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브x프리드리히
수위가 애매~
뿌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갤 숙인 프리드리히가 거친숨을 내뱉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붙잡았다. 다리뿐만 아니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고개를 살짝 들면 큰 손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올렸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컸다. 프리드리히는 머리채가 잡히는 와중에도 다리에서 손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프리드리히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슴을 구두굽으로 걷어찼다.
“프리드리히”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떠는 그에게 한발자국씩 다가갔다.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눈빛에 그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마치 자신이 울듯한 얼굴이었다.
“너를, 내가 너를 어찌해야 좋을까.”
남자가 프리드리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깨에 손을 대자 프리드리히가 흠칫 떨어왔다. 남자의 손은 더 이상 다가가지도 못한채 그 어깨에 머물렀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프리드리히를 바로 앉히면 고개를 숙이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남자는 억지로 그 얼굴을 바로잡고 이마를 맞대었다. 프리드리히, 살짝 마주댄 이마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공포에 질렸는지 말해줬다.
“하,하지마..”
“널 위한거야”
남자의 손이 점점 내려갔다. 물러날곳도 없으면서 뒤로 뒷걸음 치려는것을 보아 아직 완전히 부러진것은 아닌듯 했다. 남자는 다시 그곳에 손을 올려놓았다.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남자가 팔꿈치로 프리드리히의 입을 막았다. 아프면 깨물어, 답지 않은 친절이었다. 프리드리히는 그 팔을 잡아 내리려 했지만 눌러내리는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읍,으...”
“다시는 날 벗어나지마 프리드리히.”
* * *
“밖에 위험해, 강간범도 있고, 살인마도 많아. 여기가 제일 안전해”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가 틀어준 노래는 클래식이었다. 잔잔한 노래가 어두운 방에 울려퍼졌다. 프리드리히의 입이 바싹 말랐다. 지금 몇시지, 며 칠이나 지난거지. 고개를 살짝 들면 남자가 웃는게 보였다. TV볼래? 남자가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흠칫 몸을 떤 프리드리히를 보더니 남자는 소리내 웃으며 바로 옆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채널을 휙휙 돌리는 남자는 뭐 볼래? 하고 물어봤다. 그렇게 물어봤자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는걸 알면서도 그리 물었다. 프리드리히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몇 번 채널을 돌리더니 이내 한 채널에서 멈췄다. 뉴스를 하고 있었다. 실종사건이었다. 프리드리히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
“...”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왜? 이제 흥미가 들어? 남자는 묻지 않았지만 마치 그렇게 말하는듯 했다. 프리드리히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재미없다. 남자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걸을수 없는건 아니었다. 단지 힘들뿐이었다. 남자는 제대로 된 치료도 해주지 않고 프리드리히를 방치했다. 물론 남자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리에 대해선 크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끝에서 들려왔다. 머리끝이 흠칫흠칫 일었다.
휠체어를 끄는 느낌은 언제나 좋은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남자의 집은 컸다. 크고 넓었으며 조용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곳 같았다. 어째서 이런곳에 끌려온건지 어째서 그게 자신인건지.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 바로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덜컹, 팔을 움직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테이프로 묶여진 손발은 움직일수도 없었고, 우는 얼굴을 가릴수도 없었다. 제발, 프리드리히가 흐느꼈다. 남자가 그 소리를 들은건지 끌던 휠체어가 멈췄다. 바로 앞에서 무릎꿇고 프리드리히를 올려다본 남자는 퍽 당황한 표정이었다.
“왜 울어 이쁜아, 좋아서 그래?”
“..읍..으...제발...제발..”
“어? 말해봐, 내가 뭔들 못들어주겠어”
“놓아줘...”
그 말을 하지 말아야 했다. 프리드리히는 금새 후회했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언젠간 했을 말이었다. 그대로 아무말도 없이 돌아온 남자는 프리드리히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나봐. 남자가 다시 테이프를 들었다. 프리드리히는 고통에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찌익, 테이프가 떨어졌다.
