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데드 시즌3 9화까지 보고 쓴 글입니다.
총에 맞아 죽는 이도, 병에 걸려 죽은 이도, 나이를 먹고 생을 마감한 이도 되살아나 망자가 되어 피와 살을 갈구하며 돌아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오랜 친구, 가족 혹은 연인이었던 이들의 마지막을 제 손으로 장식해야만 했다. 그게 유대였고, 우정이었고, 사랑이라 믿는 시대였다. 남자는 제 오랜 동료의 머리에 덤덤히 화살을 쏘아 머리에 시원한 바람 구멍을 내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찌 보면 가족 같았던 사람이었지만 죽은 후에 되살아난 것들은 그저 괴물일 뿐이다. 그래서 남자는 망설이지 않았고, 망설일 수 없었다.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런 남자에게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손을 벌벌 떨게 하는 상대가 있었다. 연인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했고, 가족이나 친구라고 말하기엔 그들이 나눈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건 때때로 우정이기도 했고, 사랑이기도 했으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서로에게 주는 위로이기도 했다. 허나 위로는 때때로 상처로 변해 서로를 할퀴었으며 남자는 그가 주는 상처마저도 꿋꿋하게 받아들였다.
만약 그에게 화살을 꽂아야 할 때, 차가운 총구를 그의 이마에 들이밀어야 할 때, 그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어야 할 때,
남자는 종종 악몽을 꾼다. 이제 그들이 지켜야 할 건 서로밖에 없었고, 남자는 더 이상 동료를, 친구를,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겨우 찾아낸 그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 반짝이던 눈과 희망이 가득 찬 동글동글한 얼굴은 눈물로 번져 이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남자를 보더니 이제야 왔냐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뭘 기대했어요?” 그의 말에 남자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발치엔 그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연인이 있었고, 동료도 있었으며, 가족도 있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분명 가족이었고 그들을 버린 건 남자였다.
돌아올 생각이었어. 변명을 들어줄 이들은 이제 없었다. 남자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어찌나 말랐는지 당기면 팔이 꼭 빠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찾아올 밤과 망자들 때문에 놓을 수 없었다. 그의 팔을 붙잡고 어두컴컴한 교도소에서 빠져나왔다. 근육 하나 없는 팔엔 남자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다.
처음엔 인간들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아마 가버너쪽 사람들이겠죠. 그들이 철망을 모조리 부수고는 워커들을 유인했어요.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릭과 캐롤이 나가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들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모습을 보고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릭은 제게 칼을 부탁한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칼이 몰래 빠져나갔어요. 제가 뒤따라 나가려는 것을 메기가 말렸죠. 이미 늦었다고. 그거 아세요? 칼이 제 가슴에 올 만큼 자랐어요. 허셸이 메기를 물었어요. 그는 종종 인간과 워커 사이를 방황했고, 메기를 문 그날 스스로 자기 머리를 쏴 죽었어요. 베스는 자살했어요. 막지 못했죠. 저는,
그의 목소리가 턱 막혔다.
메기를 죽였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대로 두면 그녀는 워커로 변해 그를 물었을 것이고,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아주 많이, 혹은 남자보다도 더. 그래서 죽는 걸 택했을 것이다. 남자는 그가 연인을 죽였을 때를 상상한다. 갈색의 부드러운 단발머리에 총구를 겨눴을 때. 당당하게 웃는 연인의 이마에 서늘한 총이 닿았을 때. 동굴처럼 꽉 막혀 있는 교도소 안에서 총성이 울렸고.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남자가 말했다. 그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만약 그가 그녀를 죽이지 않고 함께 죽는 걸 택했더라면, 남자가 돌아왔을 때 참상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워커가 되어 내가 그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그의 연인이 그를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도, 그의 연인을 내 손으로 죽이는 것도.
네가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 연인의 부른 배를 갈라 네 시신이었던 것을 확인하는 것도.
저도 죽으려고 했어요. 남자는 차를 세우지 않았다. 어차피 길엔 사람도 차도 없었다. 멈춰있으면 워커의 한 끼 식사가 될 게 분명했다. 총알이 없었죠. 그래서 목을 매달려고 했는데, 꿈에서 그녀가 그러더라구요. “I will find you. Glenn.” 마른 줄 알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죽을 수 없었어요. 당신은 제가 배짱도 좋고, 대담한 녀석이라고 했지만 전 죽을 수 없었어요, 죽고 싶지 않았어요. 마지막까지 살고 싶었어요. 비겁한 녀석이라고 해도 전 살고 싶었어요. 인간으로서 살고 싶었다구요…! 그가 오열했다. 남자는 차를 세우곤 그를 끌어안았다. 넓은 어깨는 오래전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나게 했다.
