러게 말이다 하고 운을 뗐다. 아침부터 의뢰가 있었는데 신파치는 콘서트가 있어서 못 온다고 하지 뭐야, 망할 아이돌 오타쿠 녀석. 그래서 카구라랑 둘이 가려고 했는데 자긴 사다하루 산책시키고 오겠다는 거야. 순진한 긴상은 그대로 믿고 말았지. 일은 평범해서 사실 혼자 해도 충분했는데 카구라가 사다하루를 끌고 진짜 온 거야... 소이치로군과 대포도 같이. 소고의 이름이 나오자 대충 결말이 상상이간 히지카타가 허! 하며 웃었다.
"어라라? 히지카타군? 여기선 미안하다고 해야지? 웃으면 안 되잖아, 우리 애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 키웠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해야지? 긴상 소이치로군 덕분에 하루 일당도 다 날리고 쫄쫄 굶어서 잠이나 자자 하고 잤다가 늦은 거라고? 당장 진선조에 달려가서 소이치로군을 깨워 사과시켜야지?"
"미안, 미안하다. 근데."
히지카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그러다 심호흡을 하고는 고개를 돌린다.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마음껏 시켜"
활짝 웃은 긴토키가 데운 사케 한 병을 시킨다.
사카타 긴토키라는 인간은 다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돈이 썩어 넘칠 정도로 부자도 아니면서 병원을 밥 먹듯이 드나드는 이유는 그 썩을 다정함 때문이었고 히지카타 토시로는 그게 뭇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에게 반한 이유 역시 그 다정함 때문이라는 걸 안다. 사카타 긴토키는 자신이 천연파마라며 인기가 없다고 술만 마시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만 히지카타는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인기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면 넌 뭐라고 대답할까.
평소와 같은 패턴이다. 긴토키의 페이스에 휘말려 다시 술로 입을 적신 히지카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긴토키는 또 자기 옛날얘기를 마구잡이로 하는 중이다. 양이지사니, 전쟁이니 하는 먼 옛날이야기들을 술기운에 빌려. 익숙한 이름도 들려온다. 카츠라 코타로느니 타카스키 신스케라느니. 만약 자신이 지금 제복 차림이고 제정신이었다면 당장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연행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비번이었고 사복 차림이었으며 품에는 수갑이 없었다. 여전히 운이 좋은 녀석이야. 히지카타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긴토키를 바라봤다. 신나서 떠드는 꼴이 꽤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었고, 히지카타는 제 웃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떠들썩한 술집에서 그의 웃음소리는 아주 고요히 사라졌다.
"그래서, 그 뭐냐…그, 그…"
긴토키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인 채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내, 내가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가 바보처럼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너랑 타카스키란 놈이랑 단팥이냐 요구르트냐로 싸웠다고 했어. 히지카타는 한심하다는 듯 얘기했고 긴토키는 술로 마른 입안을 적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네놈 취향은 알 수 없다니까. 히지카타가 술잔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백번 양보해서 요구르트가 낫다.
"아니, 아니 히지카타군? 여기선 내 편을 들어줘야지? 타카스키 그놈은 양이지사라고?"
"너도 잖아."
"난 전양이지사였고!"
"나는 지금 비번이야, 일반인이라고."
덕분에 네놈도 수갑을 안 차는 거라고. 히지카타의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긴토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나랑 더 친하니까 내 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누가 애인 욕한다고 옆에서 맞장구치면 안 되는 거랑 똑같지."
내가 소고 욕한다고 해서 너까지 욕하면 안 되는 거랑 똑같다고 바보야. 둘 사이에 정적이 맴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시간을 확인하려던 찰나 긴토키가 옷소매를 붙잡아 온다.
"그럼 네 얘기나 해줘 내가 맞장구쳐줄게."
"…네가 재밌어할 만한 얘기는 없어, 썩 유쾌하지도 않고."
"알고 있어."
알고 있다. 사카타 긴토키는 유쾌하게 자기 얘기를 했지만 그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죽거나 잊혀진 친구들 사이에 홀로 살아남은 실패한 영웅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어야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히지카타는 아직도 그 시절을 얘기하지 않는다. 히지카타 토시로란 남자는 그 어떤 일이 닥쳐와도 그때보단 낫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본심을 얘기하지 않았고 비추지 않았다. 감정의 당사자에게는 더더욱.
말은 할수록 새어나가는 법이다. 사카타 긴토키가 결국 저에게 미주알고주알 전부 늘어놓은 것처럼 저 역시 그에게 전부 떠벌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엉엉 울어버리겠지. 히지카타는 제가 왜 과거와 마주 하고 싶지 않은지 알고 있었다.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았다.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조차 없단 말이다. 저도 모르게 담배를 입에 물자 긴토키가 불을 붙여준다.
"그렇게 얘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내가 꼭 강요한 것 같잖냐."
그의 손이 제 손위로 올라온다. 익숙한 듯 손을 꼭 포개어 잡는다. 다정한 손길에 히지카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넌 지금 이대로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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