“사랑해”
테이프로 막아진 입위에 키스한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 * *
“같이 씻을까”
남자가 가운을 벗으며 말했다. 며 칠째 바빠 프리드리히를 제대로 챙겨줄 여력이 없었던 남자는 많이 피곤해보였다. 프리드리히의 손목에는 탈출하려는 흔적이 보였다. 남자는 그 상처에 입을 맞췄다. 수갑도 풀지 않은채 프리드리히를 질질 끌고간 남자는 욕조서 몸을 겹쳤다. 눈앞에 보이는 목덜미가 하얗다. 남자는 츕 입을 맞췄다. 테이프는 때넨지 오래였지만 프리드리히는 입을 열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남자가 이름을 부르며 그 등에 키스했다. 경찰이라고 했었나, 남자는 잠깐 그가 제복을 입고 있었을때를 상상했다. 오늘 구해와 볼까. 등에 상처가 많았다. 많이 예민해진 상태였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왔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못잤다. 그렇기에 남자는 프리드리히의 머리채를 잡고 욕조에 눌렀다.
욕실 전체에 프리드리히가 우는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내가 너 죽여? 강간해? 왜 그래?”
“아흡, 아”
“내가 이상해보여?!”
마주본 프리드리히의 눈에선 두려움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헐떡이는 숨에 입가가 번들거렸다. 남자는 프리드리히를 붙잡고 입을 맞췄다. 어차피 좁은 욕조엔 도망갈 곳도 없었다. 수갑이 채워진 손은 얌전했다. 숨이 찬지 헐떡이는 가슴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남자를 자극했다.
“엎드려”
“하아,하..아..”
“지금 네 얼굴 볼 기분 아니야. 엎드려”
* * *
“하아,하아,..하”
프리드리히가 힐끔 뒤돌아봤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픈 다리를 붙잡고 달리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빠져나오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자는 정신 없이 자고 있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은 프리드리히는 남자의 품을 빠져나왔다. 남자는 지금까지 일이 우습게도 쉽게 비켜주었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드디어 벗어났다. 프리드리히는 잠깐 멈춰 숨을 골랐다.
“뭐해”
숨이 멈추는것 같았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멈출생각을 하지 않았다. 뛸때보다 훨씬 아팠다. 프리드리히는 뒤돌아 볼 수도 없었다. 남자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쳐야 한다. 본능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잡힐것이다. 머리가 그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가 한발자국 움직이자 남자의 걸음소리가 빨라졌다.
“윽...!”
바닥으로 쳐박힌 프리드리히의 머리에서 미적지근한게 흘러내렸다. 하아, 남자 역시 숨이 찬지 숨을 골랐다.
“미친년아, 밖에 위험하다고 했잖아”
남자가 프리드리히의 다리를 눌렀다. 억눌린 비명소리가 울렸다. 도망칠수 있었는데, 그랬는데 프리드리히가 발버둥치자 남자가 비웃었다. 남자의 손은 부드러웠다. 의사의 손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그러면서도 거칠었다. 남자는 찢을듯 프리드리히의 옷을 잡아 뜯었다. 지금은 환한 대낮이었다. 그것도 밖에, 프리드리히는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지만 남자가 올라타고 있었다.
“잘못했어!!”
“.....”
“미안해, 다신 안그럴게”
통했나? 남자의 손이 멈췄다.
“개수작도 작작 부려, 프리드리히”
* * *
프리드리히는 입가를 닦아내고 싶었다. 다리가 벌벌 떨려왔다. 속옷이라도 입고 싶었다. 하물며 담요라도 덮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질질 끌려오면서 등은 다 쓸려서 아렸다. 뺨은 아팠고, 머리는 남자가 대충 치료를 해주었다. 입안은 헐었고, 허벅지 사이에는 멍이 들었다.
“프리드리히...”
남자가 입을 열었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남자가 서럽다는듯 이제는 뚝뚝 울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면 위험한데,...”
“....”
“난...단지 네가...”
남자는 수없이 입을 맞췄다. 키스도 했고 차마 말하기 민망한 곳까지 입을 맞춰왔다. 그 행동 하나만은 진심이었다. 프리드리히가 입술을 달싹였다.
“미안해”
오랜만에 푹 잔 느낌이었다. 뻐근했던 몸이 풀리는 듯한 기분에 프리드리히는 팔을 쭉 뻗었다. 어? 프리드리히는 당김없이 펴지는 팔에 찌푸린 눈을 바로 떴다. 팔에는 아무것도, 밧줄도 수갑도 묶여 있지 않았다. 붕대로 칭칭 감겨 있긴 했지만 자유로웠다. 그러고 보니 누워 있는 침대도 바뀌어있었고, 방도 달랐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아님 그 전의 일들이 꿈이 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전의 일이 꿈이라고 하기엔 몸에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꿈이 아니라고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달칵, 문을 여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프리드리히가 곧 환하게 웃었지만, 금새 일그러졌다.
