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링성향 없음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니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많았다. 그가 특별히 더 만나고 싶다거나, 만나야 한다거나 한건 아니었다. 그저 만나서 묻고 싶은게 있었다.
당신이 내린 결론에 우리가 얻었던 결과가 무엇인지 아느냐, 수많은 관중들과 그 사이에 붙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당신은 그저 웃었다. 당신의 모순된 행동에 우리들은 울고 화내고 갈라지고, 흩어졌다. 그 모든게 당신 탓이라는 건 아니었다. 그저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당신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걸 내게 가르쳐 주고 갔으니까, 단지 묻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이 내린 결론에서 당신이 얻은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서로를 죽이고, 그게 원수사이던 모르는 사이던 사랑하던 사이던, 혹은 친구사이던. 그리고 우리같은 사제사이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많았고, 그중 꼭 죽이고픈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었다. 이런곳에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당신과 칼을 겨누고 싶진 않았다.
당신은 검을 땅에 처박고는 한참이나 서있었다. 지시자와 뭐라고 하더만 하하, 웃으면서 다가왔다.
“아는 사이래”
두 지시자를 가르키며 말하는 그는 옆에 앉으며 바닥을 툭툭 쳤다. 오늘하루는 쉬겠군, 나무에 등을 기대며 하는 말에 난 픽 웃었다. 그가 무안했는지 고개를 슬쩍들었다.
“나 기억못하는건가…?”
“그럴리가요. 교관”
“오랜만인걸 레온, ”
그의 옆에 털썩 앉자 그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여기와서 처음듣는 소리라고 교관이라는거”
“교관님이니까요…”
“글세 다른 녀석들은 잊은건지, 교관소리 한번 안해주더라”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지시자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금새 표정을 풀곤 웃어보였다.
“근데 네녀석은 어떻게 굴렀길래 여길왔어”
“…….”
“보니, 젊어보이는데”
레온을 한번 쓱 훑어본 그가, 불평조로 말했다. 난 그렇게 안가르쳤는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한 마디 쏘아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과적으론 그가 내린 결정으로 우리 모두가 좀 더 살게 되었으니,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결정으로 우리의 가르침이 모두 헛게 되어버린 것을 그는 모를것이다.
“교관…이 하실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맞아”
너무 쉽게 인정하는 그를 바라보면 어느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내가 뭐라할 시기는 한 참 지났는데, 내가 기억하는 네녀석들이 너무 어려서 그런가. 계속 잔소리만 하게 된단말야”
머리를 긁적거리며 웃는 그는 정말이지 그때와 변한게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에, 슬퍼해야할 사실에 조금 기뻤다.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기에 레온은 작게 웃었다.
“가자, 레온”
어느새 다가온 지시자가 레온의 손을 잡아 끌었다. 벌써? 하고 묻자 지시자는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럼 저 사람이랑 싸우고 싶어?, 어느새 다가온 지시자를 안아올린 프리드리히를 보며 레온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다시뵈요. 교관”
“그래. 무사하길 빈다.”
“교관님도요.”
등을 돌려야 하는데 서로 먼저 가보라고 하는 꼴이 퍽 웃겼는지 지시자가 옷을 잡아 끌었다.
“사이좋아보이네”
“뭐, 나쁘진않아요.”
“좋은거야, 내 지시자는 말이지”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리자 올라타 있던 지시자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뜯으며 프리드리히, 하고 중얼거렸다. 아야야, 하고 웃는 그가 진짜 간다. 하며 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레온은 금방 떨어져 나가는 손을 보고 아쉬워 하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랜만이었다. 다정한, 자기를 위한 사람의 손길. 레온은 자신의 머리를 몇 번이고 다시 쓰다듬고선 뒤로 돌아섰다.
“기분좋아보여”
“음”
“레온?”
“지시자, 고마워”
갑작스런 레온의 말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다봤다. 시익 웃은 레온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지시자는 레온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도 남아 있는 듯한 온기에 자신의 머리를 만지고선 작게 웃었다.
*
“오랜만이야.”
자신의 앞에서 검을 겨누고 있는 그를 보며 레온은 푸스스 웃었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잖아요? 레온역시 검을 집어 들며 그를 바라봤다. 흐음, 하며 그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내 푸핫 웃고는 검을 바로 들어다.
“좋은 자세야, 그동안 실력은 좀 늘었나?”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있다. 어쩌면 영원히 묻지 못하겠지만, 아니 묻지 않아도 이젠 괜찮다. 왠지 그 답을 알것 같았다. 레온은 날카로워진 그의 눈빛을 보며 대답했다.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