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리리 말할수 없는 비밀
1.학교합작
2.리른쪽 합작
3.펀치님께
학생 에바리스트x교사 프리드리히AU
피아노 건반위로 간드러진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눈을 감은 소년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 햇빛이 드리웠다. 검은 피아노가 순식간에 달아올랐지만 소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텅 빈 음악실에 피아노 소리만 울려퍼졌다. 덜컹,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템포가 더 빨라졌다. 마치 이 상황이 지루해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건반을 튕겨내면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다르다니까 에바리스트”
“그렇게 칭찬하실 실력은 안됩니다. 프리드리히”
글쎄, 프리드리히가 어깨를 으쓱하니 의자를 하나 끌고와 그 옆에 앉았다. 난 음악에 대해선 영 꽝이라서, 등받이에 기대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자 그가 손바닥을 쫙 펴보이며 왁 놀래켰다.
“프리드리히…”
“이번엔 무슨 곡 쳐줄거야?”
아주 잠깐, 그 손이 매우 예쁘다고 생각했다. 에바리스트는 악보를 몇 개 넘기더니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자장가라도?”
“너무하다구”
손으로 입을 가린채 하품을 하는 그는 나른한듯 눈을 감았다. 어차피 다음 수업 없잖아요, 그렇게 건반위로 손을 올리는 에바리스트를 보며 프리드리히는 중얼거렸다. 너 수업, 전 콩쿨연습으로 빠집니다. 프리드리히는 입을 뿌 내밀며 눈을 감았다. 그럼 한곡 들려줘.
* * *
노래가 끝났다. 아니 억지로 끝낸듯한 느낌이었다. 건반위에 떨어진 에바리스트의 손이 내려올줄 모르고 매달려있었다. 마치 갈곳을 잃은 아이처럼, 프리드리히가 에바리스트를 살짝 불렀다. 에바리스트는 그제야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곡 이 이상은 없어요.
“제가 만든 곡이거든요.”
대답을 원하는 듯한 프리드리히의 얼굴에 에바리스트가 대꾸했다. 진짜? 하고 되묻는 프리드리히에 에바리스트는 웃으며 건반위를 톡톡 두드렸다.
“대단한걸”
에바리스트의 손가락이 멈췄다. 순수한 감탄사, 처음만났을 때와 같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해오는 그였다.
“이 곡 이름이 뭐야?”
에바리스트는 웃으며 비밀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게 뭐야. 치사해”
“그래도 안되요.”
“이럴때마다 꼭 입장이 바뀐것 같은 기분이 든단말야”
“착각이겠죠. 프리드리히”
피아노를 치면 그가 온다. 어느새 손을 멈추고 소리가 멈추면 그가 옆에서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제와 다를바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콩쿨이 바로 앞으로 다가온것만 빼면 아무렇지도 않은 평화로운, 에바리스트는 축 늘어진 그 모습을 보고 어울릴만한 곡을 찾았다.
에바리스트는 생각한다. 그가 음악에 대해 무지해서 다행이라고,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에게 들려준 모든 노래를 듣고 그는 여기에 있지 않을거라고 확신했다. 찾았다.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는 악보들 사이에서 곡을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에바리스트는 그렇게 했다. 그가 볼일도 없었지만 가끔 악보를 힐끔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지극히 무표정이라 가슴 졸이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악보를 펼치고 건반위에 손을 올려놓고 숨을 크게 내뱉은 에바리스트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에바”
“…….”
“나 결혼한다.”
그는 평소 버릇처럼 손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쫙 펴진 왼손에는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다. 평소처럼 웃는 그에게 난 대답을 해줄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프리드리히…”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야”
“…….”
“한 곡 쳐줄래?”
에바리스트는 그가 매우 얄팍하다고, 얄궂다고, 짖궂다고, 정말 못되고 잘못된 어른이라고 진짜 그런식으로 거절하는게 어딨냐고, 건반위에 올린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곡은 엉망진창이었다. 템포는 빨랐다가 느렸다가, 전체적으로 퉁퉁거리는 느낌에, 결국 중간에 멈춰버렸다. 팅 하고 울리는 피아노 줄이 매정했다.
