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트린 모자를 줍던 프리드리히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자세는 엉덩이를 삐죽 내민채 였고 돌아간 시선에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금발의 소년이 보였다. 아니 소년이라고 하기엔 체구가 좀 큰가, 교도소에서는 겉 모습만으로는 나이를 알지 못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려 보이는 소년에 프리드리히는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좋지 않은지 끙차 하며 소리까지 나왔다.
“네가 한 말이냐? 죄수 3618번”
프리드리히는 그 앞에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려 앉았다. 그러다 슬금 다가오는 죄수에 프리드리히가 슬쩍 뒤로 물러났지만 금세 다가온 금발의 죄수는 멱살을 잡고 끌어 당겼다. 순간적으로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간 프리드리히를 보고서 주변에서 달려와 끌어 당겼다. 미친놈아! 엉망으로 뒤로 나자빠진 프리드리히가 숨을 몰아쉬며 옷 위를 더듬거렸다. 단추가 뜯긴것도 모자라 피부위로 새빨갛게 손톱자국이 나있었다. 아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보니 한쪽밖에 남지 않는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는 죄수가 보였다.
“프리드리히”
정확하게 그 이름을 불렀다. 언제 떼어간것인지 옷에 있던 명찰이 없었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했던가, 몇 명의 교도관이 들어가 죄수에게서 빼앗아 왔지만 그 이름을 기억한듯 죄수는 몇 번이고 이름을 되새겼다.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교도관님.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한동안은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서 프리드리히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복도 전체에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2.
이름은 아이작 로스바르드. 나이는 생각보다 어렸다. 그것도 엄청, 프리드리히는 아이작의 서류를 훑어보다 죄명을 보고 혀를 차며 책상위로 탁 던졌다. 그와 동시에 리즈가 들고 있던 펜으로 프리드리히의 뒤통수를 탁 때렸다.
“왜 때려요!”
“괜히 화풀이하지 말고, 준비해. 교대시간이야.”
“선배 나 진짜 못 바꿔줘요?”
“싫으면 때려쳐”
아, 진짜! 프리드리히의 절망 어린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이곳 교도소는 언제나 일손 부족이었다. 들어와도 금세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며 이젠 입소문이 나서 지원해서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다시 그 녀석과 마주 봐야 한다는 사실에 칠색팔색을 하며 책상 위를 뒹굴었다.
교도관은 복도식이었다. 철장 안에 갇힌 죄수들이 가끔 손을 뻗어오는 일이 있었으나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진 닿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까이 간 프리드리히, 자신이 병신이었단 소리다.
“교도관님”
그리고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프리드리히는 눈을 딱 감고 몸을 틀었다. 옷을 걷어 손목에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한참이나 남은 교대시간에 프리드리히는 진짜 이 일을 때려치워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진짜 아주 잠깐.
“교도관님은 엉덩이도 섹시한데, 손목도 섹시하네요.”
“.......”
“만져보고싶다.”
구금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레 금욕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걔 중에는, 프리드리히는 거기까지 생각하다 눈을 꾹 감았다. 무엇보다 저 녀석은 들어온 지 일주일 밖에 안된 녀석이었고, 그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모르지만 절대 그런 욕구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들어보면 안다. 저건 도발하는 것이다. 자신을 도발해서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아이작을 바라봤다.
“3618번 조용히 해”
“교도관님”
“왜”
“왜 자꾸 씹팔씹팔 거립니까? 기분 나쁘게, 제 이름 몰라요?”
“야”
“아이작이에요.”
“.....”
“아이작 로스바르드”
그건 마치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키는 것과 같은 말투였다. 아이작, 로스바르드,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녀석은 자신이 아이작, 하고 불러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저는 친구를 죽였어요.”
그것을 말할 때는 조금 기쁜것 같았다. 안대를 슬쩍 들어 올리더니 흉터를 살살 긁었다. 오래된 상처처럼 보였는데 아직도 간지럽냐고 물으니 습관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습관이라 프리드리히는 자연스레 자신의 왼쪽 이마를 긁적거렸다. 상처도 없는데 괜히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