“왜 떠났어요. 당신도 가족이었잖아요. 저를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대체 왜 저를 떠났어요. 당신만 떠나지 않았어도…”
“미안해.”
남자가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남자가 떠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도 알고 있었다. 진짜 가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누가 떠나지 않겠는가. 그 역시 부모님이나 누나들이 살아있단 소릴 들었다면 분명 떠났을 것이다. 돌아온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 남겨놓고서. 그러나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일에도 상처를 받았다.
너를 구하기 위해서였어. 남자는 아직도 그가 피투성이가 되어 몸도 가누지 못하며 눈앞에 나타났을 때를 기억했다. 황급히 그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혹 상처가 나진 않았는지 살펴보니 워커에게 당한 상처가 아니었다. 법과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있는 인간이었고, 그를 만신창이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남자의 형-멀 이었다. 멀은 남자에게 동행할 것을 요구했고, 남자는 그에게 금방 돌아오겠다며 말하곤 일행을 떠났다. 형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난 형을 따를 생각이었어! 대체 그를 왜 그렇게 만든 거야.
남자의 말에 멀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 차이니즈보이?
“he's Korean.”
“Whatever.”
어쨌든 남자는 돌아가야 했다. 그에게 말했으니까. 몇 주, 몇 개월 형과 함께하며 안전한 장소를 찾았고, 형이 이곳에 머물겠다고 했을 때 남자는 일행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형은 말렸지만 남자는 완고했고, 형은 남자에게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며 보내버렸다. 허나 답지 않게 동생에게 다정했던 형은 총 몇 자루와 차를 내어주었다. 돌아오면 피떡될 줄 알아.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남자가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 본 광경은 지옥도와 같았다. 철조망은 무너져 망자들의 살을 파고 들었고, 뜰 안으로 수십 혹은 수백 마리 워커들이 몰려 있었다. 하나같이 느리고 멍청했지만 수가 저만큼 되면 남자 혼자서는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어떻게 된 걸까. 생각도 잠시였다. 커다란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갈랐고, 워커들은 그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남자는 몇 남지 않은 워커들을 처리하고 그가 표시해논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체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남자는 코를 막고는 더 안쪽으로 오래전 그들과 함께 했던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자가 발견한 건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였다. 그는 남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그의 말에 남자는 이를 악물고 그를 차에 태웠다.
저는 인간으로서 살고 싶었지만, 이 세상은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어요. 바짝 끌어안은 그가 남자의 옆구리에 찬 권총을 뽑아 들었다. Kid. 남자의 음성이 보기 드물게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제게 겨누는 총구를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가 희미하게 웃고는 권총을 제 관자놀이에 대었다.
“글렌.”
남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가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꽤 오랜만이라 입안에 모래라도 한 움큼 집어넣고 씹는 것처럼 껄끄러웠다. 남자에게 그는 언제나 꼬마였고, 지켜줘야 할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나를 두고 가지 마.”
남자의 말에 그가 총을 내려놓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냈다. 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를 두고 가지 마. 그건 그가 그녀에게 한 말이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그녀에게 매달렸음을, 어쩔 수 없음을. 그러나 그가 죽는 건 헛된 희생에 불가했다. 그녀는 너를 지키기 위해 죽은거야. 남자의 말이 양날 검이 되어 서로의 가슴을 찔렀다.
“당신은 나를 지키기 위해 떠난거구요?”
남자가 그의 손을 붙잡고 꺾었다. 입에 구겨 넣으려던 권총이 허공을 향해 발사됐다. 파열음이 귀를 때렸다. 젠장, 글렌! 발버둥치는 그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그의 손은 권총을 꽉 쥐고 있었고, 남자는 그를 차 문에 밀어붙였지만, 권총이 이마에 닿는 뜨거운 감각에 몸이 굳었다. 그는 씨근덕거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곧 총소리를 들은 굶주린 망자들이 저희를 향해 달려들 것이다. 그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으며 죽게 될 것이고, 남자는 그가 그런 죽음을 맞지 않았으면 했다.
“죽여.”
남자가 덤덤히 말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쭉 다섯시간 정도 가다보면 생존자캠프가 있어. 거기서 멀을 찾아.”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어느새 총구는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남자는 그에게 키스하며 권총을 건네받았다. 고마워.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차가 출발했다. 부드럽게 달리는 차 안에서 그는 어느새 색색 잠이 들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남자가 사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감사했다. 슬픔은 병이고, 병은 살아있다보면 낫는다. 살아만 있어준다면 된다. 그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사랑해. 차마 그가 깨어있을 때 하지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어깨가 흠칫 떨리는 것은 착각이길 바란다. 창문에 비친 그와 눈이 마주친건 착각이길 바란다. 그와 동시에 그가 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다시 한번만 내게 기회를 줘. 남자는 쓴 담배를 삼키며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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