툭 떨어진 손위로 다른 손이 다가왔다. 너만큼은 못치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프리드리히가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자신이 빠르게 곡을 망쳤다면, 그는 느리게 느리게 곡을 망치고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자신과 닮아 있었다. 언젠가 본적 있었다. 그의 버릇을 눈여겨 보다보니 그의 손을 자세하게 본것이다. 딱히 묻고 싶지고, 물어도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물었지만, 그의 손목에 꽤나 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이 피아노와 관계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한것도 처음 아주 잠깐이었다.
뭐가 음악은 영 꽝이라는 거야, 악보도 보지 않은채 곡을 끝내버린 그의 손을 보며 한동안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 * *
피아노를 쳐도 그가 오지 않았다. 콩쿨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그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바리스트는 오히려 잘됬다고 생각했다. 콩쿨이 끝나고 일주일정도 피아노를 놓았다. 완전히 놓아버린건 아니었다. 단지 휴식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만약 그 콩쿨에 그가 있었다면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서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에바리스트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자연스레 음악실 앞에 선 에바리스트는 닫혀있는 문을 보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지 얄궂은 사람이다.
미미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에바리스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드르륵, 열고 들어간 음악실은 불이 완전히 꺼져있었다. 타닥, 불을 키면 흠칫 놀라는 그가 보였다.
“불은 왜 안키고 있어요?”
“…그냥?”
“도둑마냥 왜 그렇게 놀라요.”
"도둑마냥 이라니! 네가 갑자기 들어와서 그렇지“
에바리스트가 그 옆으로 다가갔다. 느리고 약했지만 분명했다. 그 곡, 에바리스트는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건반위로 손을 올렸다. 그렇게 치는거 아니에요. 처음엔 얌전한 숙녀처럼, 중간엔 뛰어노는 아이처럼, 마지막은 활기찬 소년처럼, 에바리스트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피아노 건반위로 손을 움직였다. 마지막 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한 에바리스트를 보고서 프리드리히는 웃으며 박수를 쳤다.
“콩쿨에서도 그렇게만 했으면 우승했을건데”
“콩쿨에서 프리드리히가 얼굴 잠깐만 비췄더라면 우승했을건데”
“변명하지 말자?”
“변명 아닙니다만”
너 유머가 꽤 늘었다? 웃으며 기대어 오는 프리드리히의 왼손에는 여전히 반지가 있었지만, 그걸로 됐다. 지금은 됐다. 에바리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엔 이 곡이름은 뭔데?”
“비밀이에요.”
“곡 완성도 했잖아? 좀 가르쳐주면 덧나냐”
“말할수 없는 비밀이라구요.”
아서라, 손을 휙휙 내젓는 그를 보고서 말했다. 한곡 더 할까요?
Anche Ti Amo
에바리스트x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가 돌아왔다.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워낙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으니까, 에바리스트는 호들갑 떠는 아이작에게 그렇게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아이작이 목소리를 낮추며 가까이 다가왔다. 에바리스트는 그다지 듣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었으나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사고가 있었데, 부인은 죽었다고 하더라”
나는 그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의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엉성하면서도 마무리가 완벽한 그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이 곡이 계속되는 동안은 우리는 단둘이었고 함께였고 사랑했다. 그것이 서로이든 이 시간이든 우리는 분명 사랑을 했고 피아노 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헤어졌다. 하고 싶은 말고 해야 할 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랑했다고 한들 그와 특별히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 특기생인 난 자주 음악실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는 피아노를 좋아해 자주 마주쳤다. 그것뿐인 인연이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오랜만에 음악실에 들어온 에바리스트는 피아노 건반 위를 소리가 나지 않게 두드렸다. 대체 이럴 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자신은 대체 왜 오지도 않을 사람에게 기대하며 피아노 앞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오면 어떤 표정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워 차마 연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항상 기대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지. 에바리스트는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적잖이 놀란 듯 보이는 그 눈동자까지. 에바리스트는 조용히 피아노 앞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요. 프리드리히”
나는 그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었다.