“프리드리히 몸은 괜찮나”
자신에게 걱정스레 물어오는 형제는 반갑기 그지 없었지만 그 옆에 서 있는 남자는, 프리드리히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본능적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프리드리히? 베른하드가 물어 왔지만 프리드리히는 오직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평소의 웃음과 다를 것 없이 환히 웃고 있었다.
“베른, 이사람은..!”
“너를 구해주신분이다. 프리드리히”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에 프리드리히가 놀란 눈을 하고 베른하드를 바라봤다. 옷깃을 붙잡고 베른, 하고 다시 부르자 베른하드가 손을 살짝 잡아왔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프리드리히. 그렇게 말하는 베른하드와 남자를 번갈아 보는 프리드리히는 구역질이 올라오는것 같았다.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프리드리히는 방을 둘러보았다. 병실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마치, 여기는
“프리드리히씨의 안정을 위해 병실보다는 방으로 배치했습니다.”
남자가 베른하드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 베른하드는 몸을 일으키면서 프리드리히의 손을 놓았다. 잠깐, 베른! 프리드리히가 그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는 다리는 떨려만 왔다. 프리드리히 괜찮다. 베른하드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남자는 안경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프리드리히, 여긴 안전하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 베른하드에게 프리드리히는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불안정한 동생이었고, 남자는 그런 프리드리히를 구해준 은인이었으니까,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돌아가는 뒷 모습을 보고 프리드리히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던 나와야 한다. 여기 까지 나왔다. 드디어 그 끔찍한 집을 탈출한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살짝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높은 층은 아니었다. 남자가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럴 리가 없었다.
쾅. 어째서, 프리드리히는 창문을 두들겼다. 쿵, 어째서,
“데굴데굴, 머리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어느새 돌아온 남자가 벽에 기대어있었다. 안경은 어디 벗어뒀는지 피곤한 기색이 들어나는 얼굴로 기대어 한숨을 푹 내쉬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악, 프리드리히의 멱살을 잡고 침대로 처 박은 남자가 속삭였다.
“허튼짓할 생각 하지마.”
“....”
“내가 너 죽게 놔 둘것 같아?”
* * *
추적추적 비가 왔다. 남자는 젖은 어깨를 털어내며 신발을 벗었다. 프리드리히? 남자가 다정하게 그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빗소리가 지붕위로 떨어지면서 소리가 울러퍼졌다. 원래 대답은 잘 없었다. 최근 급격히 밝아지긴 했지만 자신이 물어오는 말에 즉각 대답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남자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너무 조용했다. 남자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딸깍, 방문을 여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어둡게 꺼진 방안에는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다.
“?”
모래를 밟은 듯한 느낌에 남자는 바닥을 내려다 봤다. 깨진 화분과 함께 흙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황급히 방에 불을 켰다.
* * *
“반갑습니다. 프리드리히씨의 주치의”
“......”
“라고 말할줄 알았냐?”
남자는 프리드리히가 사흘 정도 혼수상태였다고 했다. 어쩐지 좀 마른 듯한 기분에 프리드리히는 헐렁한 옷을 펄럭였다. 빨리 밥이나 먹어, 남자는 핀잔하듯 말했다. 알았어, 프리드리히는 불평하듯 말했다.
“왜이렇게 고분고분해”
“.....”
“사람불안하게”
“말들어줘도 불평이야”
목소리가 살짝 떨렸지만 그런대로 대꾸는 했다. 프리드리히는 아픈 팔을 들어올리며 밥을 먹었다. 그 꼴이 웃겼는지 남자가 프리드리히의 수저를 빼앗아 들었다. 힘 없이 빼앗긴 수저를 보며 프리드리히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봤다. 밥먹으라며? 표정이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남자는 웃었다. 귀여워, 남자가 아- 하고 프리드리히에게 말했다. 잠깐 망설이던 프리드리히가 이내 입을 벌렸다.
“이러니까 꼭 예전으로 돌아간것 같다.”
그 말이 얼마나 소름끼쳤는지 아마 남자는 모를것이다.
“우리 예전엔 엄청 재밌었는데”
자신이 왜 가만히 있는지 남자는 절대 모를것이다.
“빨리 완치하고 집에 가야지”
절대 몰라야 했다.
