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릴이 글렌에 대해 아는 건 몇 없었다. 동양인이라는 것과 얼굴에 비해 나이가 있다는 것-그래 봤자 자신보다 한참 어렸지만- 날쌔고, 재빠르고, 머리도 좋고, 피자 배달을 했었고, 거짓말을 못 해서 포커도 못 치고 -글렌이 그리 말했을 때 데릴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술도 못 마시고. 물론 데릴도 술을 잘 마신다곤 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렌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CDC에 도착한 후 긴장이 풀린 건지, 간만에 맛본 술이 달아서인지 끝을 모르고 마시던 데릴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글렌을 보며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쳤다. Kid! 그러자 다들 데릴이 열 살밖에 먹지 않은 칼을 보며 소리치는 줄 알고 너무 어리다고 말렸으나 데릴의 눈은 처음부터 단 한 명에게 향해있었다. 너 말고 글렌! 그제야 물만 꼴깍꼴깍 마시던 글렌이 데릴을 보며 놀란 눈을 하고 대답했다.
“저요?”
“그래 너!”
답지 않게 들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모처럼 안전한 곳에 도착했는데 어찌 들뜨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겨우 사람다운 밥을 먹고 따뜻한 물로 씻고, 푹신한 매트 위에서 잘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저놈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연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만 보고 있지 않은가. 데릴이 글렌의 옆에 바짝 붙어 앉자 글렌이 몸을 움츠렸다. 썩 친한 편도 아니었고, 몇 번 목숨을 빚진 게 다였던 그가 알콜냄새를 훅 풍기며 다가오자 글렌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얼굴이 얼마나 빨개지는지 궁금하다며 글렌의 잔에 와인을 부었다. 다들 마시지 않아도 된다며 눈짓을 줬지만 먼저 권해준 데릴을 생각하니 도저히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작 와인 두잔 마시고 얼굴이 빨개진 글렌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더는 못 마신다고 중얼거렸고, 마찬가지로 취한 데릴은 글렌의 팔을 어깨에 둘러메고는 더 마시자며 제 방으로 끌고 갔다. 꽤 도수가 높은 위스키병을 바닥에 툭 내려둔 데릴이 글렌을 매트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Hey, kid. 그에게 술을 먹인 건 반쯤은 호기심이었고, 반은 동정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눈치만 보고 있는 게 불쌍하기도 했고, 까만 머리카락이나 눈동자가 어떻게 흐트러지는지, 하얀 피부가 얼마나 빨개지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데릴이 글렌의 팔을 붙잡자 글렌이 손을 내저었다. 더는 못 마셔요…
“꼬마.”
데릴이 다시 한번 그를 부르자 글렌은 반쯤 누운 모양새로 자신은 어린애가 아니라며 투덜거렸지만, 저와의 나이 차를 생각해보면 어린애가 맞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 데릴은 위스키병을 들고 마시다 금세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저와 글렌은 함께 있는 편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와 함께 다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둘 다 가족도 형제도 잃은 천애고아와 같은 신세였다. 지킬 건 제 몸뚱이뿐이었으니 움직이는 것도 살아남는 것도 혼자인 편이 나았다. 데릴은 그제야 제가 왜 글렌에게 동정심을 느꼈는지 알아차렸다. 웃기지도 않는군. 술이 확 깨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글렌은 한참을 말이 없더니 눈을 살풋 뜨며 말했다.
“Glenn.”
배시시 웃으며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입술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눈가와 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까만 머리카락은 부드러웠으니 입을 맞춘 건 충동적이었지만 몸을 섞은 건 합의하에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글렌은 입을 피하지 않고 벌려 혀를 섞었고, 팔을 뻗어 목에 둘러 더욱 밀착했으며, 옷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그가 벗기기 좋도록 팔을 올려주었다. 장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섹스파트너를 선택하기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지만 이미 눈앞에 아주 좋은 파트너가 있는데 무얼 망설이냔 말이다. 바지 안으로 손을 넣자 잘 먹지 못해 마른 골반과 엉덩이가 만져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와는 골격 자체가 다른 아이였다. 키는 비슷했지만. 젠장, 정말 꼬마(kid)랑 섹스하는 기분이군. 데릴은 굳이 제 생각을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글렌이 데릴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데릴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물었다.
“꼬마랑 섹스하는 기분은 어때요?”
데릴이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 밖에 워커들과 내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군.”
마주친 눈이 곱게 휘어지더니 키스가 이어졌다. 얼굴만 허여멀건 한 줄 알았더니 옷 아래 피부도 희었다. 저 땡볕을 그렇게 뛰어다녔으면서, 피자 배달을 했으면서 피부 하나 상하거나 타지 않고,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그 역시 글렌이 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건 글렌이 정말 어리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섹스를 모르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키스는 서툴렀지만. 글렌의 바지를 벗기려는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글렌이 데릴의 어깨에 입술을 부비며 살짝 깨물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대담한 꼬만데…. 그러나 데릴은 곧 그가 정말 어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