정말 잔인하게도 그는 나에게 축가를 요구했고 나는 바보같이도 그와 그 부인을 위해 아름다운 축가를 연주했다.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 곡이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는 이제 그 앞에서 연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이곳에서 만난다. 항상 언제나,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이곳에 와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명 그 사이 엇나가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 * *
언제부턴가 항상 그는 음악실에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피아노 앞에 앉아 나를 반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늦게 음악실에 도착했고, 행여나 그가 놀랄 까봐 조용히 문을 열었다. 프리드..리히? 그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숨어 있나 싶었겠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진짜?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두려움에 에바리스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한숨을 내쉰 에바리스트는 피아노 뒤편에 기대어 앉아 졸고 있는 프리드리히를 발견하곤 그 앞에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고작 몇 달이었다. 고작 몇 달. 그 사이 프리드리히가 변했을 리가 없는데도 에바리스트는 프리드리히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몇 달 새 더 늙어 버린 것도 같았고, 더 어려진 것도 같았다.
못 보던 상처, 에바리스트는 조심스레 그 상처 위를 쓸어내렸다. 눈썹 위에서부터 길게 찢어진 상처는 자신의 기억 속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처는 프리드리히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에바리스트는 이 감정을 알고 있다. 결국, 자신은 프리드리히의 처음도 마지막도 될 수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모를 거에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
“당신이 돌아온다고 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당신은 몰랐을 거에요”
몰라야 했구요. 에바리스트는 끝내 마지막 말을 삼켰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항상 생각했다. 이제는 끝이다. 정말 당신과 끝이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어째서 당신은 여전히 내 앞에 서 있는 것인지 그런 표정을 하고서 내 앞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젠 어떠한 말을 해도 우리 사이가 되돌아 갈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바리스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자신이 만약 ‘미안해요.‘ 라고 하면 당신은 나를 용서하겠지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미안해 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다. 만약 그 대화가 끝나고 나면 당신과 나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일까
“깨어있는 거 알아요.”
“........”
“먼저갈게요.”
끝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 * *
의식적으로 그를 피해 다녔다. 물론 완전히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그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미안하다는 말로도 우리 사이는 완전히 돌아갈 수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사이였다. 주변에서 보기엔 적어도 그랬다. 그저 생각하기 싫은 미래를 내 헛된 바램으로 덧칠해 놓을 뿐이었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알 것이다. 알면서도, 에바리스트는 음악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잖아, 간간이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그가 매우 좋아한다던 그 곡이었다.
"그만 해요. 프리드리히"
피아노 소리가 멈췄다.
"저를 먼저 밀어낸 건 당신이에요. 거절한 것도 당신이었고"
"........"
"그런데 이런 식으로...사람 착각하게 하는 짓은 그만둬요."
그의 등이 이렇게나 작아 보였던가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누른 에바리스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천천히 돌아보는 얼굴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두려워 고개를 푹 숙였다. '에바리스트' 그는 그렇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너무도 똑같아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에바”
“...왜요.”
“그냥”
부르기 좋은 이름이라 그냥 불러봤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피아노 앞에 홀로 외로이 앉아 그렇게 말했다. 손가락에 반지는 빼지도 않은 채 건반을 손으로 건드리며 그가 그렇게 말했다. 속에서 무언가 왈칵 차올랐다. 뻔히 보이는 당신의 마음을 알고서도 나는 외면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이기에 나 역시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될리가 없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당신이 예전에 그랬죠. 무언갈 선택하면 다른 무언가 버려야 한다고, 만약 그게 당신이라면 더 많은 걸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고”
“그래”
“그 말이 맞아요. 무언가 버려야 했겠죠. 당신 옆에 있으려면 더 많은 걸 버려야겠죠. 하지만 그게 당신이어서는 안돼요. ”
“....”
“그래서는 안된다구요....”