식사를 마친 프리드리히를 향해 남자는 웃어주며 나중에 봐, 하고 병실을 나갔다. 먹던것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남자는, 이 남자는, 프리드리히는 남자가 말하는 예전이 언제인지 기억했다. 언제였더라, 우리가 처음만난 그날이었던가 아니면 남자의 집이었던가, 어찌되었던 상관 없었다. 다리가 완전히 걸을수 있게 된다면,
오늘은 바빠서 못 온다고 남자가 말했다. 낮에는 잠깐 베른하드가 왔다가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투명한 유리로 막힌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 밖에 나가 본게 언제였더라, 제 다리로 온전히 걸어 본것이 언제였더라. 문뜩 프리드리히는 옆에 있던 목발을 들었다. 어느 정도 혼자서 행동이 필요했기에 남자가 준 것이다. 처음엔 휠체어를 준다고 하길래 극구 사양했다. 목발을 의지하여 몸을 일으킨 프리드리히는 어느정도 다리가 괜찮아 짐을 느꼈다.
꼴깍, 침을 삼키며 문앞에 섰다. 절대 열리지 않을것 같던 문이 달칵 열렸다. 어째서 지금, 하지만 불평할 시간도 프리드리히에겐 있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는 복도를 빼꼼히 내다봤지만 사람은 없었다. 큰 병원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한발자국씩 밖으로 내딛었다. 덜컹 하는 소리에 몸을 움츠리고 뒤를 돌아봤더니 작은 꼬마아이가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어색하게 웃어주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
언제였더라, 전에도 이런적이 있었는데 프리드리히는 정적이 맴도는 복도를 보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가 금새 CCTV에 찍힐거라 생각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창문을 통해 계단 밑으로 프리드리히의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쩐히 허무하단 생각에 발을 내딛었다.
툭.
어, 프리드리히는 앞으로 넘어가는 몸을 지탱 할 수 없었다. 목발은 이미 손에서 멀어진지 오래였고, 몸이 공중에 붕뜨는게 느껴졌다. 파노라마 처럼 스쳐지나 가는 생각들 속에서 남자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이 남자의 얼굴일까,
우당탕, 쾅, 엉망으로 구른 프리드리히는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머리가 크게 부딪친 걸까 시야가 흐릿했다.
“프리드리히...”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어쩐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사랑한다니까”
당신과 나는 비가 쏟아져 내리는 길 한가운데서 만났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퍽 낭만적이었던 그때
휠체어 시리즈 세 번째
장마가 유난히도 길었다.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리즈가 몸을 뒤척였다. 끈적한 짠내가 온몸을 덮쳐왔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지, 이불을 눌러쓴 리즈가 쾅쾅거리는 소리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밤중 자신을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딱히 무기로 쓸만한 도구가 없어서 천천히 문앞으로 다가갔다. 또다시 몇 번 쾅쾅거리더니 뭐라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 있는 단어였다.
선배,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리즈가 문을 벌컥 열었다.
"나 좀 숨겨줘. 선배"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한 프리드리히가 그리 말했다. 베른하드에게 쫓겨난 것인지 스스로 뛰쳐나온 것인지 손에 든 건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신고 있는 신발도 슬리퍼여서 발이 다 젖어 있었다.
"믿을 사람이 선배밖에 없어. 제발 부탁이야."
추위에 떠는 것인지, 단순한 불안증세인지 계속해서 몸을 떨며 그리 말했다.
* * *
말이 승진이지 완전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리즈는 그렇게 촌구석에 처박혀 살았다. 그래도 나름 잘 나가는 뜯사였는데, 리즈는 그때 프리드리히를 만났다. 완전 어리버리 해서 일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지만 그래도 체력 하나는 좋은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 자신의 침대 위에서 끙끙 앓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내려가지 않자 결국 병원에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녀석은 경기를 일으키며 구석으로 파고들었고 그걸 간신히 달래서 재워놓았다.