이제 제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없어요. 사랑해요, 프리드리히. 느리게 느리게 그에게 다가갔다. 피아노 앞에 앉아 이젠 쓰지도 못하는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그 앞에 다가갔다. 아주 느리게 느리게 그 손이 움직였지만 난 그 곡이 무슨 곡인지 안다. 우리의 인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곡이었고 동시에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미로운, 에바리스트는 그의 어깨를 털고 손을 얹었다. 그를 내려다보면 그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고 나는 그 위에 입을 맞췄다.
피하지도 피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 뒷머리를 잡고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기도했다. 도망가지 마라, 제발 도망가지만 말아라. 다가오지 않아도 좋으니 떠나지만 마라. 아니 차라리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당신은,
에바리스트가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툭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프리드리히,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등을 끌어안았다. 이렇게 컸던가 새삼 프리드리히는 몇 달 전 피아노를 치고 있던 어린 에바리스트를 떠올렸다.
이제는 감당 할 수 없이 커버린 몸과 마음에 프리드리히는 그저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장난치는 거 그만둬요. 우리”
“나는....”
“진심을 말해줘요. 프리드리히”
“너를............”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며 사소하다. 그것이 에바리스트와 프리드리히라고 다르진 않았다. 잘 흘러가던 피아노 소리에 불협화음이 섞여 들어왔다. 움찔하고 놀란 에바리스트가 고개만 살짝 돌려 프리드리히를 바라봤다. 피아노 줄이 떨릴정도로 세게 내리친 프리드리히가 몸을 일으켰다. 눈을 마주 보지도 않고서 돌아서 겉옷을 챙기는 프리드리히에 에바리스트 역시 오기가 생기고 말았다.
“…….”
“…….”
쾅! 문 닫는 소리가 요란하게도 프리드리히의 발걸음 소리는 멀어져 갔다. 잘 참았다고 생각한 순간 에바리스트는 들고 있던 악보를 떨어트렸다. 지금까지 저렇게까지 화난 프리드리히는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프리드리히는 돌아올 것이다. 그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
그렇게까지 화내며 뛰쳐나올 일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웃고 넘겨도 됐을 일이었고 그것이 안되면 참으면 그만인 것을, 프리드리히는 생각보다 자신이 질투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에바리스트라고 다를 것 없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자신은 질투심이 많았다. 어디 파티에서, 어느 공연에서, 어떤 여성이, 프리드리히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금세 고개를 저었다. 더는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하고 돌아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명색에 스승인데 그 녀석, 프리드리히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공을 뻥 찼다. 데구르르 굴러가던 공이 툭 하고 멈추더니 서서히 공중에 들어 올려 졌다. 프리드리히의 시선이 약간 올라가 그 공에 머물렀다. 서서히 다가온 공은 프리드리히의 무릎에 안착했고, 그 뒤로 보이는 새하얀 얼굴에 잠깐 당황했을 뿐이다.
“아저씨, 엄마가 안 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미래의 상황을 피하기에 프리드리히는 악인이 되지 못했다.
“엄마 찾아줘요.”
“저… 꼬마 아가씨?”
“집에 돌아갈래에!!”
무언가 눈치를 챘는지 울음을 빼액 터트리는 소녀에 당황한 프리드리히가 소녀를 안아 올렸다.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프리드리히는 소녀를 어르고 달래며 주위를 돌아다녔다. 공원이 꽤나 넓어 방송을 해보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결국 프리드리히는 소녀의 손을 잡고 시내로 나섰다.
많아 봐야 10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두고 어디 간 거야, 프리드리히는 소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하다못해 핸드폰 번호라도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재킷 주머니를 더듬었다.
“…….”
“아저씨 왜 그래”
없다. 자신도 없다. 물론 연락하는 거야, 주변에 새빨간 공중전화 박스도 많았으니 상관없지만 그것은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 당장 시간과 위치조차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 녀석, 에바리스트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잊었을까. 잊었다면 그걸로 됐다. 자신 역시 그 일로 인해 더는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하고 있다면, 프리드리히는 손에 느껴지는 힘에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래? 발끝을 꼬물꼬물 움직이던 소녀가 작게 말했다. 화장실. 응? 화장실 가고 싶어. 사색이 된 프리드리히가 소녀를 안아 올리고 뛰어다녔다는 것은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일이었다.
하아, 한숨을 내쉰 프리드리히는 품에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오래 걸어서일까 지칠데로 지친 둘은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점심을 훌쩍 넘어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 다 되었지만,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는 나타나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배가 고픈 건 자신이었지만 수중에 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이쯤 되면 자신을 붙잡지 않은 에바리스트가 미워진다. 무작정 뛰쳐나온 자신도 잘못이지만, 설마 진짜 잡지 않을 줄이야. 프리드리히는 문을 쾅 닫고 나온 후 한참이나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좋다고, 나 없으면 안 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자신이 조금 늙었다고 저러는가 싶어 서럽다.
“아저씨.”
언제 일어난 것인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소녀가 프리드리히를 올려다봤다. 작은 손이 다가와 눈가를 매만진다.
“왜 울어?”
누가 울었다고 그래, 프리드리히는 소녀를 보며 시익 웃었다. 같아진 시선에는 제법 진지한 소녀의 눈이 보였다.
“착하네, 안 울고”
“아까 다 울었어”
무릎 위에 선 소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힘내서 다시 찾아볼까? 응!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목에서 무언가 흔들거렸다. 음, 설마. 프리드리히는 실례하며 소녀의 옷 밑에 숨겨져 있던 목걸이를 길게 빼내었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였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목걸이를 한참 들고서 있던 프리드리히가 소녀를 내려다보자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프리드리히를 올려다봤다. 그래, 그렇지 애가 뭘 알겠어. 혼자서 납득한 프리드리히가 소녀의 손을 잡았다. 가자. 응! 걸음이 빨라졌다.
감사합니다! 울음을 터트린 여자가 소녀를 꽈악 끌어안았다. 뭘요, 프리드리히는 권해오는 저녁 식사를 한사코 거절한 뒤 걸음을 돌렸다. 이미 하늘은 어두웠고, 가로등은 밝게 빛났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반겨주는 사람. 프리드리히는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인지 금방 떠올렸다. 혹여나 에바리스트가, 녀석이 더 이상 자신이 필요 없다며, 사랑하지 않는다며 내칠 것이 두려웠다. 소녀의 어머니처럼 하다못해 평소처럼이라도 대해주었으면 좋을 것을
그러기엔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었다.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하지 못하지만 아마 자신이 에바리스트 라면 섭섭해했을 부분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도 집은 고요했다. 고요하다 못해 벌레 하나 울지 않는 정원에 불빛도 들지 않았다. 진짜, 너무한다. 프리드리히는 차마 열어달라고 소리치지도 못한 채 문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꽤 쌀쌀해진 날씨는 옷 안을 파고들었다. 오소소 돋는 소름에 몸을 움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앞에 센서 역시 불이 꺼졌다. 추워, 프리드리히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센서가 깜빡거리며 빛을 냈다. 그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프리드리히가 고개를 들었다.
“에바리스트….”
“……”
“……”
와락, 끌어안아 오는 몸에서 훅 끼쳐오는 열기와, 달 뜬 숨소리, 살짝 젖은 뒷머리카락이 바보 같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정도로, 그가 얼마나 자신을 찾아다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에바리스트는 프리드리히를 끌어안고선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왜 전화 안 받았어요?”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한 말이 그거라니, 프리드리히는 피식 나오는 웃음에 고개를 돌렸다. 저 진지해요. 프리드리히. 꼭 대답을 들어야 하겠다는 목소리에 프리드리히가 그 목을 당겨 더 끌어안았다.
“실수로 안 들고 갔지 뭐야.”
“……”
“이상한 음성메세지 같은거 남겨 놓진 않았지?”
'2D > 언라이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른리리 (0) | 2014.07.04 |
---|---|
죄수 아이자크x교도관 프리드리히 AU 1 (0) | 2014.07.04 |
모브리리 휠체어시리즈 (0) | 2014.07.04 |
에바자크 (0) | 2014.07.04 |
콥라드 (0) | 2014.07.04 |