우냐, 리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눈물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물수건으로 대충 닦아주며 얼굴을 찬찬히 뜯어 봤다. 못 보던 상처, 이마 끝에서 길게 늘어져 있는 상처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은 모르던 상처였다. 그것뿐이면 말도 안한다. 옷을 갈아입을 때 슬쩍 보았던 몸 곳곳에 생채기 투성이었다. 그렇게 나서지 말라고 했는데, 리즈는 몸을 일으키며 끙하는 소리를 냈다. 서랍을 뒤져보면 아마 쓰다만 반창고가 있을 것이다. 하얀 포장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이마끝 상처에 꾹 눌러 바르면 금새 고개를 돌린다. 미안, 프리드리히. 리즈는 그저 사과하는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리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굳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상대에게 억지로 캐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것보단 프리드리히의 상태 때문이 더 컸다. 리즈는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리드리히의 상태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고, 딱히 꺼내도 좋을 이야기는 없다고 판단한 것 뿐이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괜찮냐."
보름 만에 밖에 나온 프리드리히는 대답이 없었다. 발에 밟히는 모래사장조차 프리드리히에게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나 보다. 억지로 끌고 나오는 게 아니었나, 혼자 해변가를 터덜터덜 걸어가던 프리드리히의 뒷모습을 보던 리즈가 머리를 긁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영 불안했다. 한쪽 다리가 아프기라도 한지 절뚝거리는 것이 이내 억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어떻게 된 게 맨바닥에 넘어지냐 리즈는 프리드리히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바보같긴"
긴장이 풀린건지 살짝 웃어 보이는 프리드리히에 리즈는 그를 해변가에 앉히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 다쳤네, 뺨에 난 생채기에 리즈가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약국 있으니까 갔다 올게, 그렇게 손을 놓으려한 리즈를 프리드리히가 붙잡았다.
"선배 가지마..."
"...."
"난 괜찮으니까 가지마"
살짝 떨리는 것은 착각이리라, 리즈는 프리드리히의 머리를 한번 헝클어 놓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빨리 올게, 다시 부르는 목소리가 없자 리즈는 살짝 걸음을 빨리했다.
* * *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프리드리히는 웅크려 있던 고개를 들었다. 선배 빨리 왔네, 사실 그 이상 말할 수 없었다는 게 사실이었다.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든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선배를 보낸 것을, 다시 한 번 붙잡지 않은 것을 아니 밖에 나온 것을
'다쳤네' 빨갛게 생채기가 난 뺨에 입을 맞추며 서서히 다가오는 남자에 프리드리히는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다.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그날의 트라우마에 프리드리히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이 정신병이라고 했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자해를 했다고 했다. 들어오는 간호사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결국엔 베른하드 조차 만나지 못하게 하며 프리드리히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거기서 탈출한 건 기적과도 같았다. 미쳐 날뛰는 남자를 뒤로하고 도망쳐 나오면 간신히 차에 올라타 이곳까지 내려왔다. 끝까지 남자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는걸, 프리드리히가 이를 악물었다.
사랑해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남자가 울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치도록 처절한 울음소리였다.
사랑한다니까,
그러니까 마치 파노라마처럼, 프리드리히는 앞으로 쓰러졌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사박, 남자가 모래사장을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자신은 도망칠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몸이 굳어왔다. 이젠 물러날 곳도 없이 바짝 다가온 남자가 속삭였다.
"왜 도망쳤어?"
그래도 처음엔 다정했는데, 지금와서 다정을 논하기엔 너무 늦은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정말 그랬다. 남자는 처음엔 다정했다. 지금을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아, 옷 선배 껀데. 프리드리히는 와중에도 그런생각을 했다. 침대로 내동댕이 쳐지고 손이 묶는 와중에도 옷은 선배껀데, 그렇게 잡아 뜯으면 내가 새로 사줘야 하는데, 어디 껀지도 모르는데, 눈앞이 번쩍 빛났다. 남자의 손이 프리드리히의 뺨을 내리쳤다.
"무슨 생각하는거야. 프리드리히"
입술이 터진건지 상처가 벌어진건지 뺨이 쓰렸다. 소매는 가위로 잘라버리고, 옷을 전부 벗긴 다음에야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정돈 별거 아니었다. 이젠 수치심도 없었다. 누군가 구해주리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쓸데없는게 있네"
이마끝 상처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발견한 남자가 그것을 지익 떼어냈다.
"아,"
"프리드리히..."
저거 선배가 붙여준건데
"나한테 집중해. 프리드리히"
'2D > 언라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수 아이자크x교도관 프리드리히 AU 1 (0) | 2014.07.04 |
---|---|
에바리리 말할 수 없는 비밀 (0) | 2014.07.04 |
에바자크 (0) | 2014.07.04 |
콥라드 (0) | 2014.07.04 |
콥 오른쪽 (0) | 2014.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